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콥 부르크하르트가 쓴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는 1860년에 출간된 '르네상스에 관한 결정적인 책'이다. 그런데 저자가 바젤대학에서 역사학 교수로 오랫동안 몸담고 있을 때(1858년∼1893년) 만난 인물 가운데 우리에게도 아주 익숙한 인물 한 사람을 그냥 모른 체 지나치긴 어렵다. 그사람은 독일 철학자 니체였다.

바젤 대학에 '고전문헌학 교수'로 부임하기 전부터 '고전과 고대'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던 니체로서는 부르크하르트를 만나게 된 것도 크나큰 행운이었던 듯하다. 니체가 바젤 대학에 가기 전까지 주로 연구했던 인물은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그리스 철학자 열전』의 저자), 호메로스, 데모크리토스, 아리스토텔레스, 헤시오도스 등이었고, 철학자들 가운데는 쇼펜하우어와 칸트가 있었다. 그리스 문헌학에 관계되는 교수자격논문과 칸트와 관련된 철학박사논문 등을 계획하던 니체는, 박사학위나 교수자격논문 없이도 바젤의 고전문헌학 교수직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서둘러 그리로 옮긴다. 향후 '독일 문헌학계를 이끌어갈 선두적 인물이 될 것'이라는 리츨의 적극적인 천거 덕분이었다.

니체의 연보를 보면, 1869년에 바젤 대학으로 부임한 첫 해부터 부르크하르트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다. 니체는 '부르크하르트를 존경하여 그와 교분을 맺는다'고 소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때 니체의 나이는 스물 다섯이었고 부르크하르트는 그보다 스물여섯 살이나 많았다. 그 두 사람은 동료 교수라기보다는 사제지간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듯한 형편이었다. 니체 또한 바젤 대학에서 10년간 교수로 일했으나 '철학'에 전념하기 위해서 결국 교수직을 그만두게 된다. 부임하던 첫해부터 부르크하르트와 교분을 쌓았던 니체가 그의 예술사 강의를 외면했을 리는 없었다. 니체는 부르크하르트의 강의를 직접 들었고, '우리의 위대한 스승'이라며 존숭해 마지 않았다.

니체의 저작을 통해서 니체와 야콥 부르크하르트의 관계를 짐작해 보는 것도 흥미롭다. 니체는 말년의 저작인『안티 크리스트』에서 <르네상스가 무엇인지 드디어 이해하였는가?>라는 도발적인 질문을 던지는데, 이 대목이야말로 자신뿐만 아니라 야콥 부르크하르트의 목소리를 직접 대변하는 듯한 느낌마저 갖게 만든다. 그렇다고 니체가 그 대목에서 부르크하르트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다.(책세상에서 나온 니체전집에서는 극히 한정된 '주석'이 딸려 있는데, 거기에서 겨우 부르크하르트의 흔적을 희미하게나마 찾을 수 있다. ˝이로써 그리스도교는 폐지되고 말았으니!˝라는 대목 뒤에 다음과 같은 간략한 주석이 붙어 있기 때문이다. J. Burckhardt, Die Kultur der Renaissance in Italien(Leipzig, 1869), 91∼95)

니체가 부르크하르트의 이름을 일부러 꽁꽁 숨겼던 건 아니다. 그는『안티 크리스트』에 뒤이어 출판한『우상의 황혼』에서는 아예 드러내 놓고 야콥 부르크하르트를 칭찬한 적도 있기 때문이다.

예외 중의 한 명이 바로 바젤 대학에 있는 나의 경외하는 지기인 야콥 부르크하르트이다

예외 중의 예외를 제외하고 보면, 교육의 첫 번째 선결 조건인 교육자들이 결여되어 있다 : 그래서 독일 문화가 하강하는 것이다. ㅡ 정말 진귀한 그 예외 중의 한 명이 바로 바젤 대학에 있는 나의 경외하는 지기인 야콥 부르크하르트이다 : 바젤 대학이 인문학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은 그의 덕택이다.

- 니체, 『우상의 황혼』, <독일인에게 모자란 것> 중에서

야콥 부르크하르트와 니체와의 인연을 다소 장황하게 소개한 건 '고대의 부활'이라는 측면에서 그 두 사람이 매우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니체가 그토록 르네상스의 의미를 강조한 것도, 부르크하르트가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 라는 거작을 통해 주장하고 싶었던 것도 '고대의 부활을 통한 인간 본연의 가치 재발견'에 다름 아니었기 때문이다. '고대 세계가 깡그리 부정되었다'고 외친 니체의 울부짖음은 다시 들어봐도 가슴 저릿한 울림이 있다. ☞ 르네상스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드디어 이해했는가?

많이 늦었지만, 이제 다시 이 글을 쓰게 된 '맨처음 동기'로 되돌아 오자. 우리가 자주 듣는 <카르미나 부라나>는 어쨌든 우리가 대충(?) 알기로는 칼 오르프가 1936년에 작곡한 오라토리오 작품이라는 정도다. 그런데 야콥 부르크하르트가 쓴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라는 책에 담긴 <카르미나 부라나>에 관한 내용은 칼 오르프의 작품보다 무려 76년이나 앞선 것이다. 칼 오르프가 <카르미나 부라나>를 작곡하기 전에도 일부 사람들은 그 음악을 제법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사정이 아무리 그렇다고는 하지만 <카르미나 부라나>에 관한 상세한 언급을 1860년에 발간된 책에서 발견하는 건 아무래도 좀 놀랍다.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이 놀라운 음악을 야콥 부르크하르트도 생생하게 미리 상상해서 우리처럼 들을 수 있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길 수밖에 없다.

