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의 탄생.반시대적 고찰 책세상 니체전집 2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이진우 옮김 / 책세상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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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괴테, 쇼펜하우어, 바그너

 

근래 어느 영국인이 평범한 것에 묶여 있는 사회에서 사는 비범한 인간에게 닥칠 가장 일반적인 위험을 이렇게 서술한다. "그런 이질적 성격의 소유자는 먼저 기가 꺽이고 그 다음 우울해지며, 그 후 병들고 마침내 죽는다. 셸리 같은 인물은 영국에서 살 수 없었을 것이다. 셸리와 같은 인종은 틀림없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의 횔덜린과 클라이스트 그리고 그 밖의 여러 사람들은 자신들의 비범함 때문에 죽었고, 소위 독일 교향의 기후를 견디지 못했다. 베토벤, 괴테, 쇼펜하우어와 바그너처럼 강철 같은 천성을 가진 인물들만이 견뎌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극도로 피로한 투쟁과 긴장의 영향이 얼굴 곳곳에서, 주름살에서 나타난다. 그들의 호흡은 점점 힘들어지고 그들의 목소리는 쉽게 거칠어진다. 괴테와 아주 잠깐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던 저 노련한 외교관은 자기 친구에게 이렇게 말한다. "Voilà un homme, qui a eu de grands chagrins!" ㅡ 괴테는 이것을 독일어로 이렇게 번역했다. "그도 몹시 고생한 사람이다." 그는 이렇게 덧붙인다. "우리의 얼굴에서 극복한 고통, 수행한 활동의 흔적이 사라지지 않을 때, 우리와 우리의 노력이 남긴 모든 것이 똑같은 흔적을 지니고 있다면, 그건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것이 괴테다. 우리의 교양 속물들이 독일인들 사이에서도 행복이 가능하다는 명제를 증명하기 위해 가장 행복한 독일인으로 지적하는 인물이 바로 그다. 그들의 속셈은 자신들 사이에서 불행하고 외롭다고 느끼는 자가 있다면 결코 용서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모든 고독 속에는 항상 은밀한 죄가 숨어 있다는 공리를 잔인하게 정립했고 실천적으로 해설해왔다. 그렇게 불쌍한 쇼펜하우어도 은밀한 죄, 즉 자기 철학을 동시대인들보다 더 높이 평가한다는 죄를 가슴에 품고 있었다. 거기다 그가 자신의 철학을, 그것의 목숨을 구하려면, 모든 희생을 감수하고 동시대인의 무시에 대항해 방어해야 한다는 사실을 하필 괴테를 통해 알게 되었기 때문에 그는 무척 불행했다. 괴테의 판단에 따르면 독일인들에게는 숙달된 일종의 이단 심문, 즉 신성불가침의 침묵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로 인해 그의 주저의 첫 판이 대부분 휴지로 파기될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그의 위대한 행위가 단순히 무시로 인해 다시 무위로 돌아갈지 모든다는 임박한 위험은 그를 침기 힘든 끔찍한 불안으로 몰아넣었다. 이렇다 할 신봉자는 한 명도 나타나지 않았다. 자신이 남들에게 알려진 흔적이 없을까 하고 추적하는 그의 모습을 보는 것은 슬픈 일이다. 그리고 자신이 마침내 정말로 읽힌다는 것에 크게, 너무 크게 승전가를 부르는 그의 모습은 고통스러운 동시에 감동적이다. 철학의 위엄을 드러내 보이지 않는 바로 그런 그의 모습들이 모두 자신의 고귀한 소유물 때문에 노심초사하는 고통 받는 인간을 보여준다. 