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과 역(逆)의 우연
무엇 하나 자기에게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할 뿐만 아니라, 이해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의의를 덧붙여서 모든 자기의 범죄를 자랑하는 것을 본질로 삼고 있는 영광과 위대한 이상, 이 사나이와 그와 관계가 있는 사람들을 인도할 이상이, 자유분방하게 아프리카에서 형성된다. 그가 무엇을 하든 모두 성공한다. 그는 전염병에 걸리지 않는다. 포로 학살의 잔인성은 그의 죄가 되지 않는다. 어린이처럼 경솔하게, 이유도 없이 비열하게 아프리카를 떠나 고통받고 있는 동료를 그대로 남겨둔 것은 그의 공적으로 여겨지고, 적의 함대는 또다시 그를 놓치고 만다. 자기가 행한 행운의 범죄에 기분이 좋아진 그가 자기의 역할을 다할 상태가 되어 아무런 목적 없이 파리로 돌아왔을 때, 1년 전에 그를 파멸시켰을지도 모르는 공화국 정부의 붕괴는 극한에 달해 있었고, 당파의 때가 묻지 않은 인간인 그의 존재는 지금 정부의 의의를 높일 뿐이었다.
그 사람만이, 이탈리아와 이집트에서 만들어낸 영광과 위대(偉大)의 이상, 정상적인 궤도를 벗어난 자기 찬미, 대담한 범죄, 그럴듯한 거짓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만이 이제 일어나려고 하는 일을 정당화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는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곳에 필요한 인간이었으므로 거의 자기의 의지에 관계없이, 그의 우유부단과 무계획, 그가 하는 모든 잘못에도 불구하고 그는 권력 획득을 목적으로 하는 음모에 휘말려 그 음모가 성공을 거둔다.
우연이, 무수한 우연이 그에게 권력을 주고 모든 인간들이 상의라도 한 것처럼 그 권력의 강화에 협력한다. 우연이, 당시의 프랑스 총재들의 성격을 그에게 복종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든다. ……
…… 그런데 갑자기 그때까지 계속된 일련의 승리에 의해서, 실로 시종일관해서 그를 예정된 목적지로 이끌어온 우연과 천재 대신에, 보로지노의 코감기에서, 혹한과 모스크바에 불을 붙인 하나의 불꽃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역(逆)의 우연이 나타난다. 그리고 천재 대신에 유례없는 어리석음과 비열함이 정체를 드러낸다.
침략자는 패주하여 뒤로 물러났고, 다시 패주해서 모든 우연이 이제는 그의 편을 들지 않고 끊임없이 그에게 등을 돌린다.
파리ㅡ최종 목적지에 도착한다. 나폴레옹 정부와 군대는 붕괴된다. 나폴레옹 자신은 이제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그의 모든 행위는 분명히 비참하고 혐오스럽다. 그런데 또 설명할 수 없는 우연이라는 것이 생긴다. 동맹자들이 나폴레옹을 자기들의 불행의 원인이라고 생각하고 미워한다. 힘과 기능을 빼앗기고 악행과 간지(奸智)가 폭로된 이상, 그는 10년 전이나 1년 후에 그랬던 것처럼 동맹자의 눈에 무법한 악당으로 비쳐야 했다. 그런데 무엇인가 알 수 없는 우연에 의하여 아무도 그렇게 보지 않는다. 그의 역할은 아직 끝나지 않는다. 10년 전이나 1년 후에는 무법의 악당이라고 여겨진 인간이 프랑스에서 이틀이면 갈 수 있는 섬으로 보내어지고, 그 섬이 그의 영지로 주어지고, 친위대와 무엇인가를 위하여 지불되는 수백만의 돈도 따라간 것이다.
(…)
프랑스를 황폐하게 만든 인간이 혼자서 음모도 없이 병사도 거느리지 않고 프랑스로 되돌아온다. 보초라면 누구나 그를 잡을 수가 있었는데 기묘한 우연으로 누구 하나 그를 잡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모두가 하루 전에 저주하고 1개월 후에도 저주하게 될 이 인간을 기쁨으로 맞이한다.
이 인간은 총괄적인 마지막 막을 납득이 가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 아직도 필요한 것이다.
그 막은 끝난다. 마지막 연기가 끝난다. 배우는 옷을 벗고 눈썹과 입술연지를 씻어내도록 명령된다ㅡ그는 이제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인간이 고독하게 자기의 섬에서 스스로 자기에게 비참한 희극을 연출하고, 정당화가 이제 필요 없을 때에 자기 사업을 정당화하려고 쩨쩨한 책략을 꾸미며 거짓말을 하고, 보이지 않는 손이 이 사나이를 인도하고 있었을 때, 사람들이 힘이라고 착각했던 것은 도대체 무엇이었던가를 온 세계에 알리는 데에 수년의 세월이 흐른다.
모든 일을 꾸몄던 자가 연극이 끝났을 때 배우의 옷을 벗기고 우리들에게 보인다.
"보시오. 당신들이 믿었던 것을! 이거요! 이제 알겠죠? 이 사나이가 아니라 내가 당신들을 움직였다는 것을."
(1545-155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