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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인과 아나키스트는 둘 다 데카당이다

 

실제로 어떤 목적으로 거짓말하는가에 따라 차이가 있다 : 유지하려고 거짓말하는가 아니면 파괴하려고 거짓말하는가에 따라서. 이 점에서 그리스도교인아나키스트는 완전히 같다고도 말할 수 있다 : 그들의 목적과 그들의 본능은 오로지 파괴로만 향한다. 이 문장에 대한 증거는 역사에서 읽어낼 수 있다 : 역사는 무서울 정도로 명료한 증거를 가지고 있다. (중략) 그리스도교인과 아나키스트 : 둘 다 데카당이다. 둘 다 해체시키고, 오염시키고 쇠약하게 하며, 흡혈귀처럼 작용하는 일 외에는 할 수 없다. 둘 다 세워져 있거나, 웅장하게 서 있거나, 지속적이거나 삶에 미래를 약속하는 것 전부를 아주 격렬하게 증오하는 본능이다 ······ 그리스도교는 로마제국의 피를 빨았던 흡혈귀이다 ㅡ 그리스도교는 시간이 소요되는 위대한 문화를 위한 지반을 얻으려는 로마인들의 거대한 업적을 밤 사이에 무효화시키고 말았다. ㅡ 이것을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는가? (중략) 밤과 안개와 모호함 속에서 모든 개개인에게 살금살금 접근해서는 참된 것들에 대한 그들의 진지함과 실재성에 대한 본능 일반을 다 빨어먹는 이 은밀한 벌레. 비겁하고 여성적이며 달콤한 이 무리들은 점차 그 거대한 건축에서 '영혼'을 소외시켜버렸다 ㅡ 로마적인 것에서 자기의 고유한 것과 고유의 진지함과 고유의 긍지를 느꼈던 그 가치 있고 남성적이며-고결했던 본성을 말이다. 위선자의 음흉한 짓거리, 비밀집회의 은밀함, 지옥이나 죄 없는 자의 희생 또는 피를 마시면서 이루어지는 신비적 합일 등의 음산한 개념들, 특히 서서히 들쑤셔 돋우어진 복수의 불길, 찬달라의 복수의 불길 ㅡ 이것들이 로마를 지배해버렸다.

 

 - 니체, 『안티 크리스트』, 제5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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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세계의 수고가 깡그리 부질없게 되었다

 

고대 세계의 수고가 깡그리 부질없게 되었다 : 이런 끔찍한 것에 대한 내 느낌을 표현할 말이 없다. ㅡ 그리고 그들의 수고가 하나의 준비 작업이었다는 것, 화강암같이 단단한 지기 신뢰에 의해 몇천 년간 지속될 작업을 위한 기초만이 겨우 놓여졌다는 것, 이 점들을 고려해보면 고대 세계가 갖고 있던 의미 전체가 부질없다! ······ 그리스인이 무슨 소용이며, 로마인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중략) - 그리스인! 로마인! 본능과 취향의 고귀함, 방법적 탐구, 조직과 관리의 천재, 인간의 미래에 대한 신념과 의지, 만사에 대한 위대한 긍정이 로마제국으로서 가시화되고, 모든 감각에 가시화되며, 위대한 양식이 더 이상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현실이 되었고 진리가 되었으며 이 되었었는데 말이다 ······ ㅡ 그런데 밤 사이에 묻혀버렸다. 그것도 자연 현상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게르만인이나 다른 멍청이들에게 짓밟힌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교활하고 은밀하고 보이지 않으며 피에 굶주린 흡혈귀에게 치욕을 당한 것이다! 정복된 것이 아니라 ㅡ 다만 피를 다 빨려버린 것이다! ······ 은밀한 복수심, 비소한 시기심이 지배자가 되어버렸다! 비천한 모든 것, 자신으로 인해-고통받는 모든 것, 좋지 않은-느낌에 의해-엄습당한 것 모두, 영혼의 게토-세계 전체가 단번에 위로 올라섰다! ㅡ ㅡ 어떤 불결한 작자들이 그렇게 해서 위에 올라섰는지를 파악하고 냄새를 맡아보려면 그리스도교 선동가, 그들 중 누구든 읽어보라. 이를테면 성 아우구스티누스를. 우리가 그리스도교 운동의 지도자들이 어떤 식으로든 이성을 잃고 있다고 전제한다면, 우리는 착각하고 있는 것이리라 : ㅡ 오오, 그들 교부님들은 정말 영리하다. 신성하리만큼 영리하다!

