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코퍼필드 동서문화사 월드북 138
찰스 디킨스 지음, 신상웅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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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인류가 가지고 있는 가장 훌륭한 친구들 중 하나이다.

 - 조지 산타야나

 

 * * *

 

찰스 디킨스는 영문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가이다. 영국인들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작가가 셰익스피어라면, 찰스 디킨스는 영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다. 그의 명성은 스물다섯 살 때 갑자기 '불꽃처럼' 하늘 높이 솟아오른 뒤 꺼질 줄 모르고 타오르고 있다.

 

셰익스피어를 두고 어느 한 작품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처럼 디킨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스크루지 영감이 등장하는『크리스마스 캐럴』 하나만으로도 그는 크리스마스를 새롭게 창조한 인물로까지 칭송 받는다. 그러나 그는 얼핏 보면 어린이들의 사랑을 많이 받는 작가로 보이지만 어린이나 유아를 위한 작가는 아니다.

 

그의 작품은 읽기가 쉽기 때문에 대중적인 작가로 보이지만 실상은 아주 진지한 예술가로 대접받아야 마땅한 인물이다. 디킨스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때로는 '만화' 속에 나오는 것처럼 특징과 용모가 매우 부풀려지고 '희화화' 되지만, 그런 방식이야말로 디킨스가 아주 즐겨 사용하는 인물 조형 방법이자 인생을 폭로하는 중요한 장치나 방식들 가운데 하나이다. 이런 대목을 놓치면 그를 오해하기 쉽다.

 

디킨스의 작품 속에는 고아가 중심 인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으며, 부랑자나 죄수들을 비롯한 버림받고 소외된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가 소설 못지 않게 불우한 어린 시절을 겪었기 때문이다. 그때 맛본 고독과 절망, 굴욕과 비참함이 한평생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고도 볼 수 있다. 인생에서의 불행을 아주 심오하게 다룬다는 점에서 그는 때때로 도스토예프스키와 거의 동급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디킨스의 작품이 러시아 작가보다는 훨씬 덜 심각하며, 위트와 유머가 넘치는 등 분위기도 훨씬 밝은 편이다. 무엇보다 디킨스의 작품은 종교, 과학, 정치, 예술 등에 대해서는 아주 초연하다는 점에서도 도스토예프스키와는 아주 다르다.

 

디킨스는 나폴레옹 전쟁이 한창이던 때에 태어났지만 어릴 때 잠깐 동안은 해군 경리국에서 일하던 아버지의 안정적인 수입 덕분에 매우 행복한 분위기에서 자랐다. 그러나 아버지가 자꾸만 빚을 져서 심각한 위기에 빠지자 '목가적인 시대'는 갑자기 끝이 났고, 가족들이 런던으로 이사를 떠난 뒤 홀로 '하숙'을 하며 몇 주 더 학교를 다녔던 디킨스도 끝내 학교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작은 짐 하나만 가지고 홀로 승합 마차를 타고.

 

이 우울한 여행을 그는 평생 잊지 못했다. 눅눅한 지푸라기 냄새도 그 기억에 들러붙어 있었다. "나는 사냥당한 짐승처럼 지푸라기에 싸인 채 발송된 것이다." 몇 년이 지나서 그는 괴롭게 술회했다. "승합마차 좌석에는 다른 손님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혼자서 쓸쓸한 기분에 젖어 샌드위치를 씹었다. 가는 길 내내 비가 세차게 내렸다. 인생은 내가 기대하던 것보다 축축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1017쪽)

 

홀로 런던에 도착해 보니 가족은 '누구라도 눈을 돌리고 싶을 만큼' 칙칙하고 누추하고 초라한 동네에서 살고 있었다. 집안 형편은 나날이 비참해졌고 독이 오른 채권자들은 집으로 몰려와 모욕적인 말을 퍼부어댔다. 어린 디킨스가 하는 일이라고는 가재도구를 골라 전당포에 내다파는 일이 고작이었다. 열두 살이 된 디킨스는 결국 강기슭에 위치한 어두침침하고 쥐들이 우글거리는 구두약 공장에 고용된다. 여기서 겪은 경험이 얼마나 비참했던 것인가를 그는 나중에 친구에게 이렇게 털어놨다.

