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 후기 철학의 결정판
근대를 지배했던 형이상학적 사유와 전통적 도덕의 붕괴를 통해 철학의 종말을 고하고, 새로운 가치를 부르짖은 니체. 그는 마치 자신의 운명을 예감이나 한 듯이 1888년 한 해에 한꺼번에 여섯 작품을 쏟아낸다. 1887년 가을 무렵부터 시작된 정신병적 징후에도 불구하고 생애 최고로 생산적인 해를 보낸 것이다. 한국어판 책세상 니체전집 15《바그너의 경우 우상의 황혼 안티크리스트 이 사람을 보라 디오니소스 송가 니체 대 바그너》는 바로 거센 폭풍과도 같은 니체의 마지막 정열과 사상적 결정체가 담긴 저작이다. 이 여섯 작품은 니체가 카를로 광장에서 쓰러지기 직전에 씌어진 니체 최후의 저작들로 그간의 니체가 보여주었던 현대성 비판, 반그리스도교적 고찰 등 그의 핵심 사상이 총정리되어 있다. 특히 예술(그중에서도 음악), 정치, 역사에 대한 니체의 시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어 니체 후기 철학의 결정판으로 평가받는다.
현대 세계와 현대성에 대한 폭발적 분노
그렇다면 철학자 니체는 무엇을 위해 1888년 한 해에 자신의 마지막 정열과 혼을 불태웠는가? 현대 세계와 현대성에 마지막 일침을 가하기 위해서이다. 이미《선악의 저편》과《도덕의 계보》에서 그는 이미 퇴폐적인 근대의 여러 현상과 과학정신, 유럽 그리스도교 등을 맹렬하게 비난하는 등 모든 기존 가치의 전도를 극명하게 표명했다. 따라서 그는 이제 더 이상 현대 세계와 현대성에 대해 자신의 경멸을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단지 현대 세계의 얼굴에 대고 데카당스! 라고 부르짖는다. 그리스도교! 라고 부르짖는다. 삶을 부정할 뿐 아니라, 삶에 대한 긍정을 억압하는 그리스도교야말로 니체가 보기에는 데카당스의 전형이었고, 음악의 연극화, 극장에서의 성공, 이상주의라는 허울 좋은 무기를 가지고 진정한 음악정신을 죽일 뿐 아니라 생을 부정하고'초월'과 '피안'이라는 낡고 날조된 가치를 보호하는 바그너야말로 음악을 병들게 한 데카당스 예술가였던 것이다. 이제 니체는 삶과 세상을 부정하고 삶의 덕을 증오하는 데카당스의 미학과 예술에 작별을 고한다. 삶을 긍정하고 주인도덕을 표현해주는 아름다운 예술로의 회귀를 위해, 고전 미학으로의 회귀를 위해, 자연과 건강함과 명랑성과 젊음으로의 회귀를 위해 마지막 남은 힘을 쏟아 붓는다.
니체 철학을 이해하기 위한 시금석
니체는 체계적인 철학자가 아니다. 오히려 철학을 하나의 체계로 만들려는 시도를 조롱하며 그것을 '고결함의 결여'라고 부른다. 니체의 다양한 관찰과 통찰을 하나의 틀에 집어넣기에는 그의 사상이 갖는 매력뿐 아니라 그가 시도하고자 했던 핵심이 단일하지 않다. 니체의 잠언이나 우화를 이용한 글들은 의도적으로 특정 방향을 드러내지 않도록 구성되어 있다. 그는 우리에게 충격을 주고, 우리를 놀라게 하며, 사태를 다른 각도, 다른 관점, 다른 방식으로 볼 수 있도록 유도한다. 니체주의자 중 한 사람인 미셸 푸코는 단일한 니체 철학이란 없으며 우리의 질문은 "니체를 어떻게 진지하게 써먹을 수 있는가" 이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니체의 전 작품을 한눈에 조망하도록 구성되어 있는 이 책에서 니체가 최후까지 강조했던, 니체 철학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현대 세계에 대한 강한 반발을 읽어내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왜냐하면 니체가 이를 위해 자신의 전 작품을 이 주제 아래에서 재고찰하고 있기 때문이다. 니체는 이 책에서 주요 여섯 작품 외에도 자신의 거의 모든 저서를 새롭게 해석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그의 초기사상이 담긴《비극의 탄생》(1872)에 대해서는"몇 가지를 잊어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책이 끼친 영향과 심지어 이 책의 매혹도 바로 이 책의 문제점 때문에 생긴 것이다"라면서《니체 15》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반(反)바그너적 시점에서《비극의 탄생》을 새롭게 해석하고 있다. 또한《반시대적 고찰》 부분에서는 "금세기의 긍지인 '역사적 감각'이 최초로 병증으로서, 퇴락의 전형적 징후로서 간파되었다. '독일 제국', '교양', '그리스도교', '비스마르크', '성공'등으로 불리던 모든 것에 대한 절대적 경멸로 가득 차" 있음을 인정한다. 그리고 니체가 바그너에게 비교적 호의적이었을 당시 썼던《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에서도 "불쌍한 바그너! 그가 어디로 빠져버렸단 말인가! 차라리 돼지들 쪽으로 가버릴 것이지! 하필 독일인들 사이로 가다니!"라면서 바그너를 맹렬하게 비난하기도 한다.《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후기 니체 철학이 집약돼 있는《선악의 저편》《도덕의 계보》 등의 작품을 니체는 일일이 열거해 새로운 해석을 가미하고 재조명하는데, 이를 통해 니체 철학을 새롭게 만날 수 있을 뿐 아니라, 이미 출간된 책들을 반추해볼 수 있는 기회도 될 것이다.