 

 - 니체, 『안티 크리스트』, 제5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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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드디어 이해했는가?

 

이 대목에서 독일인에게 수백 배나 더 수치스러운 기억을 건드릴 필요가 있다. 독일인은 유럽이 거두어들이도록 주어진 최후의 위대한 문화적 수확물을 유럽에서 빼앗아버렸다 ㅡ 즉 르네상스의 수확을. 르네상스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드디어 이해했는가? 이해하기를 원하는가? 그리스도교적 가치의 전도이자, 모든 수단과 본능과 천재들을 가지고 수행되었으며, 그 반대되는 가치고귀한 가치를 승리하게끔 했던 시도를 ······ 위대한 싸움은 이제껏 바로 이것밖에 없었다. 르네상스의 문제 제기보다 더 결정적인 문제 제기는 이제껏 없었다. ㅡ 나의 물음은 르네상스의 물음이다 ㅡ : 이보다 더 철저하고 직접적이며 강하게 적의 정면 전체와 중심을 돌파하는 공격 형식도 결코 없었다! 그리스도교의 결정적 지점과 본거지 자체를 공격하는 것, 거기서 고귀한 가치를 왕좌에 올리는 것, 말하자면 거기서 왕좌에 앉아 있는 자의 본능과 가장 심층적인 필요와 욕구에 고귀한 가치를 집어 넣는 것 ······ 나는 완전히 초지상적인 마력과 찬란함을 지니고 있는 가능성을 내 앞에 보고 있다 : ㅡ 그 가능성이 세련된 아름다움의 전율로 반짝거리는 것 같다. 거기서 신적인, 악마처럼 신적인 어떤 것이 일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그와 같은 두 번째의 가능성을 찾아 수천 년간을 헤매는 것은 헛된 일이라고 여겨질 정도다 ; 나는 하나의 광경을 보고 있다. 올림포스의 제 신들을 영원히 박장대소하게 할 만한 단초가 될 정도로 그렇게 감각적이고 그렇게 놀라우면서도 동시에 모순적인 광경을 ㅡ 교황으로서의 케사레 보르자를 ······ 나를 이해하겠는가? ······ 좋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오늘날 유일하게 요구하는 승리였을 것이다 ㅡ : 이로써 그리스도교는 폐지되고 말았으니! ㅡ 하지만 무슨 일이 생겼던가? 루터라는 독일인 수도승이 로마로 갔다. 좌절당한 사제의 복수심이 불타는 본능을 죄다 지니고 있는 이 수도승이 로마에서 르네상스에 대항하여 들고 일어났다 ······ 그리스도교를 그 본거지에서 극복하려는, 실제로 일어났었던 그 거대한 사건을 깊이 감사하면서 이해하는 대신 ㅡ 루터의 증오심은 그 광경에서 자신을 살찌울 양식만을 끄집어낼 줄 알았을 뿐이었다. 종교적인 인간은 단지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는 법이니까. ㅡ 루터가 본 것은 교황청의 부패였다. 바로 그 반대가 명약관화했었는데 말이다 : 옛 부패, 원죄라는 것, 그리스도교는 더 이상은 교황의 자리에 앉아 있지 않았는데도! 오히려 삶이 그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도! 오히려 삶의 개가가! 오히려 높고도 아름답고도 대담한 모든 것에 대한 위대한 긍정이 그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도 말이다! ······ 그리고 루터는 교회를 재건했다 : 교회를 공격하면서 ······ 르네상스가 ㅡ 의미 없는 사건으로, 엄청난 헛수고가 되어버리고 말았다니! ㅡ 아아, 그 독일인들, 그들은 우리에게 벌써 어떤 대가를 치르게 했던가! 헛수고 ㅡ 이것은 항상 독일인들의 작품이다 ㅡ 종교개혁 ; 라이프니츠 ; 칸트와 소위 독일 철학 ; 해방전쟁 ; 독일제국 ㅡ 매번 기존의 것에 대한, 돌이킬 수 없는 것에 대한 헛수고이다 ······ 고백하거니와 이런 독일인들은 나의 적이다 : 나는 이들에게 있는 온갖 종류의 개념의 불결과 가치의 불결을, 그리고 정직한 긍정과 부정 앞에서의 비겁을 경멸한다. 거의 천 년 동안 그들은 자기들이 손댄 모든 것을 엉크러뜨리고 혼란에 빠뜨렸다. 그들은 유럽을 병들게 만든 모든 반쪽짜리 것 ㅡ 아니 8분의 3쪽짜리 것! ㅡ 에 대한 책임이 있다. 또한 그들은 존재하는 것 중 가장 불결한 유형의 그리스도교에, 가장 치유하기 어렵고, 가장 반박하기 어려운 유형의 그리스도교에, 즉 프로테스탄티즘에 대해 책임이 있다 ······ 우리가 그리스도교를 끝장내버리지 못한다면, 독일인들이 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

