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봄이다. 그런데 봄은 언제나 더디게 온다. 봄을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들에겐 더욱 그럴 게 틀림없다. 봄이 오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는 사람들에게 봄이 더디게 오는 게 느껴질 리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무리 봄이 느린 걸음으로 다가온다고 하더라도 봄은 온다. 틀림없다. 그래도 봄은 온다. '하루 견디면 하루 견딘 만큼 우리는 봄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는 것이다.'
이미 오래 전부터 며칠이 멀다 하고 '봄 소식'을 알리는 곳도 있었다. 다름 아닌 라디오였다. 요즘 라디오는 문명이 발달해서 어디서든 들을 수 있다. 인터넷이 발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집에서도, 출근길 차 안에서도, 사무실에서도 틈만 나면 라디오를 듣는다. 그러니 봄에 대한 소식뿐 아니라 '봄 노래'도 꽤나 자주 듣게 된다. 어디 봄 노래 뿐이겠냐마는 그래도 계절이 바뀔 땐 노래도 계절을 탄다.
봄 노래를 어떤 걸 꼽을 수 있을까. 봄을 상징하는 종달새 한 마리만 떠올리더라도 벌써 여러 곡이다. 하이든이나 베토벤뿐만 아니라 평생 '겨울'만 노래했을 것 같은 슈베르트의 작품 가운데서도 봄을 노래한 가곡이 여럿이다.
뭔가 좀 알아낼까 싶어 클래식을 소개한 책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성공한 『내가 사랑하는 클래식』을 펼쳐 봤더니 약간은 엉뚱한 느낌도 든다. <1 봄, 세상의 모든 사랑을 위하여>에 선곡된 곡들 가운데 내가 생각하는 봄 노래는 별로 눈에 띄지 않으니 하는 말이다.
거기에 나열된 '봄을 노래하는 곡들'은 다음과 같다.
쇼팽 : 피아노 협주곡 제1번. 제2번_백건우
차이코프스키 : 플로렌스의 추억_브로딘 4중주단
비발디 : 사계_파비오 비온디
스메타나 : 교향시 나의 조국_라파엘 쿠벨릭
브람스 : 교향곡 제1번, 제3번_귀도 칸텔리
베토벤 : 교향곡 제5번, 제7번_카를로스 클라이버
슈만 : 가곡집 시인의 사랑, 미르테_이안 보스트리지
테오도라키스 : 발레 모음곡 그리스인 조르바_미키스 테오도라키스
토스티 : 가곡집 이상 외_레나토 브루손
곡마다 '봄'을 느끼지 못할 특별한 이유는 없겠지만 저렇게 골라놓은 곡들이 모두 '봄 노래'가 맞느냐고 누가 질문을 한다면 대답하기 곤란한 것도 사실이다. 혹은 저 곡들에 일일이 번호를 메긴 다음에, <봄을 노래한 곡을 모두 고르시오>라는 문제를 낸다면 과연 몇이나 1,2,3,4,5,6,7,8,9까지 다 헤아려 낼까 궁금하기도 하다. 미키스 테오도라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를 들을 땐 매번 '여름 해변가'를 상상하곤 했는데, 사람마다 음악을 듣고 느끼는 감정이란게 참으로 천차만별이다. 며칠 전에도 그 음악을 들었는데, 그때도 '아, 봄이로구나' 하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었다.
저 목록을 두고 왜 거기에 요한 슈트라우스의 《봄의 소리 왈츠》가 빠져 있냐고 시덥잖은 항의를 할 생각은 없다. 음악이야말로 취향의 문제이니까. 섭섭한 생각조차도 아예 없다. 사실《봄의 소리 왈츠》는 너무 익숙하다 못해 조금 진부한 느낌까지도 주는 게 사실이다. 그래도 그 음악을 들으면 여전히 '봄'이 샘솟듯 힘찬 발걸음으로 갑자기 우리곁에 다가오는 듯한 느낌이 확연히 든다.
요한 슈트라우스까지 등장시켰으니 이쯤에서 슬슬 '본론'을 꺼낼 때가 되었다. 요즘 내가 가장 '봄'을 타며 듣는 노래는 단연코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이다. 예전부터 그 곡을 들으며 봄을 느끼지 않았다는 건 아니지만 '단 한 번의 여행 경험'이 그 음악과 아주 단단히 결합하고 난 이후부터는 그 음악을 들을 때마다 매번 특별한 감동으로 '봄'이 다가온다. 이제부터 그 얘길 좀 늘어놓을까 싶다.