《바그너의 경우》바그너에 대한 혹독한 비판
《바그너의 경우》에서 니체는 리하르트 바그너에 대한 오랜 침묵을 깨고 그를 공개적으로 논박하기 시작한다. 철학자 니체에게 바그너는 음악을 병들게 한 자이자, 음악이 데카당스 예술로 변질되어가는 운동을 가속시킨 주범이자 데카당스 미학의 설교자이다. 그리고 그의 음악은 자연과 건강과 명랑과 젊음과 덕으로의 회귀의 정신이 없는, 하찮은 것들에 편승하는 것으로 상정된다. 그래서 바그너를 질병=자유의지가 결여된 자=방울뱀의 행운을 누리는 늙은 거장=지쳐버린 약자를 유혹하는 자로 매도한다. 한때 바그너의 열렬한 추종자로, 그와 두터운 친분을 쌓았던 니체는 말년에 이렇듯 그를 데카당스의 주범으로, 심하게는 당대의 가장 비열한 아첨꾼으로 폄하한다. 그리고 바그너가 일반인(한때 자신을 포함해서)에게 유명해진 이유에 대해서는 당대가 병들어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결국 니체에게 바그너라는 이름은 전형적인 데카당스 예술가이자, 데카당스로 특징지어지는 현대성에 대한 총괄 개념이다.
《우상의 황혼》어떻게 망치를 들고 철학하는지
《우상의 황혼》에서 니체는 모든 가치의 전도를 위해 우상들을 캐내고, 우상들을 망치로 부숴버리는 철학적 작업을 수행한다. 이성=덕=행복이라는 공식, 변증법, 독일인들을 우매하게 만드는 알코올, 그리스도교, 음악 등이 우상으로 등장한다. <어느 반시대적 인간의 편력>에서 니체는'내가 용인할 수 없는 자들'로 세네카Lucius Annaeus Seneca(덕의 투우사), 루소(자연적인 불결함으로의 자연의 복귀), 단테(무덤 위에서 시를 짓는 하이에나), 빅토르 위고(부조리의 바다에 있는 등대), 칼라일(소화 안 된 점심 식사로서의 염세주의), 졸라(악취를 내는 기쁨) 등을 지적하고 있다.< 철학에서의'이성'>에서는 철학자들의 특이 성질이 우상으로 등장한다. 역사적 감각의 결여, 생성에 대한 증오, 실제적인 것의 박제, 개념의 숭배, 감각과 육체에 대한 불신과 경시 등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나아가 니체는 참된 세계와 가상 세계로 세계를 나누는 이분법적인 방식은 그것이 그리스도교이든, 형이상학이든 데카당스의 징후에 지나지 않으며, 철학자들의 참된 세계라는 것은 가상이고, 무의미한 담론에 불과하며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만이 유일한 실제임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우상의 황혼》에서 <어떻게'참된'세계가 결국 우화가 되어버렸는지. 어떤 오류의 역사>는 가장 중요한 대목이다. 여기서 니체는 아주 간결한 몇 단어와 형식으로 형이상학의 역사를 오류의 역사로서 개괄한다. 플라톤에서부터 그리스도교를 거쳐 칸트에 이르는 참된 세계와 가상 세계라는 이분법의 변천사가 제시되고, 실증주의를 거치고 니체에 이르러서 이분법 자체가 파괴되어버리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오류의 역사의 종말은 곧 형이상학적 사유의 종말이고 이 종말은 니체에게서 가능해진다.