 

 - 니체, 『안티 크리스트』, 제6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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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단 하나의 영원한 오점

 

 ㅡ 이것으로 나는 끝을 맺고 나의 판결을 내린다. 나는 그리스도교에 유죄판결을 내리며, 그리스도교 교회를 가장 혹독하게 탄핵한다. 그 어떤 고발자가 입에 담았던 탄핵보다도 더 혹독하게. 내가 보기에 그리스도교 교회는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부패 중 최고의 부패이며, 궁극적이지만 실제로도 가능한 부패에의 의지를 지녔다. 그리스도교 교회가 부패의 손길을 대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모든 가치를 무가치로, 모든 진리를 한 가지 거짓으로, 모든 정직성을 영혼의 비열성 하나로 만들어버렸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내게 아직도 감히 교회의 '인도적' 축복에 대해서 지껄여대다니! 여느 비상사태를 없애버리는 것은 교회의 뿌리 깊은 유용성에 어긋난다 ㅡ 교회는 비상사태를 통해 연명해왔고, 자기를 영구화시키기 위해 비상사태를 만들어냈다 ······ 죄라는 벌레가 그 예이다 : 교회야말로 비상사태를 가지고서 인류를 풍부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ㅡ '신 앞에서의 평등'이라는 것. 이 허위, 천한 성향을 지닌 모든 자의 원한을 위한 이 구실, 결국 혁명으로, 현대적 이념으로, 사회질서 전체의 몰락의 원칙이 되어버렸던 이 폭발성 개념. 이것은 ㅡ 그리스도교적인 다이너마이트다 ······ 그리스도교의 '인도적'인 축복이라니! 인류애로부터 자기 모순을, 자기 모독의 기술을, 어떤 대가를 치르든 거짓에의 의지를, 모든 선하고 정직한 본능에 대한 반감과 경멸을 길러내는 것! ㅡ 이것들이야말로 내가 바라보는 그리스도교의 축복이라는 것이다! ㅡ 교회의 유일한 실천으로서의 기생주의 ; 자기의 빈혈증-이상과 '신성함'-이상을 수단으로, 피와 사랑과 삶에의 희망을 전부 다 마셔버려 고갈시켜버린다 ; 모든 현실성을 부정하려는 의지로서의 피안 ; 이제껏 존재했던 것 중에서 가장 지하적인 모반을 인식하게 하는 표지로서의 십자가 ㅡ 건강과 아름다움과 제대로 된 성장과 용기와 정신과 영혼의 선의에 맞서고, 삶 자체에 맞서는 모반 ······

 

그리스도교에 대한 이런 영원한 탁핵을 나는 벽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적으려 한다 ㅡ 눈먼 자도 볼 수 있게 하는 글자를 나는 가지고 있다. ······ 나는 그리스도교를 단 하나의 엄청난 저주라고 부른다. 단 하나의 엄청난, 가장 내면적인 타락이라고 부른다. 단 하나의 엄청난 복수 본능이라고 부른다. 어떤 수단도 이것에 대해서는 독성과 은밀함과 지하적임과 비소함에 있어 충분할 수 없다 ㅡ 나는 그리스도교를 인류의 단 하나의 영원한 오점이라고 부른다 ······

 

그런데 우리는 이런 액운이 시작되었던 그 불행한 날을 기점으로 시간을 계산한다 ㅡ 그리스도교가 시작한 첫날을 기점으로! ㅡ 왜 차라리 그리스도교의 최후의 날을 기점으로 삼지 않는가?오늘을 기점으로 삼지 않는가? ㅡ 모든 가치의 전도! ······

 

 - 니체, 『안티 크리스트』, 제6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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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후기 철학의 결정판

 

