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테르와 키케로

 

 

이게 나라냐 싶은 생각을 잠시라도 떨치기 어려울 정도로 참담한 나날의 연속이다. 책 조차 읽기 싫을 정도로 도무지 뉴스에서 눈을 떼기 어렵다. 어렵사리 옛 고전을 뒤적거리다가 결국 '고대 로마시대의 명연설문'에 이르러서야 겨우 글줄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해서 다시금 만난 글이 로마 공화정 말기 최고의 웅변가인 키케로의 '카틸리나 탄핵' 연설이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다. 키케로의 연설이 행해졌던 날로부터 무려 2,000년도 더 시간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그 연설 내용이 오늘날의 현실에 빗대어봐도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 어쩌면 이토록 오늘날의 상황에 딱 들어맞을 수가 있을까 싶어 너무나 놀랄 지경이다. 좋은 연설은 참으로 질긴 생명력이 있다. 그 이유가 뭘까? 굳이 자세히 따져물을 필요도 없다. 그것이 우리의 보편타당한 마음에 호소하고, 또 진실을 말하기 때문이다.


(키케로의 '카틸리나 탄핵 연설'은 모두 4차례에 걸쳐 있었다. 제1 연설은 B.C. 63년 11월 8일에 원로원 의회에서, 제2 연설은 B.C. 63년 11월 9일에 중앙 광장에서의 시민 집회에서, 제3 연설은 B.C. 63년 12월 3일에 역시 중앙 광장에서, 제4 연설은 B.C. 63년 12월 5일 원로원 의회에서 행해졌다.

 

아래 인용문은 '제1 연설'의 일부분이다.

 

참고로, 그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간략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루키우스 세르기우스 카틸리나(B.C. 108 ∼B.C. 62)는 B.C. 63년 7월의 집정관 선거에서 패배한 뒤, 폭력적 수단에 의한 정권탈취를 계획한다. 이 음모를 안 집정관 키케로는 원로원에서 그것을 적발하고 같은 해 10월 21일, 카틸리나의 반란을 저지하기 위한 원로원 최종 결의가 채택되었다. 카틸리나는 반역의 주모자로 지목받으면서도 여전히 음모를 단념하지 않고 대담하게도 자신의 모반을 좌절시키기 위해 소집된 이 원로원 의회에 모습을 나타냈다. 이 연설에서 키케로는 그에게 로마를 떠나도록 촉구한다. 10월 21일의 원로원 최종 결의에서부터 이 연설이 행해졌던 11월 8일까지 '19일 동안' 카틸리나는 호시탐탐 '권력'을 되찾기 위한 반전의 기회를 엿보고 있었던 것이다.

 

키케로가 마침내 "로마 시민 여러분, 오늘 국가는 구제되었다. …… 구원받는 날은 탄생한 날에 못지않게 우리에게 기쁘고 빛나는 것이다.……' 로 이어지는 감격에 찬 연설을 들려줄 수 있었던 날은 '제3 연설'(B.C. 63년 12월 3일) 때이다. 그날 카틸리나 일파의 음모 사실이 끝끝내 마저 밝혀져 로마에 잔류한 공모자들이 모조리 체포되었던 것이다. 제4 연설은 '반역자들의 처리'에 관한 내용이며, 이 당시 율리우스 카이사르도 키케로의 연설에 뒤이어 <반역자들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라는 제목의 명연설을 남겼다.)

 

 

 

 * * *

 

 

언제쯤에야 그대는 우리의 인내력을 악용하는 이 못된 짓을 그만둘 작정이오?

 

오, 카틸리나! 언제쯤에야 그대는 우리의 인내력을 악용하는 이 못된 짓을 그만둘 작정이오? 이 뒤에도 얼마나 오랫동안 그대의 광기로 우리를 모욕하겠소? 지금과 같이 거들먹거리는 그대의 고삐 풀린 뻔뻔함이 언제 끝이 나겠소? 팔라티움 언덕에 배치한 강력한 수비대, 로마시 전역에 깔려 있는 파수병들, 시민들의 경계와 선량한 사람들의 단결된 힘, 가장 튼튼하게 방비를 갖춘 이곳에서 열린 원로원의 예비 조치, 그리고 이 자리에 참석한 이 근엄한 원로원 의원들의 모습과 표정이 그대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는단 말이오? 그대의 계획은 이미 탄로가 났다는 걸 느끼지 못하고 있는 거요?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까닭에 그대의 음모는 이미 제동이 걸리고 무력해졌음을 깨닫지 못하겠소? 지난밤에, 그리고 지지난밤에 그대가 무엇을 했으며, 어디에 있었는지, 그대가 만나려고 불러들인 자가 누구이며, 그대가 어떤 흉계를 꾸몄는지를 우리가 모르고 있다 생각하시오?


