지금이야 싸잡아 타박하지만 이 시절 <동아일보>가 이 만큼 한 것은 이채롭다.
물론 해방 직후에는 <조선>이 <동아>보다 나았지만 말이다.
김일성대를 졸업한 저자가 북한에 관대하지 않은 것은 이해할 만하다.
그래서 일본에 남아 버텼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통신> 이후론 한국에 들어올 수도 없었겠지만 말이다.
필자들의 문제의식이 노동부를 없애려 한 이 정부에서 더욱 깊어졌겠다.
책의 대종은 결국 "문제는 정치야, 바보야!"가 아닐까?
노동을 경제로만 보면 답이 없다.
한창기가 언론과 출판계에 남긴 것은 무엇일까?
<한겨레>에 십 년 앞서 한글 전용을 택했다.
쪽 대신 면을 사용하는 창비와 저자를 소개할 때 한자를 옆에 쓰지 않는 문지의 모습도 한창기의 영향이 아닐까 싶다.
잡지는 없어졌지만 대가 근근히 이어가는 셈이다.
이 에세이에서 주네와 사이드, 오스터가 만난다.
사생아와 망명자, 유대인이 말과 글을 주고 받으며 느슨하지만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맺는다.
사이드는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에서 스승 주네를 기억하고 있으니 오스터도 어느 공간에서 사이드를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잘 씌어진 모더니즘 소설 하나를 칭찬한 게 뭐가 그리 대순가?
배수아야 애초부터 그리 소설을 써왔지 않나?
보기 싫은 건 왔다리 갔다리 하며 양쪽으로부터 공히 인정 받으려는 몇 작가들이다.
그리고 그에 추임새 넣는 비평가들이다.
모더니즘에도 옥석은 있게 마련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