근대를 지배했던 형이상학적 사유와 전통적 도덕의 붕괴를 통해 철학의 종말을 고하고, 새로운 가치를 부르짖은 니체. 그는 마치 자신의 운명을 예감이나 한 듯이 1888년 한 해에 한꺼번에 여섯 작품을 쏟아낸다. 1887년 가을 무렵부터 시작된 정신병적 징후에도 불구하고 생애 최고로 생산적인 해를 보낸 것이다. 한국어판 책세상 니체전집 15《바그너의 경우 우상의 황혼 안티크리스트 이 사람을 보라 디오니소스 송가 니체 대 바그너》는 바로 거센 폭풍과도 같은 니체의 마지막 정열과 사상적 결정체가 담긴 저작이다. 이 여섯 작품은 니체가 카를로 광장에서 쓰러지기 직전에 씌어진 니체 최후의 저작들로 그간의 니체가 보여주었던 현대성 비판, 반그리스도교적 고찰 등 그의 핵심 사상이 총정리되어 있다. 특히 예술(그중에서도 음악), 정치, 역사에 대한 니체의 시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어 니체 후기 철학의 결정판으로 평가받는다.

 

현대 세계와 현대성에 대한 폭발적 분노

 

그렇다면 철학자 니체는 무엇을 위해 1888년 한 해에 자신의 마지막 정열과 혼을 불태웠는가? 현대 세계와 현대성에 마지막 일침을 가하기 위해서이다. 이미《선악의 저편》과《도덕의 계보》에서 그는 이미 퇴폐적인 근대의 여러 현상과 과학정신, 유럽 그리스도교 등을 맹렬하게 비난하는 등 모든 기존 가치의 전도를 극명하게 표명했다. 따라서 그는 이제 더 이상 현대 세계와 현대성에 대해 자신의 경멸을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단지 현대 세계의 얼굴에 대고 데카당스! 라고 부르짖는다. 그리스도교! 라고 부르짖는다. 삶을 부정할 뿐 아니라, 삶에 대한 긍정을 억압하는 그리스도교야말로 니체가 보기에는 데카당스의 전형이었고, 음악의 연극화, 극장에서의 성공, 이상주의라는 허울 좋은 무기를 가지고 진정한 음악정신을 죽일 뿐 아니라 생을 부정하고'초월'과 '피안'이라는 낡고 날조된 가치를 보호하는 바그너야말로 음악을 병들게 한 데카당스 예술가였던 것이다. 이제 니체는 삶과 세상을 부정하고 삶의 덕을 증오하는 데카당스의 미학과 예술에 작별을 고한다. 삶을 긍정하고 주인도덕을 표현해주는 아름다운 예술로의 회귀를 위해, 고전 미학으로의 회귀를 위해, 자연과 건강함과 명랑성과 젊음으로의 회귀를 위해 마지막 남은 힘을 쏟아 붓는다.

 

니체 철학을 이해하기 위한 시금석

 

니체는 체계적인 철학자가 아니다. 오히려 철학을 하나의 체계로 만들려는 시도를 조롱하며 그것을 '고결함의 결여'라고 부른다. 니체의 다양한 관찰과 통찰을 하나의 틀에 집어넣기에는 그의 사상이 갖는 매력뿐 아니라 그가 시도하고자 했던 핵심이 단일하지 않다. 니체의 잠언이나 우화를 이용한 글들은 의도적으로 특정 방향을 드러내지 않도록 구성되어 있다. 그는 우리에게 충격을 주고, 우리를 놀라게 하며, 사태를 다른 각도, 다른 관점, 다른 방식으로 볼 수 있도록 유도한다. 니체주의자 중 한 사람인 미셸 푸코는 단일한 니체 철학이란 없으며 우리의 질문은 "니체를 어떻게 진지하게 써먹을 수 있는가" 이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니체의 전 작품을 한눈에 조망하도록 구성되어 있는 이 책에서 니체가 최후까지 강조했던, 니체 철학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현대 세계에 대한 강한 반발을 읽어내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왜냐하면 니체가 이를 위해 자신의 전 작품을 이 주제 아래에서 재고찰하고 있기 때문이다. 니체는 이 책에서 주요 여섯 작품 외에도 자신의 거의 모든 저서를 새롭게 해석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그의 초기사상이 담긴《비극의 탄생》(1872)에 대해서는"몇 가지를 잊어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책이 끼친 영향과 심지어 이 책의 매혹도 바로 이 책의 문제점 때문에 생긴 것이다"라면서《니체 15》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반(反)바그너적 시점에서《비극의 탄생》을 새롭게 해석하고 있다. 또한《반시대적 고찰》 부분에서는 "금세기의 긍지인 '역사적 감각'이 최초로 병증으로서, 퇴락의 전형적 징후로서 간파되었다. '독일 제국', '교양', '그리스도교', '비스마르크', '성공'등으로 불리던 모든 것에 대한 절대적 경멸로 가득 차" 있음을 인정한다. 그리고 니체가 바그너에게 비교적 호의적이었을 당시 썼던《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에서도 "불쌍한 바그너! 그가 어디로 빠져버렸단 말인가! 차라리 돼지들 쪽으로 가버릴 것이지! 하필 독일인들 사이로 가다니!"라면서 바그너를 맹렬하게 비난하기도 한다.《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후기 니체 철학이 집약돼 있는《선악의 저편》《도덕의 계보》 등의 작품을 니체는 일일이 열거해 새로운 해석을 가미하고 재조명하는데, 이를 통해 니체 철학을 새롭게 만날 수 있을 뿐 아니라, 이미 출간된 책들을 반추해볼 수 있는 기회도 될 것이다.