 

그대가 마음을 바꾸시오

 

오, 카틸리나여, 밤이 그 어둠으로 그대의 흉악한 모임을 가릴 수 없고, 집들이 그 벽과 담으로 그대 음모의 목소리를 감싸줄 수 없어 모든 것이 드러나 보이는데, 무엇을 더 기대할 수 있단 말이오? 그대가 마음을 바꾸시오. 나를 믿고, 그대가 꿈꾸고 있는 살육과 방화를 잊어버리시오. 그대는 사방으로 갇혀 있고, 그대의 모든 계획이 우리에게는 낮보다 밝게 보인다는 걸 그대에게 깨우쳐 주겠소.


 

그대가 로마를 떠난다면, 가치 없는 쓰레기인 그대의 공범들마저 이 도시를 떠나게 되지 않겠소.

 

그대는 불멸의 신들이 머무르고 있는 이 신전들을, 이 도시의 집들을, 모든 시민의 생명을, 한마디로 이탈리아 전체를 무너뜨리고 폐허로 만들려 하고 있소. 이런 상황에서 내가 맡은 권한과 조상의 규율에 속하는 최선의 조치를 취하기에 앞서, 그 준엄성을 헤아려 한결 자비롭고 국가의 편의를 도모할 방안을 제시하고자 하오. 이를테면 내가 그대에게 사형선고를 내리더라도, 나머지 반역자들은 여전히 공화국 안에 남아 있을 것이오. 그런데 내가 오랫동안 충고해 온 대로 그대가 로마를 떠난다면, 공화국의 가치 없는 쓰레기인 그대의 공범들마저 이 도시를 떠나게 되지 않겠소. 카틸리나여, 무슨 미련이 남아 있소? 그대가 이미 스스로 시작한 일인데, 내가 명령을 한다고 머뭇거릴 이유가 뭐요? 집정관이 한 사람의 적에게 이 도시를 떠나라 명령하고 있소. 그대가 유배를 가야 하느냐고 나에게 묻고 싶소? 나는 그런 명령을 내리지는 않겠소. 하지만 만약 그대가 나에게 상의한다면, 그렇게 하라고 권고하는 바이오.

 

오, 카틸리나여, 그대가 이 도시에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무엇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시오? 그대들 타락한 반역의 무리를 제외하고는 그대를 두려워하지 않는 이가 이 도시에는 없소ㅡ그대를 증오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도 없소. 그대의 생애에 찍히지 않은 이 나라의 비열한 낙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오? 그대의 사생활에 오명(汚名)을 불러들였던 치욕적인 상황으로도 모자라는 게 있다는 말이오? 지금까지 그대의 눈이 피했던 방탕한 행위가, 그대의 손이 피했던 잔혹한 행위가, 그대의 온몸이 피했던 부정한 행위가 단 하나라도 있었소? 그대가 타락한 유혹으로 휘감아 들인 젊은이 가운데 파렴치한 범죄의 칼을, 부도덕한 간계의 횃불을 내밀지 않은 사람이 하나라도 있었단 말이오?