 

"그저 놀라울 뿐이다. 그렇게 어린 나이에 그토록 쉽게 내버려지다니…… 아무도 나를 동정해 주지 않았다. 비범한 재능을 가졌고 머리 회전도 빠르며 의욕이 넘치고 섬세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상처받기 쉬운 아이였는데. 그런 나를 어디 평범한 학교에 들여보내 주려고 조금이라도 노력하든가-실제로 그럴 수 있었을 테니까."

 

이때 그가 경험한 공장 생활은 그의 생애와 작품에 깊고도 영속적인 영향을 끼쳤다. 그가 육체노동을 하는 비참한 아이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다. 그때 새겨진 마음의 상처가 얼마나 심각했던지는 최근에 개봉된 영화에도 아주 생생하게 담겨 있다.(☞ 찰스 디킨스의 비밀 서재(원제는 The Man Who Invented Christmas))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주급 6∼7실링의 수입으로는 하숙비와 끼니를 해결하기 어려운 처지였는데, 그나마 버티던 아버지가 빚 때문에 체포되어 감옥에 투옥된 것이다. 그래도 그는 일요일을 기다리며 버텨냈다. 일요일이 되면 6마일을 걸어 마샬시 감옥에 가서 부모님과 형제자매들과 함께 '온갖 시름을 다 잊고' 하루를 보낼 수 있었으므로.

 

이런 눈물겨운 이야기는 작가와 절친이었던 존 포스터가 지은 방대한 《디킨스 전기》(1872∼1874)를 통해 자세히 살필 수 있지만, 디킨스가 쓴 자전적 전기인 『데이비드 코퍼필드』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맛볼 수 있다. 그렇다. 내가 여기서 찰스 디킨스의 어린 시절을 다소 장황하게 늘어놓은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데이비드 코퍼필드』에서 구두약 공장을 다닐 때의 역경은 <11장. 힘겨운 홀로서기>에 나오는데, 일부만 소개하면 이렇다.

 

그렇게 살아도 1주일에 6,7실링 가지고는 모자랐다. 그래도 나는 온종일 창고에서 일하고, 그 돈으로 1주일을 살아가야만 했다. 월요일 아침에서 토요일 밤까지, 누구의 충고도 없었고, 어떠한 조언도, 격려도, 위로도, 도움도, 어떠한 종류의 지원도 받지 못한, 거짓도 위선도 없는 곳이었다.

 

나는 너무 어렸고 철이 없었기에 내 생활을 꾸려갈 만한 능력이 없었다. 어린 내가 달리 어떻게 생활을 꾸려나갈 수 있었겠는가? 아침에 머드스톤 앤드 그린비 상점에 가는 도중, 빵집 앞에 내놓은, 반값에 파는 오래된 과자를 목고 싶은 욕망을 억누를 수가 없어서 점심 먹을 돈으로 과자를 미리 사먹어버릴 때도 있었다. 그런 때는 점심을 거르거나 롤빵 한 개, 아니면 푸딩 한 조각으로 요기를 했다.(190∼191쪽)

 

 - 찰스 디킨스, 『데이비드 코퍼필드』, <11장. 힘겨운 홀로서기> 중에서

 

 