 

《바그너의 경우》바그너에 대한 혹독한 비판

 

《바그너의 경우》에서 니체는 리하르트 바그너에 대한 오랜 침묵을 깨고 그를 공개적으로 논박하기 시작한다. 철학자 니체에게 바그너는 음악을 병들게 한 자이자, 음악이 데카당스 예술로 변질되어가는 운동을 가속시킨 주범이자 데카당스 미학의 설교자이다. 그리고 그의 음악은 자연과 건강과 명랑과 젊음과 덕으로의 회귀의 정신이 없는, 하찮은 것들에 편승하는 것으로 상정된다. 그래서 바그너를 질병=자유의지가 결여된 자=방울뱀의 행운을 누리는 늙은 거장=지쳐버린 약자를 유혹하는 자로 매도한다. 한때 바그너의 열렬한 추종자로, 그와 두터운 친분을 쌓았던 니체는 말년에 이렇듯 그를 데카당스의 주범으로, 심하게는 당대의 가장 비열한 아첨꾼으로 폄하한다. 그리고 바그너가 일반인(한때 자신을 포함해서)에게 유명해진 이유에 대해서는 당대가 병들어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결국 니체에게 바그너라는 이름은 전형적인 데카당스 예술가이자, 데카당스로 특징지어지는 현대성에 대한 총괄 개념이다.

 

《우상의 황혼》어떻게 망치를 들고 철학하는지

 

《우상의 황혼》에서 니체는 모든 가치의 전도를 위해 우상들을 캐내고, 우상들을 망치로 부숴버리는 철학적 작업을 수행한다. 이성=덕=행복이라는 공식, 변증법, 독일인들을 우매하게 만드는 알코올, 그리스도교, 음악 등이 우상으로 등장한다. <어느 반시대적 인간의 편력>에서 니체는'내가 용인할 수 없는 자들'로 세네카Lucius Annaeus Seneca(덕의 투우사), 루소(자연적인 불결함으로의 자연의 복귀), 단테(무덤 위에서 시를 짓는 하이에나), 빅토르 위고(부조리의 바다에 있는 등대), 칼라일(소화 안 된 점심 식사로서의 염세주의), 졸라(악취를 내는 기쁨) 등을 지적하고 있다.< 철학에서의'이성'>에서는 철학자들의 특이 성질이 우상으로 등장한다. 역사적 감각의 결여, 생성에 대한 증오, 실제적인 것의 박제, 개념의 숭배, 감각과 육체에 대한 불신과 경시 등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나아가 니체는 참된 세계와 가상 세계로 세계를 나누는 이분법적인 방식은 그것이 그리스도교이든, 형이상학이든 데카당스의 징후에 지나지 않으며, 철학자들의 참된 세계라는 것은 가상이고, 무의미한 담론에 불과하며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만이 유일한 실제임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우상의 황혼》에서 <어떻게'참된'세계가 결국 우화가 되어버렸는지. 어떤 오류의 역사>는 가장 중요한 대목이다. 여기서 니체는 아주 간결한 몇 단어와 형식으로 형이상학의 역사를 오류의 역사로서 개괄한다. 플라톤에서부터 그리스도교를 거쳐 칸트에 이르는 참된 세계와 가상 세계라는 이분법의 변천사가 제시되고, 실증주의를 거치고 니체에 이르러서 이분법 자체가 파괴되어버리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오류의 역사의 종말은 곧 형이상학적 사유의 종말이고 이 종말은 니체에게서 가능해진다.

