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이 정열을 추구하는 것은 용서하고, 노년이 쾌락을 찾는 일은 금지하는 것은 잘못이다. 나는 젊었을 때는 불타는 정열을 조심성으로 은폐했다. 이제 늙어서는 음산한 심정을 방종으로 풀어 준다. 그 때문에 플라톤의 법칙은 편력을 더 유익하고 교양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40이나 50세 전에 돌아다니는 것을 금지한다. 나는 바로 이 규칙의 제2항으로 60세가 넘어서는 편력을 금지하는 데 기꺼이 동의할 것이다.

 -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중에서

 

 * * *

 

프랑스 사람 몽테뉴는 여행을 무척 즐겼던 인물이다. 그가 '여행'에 대해 남겨 놓은 재치있는 말들을 뒤적거릴 때마다 나는 그 프랑스 사람이 아니었더라면 과연 누구의 말을 내세워 매번 '나의 여행'을 알맞게 꾸밀 수 있었을까를 늘 의심해 보며, 그와 한 번 친숙하게 사귀어 놓은 일이 정말 여러모로 쓸모가 많음을 새삼 느낀다.


이번 '홍도·흑산도 여행'도 따지고 보면 몽테뉴의 견해에 매우 잘 들어맞는 셈이었다. 함께 한 일행 다섯은 모두 50을 넘긴 나이지만 60에는 아직 미치지 못했으며, 2박 3일의 일정 동안 맛있는 음식들도 실컷 먹고, 아름다운 경치들도 실컷 구경하면서 나름대로 '건전한 방종'으로 '일상의 따분함'을 넉넉하게 풀어주었으니 말이다.

 

'홍도'가 정말 아름다운 섬이라는 소문은 그동안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막상 그 먼 섬까지 가는 데는 적잖은 세월을 필요로 하는 모양이다. 우리 일행 모두는 이미 50년 이상을 살았지만 여태까지 아무도 그 섬에 가 본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꼭 그런 공통점 때문에 50대 아저씨 5명이 이번에 단단히 작심하고 '홍도·흑산도 여행'을 도모한 것은 아니었다.

 

이번에 함께 한 일행들 가운데 나를 포함한 셋은 이미 여러 해 전부터 해마다 가을이면 가급적 서울에서 멀리 벗어난 전국의 명산들을 찾아 '단풍 산행'을 꼬박꼬박 다녀온 터였고(지금 손꼽아 보니 해마다 거르지 않고 참 많이도 다녀왔다. 지리산, 설악산, 오대산, 덕유산, 월출산, 두타산, 청옥산, 방태산, 오봉산, 칠보산 등을 올랐다.), 이번에 새롭게 합류했다고 할 만한 멤버들도 따지고 보면 작년에 히말라야 트레킹을 함께 다녀온 친구도 있었고, 올해 여름에 유럽 여행을 갔을 때 동행했던 친구도 끼어 있었으니, 이번에 함께 한 일행들은 말하자면 평소에도 '어디든' 함께 떠나자고 하면 금세 '맞춤한 결론'을 만들어 낼 만큼 손발이 척척 맞는 사이인 셈이었고, 올해 여행은 다만 그 장소가 '머나먼 섬'으로 정해졌을 뿐이었다는 게 솔직한 얘기일 듯싶다.

 

우리에게 늘 다행스러운 점은 모두가 각자 하는 일이 아무리 바쁘더라도 '짧은 여행에 필요한 정도의 시간'은 비교적 흔쾌히 일상으로부터 막무가내로(?) 끄집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홍도로 들어가는 배편이나 그 섬에서 다시 목포로 되돌아 나오는 배편을 예약하는 데에도 '언제가 아니면 안 된다'는 식의 빡빡함이 없어서 여유롭고 좋았다.

 

홍도는 미처 가 보지 못한 사람들이 흔히 상상하는 것 보다는 훨씬 더 아름다운 섬이었다. 흑산도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번 여행을 통해 우리 일행 모두가 공통적으로 가졌던 한 가지 '편견' 같은 게 있었는데, 그걸 좀 심하게 표현하자면 '홍도만 제대로 보면 그걸로 충분하고, 흑산도에서는 '홍어만 실컷' 먹으면 그만'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건 정말 말도 안 되는 '편견'이자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홍도가 너무나 유명한 섬이다 보니 흑산도가 관광객들에게 상대적으로 덜 부각된 측면이 크다손 치더라도, 흑산도는 그저 정약전 선생이 오랜 세월 동안 유배 생활을 하면서 '자산어보'라는 보기 드문 자연과학서를 남긴 배경이 된 섬으로만 대접받아야 할 곳이 결코 아니었다.

