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개의 봉인(또는 ˝그렇다˝와 ˝아멘˝의 노래)

 

 

(밑줄긋기)

 

문체가 언제나 전제하는 것

 

문체 기법에 대한 일반적인 이야기도 또한 언급해보겠다. 기호의 속도를 포함해서 그 기호를 통한 파토스의 내적 긴장 상태를 전달하는 것 ㅡ 이것이 문체의 의미이다 ; 그리고 나의 내적 상태들이 특출나게 다양하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내게는 수많은 문체의 가능성이 있다 ㅡ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었던 것 중에서 가장 다종 다양한 문체 기법들이 말이다. 내적 상태를 정말로 전달하는 문체, 기호와 기호의 속도와 제스처를 ㅡ 복합문Periode의 규칙들은 모두 제스처 기법이다 ㅡ 잘못 파악하지 않는 문체는 좋은 문체이다. 내 본능은 여기서 실수하지 않는다. ㅡ 좋은 문체 그 자체라고 하는 것 ㅡ 이것은 '아름다움 그 자체', '선 그 자체', '물 그 자체'처럼 하나의 순진한 우매함이자 '이상주의'에 불과하다 ······ 문체가 언제나 전제하는 것은 문체를 들을 귀가 있다는 것 ㅡ 그와 동일한 파토스를 가질 수 있고 또 그 파토스에 적합한 자들이 있다는 것, 자기를 전달할 만한 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 예를 들어 내 차라투스트라도 우선 그런 자들을 찾는다 - 아아, 그는 더 오랫동안 찾아야 할 것이다! ㅡ 사람들이 우선 그의 말을 들을 자격을 갖추어야만 하기에 ······

 

(중략)

 

위대한 리듬 기법, 복합문의 위대한 문체가 숭고하고도 초인간적인 열정의 거대한 상승과 하락을 표현하는 것이라는 점이 나에 의해 비로소 발견되었다.; 《차라투스트라》3부 마지막 장인 <일곱 개의 봉인>이라는 표제의 송가에 의해 나는 지금까지 시라고 불리어온 것의 위로 천 마일이나 높이 날아올랐다.

 

 - 니체, 『이 사람을 보라』, <나는 왜 이렇게 좋은 책들을 쓰는지>, 제4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