어쨌든 '고대의 부활'은 '어떤 경로'를 통하든 놀랍도록 매혹적이다. 그것이 책이든 음악이든 말이다. 앞으로 <카르미나 부라나>를 들을 때마다 야콥 부르크하르트의 다음 설명을 늘 함께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거기에서 노래하는 사람은 이탈리아인, 그것도 롬바르디아 사람'이라는 부르크하르트의 예감을 쉽게 거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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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서 노래하는 사람이 이탈리아인, 그것도 롬바르디아 사람이라는 예감


이탈리아에서는 고대가 북유럽과는 다른 방식으로 부활하였다. 야만의 시대가 끝나자마자 아직 절반쯤 고대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던 이 민족의 마음속에 과거에 대한 인식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과거를 찬양했고 그것을 재생하고자 했다. 다른 나라는 학문과 성찰의 목적으로 몇 가지 고대의 요소를 이용했지만, 이탈리아에서는 학자는 물론이고 일반 대중까지 고대 문화 전반에 실제적인 흥미를 보였다. 고대는 그들의 위대함을 상기시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라틴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과 아직 남아 있는 수많은 과거의 기억과 기념물들이 이 같은 흐름을 강하게 밀고 갔다.


이 흐름과 더불어 그 사이 변화한 게르만족과 롬바르드족 국가의 민족정신, 보편적인 유럽의 기사도, 북유럽 문화의 영향 그리고 종교와 교회에 대한 반작용으로 새로운 기운이 싹트기 시작했다. 서구의 본보기가 될 운명을 안고 태어난 근대 이탈리아 정신이었다.


야만 상태가 끝난 뒤 고대가 얼마나 조형미술에서 활기를 띠었는지는 12세기의 토스카나 건축과 13세기의 조각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시문학에도 같은 사례가 없지 않은데, 그 근거로 우리는 12세기 최고의 라틴 시인이자 그 무렵 라틴 시의 모든 장르를 주도했던 사람이 이탈리아인이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그는 이른바 『카르미나 부라나』중에서 가장 뛰어난 시들을 지은 인물이다. 현세와 현세적인 향락에서 얻어지는 끝없는 기쁨이 압운(押韻)된 시구를 통해 화려하게 흐르고 현세의 수호자로 고대 이교의 신들이 등장하는 이 작품을 단숨에 읽어보면, 거기에서 노래하는 사람이 이탈리아인, 그것도 롬바르디아 사람이라는 예감을 그 누구도 떨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는 데에는 또다른 확실한 근거들이 있다. 12세기의 방랑성직자들이 읊은 이 라틴 시들은 그 두드러진 외설까지 포함하여 어느 만큼은 유럽 공동의 산물이다. 하지만 「필리스와 꽃」이나 「마음이 뜨겁게 타오르며」를 지은 사람은 추측하건대 북유럽인이 아니고, 「투명한 달빛이 늦게 올라오는 동안」을 지은 섬세하고 향락적인 관찰자도 북유럽 사람은 아니다. 이 시들에 나타나 있는 것은 고대 세계관의 부활이며, 그것도 중세풍의 운율에 실려 표현됨으로써 그만큼 더 우리의 눈길을 끈다. 12세기부터 몇 세기에 걸쳐 6운각과 5운각을 세심하게 모방하고 내용에서도 갖가지 고대의 소재들, 특히 신화적인 요소를 가미한 작품이 많이 나왔지만 고전 시대의 느낌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다. 귈리엘무스 아풀루스가 쓴 6운각의 연대기를 비롯해 그후의 작품들에서는 가끔 베르길리우스, 오비디우스, 루카누스, 스타티우스, 클라욷아누스를 열심히 연구한 흔적도 보인다. 그러나 고전 형식들은 단순히 학문적인 차원에서만 사용되었을 뿐이고, 보베의 뱅상 같은 편찬자나 인술리스의 알라누스 같은 신화학자 겸 우의작가가 원용한 고대의 소재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르네상스는 단편적인 모방이나 수집이 아니라 부활이었다. 또한 그 부활은 12세기의 무명 성직자들이 지은 저 시편 속에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248∼249쪽)


 - 야콥 부르크하르트,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 제3부 <고대의 부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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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7-03-05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까르미나블라나를 대학시절 첨 접하고 좋아하는데, 카르미나 블라나를 저급한 음악 취급했던 사람이 있었더랬죠. 뭐라고 이의를 제기하고 싶어도 제가 이쪽으로 지식이 소박하여 그리하지 못했는데 님의 페이퍼를 보니 위안이 됩니다. 고밉습니다.

oren 2017-03-05 23:41   좋아요 0 | URL
중세 시대에 숨막히는 수도원 생활을 견디다 못해 그곳을 박차고 떠난 방랑성직자들이 부른 노래들이고, 아무래도 ‘현세의 향락‘을 담은 외설적인 노래가 많다 보니 ‘저급하다‘고 오해하는 분들도 더러 있게 마련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