우리가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을 가장 쉽게 '보고 들을' 수 있는 때는 봄이 아니라 오히려 그보다 몇 달 앞선 신년초가 더 잦을지도 모르겠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리는 '빈 필 신년음악회'의 단골 레퍼토리가 바로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과 <라데츠키 행진곡>이기 때문이다.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던 아들(요한 슈트라우스 2세)와 아버지(요한 슈트라우스)의 노래가 언제나 앞뒤로 연이어 연주되는 이유도 자세히 알고 보면 '오스트리아의 국민 감정'에 절묘하게 부합하기 때문이다. 아들이 작곡한 그 왈츠곡은 포로이센과의 전쟁에서 대패한 오스트리아 국민들을 위로하기 위해 만든 작품이었고, 아버지가 작곡한 그 행진곡은 '군대의 사기 앙양'을 위해 라데츠키 장군의 이름을 붙여 지은 곡이었으니 말이다.
재작년 봄에 난생 처음으로 동유럽 여행을 떠나기 한 달쯤 전, 여행 준비사항 가운데 가장 어려운 미션 한 가지 때문에 잠시나마 가슴을 졸였던 일이 있었다. 음악 도시로 유명한 빈에서 2박 3일 동안 머무를 예정이니, 그때 '음악 연주회'를 듣고 싶은 여행객들은 각자 알아서 '음악 티켓'을 미리 예약해 놓으라는 당부를 여행사로부터 받았던 것이다. 물론 '연주장'까지 가는 길은 동반할 가이드가 당연히 안내해 줄 테니 조금도 걱정하지 말라는 말도 친절하게 덧붙였다. 이게 웬 횡재냐 싶어서 곧바로 '핵심'에 다가갔다. 빈 신년음악회가 열리는 <빈 무지크페라인>과 빈 국립오페라극장인 <빈 슈타츠오퍼>에 접근한 것이다. 이 또한 인터넷이 발달한 덕분에 내 방 안에서 모두 해결되었다.
그렇게 가슴 벅찬 기대를 품고 빈에 도착한 첫날 저녁에 <빈 무지크페라인>의 황금홀을 찾았다. 감격스러웠다. 여기야말로 TV로 늘 지켜만 봤던 '세계 음악의 중심'이 아닌가 싶었다. 지휘자 프란츠 뵐저-뫼스트는 "음악가들에게 무지크페라인은 카톨릭에서 바티칸 성당과도 같다'라는 말로 그곳을 간결하게 요약했다지만, 비단 음악가뿐 아니라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 누구에게나 황금홀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비숫하지 않을까 싶다.
- 빈 무지크페라인을 정면에서 올려다본 모습이다.
정초마다 전세계에서 5,000만 명 이상이 지켜본다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주무대다.
빈의 `음악애호가협회`는 1812년에 탄생했고, 무지크페라인은 1870년에 건축됐다고.
- 이 공연장이 유럽 최고의 명문 음악당으로 명성을 공고하게 다진 바탕이 된 대공연장 `황금홀`
지휘자 브루노 발터는 "여기서 처음으로 지휘한 뒤에야 음악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비로소 깨달았다"고 했다고.
- 로린 마젤, 카라얀, 주빈 메타, 마리스 얀손스 같은 명지휘자들이 지휘했던 빈 필하모닉의 연주를 이곳에서 직접
듣지 못해 몹시 아쉬웠지만, 여기서 모짜르트의 음악을 직접 듣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감동이었고 가슴이 벅찼다.
여기서 들었던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는 아마도 평생 동안 잊기 힘들 듯하다.
이쯤에서 서양 음악을 듣기 위해 빈을 자주 찾는다는 서경식 박사의 얘기를 잠시 떠올려 보는 것도 좋겠다 싶다. 그가 한겨울에 빈 외곽에 위치한 장크트 맑스 묘지에서 찾은 '모차르트의 주검을 던쳐 넣었던 구덩이'에서 밝힌 소회다.
이토록 쓰리고, 그래서 투명한 곡은 없다
나는 이럴 때면 언제나 그랬듯이, 망자의 소리가 들려오지나 않을까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다만, 그 대신 멀리서 아련하게 부르는 것 같은 귀에 익은 어떤 선율이 들려오는 듯했다.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였다. 다른 어떤 곡보다 그 장소에 어울리는 곳이었다.