《안티크리스트》모든 가치의 전도
후기 저작 대부분에서 니체가 신에 대해 말하고 있는 내용은 매우 불경하고 때로는 세속적이기까지 한다. 그는 신이 속 좁고 감상적인 존재로 변했다고 불평한다.《안티크리스트》에서 니체는 가장 골칫거리였던 데카당스 문제를 그리스도교에 대한 공격으로 표출시킨다. 니체가 이 작품을 쓸 무렵에 이미 그리스도교는 독일 내부와 외부에서 일종의 노쇠해버린 타성으로서, 옛 허섭스레기로 간주되는 경향이 고개를 들고 있었다. 도덕적이고도 종교적인 실천으로서의 그리스도교는 서서히 하나의 불운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이 경향은 니체의《안티크리스트》를 환호하며 받아들였지만, 니체가 서문에서"이 책은 극소수를 위한 것이다"라고 밝혔듯이 니체의 공격은 비단 종교나 도덕으로서의 그리스도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리스도교를 현대 세계의 가치 전체를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규정하고 공격한다. 바꿔 말하면 현대 세계의 가치 전체에 대한 비판이다. 니체는 현대의 철학, 현대의 정치, 정의, 인간의 평등, 민주주의 등 그리스도교와 관련된 것을 모든 것을 통찰되고 비판한다. 그래서 니체에게 그리스도교의 멸절은 사실상 '모든 가치의 전도'가 될 수 있었다. <그리스도교 반대법> 제6조에서 니체는 신, 구세주, 구원자, 성자라는 말들은 욕설이나, 범죄자에 대한 표지로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 그의 무신 사상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이 사람을 보라》니체 자신을 보라
니체에 의해 씌어진 반(半)자서전적인 저서로, 겸손과는 먼 니체를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다. <나는 왜 이렇게 현명한지>, <나는 왜 이렇게 영리한지>, <나는 왜 이렇게 좋은 책들을 쓰는지>, <왜 나는 하나의 운명인지>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에서 니체는 "내 말을 들으시오! 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이기 때문이오. 무엇보다도 나를 혼동하지 마시오!"라고 말한다. 그는 자신을 철학자 디오니소스의 제자로, 자신의 작품들을 자신의 삶과 격정의 표현으로, 자신의 작품들이 높은 곳의 공기임을 이해해주기를 바란다. 그는 자신의 유일성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으며, 니체라는 자의 본보기적인 위대함을 알아차리지 못한 자신의 시대에 대고 비난을 퍼부어댄다. 그가 집중하고 있던 여러 문제들이 이제 니체 개인과 그 자신의 문제들의 형식으로 표출된다. 니체는 이 작품 안에서《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아침놀》《 즐거운 학문》《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선악의 저편》《 도덕의 계보》《우상의 황혼》《 바그너의 경우》 등 그의 모든 저서를 새로운 관점에서 반추하고 있다.
《디오니소스 송가》니체 사상의 시상 묶은 첫 시집
니체는《디오니소스 송가》를 출간하면서 몇 번에 걸친 시집 출간 계획을 마침내 실현시킨다. 니체는 아포리즘과 잠언 형식으로 쓴《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대해서 "나의 야심은 다른 사람들이 책 한 권으로 말하는 것을 열 문장으로 말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한 권의 책으로도 말하지 않는 것을"이라고 말한 바 있다. 마찬가지로 몇 편의 시로 구성되어 있는《디오니소스 송가》는 니체 최후의 합리적, 추상적, 이론적인 사유에서 떨어져서 찌를 듯한 아름다움을 갖춘, 형식과 내용을 한 가지로 확정짓지 않은 잠언집이라고 할 수 있다.
《니체 대 바그너》대척자로서의 바그너
이 작품의 핵심은 바그너와 니체 자신의 대립적인 관계이다. 바그너와의 관계에 대해 신중하게 고찰하고 있는 이 작품은《바그너의 경우》의 반향에 대한 응답으로 씌어졌다. 서문에서 니체는"우리들은 대척자다"고 밝히고 있는데, 이 작품에서 바그너의 음악은 삶과 삶의 빈곤에 고통받는 자의 작업이고, 도취와 마비를 찾는 데카당의 작업으로 다시 한번 강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