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의 역사
알베르토 망구엘 지음, 정명진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알렉산드리아는 책벌레 도시가 될 운명을 타고났다

 

만약 알렉산드리아를 건설한 인물의 취향이 그대로 반영되었다면 알렉산드리아는 책벌레 도시가 될 운명을 타고났다. 알렉산더의 아버지인 필립포스 왕은 아리스토텔레스를 아들의 개인 교사로 고용했다. 그래서 알렉산더 왕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가르침을 받고 '배움과 읽기라면 종류를 불문하고 사랑하는 사람'으로 자라났다. 얼마나 지독한 독서광이었는지 손에서 책을 놓을 때가 거의 없었다. 한번은 북부 아시아 지역을 여행하다가 읽을 만한 책이 바닥나자 자신의 지휘관 한 명에게 책 몇 권을 보내 달라고 명령하기까지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알렉산더는 필리스투스의 『역사』와 에우리피데스, 소포클레스, 아이스킬로스의 희곡 몇 권, 텔레스테스와 필록세누스의 시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271∼272쪽)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중요성

 

종국적으로 이런 공간은 전해진 대로 그 도서관이 50만 정도의 두루마리를 보관할 때까지 계속 확장되었다. 그리고도 나머지 4만여개의 두루마리는 라코티스의 유서 깊은 이집트 지역에 세워진 세라피스 사원에 딸린 다른 건물에 보관되었다. 인쇄술이 발명되기 이전에 기독교 서구 사회에서 소장 도서가 2천 권을 넘었던 도서관이 아비뇽의 교황청 도서관 한 곳뿐이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중요성은 자명해진다.(273쪽)

 

 

말하자면 이 세상의 모든 기억을 모았던 것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책을 수집하는 일은 '기록에 꼭 필요한' 것으로, 학자라면 당연히 해야 할 임무의 일부분이었다. 그의 제자 알렉산더 대왕이 세운 알렉산드리아의 도서관도 단지 이런 뜻을 더욱 확대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말하자면 이 세상의 모든 기억을 모았던 것이다. 스트라본에 따르면, 아리스토텔레스가 수집한 책들은 테오프라스토스에게로, 또다시 그것은 그의 친척이자 학생이었던 넬레우스에게로,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소장할 목적으로 프톨레마이오스 2세에게로 넘어갔다. 프톨레마이오스 3세 통치 때까지 어느 누구도 전체 도서를 모조리 읽었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273쪽)

 

 

학자들이 몇 세기에 걸쳐 연구한 끝에야

 

왕의 칙령으로, 알렉산드리아에 정박하는 모든 선박들은 싣고 있던 책을 무조건 내놓아야만 했다. 그렇게 내놓은 책들은 복사를 한 뒤, 원본은 원래의 주인에게 돌려주고 복사본은 도서관에 보관했다(간혹 복사본을 돌려주고 원본을 도서관에서 소장할 때도 있었다). 당시 위대한 그리스 극작가들의 유명한 책들은 배우들이 베껴서 연구할 수 있도록 아테네에 소장되었는데, 이런 책들도 프톨레마이오스 왕들의 대사관에서 빌려 매우 조심스럽게 복사되었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으로 들어오는 책들이 모두 진짜였던 것은 아니다. 프톨레마이오스 왕들이 고전을 열정적으로 수집한다는 사실을 이용해서 위조범들이 왕들에게 가짜 아리스토텔레스 논문을 팔았는데, 그 논문들은 학자들이 몇 세기에 걸쳐 연구한 끝에야 가짜로 판명되었다.(273∼274쪽)

 

 

그렇다고 지금 당장 그대가 학자가 되었다는 뜻인가?

 

지식의 단순한 축적은 지식이 아니다. 몇 세기 후 갈리아의 시인인 데시무스 마그누스 아우소니우스는 자신의 『소품집』에서 지식의 축적과 진정한 지식을 혼돈하는 것을 조롱했다.

 

당신은 책을 사서 서가를 채웠소,

오, 시신(詩神)을 사랑하는 사람이여.

그렇다고 지금 당장 그대가 학자가 되었다는 뜻인가?