이 협주곡은 모차르트가 1791년 10월, 즉 죽기 2개월 전에 완성한 것으로, 벗이자 뛰어난 클라리넷 연주자였던 안톤 슈타들러를 위해 쓴 것이다. 작곡가는 이미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자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음악평론가 요시다 히데까즈는 이렇게 썼다. "이토록 쓰리고, 그래서 투명한 곡은 없다. 일상생활에서 이런 음악을 몇 번이나 듣는 건 내 취미가 아니다." "그것은 너무 차분해서 오히려 견디기 어려운 슬픔을 듣는 이한테서 자아내고야 만다. 특히 이것이 밝은 장조의 빛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인만큼 단조 때보다도 통절함은 더 전면적이다."
더 덧붙여야 할 말을 나는 모르겠다.(223쪽)
- 서경식, 『나의 서양 음악 순례』, <모짜르트가 내던져진 구덩이>
- 빈 중심가로 이어지는 길목에 있는 세계 3대 오페라 극장 가운데 하나인 빈 국립 오페라 극장.
1869년에 완성되어 모짜르트의 <돈 조반니>를 개관 기념으로 무대에 올렸다.
구스타프 말러,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카라얀, 칼 뵘 등 세계적인 지휘자들이 총감독을 맡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 아내와 둘이서 가슴 설레며 찾은 빈 국립 오페라극장. 공연을 앞두고 저녁도 극장내 1층 레스토랑에서 먹었다.
줄지어 선 창구 앞에서 기다렸다가 미리 예약한 `예약번호`를 내밀자 2초도 안 걸려 미리 인쇄된 표를 바꿔준다.
여행복 차림에 카메라 가방까지 메고 갔지만 `짐`들은 보관소에 맡겨지는 바람에 핸드폰으로만 몇장 찍었다.
- 이곳에서 모짜르트의 작품 <피가로의 결혼>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쉽게도 우리가 비엔나에 머물
동안 관람할 수 있는 공연은 롯시니의 `체네렌톨라` 뿐이었다. 여행을 떠나기에 앞서 예약을 몇 번이나 망설였지만
그래도 예약하길 잘했다 싶었다. 오케스트라와 오페라 가수들의 연주도 정말 놀랍도록 완벽했지만, 관객들의
감상 태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하나같이 쥐죽은 듯 고요했고 미동도 없었다. 웃고 박수칠 때 빼고는.
가장 정선된 귀를 가진 자들에게 한마디
ㅡ 가장 정선된 귀를 가진 자들에게 한마디 더 하겠다 : 내가 음악에 진정 무엇을 바라는지에 대해. 나는 음악이 10월의 오후처럼 청명하고 깊이 있기를 바란다. 음악이 개성 있고 자유분방하며 부드럽기를, 비열과 기품을 모두 갖춘 달콤한 어린 여자이기를 바란다 ······ 나는 롯시니 없이 지낼 수는 없다. 음악에서의 나의 남쪽, 즉 내 베네치아의 거장인 피에트로 가스티의 음악 없이는 더더욱 그렇다. 그리고 내가 알프스 너머라고 말할 때는, 나는 진정 베네치아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음악을 표현할 다른 단어를 찾아보면, 나는 언제나 베네치아라는 단어를 발견하게 된다. 나는 눈물과 음악을 구별할 수 없다. 나는 행복과 남쪽을 공포의 전율 없이는 생각할 수 없다.
- 니체, 『이 사람을 보라』중에서
빈에서의 마지막 날 일정은 '쉔부른 궁전 관람'이었다. 웅장한 외관을 거의 두 시간에 걸쳐 실컷 구경하고 나서 '궁전 내부'로 막 들어갈 즈음에 하필 그날이 '임시 휴관'이라는 게 알려졌다. 아뿔싸 싶었지만 '위기는 늘 새로운 기회'인 법, 나는 몇몇 일행들을 붙잡고 빈 외곽에 위치한 '공동묘지'로 가자고 꼬드겼다. 비록 찾아가는 길은 만만치 않겠지만, 거기 가면 숱한 위대한 음악가들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다고 설득했다. 몇몇은 쇼핑할 게 남았다며 백화점으로 가야겠다고 했다. 그렇게 뿔뿔이 흩어지고 나서 '최후의 6인'이 무덤을 찾아 길을 나섰다.
- ‘음악가들’ 묘역의 중심에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가 있다. 아쉽게도 모차르트의 무덤은 실제 무덤이 아닌 기념비다.
모차르트 기념비 뒤 양쪽으로 그를 흠모했던 베토벤과 슈베르트의 무덤이 자리잡고 있다.
슈베르트는 아예 “죽으면 모차르트 곁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그 옆으로는 ‘왈츠의 제왕’ 요한 슈트라우스 2세와 브람스의 묘가 나란히 서 있다.