이렇게 자신의 작은 재산을 잃지 않을까, 그리고 철학에 대한 자신의 순수하고 진정으로 고대적인 태도를 더 이상 견지할 수 없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그를 괴롭혔다. 그래서 그는 항상 다시 우울한 눈으로 자신에게 충실한 개에게 돌아갔기 때문에 자신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동정하는 인간을 제대로 갈망하지도 못했다. 그는 완전한 은둔자였다. 그를 위로해주는 마음이 맞는 친구 한 명도 없었다. ㅡ 한 명이 있다는 것과 한 명도 없다는 것 사이에는, 유와 무 사이가 그렇듯이, 무한의 간격이 놓여 있다. 진정한 친구가 있는 사람은 진정한 고독이 무엇인지 결코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가 설령 주변의 전 세계를 적으로 만들지라도, ㅡ 아, 나는 잘 안다. 너희는 고독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을. 강력한 사회, 정부, 종교, 여론이 있는 곳에서, 즉 전제 정치가 지배하는 곳에서, 고독한 철학자는 증오의 대상이었다. 왜냐하면 철학은 인간에게 어떤 전제 정치가 침입할 수 없는 피난처, 내면의 동굴, 가슴의 미로를 열어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독재자들을 격분시킨다. 고독한 사람들은 거기에 숨는다. 그러나 거기도 고독한 사람들에게 닥칠 수 있는 큰 위험이 잠복해 있다. 자신의 자유를 내면적인 것 안으로 피신시킨 사람들도 외면적으로 살아야 하고 눈에 보여야 하고 스스로를 보여주어야 한다. 그들은 탄생, 체류, 교육, 모국, 우연, 치근거리는 타인들로 인해 무수한 인간 관계 속에 얽혀 있다. 마찬가지로 이 관계에서는 수많은 의견들이, 단지 지금 여기서 지배적이라는 이유로, 그저 당연한 것으로 전제된다. 부정하지 않는 표정은 모두 동의로 여겨진다. 때려 부수지 않는 모든 손동작은 찬성으로 해석된다. 이 고독한 사람들, 정신적으로 자유로운 사람들은 알고 있다. ㅡ 자신들은 어디에서든 항상 생각과는 다르게 보인다는 것을, 그들이 원하는 것은 오로지 진리와 정직성인데, 그들 주변에는 오해의 그물망이 둘러싸고 있다는 것을. 그들이 아무리 강력히 원해도, 그들의 행동 위에 서려 있는 잘못된 견해, 순응, 어정쩡한 용납, 관대한 침묵, 잘못된 해석의 안개를 막을 수 없다. 그로 인해 그의 이마에는 멜랑콜리의 구름이 모여든다. 그런 천성의 사람들은 허식이 필연적이라는 것을 죽음보다 미워하기 때문이다. 가식에 대해 끊임없이 분노하기 때문에 그들은 화산처럼 폭발적이고 위협적이 된다. 그들은 때때로 강압적인 자기-은폐, 강요된 자제에 대해 복수한다. 그들은 무서운 표정으로 동굴에서 나온다. 그리고 그들의 말과 행동은 폭발하고, 그로 인해 그들 자신이 파멸할 수도 있다.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위험하게 살았다. 바로 그런 고독한 사람은 사랑이 필요하고, 마치 자신을 대하듯 마음을 열고 단순해질 수 있는 그런 동무들, 그들이 있으면 침묵의 긴장과 위장이 멈추는 그런 동무들이 필요하다. 이 동무들을 떼버려 보라. 그러면 그대들은 증가하는 위험을 초래한 것이다.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는 이와 같이 사랑을 못 받아서 파멸했다. 이 버범한 인물들에 대한 가장 끔찍한 해독제는, 그들을 그들 자신의 내면으로 깊이 몰아넣고 그들이 다시 나올 때마다 매번 화산처럼 폭발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항상 그런 끔찍한 조건의 삶도 견디고 승자처럼 살아갈 수 있는 반신(半神)이 있기 마련이다. 그대들이 그의 고독한 노래를 듣고 싶으면, 베토벤의 음악을 들으면 된다.

 

 - 『반시대적 고찰 』, <교육자로서의 쇼펜하우어>, 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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