 

《안티크리스트》모든 가치의 전도

 

후기 저작 대부분에서 니체가 신에 대해 말하고 있는 내용은 매우 불경하고 때로는 세속적이기까지 한다. 그는 신이 속 좁고 감상적인 존재로 변했다고 불평한다.《안티크리스트》에서 니체는 가장 골칫거리였던 데카당스 문제를 그리스도교에 대한 공격으로 표출시킨다. 니체가 이 작품을 쓸 무렵에 이미 그리스도교는 독일 내부와 외부에서 일종의 노쇠해버린 타성으로서, 옛 허섭스레기로 간주되는 경향이 고개를 들고 있었다. 도덕적이고도 종교적인 실천으로서의 그리스도교는 서서히 하나의 불운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이 경향은 니체의《안티크리스트》를 환호하며 받아들였지만, 니체가 서문에서"이 책은 극소수를 위한 것이다"라고 밝혔듯이 니체의 공격은 비단 종교나 도덕으로서의 그리스도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리스도교를 현대 세계의 가치 전체를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규정하고 공격한다. 바꿔 말하면 현대 세계의 가치 전체에 대한 비판이다. 니체는 현대의 철학, 현대의 정치, 정의, 인간의 평등, 민주주의 등 그리스도교와 관련된 것을 모든 것을 통찰되고 비판한다. 그래서 니체에게 그리스도교의 멸절은 사실상 '모든 가치의 전도'가 될 수 있었다. <그리스도교 반대법> 제6조에서 니체는 신, 구세주, 구원자, 성자라는 말들은 욕설이나, 범죄자에 대한 표지로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 그의 무신 사상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이 사람을 보라》니체 자신을 보라

 

니체에 의해 씌어진 반(半)자서전적인 저서로, 겸손과는 먼 니체를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다. <나는 왜 이렇게 현명한지>, <나는 왜 이렇게 영리한지>, <나는 왜 이렇게 좋은 책들을 쓰는지>, <왜 나는 하나의 운명인지>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에서 니체는 "내 말을 들으시오! 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이기 때문이오. 무엇보다도 나를 혼동하지 마시오!"라고 말한다. 그는 자신을 철학자 디오니소스의 제자로, 자신의 작품들을 자신의 삶과 격정의 표현으로, 자신의 작품들이 높은 곳의 공기임을 이해해주기를 바란다. 그는 자신의 유일성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으며, 니체라는 자의 본보기적인 위대함을 알아차리지 못한 자신의 시대에 대고 비난을 퍼부어댄다. 그가 집중하고 있던 여러 문제들이 이제 니체 개인과 그 자신의 문제들의 형식으로 표출된다. 니체는 이 작품 안에서《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아침놀》《 즐거운 학문》《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선악의 저편》《 도덕의 계보》《우상의 황혼》《 바그너의 경우》 등 그의 모든 저서를 새로운 관점에서 반추하고 있다.

 

《디오니소스 송가》니체 사상의 시상 묶은 첫 시집

 

니체는《디오니소스 송가》를 출간하면서 몇 번에 걸친 시집 출간 계획을 마침내 실현시킨다. 니체는 아포리즘과 잠언 형식으로 쓴《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대해서 "나의 야심은 다른 사람들이 책 한 권으로 말하는 것을 열 문장으로 말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한 권의 책으로도 말하지 않는 것을"이라고 말한 바 있다. 마찬가지로 몇 편의 시로 구성되어 있는《디오니소스 송가》는 니체 최후의 합리적, 추상적, 이론적인 사유에서 떨어져서 찌를 듯한 아름다움을 갖춘, 형식과 내용을 한 가지로 확정짓지 않은 잠언집이라고 할 수 있다.

 

《니체 대 바그너》대척자로서의 바그너

 

이 작품의 핵심은 바그너와 니체 자신의 대립적인 관계이다. 바그너와의 관계에 대해 신중하게 고찰하고 있는 이 작품은《바그너의 경우》의 반향에 대한 응답으로 씌어졌다. 서문에서 니체는"우리들은 대척자다"고 밝히고 있는데, 이 작품에서 바그너의 음악은 삶과 삶의 빈곤에 고통받는 자의 작업이고, 도취와 마비를 찾는 데카당의 작업으로 다시 한번 강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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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6-03-07 1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니체가 르네상스에 대해서도 고민했었군요~!

