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의 탄생.반시대적 고찰 책세상 니체전집 2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이진우 옮김 / 책세상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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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 떠나지 말게, 그리스인들의 민족적 지혜가 말하는 것을 듣게나."

 

"거기서 떠나지 말게, 여기서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명랑성을 가지고 자네 앞에서 펼쳐지는 이 삶에 관하여 그리스인들의 민족적 지혜가 말하는 것을 듣게나."  미다스의 왕이 오랫동안 숲 속에서 디오니소스의 시종인 현자 실레노스를 추적했으나 그를 잡지 못했다는 오랜 전설이 있다. 그가 마침내 왕의 수중에 떨어졌을 때, 왕은 그에게 인간에게 가장 좋은 것, 가장 훌륭한 것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 마신은 미동조차 없이 부동의 상태로 침묵했다. 그러다가 왕이 강요하자 마침내 껄껄 웃으며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가련한 하루살이여, 우연의 자식이여, 고통의 자식이여, 왜 하필이면 듣지 않는 것이 그대에게 가장 복될 일을 나에게 말하라고 강요하는가? 최상의 것은 그대가 도저히 성취할 수 없는 것이네. 태어나지 않는 것, 존재하지 않는 것, (無)로 존재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네. 그러나 그대에게 차선의 것은 ㅡ 바로 죽는 것이네."

 

올림포스의 신들은 이 민족적 지혜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는가? 그것은 고문받는 순교자의 황홀한 환상이 그의 고통을 대하는 태도와 같다.

 

지금 올림포스의 마의 산은 말하자면 문을 열고 우리에게 자신의 뿌리들을 보여준다. 그리스인은 실존의 공포와 경악을 알고 있었고 느꼈다. 그리스인은 살 수 있기 위하여 그 공포와 경악 앞에 올림포스 신들이라는 꿈의 산물을 세워야 했다. 자연의 거대한 힘에 대한 저 엄청난 불신, 모든 인식 위에 무자비하게 군림하는 저 운명의 여신 모이라, 인간의 위대한 친구 프로메테우스를 공격하는 저 독수리, 현명한 오이디푸스의 저 무서운 운명, 오레스테스로 하여금 어머니를 살해하도록 강요한 아트레우스 일가에 대한 저 생식의 저주, 간단히 말해 우울한 에트루리아인들이 파멸에 이르도록 한 저 숲의 신의 철학 전체와 그들의 신화적 사례들 ㅡ 이 모든 것은 올림포스 신들의 저 예술가적 중간 세계를 통해 그리스인에 의해서 끊임없이 새롭게 극복되고, 아무튼 은폐되고 시야에서 사라져버리게 되었다. 살 수 있기 위하여 그리스인들은 이 신들을 아주 깊은 필연성에 의해 창조해야만 했다. 그 과정을 우리는 다음처럼 그려보아야 한다. 원래 있던 거대한 공포의 신의 질서가 저 아폴론적 미의 충동을 통하여 서서히 변화를 겪으면서 올림포스의 환희의 신의 질서로 발전되었다. 마치 장미꽃이 가시덤불에서 피어나는 것처럼. 만약 실존이 보다 높은 영광에 둘러싸여 그리스 신들 속에 표현되어 그들에게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렇게 민감하고 그렇게 격렬하게 탐하고 유일하게 고뇌하는 능력을 가진 그 민족이 실존을 달리 어떻게 견뎌낼 수 있었겠는가. 계속 살아가도록 유혹하는 실존의 보완과 완성으로서의 예술을 삶으로 불러들이는 그 충동이 또한 올림포스의 세계를 탄생시킨 것이다. 이 세계 안에서 그리스적 의지는 아름답게 변용시키는 거울을 앞에 들고 있다. 이렇게 신들은 스스로 인간의 삶을 살아감으로써 인간의 삶을 정당화한다 ㅡ 이것만으로 충분한 변신론이다! 그러한 신들의 밝은 햇빛 아래에서 실존은 그 자체로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리고 호메로스적 인간의 본래 고통은 삶으로부터의 분리, 특히 머지않아 다가올 분리와 관계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실레노스의 지혜를 뒤집어, 그리스인들에 관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가장 나쁜 것은 곧 죽는 것이고, 그 다음으로 나쁜 것은 언젠가 죽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탄이 한번 울려 퍼지면, 그것은 단명한 아킬레우스에 관해서도, 나뭇잎과 같은 인간의 변화무상에 관해서도, 영웅 시대의 종말에 관해서도 다시 울릴 것이다. 설령 날품팔이로서라도 더 살아남기를 동경하는 것이 가장 위대한 영웅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아폴론적 단계에서 "의지"는 이러한 실존을 격렬하게 갈망하고, 호메로스적 인간은 이러한 실존과 하나됨을 느껴서 비탄 자체가 자신의 찬가가 된다.

 

… 그러나 소박한 것, 즉 가상의 아름다움에 저처럼 아름답게 얽혀 있는 상태는 얼마나 성취하기 힘든 것인가! 그렇기 때문에 개별적인 꿈의 예술가가 민족과 자연의 꿈의 능력과 맺는 관계와 마찬가지로 한 개인으로서 저 아폴론적 민족 문화와 관계를 맺는 호메로스는 얼마나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숭고한가! 호메로스의 "소박성"은 오로지 아폴론적 환영에 대한 완전한 승리로 파악되어야만 한다.

 

- 『음악의 정신으로부터의 비극의 탄생』, 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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