 

흑산도는 생각보다 훨씬 더 크고 아름다운 섬이었다. 그러나 그 섬은 또한 온갖 슬픔과 애환이 가득 서린' 애달픈 섬이었다. 하루 아침에 집안이 풍비박산이 나면서 한양에서 그 머나먼 절해고도로 유배된 조선의 선비에게나, 태어날 때부터 그 섬에 갇혀서 한 번도 제대로 거기서 온전히 벗어날 희망조차 쉽사리 품지 못했을 수많은 섬 사람들에게 있어서나 흑산도는 '슬픔과 애환'을 마치 숙명처럼 떠안고 살아야 했던 사람들의 섬이었다. <흑산도 아가씨>라는 노래 가사에서 반복되는 '검게 타버린, 검게 타버린'이라는 구절은 결코 흑산도 아가씨의 새까매진 얼굴빛만 얘기하는 게 아니라는 걸 다시 한번 절감할 수 있었다.

 

남몰래 서러운 세월은 가고
물결은 천번 만번 밀려오는데
못견디게 그리운 아득한
저 육지를 바라보다 검게 타버린
검게 타버린 흑산도 아가씨

한없이 외로운 달빛을 안고
흘러온 나그넨가 귀양살이인가
애타도록 보고픈 머나먼 그 서울을
그리다가 검게 타버린
검게 타버린 흑산도 아가씨

 

 

나는 평소에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을 참 많이 쓰는 편이다. 내가 이 글에서 미주알고주알 홍도와 흑산도에 대해 실컷 얘기를 늘어놓아 봤자 다 무슨 소용일까. 언젠가 그 섬을 직접 한 번 찾아가 쪽빛 바다 위에 떠다니는 유람선에 몸을 싣고서 '홍도의 절경들'을 직접 눈으로 마주 대하고, 오랜 세월 끝에 완공한 '흑산도 일주도로'를 따라 관광 택시를 타고 다니며 '택시 기사 아줌마'의 기가 막힌 말쏨씨와 함께 눈 앞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섬의 풍광들을 직접 감상하고, 바로 그 때 택시 기사가 틀어주는 '젊은' 이미자씨의 <흑산도 아가씨>를 듣고 또 따라 부를 때, 그때에야 비로소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그런 '짜릿한 감흥' 을 맛보기 전까지는 그 누구의 얘기라도 한낱 '카더라'에 머물 뿐이다.

 

나는 이번에 아무런 준비도 없이 덜컥 '홍도·흑산도 여행'을 다녀온 게 너무나 아쉬워 뒤늦게나마 '두 권의 책'을 사서 반성하는 마음으로 두 섬에 대해 '복습'까지 했다. 한 권은 대원사에서 펴낸 홍도와 흑산도 라는 책이고, 다른 한 권은 손택수 시인이 쓴 바다를 품은 책 자산어보 라는 책이다. 홍도와 흑산도를 찾아 나설 사람이라면 누구든 여행을 떠나기 전에 미리 이 두 권의 책만이라도 꼭 구입해서 읽고 떠나라고 권하고 싶다. 그러면 '여행의 재미'가 남들보다 몇 배는 더 커질 것이라 장담한다.

 

 

한 폭의 동양화를 그대로 옮겨놓은 섬

 

목포항에서 서남쪽으로 115㎞ 떨어진 곳에 위치한 홍도는 해질녘이면 전체가 붉게 물들어 홍도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 섬에는 270여 종의 상록수와 170여 종의 동물이 서식하고 있어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보존하기 위해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 제 170호로 지정되어 있다. 섬 전체가 기복이 큰 산지로 이루어져 있고 섬의 2/3를 차지하는 북쪽과 1/3을 차지하는 남쪽이 대목이라는 좁은 바닥으로 이어져 있어 섬에서 두 개뿐인 마을도 배로 왕래를 해야 할 정도이다. 해안지형이 발달하여 뛰어난 경관을 이루고 있어 연중 많은 관광객이 이 섬을 찾는다. 홍도 33경으로 일컬어지는 홍도의 진면목은 유람선을 타고 섬 주위를 돌아보아야 알 수 있다.