그리스도교 탄핵....지금도 역시 니체의 발언은 유효한 듯합니다. 조용기가 200억 횡령 기사를 보니...기독교 대형 집회를 보니, 할 말을 잃게 되더군요...에휴~

oren 2016-03-07 17:35   좋아요 0 | URL
니체는 도대체가 모르는 것도 없고, 읽지 않은 책들도 거의 없는 듯해요. `르네상스`에 대해서도 놀라우리만치 깊은 이해와 탐구를 보여주는데, 아무래도 바젤 대학에서 예술사를 가르쳤던 야콥 부르크하르트의 영향이 컸던 듯합니다. 당대의 학자들 가운데 니체가 `유일하게 존경하는 인물`이라고 불렀던 인물이었지요. 그가 쓴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라는 책은 아직도 `르네상스`에 대해 쓰여진 최고의 고전 가운데 한 권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듯하고요. 알라딘 책소개에도 그런 내용이 나오네요..(고전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는 이 책 이후로 `르네상스`라는 말이 역사상의 일반 용어로 쓰이게 되었을 만큼 르네상스사 연구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명저이다...)

탕기 2016-03-07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니체가 부르크하르트를 존경했군요! 보르헤스-쇼펜하우어-니체로 맞물리던, 어떻게든 저와 니체의 연결고리를 만들려고 하던 제게 `부르크하르트`라는 또 하나의 퍼즐이 있었던 것이었군요 ^^ 예술 공부를 하는 제가 부르크하르트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이란 애당초 없으니, 이것도 운명일지 모르겠다는 이상한 생각마저 듭니다. 부르크하르트의 『Die Kultur der Renaissance in Italien』은, 어쩔 수 없이 부분 부분 읽어왔지만 모든 글들이 단편의 드라마를 연상케 합니다. `학술`이라는 단어로는 표현할 수가 없을 정도로 유려한 느낌이죠. 제 생각에 그런 느낌은 부르크하르트가 (다소 주관적이라는 분위기가 느껴질 수도 있을) 수많은 형용사들을 사용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니체만큼은 물론 아니겠지만요 ^^

오늘도 니체의 구절들을 이면지에 적어가겠습니다. ˝나의 물음은 르네상스의 물음이다˝라는 니체의 선언에서 제가 부르크하르트의 글과 여태 공부한 르네상스에서 맡았던 고대의 향기가 굉장히 진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런 니체의 입장에서 보면 사제 신분으로 한 달 정도 로마에서 지냈던 루터가 교회를 뒤엎으려다가 도리어 교회를 세우고 말았으니, ˝헛수고 ㅡ 이것은 항상 독일인들의 작품이다˝라고 일갈한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저 니체의 힘을 제가 감당하지 못할 뿐이지만 말이죠!

oren 2016-03-07 22:36   좋아요 0 | URL
역시 탕기 님께서는 부르크하르트가 쓴, 저는 이제서야 겨우 알게 된 저 유명한 책을 진작에 읽으셨군요! 아무튼 니체는 부르크하르트에 매료되어 그의 강의도 직접 여러 번 들었다고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었는데, <안티 크리스트>에서는 그의 말을 단지 한 번밖에 인용하지 않았더군요. 제가 저 위에 써 놓은 인용문 61절 중간쯤에 있는 ˝이로써 그리스도교는 폐지되고 말았으니!˝라는 대목이 바로 부르크하르트의 언급이었던 모양입니다.(주석엔 한 줄만 나옵니다. J. Burckhardt, Die Kultur der Renaissance in Italien(Leipzig, 1869), 91∼95)

이왕지사 말이 나온 김에, 니체가 다른 책에서 부르크하르트에 대해 언급한 대목을 덧붙여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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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외 중의 예외를 제외하고 보면, 교육의 첫 번째 선결 조건인 교육자들이 결여되어 있다 : 그래서 독일 문화가 하강하는 것이다. ㅡ 정말 진귀한 그 예외 중의 한 명이 바로 바젤 대학에 있는 나의 경외하는 지기인 야콥 부르크하르트이다 : 바젤 대학이 인문학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은 그의 덕택이다.
- 니체, 『우상의 황혼』, <독일인에게 모자란 것>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