지금 그대가 플렉트럼과 하프를 산다고 해서 내일 음악 분야가 그대의 것이 되겠소?

 

(274쪽)

 

 

사서의 탄생

 

사람들이 그처럼 엄청난 양의 책을 쉽게 이용하도록 돕기 위해서는 어떤 요령이 필요했다. 어떤 독서가라도 관심 가는 분야의 특정한 책을 손쉽게 찾아낼 수 있는 방법 말이다. 의심할 것도 없이 아리스토텔레스에게도 자기 서재에서 필요한 것을 골라낼 수 있는 그만의 은밀한 요령이 있었을 것이다(불행하게도 그 요령이 어떤 것이었는지 우리로서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꽂힌 책들은 그 숫자가 엄청났기 때문에 어쩌다 운이 좋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독서가 일개인이 특정 제목을 발견하기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해결책은-나중에는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하지만-풍자 시인이자 학자였던 키레네의 칼리마코스에 의해 사서라는 새로운 형태로 나타났다.(274∼275쪽)

 

 

아리스토텔레스와 베르길리우스 같은 작가의 경우

 

알렉산드리아 도서관과 그 분류 목록은 처음에는 로마 황제의 도서관들, 그 뒤로는 동로마제국에 이어 전체 기독교 유럽 도서관들의 모델이 되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387년에 개종한 직후 아직도 신플라톤주의의 영향하에 있던 시기에 쓴 『기독교 교의에 대하여』에서 그리스 로마의 고전 중 일부는 기독교의 가르침과 양립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 이유는 아리스토텔레스와 베르길리우스 같은 작가의 경우(플로티노스가 '영혼'이라고 불렀고, 예수 그리스도가 '말씀' 혹은 '로고스'라고 불렀던) 그 '진실을 소유했기 때문'이었다.(278쪽)

 

 

4백 마리나 되는 낙타들에게 알파벳 순서로 걷도록

 

간혹 알파벳이 책을 찾아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예컨대 10세기 페르시아의 수상이었던 압둘 카셈 이스마엘은 여행을 할 때도 11만 7천 권에 달하는 책들과 헤어지기 싫어서 4백 마리나 되는 낙타들에게 알파벳 순서로 걷도록 특별 훈련을 시켜서 책을 몽땅 싣게 했다고 한다.(279쪽)

 

 

그 사람은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였다.

 

1251년부터 파리 대학에서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물을 공식 교과 과정에 포함시켰다. 알렉산드리아의 사서들이 그랬던 것처럼 유럽의 사서들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물을 발굴하느라 혈안이었다. 유럽의 사서들은 아베로에스와 아비센나 같은 회교도 학자들, 그리고 동과 서의 아리스토텔레스 지지자들이 지나칠 정도로 꼼꼼하게 편집 해설해 놓은 책을 통해 아리스토텔레스를 발견했다.

 

아랍인들의 아리스토텔레스 수용은 꿈에서 비롯된다. 9세기 어느 날 밤, 거의 전설적인 하룬 알 라시드의 아들이었던 알 마문 칼리프는 꿈 속에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었다. 칼리프에게 질문을 던진 사람은 넓은 이마에 눈이 푸르고 얼굴이 창백한 남자였으며 미간을 찌푸린 채 제왕 같은 풍채로 왕좌에 앉아 있었다. (우리 모두가 꿈속에서 그런 경험을 하듯 칼리프가 확실히 알아봤던) 그 사람은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였다. 그들 사이에 오고간 은밀한 대화로 인해 영감을 받은 칼리프는 그날 밤 이후로 바그다드 아카데미의 학자들에게 그 그리스 철학자의 저작물을 번역하는 일에 모든 정성을 쏟도록 명령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 및 다른 그리스 고전을 수집했던 도시는 바그다드만이 아니었다. 카이로에서도 1175년 수니파의 숙청이 있기 전 파티미드 도서관에 이런 책들이 110만 권 이상이나 주제별로 분류되어 있었다(십자군들은 질투심 섞인 허풍을 떨면서 이교도들의 요새에는 3백만 권 이상의 책이 있었다고 보고했다). ······

 