- 이 사진으로는 볼 수 없지만, 요한 슈트라우스 2세 무덤 뒤쪽엔 <라데츠키 행진곡>을 쓴 그의 부친
요한 슈트라우스 1세와 역시 작곡가 겸 지휘자인 요제프 등 음악가 형제들의 무덤이 늘어서 있다.
주변을 둘러보면 <경기병 서곡>의 프란츠 폰 주페, 지휘자인 요한 헤르베크의 묘도 발견할 수 있다고.
이런 여정을 거쳐 빈을 떠날 때까지도 나는 여전히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은 듣지도 못했다. 그뿐만 아니라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그저 잘츠부르크에 들렀을 때 그 도시를 휘감아 흐르던 '도나우 강'을 살짝 엿보았을 뿐이었다.
마침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여행 일정도 고작 '1박 2일'만 남기고 있을 때,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을 만끽할 수 있는 시간이 다가왔다. 모든 여행일정의 마지막이 크루즈선을 타고 도나우강을 유람하는 일정이었기 때문이다.
- `도나우 강 크루즈`를 위해 수백 명이 너끈히 탈 수 있는 커다란 유람선에 딸랑 우리 일행만 승선했다.
가이드가 우리를 위해 특별히 미리 준비한 `토카이 와인`을 테이블 위로 내놓고 있다.
- 저녁 8시에 승선해서 10여 분쯤 달리자 어느새 헝가리 국회의사당 건물이 나타난다.
아름답기로 소문난 `부다페스트의 야경`을 보기엔 아직 주위가 너무 밝다.
- 토카이 와인은 프랑스의 루이 14세가 `왕의 와인, 와인의 왕`이라고 극찬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16세기 중반에 토카이 지방에서 세계 최초의 귀부 와인(botrytised wine, 貴腐~ )이 개발되어 일약 유명해졌다.
- `도나우 강의 진주`로 불리는 부다페스트에 저녁 노을이 차츰 물들기 시작했다.
유람선에서는 아까부터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의 선율이 계속 흘러 나오고 있었다.
토카이 와인과 도나우강의 물결 위로 시원하게 부딪혀오는 저녁 강바람에 취해 우리는 정신이 아찔할 지경이다.
도나우강은 알프스에서 흘러 내려 오스트리아의 평원을 건너 북쪽 빈을 지나 멀리 동쪽 흑해로 흘러가는
매우 긴 강이다.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은 왈츠곡 가운데서도 유난히 아름다운 곡으로, 유유히 흐르는
이 강의 양쪽 언덕의 아름다운 물 위에서 즐겁게 노니는 온갖 새들과 사람들과 강바람까지 연상케 한다.
- 세체니 다리 아래를 지날 때쯤 부다페스트의 밤을 화려하게 수놓을 `야간 조명`이 막 켜지기 시작했다.
- 도나우 강변에서도 유난히 아름다운 건물이 바로 이 국회의사당 건물이다.
건설하는 데 20년(1884∼1904)이나 걸렸으며 `내부의 모든 것들이 현란함으로 매혹된다`는데,
우리는 그저 화려한 불빛으로 장식된 야경만 봐도 충분히 매혹되고도 남을 정도였다.
- 정면에서 바라본 국회의사당. `빈의 의사당을 능가하기 위해` 더욱 현란하고 호화롭게 지어진 건물이라고 한다.
- 크루즈가 끝날 무렵 문득 뒤돌아 보니 저 멀리 도나우 강 위로 펼쳐진 온갖 건물들이 마치 `동화속`처럼 여겨진다.
그렇게 우리와 함께 했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의 선율도 잠시나마 나의 뇌리에서 까마득히 멀어져 갔다.
- 우리 일행은 도나우 강 크루즈가 끝난 뒤에도 도나우 강변을 오르내리는 트램을 떠나기 싫어서 계속 머물렀다.
한참 후에 트램에서 내린 우리는 천천히 산책하며 도나우 강가로 다가가 아름다운 야경을 좀 더 즐겼다.
이 왕궁이 최초로 지어진 것은 13세기 중반이지만 몽골 군의 습격, 오스만투르크 군의 공격 등으로
여러 차례 파괴되었다가 마리아 테레지아 시대에 마침내 큰 궁전이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헝가리 국립 갤러리, 부다페스트 역사 박물관, 세체니 도서관 등으로 쓰이고 있다고.
- 세체니 다리의 야경. 다리 너머로 저 멀리 마차시 교회와 어부의 요새도 보인다.
길이 375m, 너비 16m인 이 다리는 중앙에 있는 48m의 돌 아치와 사슬에 의해 지탱된다고.
- 마침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날이다. 오랫동안 흐렸던 날씨가 그치고 드디어 햇살이 환하게 다시 비친다.