데이비드 코퍼필드가 어릴 때 겪는 '온갖 고생담'은 눈물 없이는 읽기 어려울 정도로 불쌍하면서도 놀랍도록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작가 자신이 직접 겪었던 체험들이 도대체 얼마나 강렬하게 뇌리에 남아 있었기에 이토록 실감나는 이야기를 쓸 수 있었까 싶은 생각에 애처로운 생각이 들면서도 감탄을 거듭하며 읽게 된다. 방금도 살펴봤지만 태어나서 고작 12살때까지 겪은 '파란만장한' 이야기만 하더라도 벌써 이 소설은 200쪽을 훌쩍 넘어간다. 그러니 전체 1,010쪽에 이르는 이 방대한 소설이 어린 데이비드 코퍼필드를 둘러싸고 얼마나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가득 채워져 있을지는 쉽게 상상하기 힘들 정도다. 주인공이 갓 태어난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서 마침내 고명한 작가로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될 때까지 만났던 수많은 인물들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이 소설을 읽는 재미가 오로지 '작가 찰스 디킨스의 드라마틱한 실제 삶'에 의존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것만큼 크나큰 오해도 없을 것이다. 물론 이 방대한 소설의 상당 부분이 작가의 실제 삶을 깊게 투영한 건 맞지만, 그게 크나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도 아니다. 특히나 20대 중반부터 갑자기 시작된 작가로서의 놀라운 성공 과정이나 출세한 작가로서의 화려한 모습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왜냐하면 이 작품을 완성할 때만 하더라도 작가의 나이는 고작 37세였고, 소설에 1인칭으로 등장하는 '나' 데이비드 코퍼필드가 '과거를 회상하면서'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의 나이 또한 30대 중반쯤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소설의 주인공이 비교적 어린 나이인 20대 초반에 사랑하는 도라와 결혼식을 올리고 신접살림을 차릴 때쯤이면 이 소설은 벌써 740쪽을 훌쩍 지나면서 서서히 종반부로 치닫게 된다. 그러나 주인공의 삶을 다루는 시기가 이처럼 아직 한창이나 다름없는 나이인 30대 중반으로 한정된다고 해서 작품 내용마저 철없는 10대와 20대 시절의 이야기에 너무 치우쳐 있으리라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비록 30여 년에 걸친 짧은(?) 기록이라고 하더라도, 이 작품 속에는 결코 적잖은 사람들이 저마다 엄청난 사건들을 겪고, 홀연히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고, 더러는 독자들의 예상보다 훨씬 일찍 갑작스러운 변화와 죽음을 마주하지만, 더러는 오래도록 살아 남아서 뒤늦게나마 주인공인 '나'와 다시 '눈물겨운 상봉'을 갖기 때문이다. 지난 날에 대한 온갖 추억과 회한과 상념들을 골고루 떠올리면서.

 

이것으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펜을 놓기 전에 다시 한 번 ㅡ 마지막으로 떠올려 본다.

(……)

빠르게 스쳐 가는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가장 뚜렷이 보이는 얼굴은 누구일까? 아아, 그렇다, 이 얼굴들! 내가 속으로 그것을 물어보면 모두가 일제히 나를 뒤돌아 본다!(1006쪽)

 

 - 찰스 디킨스, 『데이비드 코퍼필드』, <64장. 마지막 회상> 중에서

 

 

『데이비드 코퍼필드』는 여느 이름난 장편소설들과는 사뭇 다르다. 대개 '장편소설'들이 다루는 주제들은 묵직하기 마련이고, 거대한 건축물을 마주 대하듯 '외관'에서부터 압도되는 경우도 많은데 이 소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도 찰스 디킨스를 무척 좋아했다고는 하지만 『전쟁과 평화』와 『데이비드 코퍼필드』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다만 두 소설이 아주 닮은 점 한 가지는 꼭 밝히고 싶다. 두 작품에 똑같이 등장하는 '주연급 청춘남녀가 철없이 저지르는 무대뽀 야반도주 사건'만큼은 닮아도 너무 닮았다. 그들 두 커플은 용모나 성격까지도 쏙 빼닮았다. 심지어 두 여주인공이 도주할 때 남기는 '급하게 갈겨 쓴 편지'까지 닮았다. 러시아 소설에선 나따샤(오드리 햅번이 맡았던 배역)과 돌로호프가 주인공이고, 영국 소설에선 에밀리와 스티어포스가 그런 역할을 떠맡았는데, 아마도 잘 모르긴 해도 톨스토이가 『데이비드 코퍼필드』로부터 상당한 영향을 받았음에 틀림없지 싶다.

