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자유, 이성은 김우창 선생이 아끼는 말들이다.
그는 이성을 통해 자유를 얻고 민주화를 이루고자 한다.
이 글들이 씌어졌던 7, 80년대는 이 도식을 믿었고, 믿을 수 밖에 없었다.
궁금하다.
지금의 김우창 선생은 무엇을 믿고 계신지 말이다.
작품 속에서 드러나는 우물-유토피아-은 마냥 아름다운 곳만은 아니다.
물론 이 우물을 찾아 헤매는 인물들도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찾는 것일까?
새벽녘이면 우물로부터 아슴푸레한 연기가 피어오르듯이, 이들도 그러한 환상을 좇는 것은 아닐까?
그래, 환상이라 더욱 좇는지도.
무엇이 최인석을 이토록 절망스럽게 하는지, 그의 소설을 처절하게 하는지 난 잘 알지 못한다.
머리 끝이 쭈뼛 쭈뼛 서는 나의 이 고통의 원인을 알지 못한다.
삶이 이토록 철저히 괴로운 것일까?
역한 냄새를 풍기는 진창일 뿐인가?
내게도 달갑지는 않았지만 이토록 엉망일 줄이야.
하지만 진정 괴로운 건 나 자신이다.
겨우 줄거리만 알고 있는 오페라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한다는 게 좀 뭐 하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왜 이 오페라를 제국주의의 첨병으로 보았을까?
원주민 공주와 정복민 장군의 사랑이다.
설핏하게나마 짐작이 간다.
하지만 <아이다> 역시 직접 느끼고 볼 일이다.
후반부에서 말로가 종전과는 다르다고 느낀 것은 왜일까?
커츠가 전면으로 드러났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 동안의 체험에 의한 변화 때문일까?
나의 미숙함 때문이겠지만 좀처럼 말로가 잡히질 않는다.
허나 분명 호감이 가는 인물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