부다페스트를 떠나기가 너무 아쉬워 다시 한번 바쁜 걸음을 서둘러 도나우 강과 세체니 다리를 찾았다.
- 세체니 다리 위에서 바라본 왕궁과 그 앞을 유유히 흐르는 도나우 강.
'15세기, 이탈리아에서 문인들과 예술가를 불러들여 르네상스 문화를 개화시킨 주무대 역할'을 했던,
저 이름난 왕궁보다 내게 더욱 인상깊은 건 아무래도 '갈색빛 도나우강'이었다.
- 실로 오랫만에 다시 본 푸른 하늘과 흰 뭉개구름.
강물만은 여전히 `오랫동안 내린 비`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비 온 뒤 불어난 한강`을 꼭 닮아 있었다.
- 이 낯선 여행객은 또 어디에서 와서 이곳 세체니 다리 위에서 저 아름다운 풍경을 사진에 담고 있을까.
여행이 끝나는 이 순간마저 어느새 또다른 여행을 꿈꾸는 건 왜일까. 그건 바로 여행만큼 우리의 삶에
본질적이면서도 항구적인 즐거움을 안겨 주는 것도 그만큼 드물기 때문이 아닐까...
"도착하기만 바란다면, 역마차를 집어타고 갈 수도 있다. 하지만 여행을 하고자 한다면, 걸어가야 한다."
장 자크 루소가 그의 저작《에밀(Emile)》에서 한 말이다. 나도 `도착하기` 만을 바라는 것은 아닐 것이다.
게다가 어디에 도착한다는 말인가? 내 마음에 드는 것은, 늘 얘기했던 것처럼, `가는 것` 그 자체다.
- 베르나르 올리비에, 『여행』수채화판 실크로드 여행수첩 中에서
그렇게 나의 동유럽 여행은 끝났다.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과 함께 한 순간이 비록 길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그런데 나는 그때까지도 미처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음악과 여행'과의 결합이 상상 이상으로 강렬한 힘을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발휘한다는 사실을.
2년 전 여행을 다녀온 이후로 나는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이 흘러나올 때마다 이 글에서 다시금 꺼내고 반복해서 보여준 여러 풍경들과 꿈같은 순간들을 매번 되살려 내곤 한다. 그때 들었던 음악과 함께. 어쩌면 여행을 통해 눈으로 봤던 여러 풍경들이 귀로 들었던 익숙한 음악과 다시 만나면서 순식간에 눈앞에서 재생된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가끔씩은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이라는 음악이 내게 마법을 부리는 것처럼 여겨질 때도 있다. 이 음악이 어느새 내게는 '봄'을 상징하는 음악으로 깊숙히 자리잡고 만 셈이다.
이 글을 마무리하가 위해서라도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 연주 영상을 덧붙이지 않을 순 없다. 아무래도 이 글에 어울리는 연주 영상이 낫겠다 싶어 여럿 가운데 좀 특별한 걸 골랐다. 연주 단체와 때와 장소는 빈 필하모닉의 빈 무지크페라인 신년음악회다. 지휘자는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인데, 이 영상은 그가 '빈 필 신년음악회'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영상이다. 카라얀도 오스트리아 태생이고, 도나우강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서 태어나고 자랐기 때문에 좀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 지난번 동유럽 여행때 잘츠부르크 시내에서 나는 그의 생가를 그냥 무심코 지나칠 뻔했다. 바쁘게 다른 목적지로 발걸음을 옮기는 동안에 스치듯 지나치며 얼떨결에 '한 컷' 담은 사진을 오늘에야 비로소 되살려 낼 줄은 차마 몰랐다.
도나우 강의 물빛은 푸른색이 아니다. 하지만 유럽을 관통하는 거대한 물줄기를 바라본 낭만적인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눈에 비친 강은 어느새 어느 시대에나 사랑 받는 아름다운 선율로 변했다. 강을 노래한 유명한 왈츠는 더 이상 강이 아닌 문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중략)
이 곡은 스튜디오에서 연주해도 그 아름다움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오스트리아 인의 마음 깊숙한 곳에 사무친 감정이 곡에 어떻게 스며들어 있는지를 느끼고 싶다면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신년 연주회를 들어 보아야 한다. 빌리 보스코프스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로린 마젤, 카를로스 클라버, 리카르도 무티 등 쟁쟁한 지휘자들의 음반 중에서도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의 2003년 연주회의 실황 음반이 돋보인다. 무엇보다 《푸른 도나우 강》과 여러 행진곡, 폴카와 왈츠에서 이제껏 들어 보지 못한 디테일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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