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만이, 그리고 그보다 좀 덜하지만 옹고집은 모든 기회에 억눌러서 나오지도 크지도 못하게 막아야 할 결함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것은 그들과 함께 커 간다. 그리고 주둥이에 이런 못된 버릇이 생기는 것을 놓아 두면, 거기서 빠져나오기란 놀라울 만큼 어려운 일이다.
 - 몽테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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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소수만이 진실을 알고 있는 '오래도록 은폐된 추악한 비밀'이 어느날 느닷없이 만천하에 폭로될 경우를 (다시) 생각해 보자.

 

비밀을 폭로하기로 결심한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자신의 폭로에 대해 이 세상 사람들이 과연 얼마만큼 믿어줄 것인가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자신의 폭로가 엄청날수록 사람들은 대개 '믿을 수 없다'는 반응부터 보일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이럴 때 '움직일 수 없는 명백한 증거물'이 있다면 아무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이른바 '스모킹 건'이 뒤늦게라도 발견되기만 한다면 '폭로'를 입증하는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를 가장 명쾌하게 보여준 가장 가까운 사례는 아마도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 초기에 JTBC에서 확보한 태블릿 PC였지 싶다. 그토록 명백한 증거물이 발견되었는데도 불구하고, 그걸 인정하는 순간 자신들이 처하게 될 '엄청나게 불리한 입장'을 직감한 범죄자들이 끈덕지게 물고 늘어졌던 생떼에 가까운 억지를 생각해 보라. 세상 사람들이 다들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결정적인 증거물이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한사코 그게 조작됐거나 심지어 남의 물건이라고까지 대단한 억지를 오랫동안 부렸다.(혹시 아직도? 누군가는?)

 

또다른 폭로를 생각해 보자. '은폐된 비밀'이 너무 오래 전에 일어난 일인 데다가 이제는 '시간의 간극' 때문에 '뚜렷한 증거물'조차 별로 남아 있는 게 없는 경우라면 어떨까. 아마도 비밀을 폭로하려는 사람은 신중에 신중을 거듭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비록 자신은 명명백백한 진실을 폭로한다고 말하지만, 이 세상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얼마만큼 믿어줄지 결코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까딱 잘못하면 '거짓 폭로'로 오해받기 십상이다. 그같은 폭로 때문에 한순간에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치명상을 입는 사람이 존재하고, 그 사람이 그 분야에서 오랜 기간 동안 '거물'로 행세할수록 그런 위험은 더욱 커진다. 그런 사람들은 거의 틀림없이 무슨 '정치적인 저의'가 있다거나, 무슨 원한이나 보복 때문에 '음해 공작'을 꾸미는 것이라고 도리어 피해자를 덧씌우기 마련이니까.

 

이와 비슷한 경우를 가장 자주 봐왔던 게 바로 가장 최근에 일어난 '미투 운동의 일반적인 사례'이지 싶다. 성추행이나 성폭력은 대체로 밀페된 공간에서 은밀하게 저질러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증거물'이 존재하기 어렵다. 게다가 아주 우발적으로 극히 짧은 시간에 범행이 저질러질 경우에는 더더욱 '증거물'은 남기 어렵다. 그러니 아무리 용기 있는 '피해 여성'이라고 할지라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당당하게 가해자를 향해 '과거의 악행'을 폭로하기는 결코 쉽지 않을 터이다, 이럴 때 그들이 기어코 용감하게 악행을 '폭로'하기로 결심한 가장 큰 심리적 동기는 어디에 있었을까.

 

잘은 모르겠지만 이번에 쓰나미처럼 덮친 미투 운동의 근본 바탕에는 '더 이상 이대로는 안 된다'는 절박한 마음이 가장 큰 동력으로 작용했을 듯싶다. 참으로 오랜 세월 동안 남성들에게 거의 일방적으로 억눌려 지내온 설움만 해도 이만저만이 아닌데, 거기에 더해 온갖 추악한 성추행이나 성폭행까지 당했으면서도 그걸 도리어 부끄럽게 여기며 꼭꼭 숨기고 억울하게 살 이유는 없다는 '진지한 자각'이 화산처럼 분출하는 모양새와 닮았다. 더구나 이미 그런 용기를 내는 사람이 여럿 등장한 데다가, 자신의 용기 덕분에 어렵사리 새로운 용기를 얻을 또다른 미지의 사람들까지도 고려한 끝에 더욱 '용기'를 냈으리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바로 이런 이유로 '위드 유' 해시태그도 생겼을 터이다.

 

이제 2011년 12월 23일에 일어났다고 '폭로된' 어떤 성추행 사건을 다시 생각해 보자.

 

대학생 시절에 겪은 그 억울한 피해를 '7년 동안'이나 묻고 지내왔지만, 이번에 불어닥친 미투 광풍(?)을 보면서 기어이 참지 못하고 휩쓸리듯 갑자기 '폭로'를 결심한 듯한 인상을 풍기는 그 여성의 경우는 어쩌면 '진실이 받아들여지는 단계'를 너무 과소평가했는지도 모르겠다. 피해 여성이 스스로 밝혔듯이, 그 사건은 아주 짧은 시간에 몹시 우발적으로 일어났으며, 더군다나 증거조차 제대로 남아 있는 게 없었으니 말이다. 그녀는 무엇보다도 '주변 사람들'을 단단히 믿었던 듯하다. 자신이 당했던 피해를 일찌감치 '공유했던' 친구들만큼은 틀림없이 '확고한 증언'으로 자신의 피해를 증명해주리라 믿었을 테니까. 비록 그 어떤 증거물 하나 뚜렷이 남아 있는 게 없다손 치더라도 말이다.