남문바위, 시루떡바위, 물개굴, 석화굴, 기둥바위, 탑바위, 원숭이바위, 전자바위, 독립문바위, 홍어굴, 병풍바위, 남문바위, 실금리굴, 석화굴, 탑섬, 만물상, 슬픈여, 일곱남매바위, 수중자연부부탑 등 다양한 전설과 기묘한 형상을 간직한 기암, 그리고 섬 주위에 펼쳐진 크고 작은 20여 개의 무인도와 깎아지른 절벽들이 절경을 이루고 있으며 푸른 바다와 울창한 숲의 조화가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하다. 사계절 물이 맑고 투명하여 바람이 없는 날에는 10m 깊이의 바다 속까지 들여다볼 수 있다. 홍도는 두 개의 마을 중 1구에는 길이 1,200m, 너비 100m의 해수욕장이 있고, 2구에는 아름다운 등대가 있어 섬의 아름다움을 더해준다.

 -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국내 여행 1001』 중에서

 

 

 * * *

 

 (홍도와 흑산도는 지난 10월 25일부터 27일 사이에 다녀왔다. 홍도와 흑산도의 아름다운 풍광들을 아낌없이 소개하기 위해 사진을 충분히 담았다.)

 

1. 흑산도와 홍도가 얼마나 멀리 떨어진 깊은 바다에 둘러싸여 있는지 실감나는 지도.

    정약전이 머물렀던 흑산도와 그의 동생 정약용이 유배생활을 했던 강진과의 거리도 아득하기만 하다.

 

 

 

2. 목포연안여객터미널 풍경. 흑산도와 홍도를 오가는 쾌속선들은 모두 여기서 출발한다.

 

 

 

3. 우리가 탄 쾌속선이 홍도항에 도착할 무렵. 관광객들을 태운 유람선들이 여기 저기 눈에 띈다.

 

 

 

4. 소형 어선들은 하릴없이 한가로이 정박해 있다

 

 

 

5. 눈부신 가을 햇살이 바다와 만나 별빛처럼 반짝인다.

 

 

 

6. 유람선에 서둘러 옮겨 탔더니 이미 배 안은 전국에서 모여든 관광객들로 빼곡하다.

 

 

 

7. 홍도 제2경인 남문바위로 접근하는 중.

 

 

 

8. 바다 위로 불쑥 불쑥 솟은 바위들이 누가 일부러 조각해 놓은 듯하다.

 

 

 

9. 저녁 햇살을 받아 붉은 빛을 띄는 바위 뒤로 홍도항이 살짝 엿보인다.

 

 

 

10. 홍도 2경인 남문바위와 그 일대

 

홍도항 오른편에 있는 남문바위 일대는 더 빼고 붙이고 할 것 없는 완벽한 조각 예술품인 동시에 잘 그려진 풍경화이다. 남문바위 일대 절경은 한때 외국 관광객을 유치할 목적으로 해외에 배포한 한국 관광 안내 책자 표지에 실리기도 하고 한때는 텔레비젼이 시작하고 끝날 때 나오는 애국가 첫머리 배경을 장식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이곳의 절경을 보지 못한 사람도 남문바위는 안다.

 - 고동률, 『홍도와 흑산도』중에서

 

 

11. 절경을 보고 연신 감탄하는 관광객들

 

 

 

12. 바위 위에서 자라는 풀과 나무들조차 예술가의 솜씨 같다.

 

 

 

13. 바다는 말 그대로 쪽빛이다.

 

 

 

14. 남문바위 한가운데 뚫린 큰 구멍으로는 소형 선박이 드나들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15. 제6경인 흔들바위를 지날 무렵 소형 어선이 한 척 다가오고 있다.

 

 

 

16. 알고 보니 그 어선은 즉석에서 뜬 생선회를 관광객들에게 팔기 위해 미리부터 우릴 기다리고 있었던 터였다.

 

 

 

17. 점점 더 해가 기울자 남문바위의 색깔도 조금씩 더 붉게 변하는 듯하다.

 

 

 

18. 유람선에서 맛보는 생선회 맛이 그렇게 싱싱할 수가 없다.