 

 

게다가 그대는 자신의 교활함을 의식하고 있는 까닭에

 

그런데 지금 그대가 꾸려가고 있는 그대 삶이 어떤 모습이오? 나는 당연히 느껴야 할 증오보다는 오히려 측은한 마음으로 그대에게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소. 그대에게는 증오와 측은한 마음 둘 다 어울리오. 그대는 조금 전에 원로원에 들어왔소. 이처럼 많은 사람이 모인 곳에서, 그토록 많은 친지와 연관이 있는 사람들 가운데 누가 그대에게 인사를 했소? …… 그대는 이 도시를 떠나야 한다고 생각지 않소? 나라면 설령 내가 시민들에게 부당한 의심과 증오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더라도, 모든 사람의 적의에 찬 눈길을 마주 보기보다는 차라리 그들의 눈 밖으로 달아나고 싶소. 게다가 그대는 자신의 교활함을 의식하고 있는 까닭에 모든 사람들의 증오가 정당하고 오래전부터 그럴 만했다는 것을 알고 있소. 그런데도 그대가 마음과 감정을 거슬리고 있는 사람들 앞을 떠나 그들의 눈길을 피하는 일을 망설이고 있다는 말이오? 그대의 부모가 그대를 두려워하고 증오한다고 합시다. 그리고 그대는 어떤 방법으로도 그들의 마음을 달랠 수가 없다면, 그대가 그들 눈에 띄지 않을 어느 곳으로 떠나야 된다고 생각하오. 우리 모두의 공통의 어버이인 그대의 조국이 지금 그대를 미워하고 두려워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존속살해 모의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소. 도대체 그대는 국가의 권위에 경외를, 그의 판단에 경의를, 그 권능에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는 게 아니오?

 

 

그대만이 모든 법률과 수사(搜査)를 무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걸 뒤엎고

 

오, 카틸리나여, 조국은 그대에게 간곡히, 그리고 조용히 말하고 있소. 지금까지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그대가 아니고는 아무도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고, 극악무도한 행위치고 그대가 들어가지 않은 것이 없으며, 그대만이 처벌을 받거나 심문을 당하지 않은 채 시민들을 죽이고, 우리 동맹국을 괴롭히고 약탈했으며, 그대만이 모든 법률과 수사(搜査)를 무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걸 뒤엎고 뚫고 나아갈 수 있는 권력을 누려왔다고. 그래서는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나는 그대가 과거에 저지른 잘못을 되도록 참으려 애썼소. 그러나 지금 나는 오로지 그대에 대한 공포만으로 가득 차 있으며, 소리만 나도 카틸리나를 두려워하고, 나를 해치려는 흉계치고 그대의 간교한 마음에서 우러나지 않은 것이 없으니 더는 참을 수가 없소. 그러니 떠나시오. 그리고 나를 이 공포에서 풀어주시오.

 

 

사악한 모든 병폐와 이처럼 오래된 광기와 뻔뻔함이 활짝 피어나 그 절정에 이르렀소.

 

원로원 의원 여러분, 우리는 이미 오랫동안 이런 음모의 위험과 책동에 시달리며 살아왔소. 어떻게 된 영문인지 내가 집정관 자리에 오르자, 사악한 모든 병폐와 이처럼 오래된 광기와 뻔뻔함이 활짝 피어나 그 절정에 이르렀소. 그런데 만일 이 사람만을 이 해적 무리에서 제거한다면 아마도 얼마 동안은 우리의 공포와 불안에서 풀려나는 듯한 인상을 받겠지만, 사실은 이 나라의 혈관과 내장에 그 위험이 깊숙이 가라앉아 숨어 있게 될 것이오. 중병에 걸린 사람들이 고열에 시달릴 때 찬물을 마시면 처음에는 수그러드는 듯하지만, 뒤에 더욱 심한 고통이 닥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소. 그처럼 공화국의 이 질병도 이 사람을 처단하면 조금 누그러지겠지만, 남은 무리가 여전히 살아 있는 한 더욱 악화될 따름인 것이오.

 

그러므로 원로원 의원 여러분, 쓸모없는 자들은 떠나게 하시오. 그들을 선량한 시민들과 떼어놓고, 앞에서 여러 번 말했듯이 그들과 우리 사이에 담을 쌓아 분리하고, 자기 집에 있는 집정관을 죽이려는 흉계를 꾸미지 못하게 합시다. 그리고 로마시 법무관의 재판소를 포위하거나 원로원을 칼 든 자들로 에워싸지 못하게 하며, 이 도시를 태워 없앨 불붙은 막대기와 횃불을 준비하지 못하도록 하시오. 요컨대 우리 공화국에 대한 자신의 심정이 어떤지를 모든 시민의 눈썹 위에 쓰도록 하시오. 원로원 의원 여러분, 우리 집정관은 정성을 다하고, 여러분은 권위를 다하며, 로마 기사들은 덕성을 다하고, 선량한 모든 시민들은 의견을 모아 카틸리나가 떠나면 또렷하게 드러날 그 모든 것을 조사하고 처벌할 것을 약속합시다.

