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2 동서문화사 월드북 70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맹은빈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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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정이나

 

"그렇습니까, 정말 어느 가정이나 불행이 없는 가정은 없으니까요." 삐에르는 나따샤 쪽을 향하여 말했다. "실은 말입니다, 내가 구출된 바로 그날 나도 그 애를 보았습니다. 정말 훌륭한 아이였는데 말입니다!"(1517쪽)

 

 

진심으로 기다리고 있겠어요

 

그는 나따샤에게 작별 인사를 나누면서 그녀의 화사한 손을 잡았을 떄, 저도 모르게 그 손을 오랫동안 쥐고 있었다.

 

'정말로 이 손, 이 얼굴, 이 눈, 내게는 동떨어진 보물과 같은 여성의 매력이 전부, 정말로 이것이 전부, 영원히 나의 것으로, 나에 대한 나 자신과 마찬가지로 가까운 존재가 될 수 있을까? 아니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안녕히 가세요, 백작님." 그녀는 삐에르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난 당신을 진심으로 기다리고 있겠어요." 속삭이듯 그녀는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이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은 말과, 그것을 말했을 때의 눈과 얼굴 표정이 두 달 동안 삐에르의 무한한 추억과 행복한 공상의 대상이 되었다.

 

'난 진심으로 기다리고 있겠어요 …… 그렇다, 그렇다, 그녀는 뭐라고 말했지? 그렇다, 진심으로 기다리고 있겠어요 라고 말했지. 아, 얼마나 나는 행복한가! 대체 이것은 어떻게 된 것일까, 나는 정말로 행복하다!' (1532쪽)

 

 

 

마치 목욕탕에서 나온 것 같다고 말한 그날 밤부터

 

삐에르가 떠난 뒤, 나따샤가 놀리는 것 같은 기쁜 미소를 띠고 마리야에게 그분은 마치 목욕탕에서 나온 것 같다고 말한 그날 밤부터 그녀의 마슴 속 깊이 숨겨져 있던 것, 그녀 자신도 알 수 없으나 억제할 수 없는 그 무엇인가가 나따샤의 마음 속에서 눈을 떴다.

 

모든 것ㅡ얼굴, 걸음걸이, 눈초리, 목소리ㅡ이 그녀의 내부에서 변해버리고 말았다. 그녀 자신에게도 뜻하지 않았던 생명력, 행복의 기대가 표면으로 떠올라 충족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날 밤 이래 나따샤는 자기의 몸에서 일어난 일을 잊어버린 것 같았다. 그때부터 그녀는 한 번도 자기의 신세에 대해서 푸념하지도 않았고, 과거 일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고, 미래의 즐거운 계획을 세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녀는 삐에르의 이야기는 별로 하지 않았지만 마리야가 그의 이야기를 하면, 오랫동안 사라져 있던 빛이 눈 속에서 반짝이기 시작하고 아리송한 미소로 입술이 풀리는 것이었다.(1534-1535쪽)

 

 

 

나의 이해가 미치지 않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

 

현재의 러시아 문헌을 보면 중학생에서 역사학자에 이르기까지, 이 시기에 알렉산드르가 잘못된 행동을 했다고 해서 그에게 돌을 던지지 않는 사람이 없다. (…)

 

이들 비난의 본질은 어디에 숨어 있는가?

 

그 본질은 알렉산드르 1세와 같은 역사적 인물이 인간 권력의 최고의, 그 이상 없는 단계, 말하자면 역사의 모든 광선이 집중되어 눈부신 빛을 내고 있는 초점에 서 있는 인물이라는 점에 있다. 권력과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음모, 기만, 추종, 자만 등,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에 노출되어 있는 인물, 살아 있는 동안 항상 유럽에서 생기고 있는 모든 일에 대해서 자기 자신에게 책임을 느끼고 있던 인물, 더욱이 가공의 인물이 아니라 모든 인간과 마찬가지로 자기 자신의 개인적인 습관, 욕망, 진, 선, 미에 대한 소원을 가진 살아 있는 인물이었다는 점에 있다. 그 인물이 50년 전에는 선량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그 점을 역사가는 비난하고 있지 않다), 젊었을 때부터 학문을, 즉 책이나 강의록을 읽고 그 책이나 강의록을 한 권의 작은 노트에 기록해왔던 교수가 현재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생각을, 인류의 행복에 대해서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점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비록 알렉산드르 1세가 50년 전에 무엇을 여러 국민의 행복으로 생각하고 있는가라는 점에서 잘못되어 있었다 해도, 알렉산드르 1세를 비난하고 있는 역사가들도 역시 마찬가지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무엇을 인류의 행복이라고 생각하는가 하는 점에서 잘못되어 있었다는 것이 분명해진다고 예상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역사의 단계를 더듬어 보면 1년마다, 또 새로운 필자가 나타날 때마다 인류의 행복이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바뀌고 있다는 것이 명백해지므로, 이 예상은 더욱 당연하며 필연적인 것이다. 즉 행복이라고 여겨졌던 것이 10년 후에는 악이 되기도 하고 또는 그 반대가 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무엇이 악이고 무엇이 선인가 하는 점에 대해서 우리는 역사 속에서 동시에 전혀 모순된 관점을 발견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폴란드에 주어진 헌법이나 신성동맹을 알렉산드르의 공적으로 하고, 다른 사람은 비난의 대상으로 삼기도 한다.

 

알렉산드르나 나폴레옹의 행동에 대해서, 그것이 유익했는가 유해했는가에 대해서 말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것이 무엇 때문에 유익하고 무엇 때문에 유해했던가에 대해서 말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만약에 그 행동이 누군가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해도, 그것은 다만 무엇이 행복인가 하는 그 사람의 좁은 생각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마음에 들지 않는 데에 지나지 않는다. 나에게 행복이라고 여겨지는 것은, 1812년에 모스크바의 나의 아버지 집이 무사했던 일인지, 그렇지 않으면 러시아군의 영광인지, 그렇지 않으면 뻬쩨르부르그와 그 밖의 대학의 번영인지, 그렇지 않으면 폴란드의 자유인지, 그렇지 않으면 러시아의 강대함인지, 그렇지 않으면 유럽의 균형인지, 그렇지 않으면 어떤 종류의 유럽의 개화, 즉 진보인지, 나는 모든 역사적 인물의 행동이 이들 목적 이외에 보다 더 보편적인 나의 이해가 미치지 않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1540-1541쪽) 

 

 

 

인간의 생활

 

인간의 생활이 이성으로 지배되는 것이라고 한다면 살아갈 가능성은 없어지고 만다.(15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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