 

 

 

19. 이쯤이 아마 홍도의 남쪽 끄트머리 정도가 아니었을까 싶다.

 

 

 

20. 이 바위의 이름은 어느새 잊어버렸다.

 

 

 

21. 여기는 시루떡바위

 

 

 

22. 이건 주전자바위

 

 

시루떡바위와 주전자바위가 지니고 있는 전설은 바다를 무대로 사는 사람들의 정서가 그대로 묻어 있다. 옛날에 용왕이 바다의 질서를 관장하는 사해의 충신들을 불러모아 그 공로를 치하하였다. 인간 세계를 널리 이롭게 한 그들을 위하여 용왕이 준비한 떡이 굳어서 시루떡 바위가 되었으며 그때 술을 따르던 주전자가 남아 주전자바위가 되었다고 한다. 이 전설은 용왕의 실체를 믿고 의지하던 뱃사람들의 마음이 담겨 있다.

 - 고동률, 『홍도와 흑산도』 중에서

 

 

23. 여기가 물개바위였나 자세히 기억이 안 난다.

 

 

 

24. 용소바위를 지나는 중

 

 

 

25. 색시가 마치 토라진 모습으로 돌아선 형상을 한 바위

 

 

 

26. 제19경인 거북바위. 거북이 흡사 바다에서 육지로 기어 올라가는 형상을 하고 있다.

 

 

 

27. 거시기(?) 바위. 유람선을 동굴 입구까지 바싹 들이대니, 카프리 섬의 '푸른 동굴' 분위기도 조금 느껴졌다.

 

 

 

28. 입구에서 보면 동굴이 두 개로 보이지만 안쪽으로 들어가면 서로 통해 있다고 한다.

 

 

 

29. 독립문 바위가 있는 곳으로 이동중

 

 

 

30. 서울의 독립문과 모양이 흡사한 독립문바위. 해질 무렵이라 사진에 제대로 담을 수가 없어 많이 아쉬웠다.

 

 

 

31. 홍도의 맨 북쪽 끝을 돌고 있다. 멀리 산 중턱에 하얀 등대가 보인다.

 

 

 

32. 시계 방향으로 따지면 12시 바늘을 지나 3시 바늘쯤을 통과하고 있는 듯. 망망대해에 배 한 척이 외롭게 떠 있다.

 

 

 

33. 석양에 붉게 물든 홍도의 모습을 기대했건만 오늘은 날씨가 너무 맑다.

 

 

 

34. 식당마다 사람으로 가득 차 있어 우리 일행은 하는 수 없이 이곳에서 저녁을 먹었다. 분위기는 썩 좋았다.

      메뉴는 전복, 해삼, 낙지, 문어, 소라 등등. 식사 메뉴가 따로 없어 홍합을 넣어 끓인 라면을 주문해서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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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4-11-21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중 하나를 제 맘대로 제 컴퓨터 바탕화면으로 모셔갔어요.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이라서요.

oren 2014-11-22 12:05   좋아요 0 | URL
어떤 사진이 hnine 님의 컴퓨터 바탕화면에까지 모셔지는 영광을 누렸을까 정말 궁금하네요. 그리고, 사진만으로도 가슴이 시원하게 뚫리는 느낌이 드셨다니, 우리 일행이 저기 홍도 앞바다의 포근하면서도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아, 좋다. 아, 좋다˝를 연신 쏟아내던 바로 그 느낌들이 조금이나마 전달된 듯싶어 저도 기쁘네요.

신안군 2017-02-07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저희는 신안군에서 진행하는 홍도 홈페이지를 제작하는 업체입니다. 상업적인 목적이 아니라 홍도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위해 작가님께서 찍으신 사진을 보고 ˝딱 이사진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신안군청에게 사진 사용권을 허가해주십사 해서 연락드렸습니다. 제 전화번호는 010-7319-8338입니다. 꼭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oren 2017-02-07 11:04   좋아요 0 | URL
제가 찍었던 보잘것 없는 사진들이 ‘홍도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위해‘ 쓰여진다면 저로서도 큰 영광입니다. 블로그에 올리기 위해 사진 사이즈를 일부러 많이 축소해서 올렸는데, 혹시 그대로 사용하시는데 불편한 점이 있으시면 ‘원본 파일‘을 찾아서 이메일 등을 통해 보내드릴 수도 있으니 연락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