 

이런 좋은 조짐들이 있으니, 카틸리나여, 그대는 불손하고도 흉악한 싸움터로 가고, 이 공화국에는 위대한 안전을 보장하며, 그대 자신의 불운과 굴욕을 감수하고, 온갖 사악하고 뻔뻔한 행동을 함께했던 자들을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으시오. 오, 유피테르여, 로물루스가 이 도시와 똑같은 길조로 거룩하게 받들었으며, 당연한 일이지만 우리가 이 도시와 제국의 기둥이라 부르고 있는 당신이 이 사람과 그의 동조자들을 당신의 제단을 비롯하여 다른 신전에서, 이 도시의 집과 성안에서 모든 시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해치지 못하도록 물리쳐 주십시오. 아울러 선량한 시민들의 모든 원수들, 이 공화국의 적수들, 이탈리아를 약탈하는 강도들, 죽었든 살았든 간에 범죄의 조약으로 악명 높은 동맹을 맺은 인간들을 영원한 형벌로 심판해 주시옵소서.

 

 - 플루타르코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플루타르코스 영웅 명연설들> 중에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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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하는 것'이 곧 '정치하는 것'

 

키케로는 자신의 책 《연설가에 대하여 De Oratore》에서, 크라수스의 입을 빌려 '이상적 연설가(orator perfectus)'가 되기 위한 세 가지 조건에 대해 말했다.

 

첫째, 모든 영역을 꿰뚫어 보는 지적 능력이 있어야 한다. 연설가는 어떤 상황에서든, 어느 주제로든 연설할 수 있는 폭넓은 지식을 갖추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둘째, 공동체에 대한 의무감을 가져야 한다. 곧 연설가에게는 정치 활동(공동의 일)에 참여하는 것이 중요한 의무이다.

 

셋째, 상황과 주제를 파악하고 연설을 효율적으로 조절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연설가는 그때그때 처해진 환경에 따라 섬세한 주제는 정밀하게, 무거운 주제는 숭고하게, 일상적 주제는 가볍게 가장 알맞는 표현들을 골라 쓸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말은 무엇보다 먼저 생존을 위해 갖추어야 할 무기이자 필수품이다. 또한 말은 삶을 아름답게 채워주는 교양을 담고 있는 창고이다. 아울러 말은 인간이 다른 동물과는 달리,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문화와 문명을 가능케 해 준 힘이고, 마지막으로 말은 국가라는 제도가 성립하기 위한 기본 토대이다'라고 이야기했다.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만큼 오늘날에도 말의 힘, 글의 힘이 실시간으로 사나운 위세를 떨치고 있다. 그리스 로마 시대에는 '연설가'와 '정치가'가 거의 같은 뜻으로 쓰일 정도로 '연설하는 것'이 곧 '정치하는 것'이었다. 사회 공동체의 중요한 의사 결정이 모두 원로원과 민회 등에서 연설과 토론을 통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 플루타르코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플루타르코스의 생애와 작품 세계> 중에서

 

 

덧붙임)

방금 찾아보니 3일 전에 어떤 분이 키케로의 '제1 연설' 전부를 라틴어 원문과 함께 올려놓으셨더군요.

해당글을 링크로 걸어둡니다. ☞ http://megasuperblog.tistory.com/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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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국민 전쟁이라는 몽둥이
    from Value Investing 2016-11-22 14:57 
    지배욕. 그것은 그 눈에 띄기라도 하면 기어다니게 되는, 머리를 조아리며, 전전긍긍하게 되는, 그리하여 뱀과 돼지보다도 더 비천하게 되는 어떤 것이다. 끝내 크나큰 경멸의 절규가 사람들로부터 터져 나오기까지. 지배욕. 그것은 저들 스스로가 '나 물러가노라!'고 외쳐댈 때까지 도시와 제국들의 얼굴에 대고 '물러가라!'고 설교하는, 저 크나큰 경멸의 무시무시한 여교사다. -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에서 * * * 너무나 답답하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