 

그러나 톨스토이가 쓴 『전쟁과 평화』에는 숱한 인물들의 삶과 죽음을 통해 밝히고자 애썼던 '삶의 의미'에 언제나 전쟁과 평화, 역사와 우연, 종교와 정치 등과 같은 묵직한 주제들이 끈덕지게 들러붙었으나, 찰스 디킨스의 작품에서는 그런 요소가 전혀 필요하지 않았다는 점이 서로 다르다. 작가의 자전적인 소설에 그런 요소가 왜 필요하겠는가.

 

이 소설이 지닌 치명적인 매력 가운데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게 있다면 그건 '과거에 대한 회상'을 한 치의 빈틈도 없이 너무나 정확하게 되살려 내는 주인공의 비상한 기억력이고, 그걸 너무나 매혹적으로 기술하는 작가의 솜씨다. 아무리 작가의 전기적인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작가가 이 정도로 적재적소에서 아주 세밀하게 '어린 시절의 온갖 추억'을 비디오처럼 생생하게 되떠올리고, 그런 회상 장면 자체까지도 놀랍도록 매혹적으로 묘사해 놓은 줄은 몰랐다.

 

인생의 매 순간마다 우리의 눈앞을 스치듯 사라져가는 수많은 광경들과 감각들, 다시 말해서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을 통해 우리의 뇌리에 저장되는 기억들을 이처럼 생생하게 되살려 놓은 작품을 일찌기 나는 접해본 적이 없었다. 이 소설 덕분에 내가 '낡은 기억의 저장고'에서 먼지를 푹 뒤집어쓴 채 오랫동안 널브러져 있던 온갖 자질구레한 잡동사니들 틈을 헤집고 다니다가 문득문득 새롭게 꺼내 본 풍경과 기억들이 얼마나 많았는지는 일일이 셀 수도 없을 정도다. 그것들은 때로는 기적적으로 기억의 심연 속에서 갑자기 불쑥 떠오르기도 했고, 그때마다 나는 그런 기억들을 어떤 식으로든 붙둘어 매어 두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트에 옮겨적었다.

 

어디선가 프로이트가 가장 좋아한 소설이 『데이비드 코퍼필드』였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나서는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기도 했다. 주인공 데이비드가 심리적으로 강렬한 충격을 받을 때마다 그는 '현실에서 비롯된 꿈'을 잠자리에 들어서도 내내 이어가는데, 그 이야기가 어찌나 사실적이면서도 생생했던지 '그래, 맞아, 나도 예전에 그런 비슷한 꿈을 자주 꾸었지'라는 말도 자주 되뇌었다. 인간 내면 심리에 대한 탁월한 연구결과를 내놓은 천재 심리학자 프로이트가 이 소설을 두고 얼마나 '자신의 경험'과 일일이 대조하면서 자주 읽었을지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데이비드 코퍼필드』에 담긴 이야기는 '기억의 본성'을 탐구하는 동시에 독자들한테 끊임없이 회상'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몹시 매력적이다. 디킨스는 또한 계급과 성()의 차이에서 오는 '관계의 불안정'도 깊이 연구했는데, 이는 노동자 계급인 에밀리를 유혹하는 스티어포스, 성녀같은 아그네스에게 흑심을 품은 우라이아, 그리고 결혼 이후에도 어린아이에 머물러 있는 관능적인 도라에서 정숙한 이성 아그네스에게로 차츰 관심이 옮겨가는 데이비드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어느덧 『데이비드 코퍼필드』와도 작별할 시간이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 가운데 꽤나 많은 사람들을 나는 오래도록 잊지 못할 듯하다. 가장 먼저 페거티와 그의 오빠가 떠오른다. 쌀쌀맞던 의붓아버지 머드스톤과 그의 누나도. 학창시절부터 가장 가까운 친구였던 스티어포스와 트레들스도. 페거티 씨네 뱃집에서 의좋게 살았던 에밀리와 햄과 거미지 부인도. 구두약 공장에 다니던 어린 시절부터 오래도록 함께 한 미코버 부부도. 5박 6일 동안의 고난의 행군 끝에 만난 대고모 트롯우드도. 캔터베리의 대성당 근처에 살았던 우라이아 힙과 아그네스까지도 벌써 그립다. 아직도 사전 편찬에 계속 몰두하고 있을 것만 같은 스트롱 박사 부부도 그립고, 도라와 집(애완견 이름)도 다시 만나고 싶다. 스티어포스 부인과 로사 다틀과 하인 리티머는 어떻게 생겼을까. 에밀리의 친구 마사와 미스 모처의 실제 모습도 궁금하다. 트레들스의 아내가 된 소피와 여러 발랄한 처제들까지도...