 

그런데 세상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이미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정치인한테 제대로 걸려들고 만 것이다! 더군다나 그 사람은 이미 수많은 열성 지지자들까지 단단히 확보한 유명인이었다. 자신의 말 한 마디, 몸짓 하나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낼 만반의 준비를 갖춘 '막강한 응원부대'를 지닌 백전노장의 야전사령관이나 다름없었다.

 

익명에 기댄 폭로자의 '어딘가 허술해 보이는 듯한' 폭로가 노회한 정치인을 더욱 자극했던 듯하다! 옳거니! 그런 정도의 느슨한 폭로에 그런 정도의 알리바이라면 나도 얼마든지 자신 있지, 라는 얄팍한 계산이 앞섰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더구나 그는 10년이라는 장구한 기다림 끝에 이제 막 '봄나들이'를 준비하던 차였다. 결국 '최초의 폭로' 이후 며칠이 지난 끝에 가해자 쪽에서 나온 첫 번째 반응은 '폭로' 그 자체가 허위라는 것이었다! 그 이후에 진행된 경과는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격렬한 '이전투구의 연속'이었다. 한마디로 말하면 사생결단에 가까웠다. 누군가 둘 중 하나는 치명상을 입을 게 틀립없을 정도로.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 '진실 공방'이 어떻게 비춰졌을지 몰라도 나로서는 애시당초부터 승패가 정해진 싸움으로 보였다. 피해자로서는 일부러 '없는 사실'을 지어내서 '성추행 피해'를 폭로할 하등의 동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적당한 선에서 사건이 하루빨리 '수습'되길 바랬다. 그런데 양측의 공방은 나날이 확전일로였고, 이 싸움을 보다 못한 훈수꾼들이 하나둘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건 단연 진중권의 논리정연한 글이었다.(☞ 정봉주 '미투' 사건에 관하여) 옳거니! 이 정도의 글이라면 이제 다들 수긍하고 싸움을 그치겠지 싶었다. 아,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진중권의 글을 도리어 나무라는 댓글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진중권의 글은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조롱받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격렬한 저항을 받고 있었다! 이때 떠오른 말이 쇼펜하우어의 다음 말이었다.

 

모든 진실은 세 가지 단계를 밟는다.

 

첫째, 조롱당한다.

둘째, 격렬한 저항을 받는다.

셋째,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결론은 일반적인 예상보다는 훨씬 빠른 시기에 다소 싱겁게 끝이 났다. 어쨌든 진실은 결국 하나다. 한번 지어낸 거짓말은 그걸 꾸미기 위해 또다른 거짓말을 무수히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 하나마나한 이 뻔한 '진실'을 누구나 알고 있으면서도 왜 사람들은 그토록 '거짓말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고 마는 걸까. 왜 '진실'을 인정하고 난 뒤에 얻게 될 '편안한 휴식'을 애써 마다 하고, 기어코 '하나의 거짓'이 낳게 될 '수많은 거짓'을 바벨탑처럼 쌓아올리기 위해 그토록 몸부림치는 걸까. 자신이 내세우는 '거짓'이 잠시나마 진실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더러 있을 수 있지만, 그게 결코 '진실'을 영원히 묻을 수는 없다는 사실을 언제까지 다시 반복하며 깨우쳐야 옳다는 말인가.

 

이번 사건으로 우리는 또다시 '희대의 사기꾼' 한 명을 추가로 보유하게 되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사기꾼들은 이 나라에 넘쳐났었다. 걸핏하면 "이 사람 보통 사람이에요"라고 온 국민 앞에서 맨날 떠들어 놓고, 뒤로는 엄청난 금액의 돈을 마구 갈취했던 노태우 전 대통령이나, 그토록 큰 소리로 "다스가 어떻다고요? BBK가 어떻다고요? 여러분, 이 모든 게 새빨간 거짓말인 거 아시죠?" 라고 호언장담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이나, "저는 사리사욕을 위해 '한 푼의 돈'도 받은 적이 없어요." 라면서 온갖 새빨간 거짓말을 장황하게 늘어 놓았던 박근혜 전 대통령으로는 아직도 부족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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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8-03-29 08: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논의 ‘아킬레우스와 거북이‘ 시합 이야기가 떠오르네요. 극한의 개념이 없는 상태에서 이론상으로는 영원히 아킬레우스는 거북이를 이길 수 없겠지만, 실제 시합에서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겠지요... 우리가 어떤 일을 바라볼 때 설명이나 개념에 매몰되었을 때는 그것을 자세히 들여다보기보다 원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일을 통해 이 사람이 얻는 것이 무엇인가?‘ 이 문제가 명확하다면, 다른 설명은 개념 또는 관념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oren 2018-03-29 09:27   좋아요 1 | URL
직관‘의 중요성이겠지요. 누가 더 뚱보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기 위해서 반드시 둘 다 ‘저울에 올라갈 필요‘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겠고요. 도리어 각자 저울에 올라가는 순간부터 진짜로 새로운 문제가 생길 수도 있겠고요.(그 게임에서 이해관계가 크게 걸린 사람 가운데 누군가는 저울의 눈금을 어떤 방식으로든 조작할 가능성이 생길 테니까요.) 이번 사건을 보면 애시당초부터 한 쪽은 ‘오로지 진실을 말할 동기‘ 하나밖에 없었고, 거짓을 말할 동기는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웠지요. 다른 한 쪽은 완전히 그와 반대였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