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의 호메로스는 내 옆에 말없이 놓여 있네. 나는 그의 작품 곁에서 벙어리로 있지만, 종종 이렇게 말하면서 입을 맞춘다네. '위대한 자여, 내가 당신의 말을 얼마나 간절히 듣고 싶어 하는지 아십니까!'"
- 페트라르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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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로 갈 수 있는 길
호메로스는 신들이 고대인들에게 영향을 끼친 방식과 어느 정도 유사한 방식으로 단테와 그의 동시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했다.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에 묘사된 것처럼-그리고 이후의 수많은 문학 작품에서 묘사된 것과 마찬가지로-제우스와 그의 동료 신들은 인간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어주고, 그들을 수시로 찾아가 그들의 영광이나 죽음을 찾거나, 또는 그저 폐를 끼치면서-마치 『일리아스』에서 아테나가 아킬레우스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겼을 때처럼-그들 사이를 걸어다녔다. 그들은 하늘에 있는 유령 같은 존재들이었으며, 신전에서는 대리석과 청동으로 된 물질적인 재현일 뿐이었다. 하지만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들이 탐구에 전념하는 동안에는 그 곁에 앉아 있었으며, 인간들이 여행을 할 때면 그들과 동행했고, 인간들의 침실과 시장 그리고 전쟁터에서도 살아 있었다. 플라톤이 죽은 뒤, 그의 제자들은 호메로스가 신들을 '변장한 스파이들'로 생각한 개념에 대해 변호했다. 그런데 플라톤 자신은 이 개념을 비웃었던 바 있다. 플루타르코스는 한담(閑談)처럼 쓴 그의 책들에서, 인간들 사이에 신들이 계속 반복해서 등장하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도 "하늘의 별처럼 눈에 보이면서도, 또한 꿈속의 친구나 조언자처럼 존재하는" 신성한 존재들에 대해 명상했다. 그러나 아우구스티누스에게는 오직 하나의 신만이 그 존재로서 이 세계를 가득 채웠다. 서기 1세기에 저술 활동을 했던 철학자이자 극작가인 세네카는 가운데로 갈 수 있는 길을 제공했다. 그가 볼 때는 신들이 아니라 고대의 위대한 저술가들과 사상가들이 우리와 어우러져 살았던 것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썼다. "오직 제논과 피타고라스와 데모크리토스와 자유 학예 분야의 다른 훌륭한 대가들을 일상의 친근한 이웃으로 만들고 아리스토텔레스와 테오프라스토스를 친구로 구하는 자들만이 삶의 의무에 충실하다고 말할 수 있다. 어느 누군가의 부모는 그의 선택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저 우연히 그에게 할당될 뿐이라는 사실은 상식적인 이야기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신의 가계를 선택할 수 있다." 그의 서재를 가리키면서 세네카는 위대한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우리와 더불어 그들의 경험들을 공유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여기 고귀한 자질을 부여 받은 가문들이 있다. 당신이 속하고 싶은 가문이 있다면 어떤 것이든 택하라. 당신의 선택은 당신에게 이름뿐만 아니라 실제로 재산까지 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당신의 정신 속에서만 비열하거나 인색하게 간직할 필요는 없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당신과 공유할수록 이것은 더욱더 위대한 것이 된다. 이것들은 당신에게 영원으로 가는 길을 열어줄 것이고, 누구도 끌어내어 내던질 수 없는 지극히 높으 곳으로 당신을 올려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죽을 수밖에 없는 당신의 유한함을 연장시켜주는, 아니 죽을 수밖에 없는 당신의 유한함을 불멸성으로 바꿔주는 유일한 방법이다."(137∼139쪽)
- 알베르토 망겔,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이펙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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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하게 길을 가르쳐 주는 사람
그런데 인간 모두에게 서로 최대로 이용할 수 있도록 활짝 열려져 있는 것이 바로 사회이다. 이런 점에서 인간이 공동으로 이용할 수 있게 자연이 산출한 모든 것에 대한 공동의 권리는 수호되어야 한다. 즉, 법과 시민권에 의해 할당된 권리들은 법 자체의 규정대로 지켜져야 함은 물론, 나머지 권리들도 '친구들 간의 모든 것은 공동 소유다'라는 그리스의 격언처럼 보호되어야 한다. 더욱이 모든 인간의 공동 소유는 엔니우스에 의해 제시된 유(類)의 사물로서 보이는데, 그가 든 아래의 한 가지 예는 한정되어 있지만 그 원리는 많은 것에 적용시킬 수 있다.
길 잃고 방황하는 자에게
친절하게 길을 가르쳐주는 사람은
마치 자신의 등불로 다른 사람의 등에
불을 붙여 주는 것과 같도다.
그런데 남에게 불을 붙여 주었다고 해서
자신의 불빛이 덜 빛나는 것이 아니니라.
이 예에서 그는 한 가지 사실을 충분히 가르치고 있는데, 그것은 손해가 없다면 낯선 사람일지라도 무엇이든 주라고 하는 것이다.(49∼50쪽)
- 키케로, 『키케로의 의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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