 

이제는 그들과 헤어져야 할 때가 다가왔다. 언젠가 다시 만날 그때까지 모두들 부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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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아 2018-03-31 08: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쟁과평화>와 비교된 작품의 특징부문이 너무 좋았어요. 멋진 글 잘보고 갑니다~

oren 2018-03-31 14:35   좋아요 1 | URL
그 부분을 쓸까 말까 몇 번이나 고민하다가 결국 되살렸는데, 인상깊게 봐 주시니 고맙습니다.^^

남녀 사이의 애정 관계로만 살펴보면 두 작품이 서로 묘하게 닮은 점이 정말 많이 발견되더라구요.

<전쟁과 평화>에서의 여주인공은 나따샤인데, 그녀는 맨 처음엔 (제1의 남주인공 격인) 안드레이 공작을 사랑하지만 끝내 그 사람과 결혼에 이르지는 못하고 ‘가슴 아픈 이별과 안타까운 재회‘를 반복하게 되지요. 전쟁 중에 큰 부상을 입고 후송되는 안드레이 공작과 ‘피난길‘에 오른 나따샤가 극적으로 재회한 이후, 오랫동안 아주 가까이서 그를 극진하게 보살피는 나따샤의 헌신적인 모습만큼 감동적인 장면도 흔치 않지요.

그녀는 처녀때부터 꽃봉오리처럼 아름답고 발랄하면서도 몹시 순종적이고 고결한 심성을 지닌 매력적인 여성인데(어딘가 모르게 오드리 햅번의 성격과도 닮은 듯한), 안드레이가 전쟁터에서 입은 부상 때문에 결국 죽고 난 이후 훨씬 나중에야 (첫 결혼을 ‘파혼‘한 돌싱남이자 매력적인 제2의 남주인공인) 베주호프와 결혼하게 되면서 활짝 소생하게 되지요.

<데이비드 코퍼필드>에서의 에밀리 또한 어릴 때부터 제1의 주인공인 데이비드와 서로 아주 좋아하는 사이였고, 사춘기를 지날 때까지도 서로 부끄럼을 타면서도 내심 좋아하는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는 점에서 ‘안드레이와 나따샤와의 순애보‘와 아주 닮았더라구요. 나중에 에밀리가 (제2의 남자주인공 격인) 스티어포스와 야반 도주를 하는 모습도 꼭 닮았고, 그에게 버림받은 뒤에도 끝내 고결한 심성을 잃지 않고 새로운 삶을 찾는 과정까지도 왠지 <전쟁과 평화> 속의 나따샤를 아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떨치기 힘들더군요.

톨스토이는 소외받는 낮은 계급의 사람들인 하인이나 마부나 농노 등에 대해서도 따스한 애정과 관심을 보여주는데, 찰스 디킨스의 여러 작품 속에 등장하는 고아나 마부나 하녀 등 가난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끝없는 관심과 따스한 눈길과도 무척이나 닮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