로저 베이컨은 13세기 초반에 쓴 어느 글에서 아랍어의 중역을 바탕으로 한 분류 시스템을 혹평하면서 이슬람의 가르침이 아리스토텔레스의 텍스트를 오염시켰다고 주장했다. 실험적인 과학자로 파리에서 수학과 천문학과 연금술을 연구했던 베이컨은 화약 제조술(그 다음 세기까지는 총에 사용되지 않았다)을 소상하게 묘사한 최초의 유럽인이었으며, 일찍부터 태양에너지를 잘 이용한다면 언젠가는 노 없는 보트, 말 없는 마차, 날 수 있는 기계까지도 나오게 되리라고 예견한 인물이었다. 그는 알베르투스 마그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 같은 학자들이 그리스어에 무지하면서도 아리스토텔레스를 읽는 척한다고 비난했으며, 그 자신도 아랍권의 해설자들로부터 '무언가'를 얻을 수도 있음을 시인하면서도 (예를 들어 그는 아비센나를 높이 인정했으며 우리가 알다시피 알하이삼의 작품을 열렬히 연구했다) 독서가들이 자신의 의견을 내놓을 때는 원전을 근거로 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생각했다. (282∼284쪽)

 

 

이 우아한 희망으로 인해 나의 고독함도 희망을 얻도다

 

도서관처럼 인위적인 분류들로 나누어진 공간은 그 안에 들어 있는 모든 것이 그 나름의 위치를 차지하고 또 그 위치에 의해 정의되는 하나의 논리적인 우주를 암시한다. 어느 탁월한 작품에서 보르헤스는 하나의 도서관을 우주만큼이나 드넓은 공간으로 상상하며 베이컨의 추론을 정점으로 끌어올렸다. 이 도서관(실제로는 보르헤스가 눈먼 관장으로 일했던, 카예 메히코에 있는 낡은 부에노스아이레스 국립 도서관을 무한한 공간으로 상상한 것임)에서는 똑같은 책은 한 권도 없다. 이 도서관의 서가는 모든 가능한 알파벳 조합을 수용할 수 있어 해독 불가능한 횡설수설까지도 다 진열할 수 있기 때문에 실존하는 책만이 아니라 상상  속의 책까지도 모두 담을 수 있다. "미래 역사의 자세한 사항까지, 대천사의 자서전, 도서관의 충실한 카탈로그, 수십만 개의 가짜 카탈로그, 이런 카탈로그의 허위성 입증, 진짜 카탈로그의 허위성 입증, 바실리데스의 그노시스파의 복음, 그 복음에 대한 해설, 그 복음에 대한 해설에 대한 해설, 당신의 죽음에 대한 진정한 설명, 모든 책을 모든 언어로 번역한 책, 다른 책 속에 인용되고 있는 어느 책의 구절, 영국의 수도사 비드가 영국의 신화에 대해 썼을 수도 있는 (결코 쓰지는 않았지만) 논문, 잃어버린 타키투스의 책들." 결국 보르헤스의 작품 속 내레이터(그 또한 사서임)는 자신의 심신을 지치게 만드는 복도를 이리저리 방황하면서 그 도서관도 결국 도서관이라는 또 다른 압도적인 분류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을 뿐 아니라, 책들을 거의 무한정 수집하는 일은 말 그대로 영겁의 세월을 두고 정기적으로 되풀이된다고 상상한다. 이 주인공은 "이 우아한 희망으로 인해 나의 고독함도 희망을 얻도다" 라고 결론을 짓는다.(286∼287쪽)

 

 

책 읽기는 그렇지 않을 뿐 아니라 또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는 '픽션'으로 분류되면 유머가 넘치는 모험 소설이 되고, 사회학 밑으로 들어가면 18세기 영국의 풍자 연구서가 된다. 또 어린이 문학 쪽으로 분류하면 난쟁이와 거인, 그리고 말을 하는 말(馬)이 등장하는 아주 재미있는 우화가 되고, 환타지로 분류하면 과학 소설의 선구적 작품이 되고, 여행서로 나누면 상상 속의 여행이 되며, 고전으로 분류하면 서구 문학 전범의 한 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카테고리는 배타적이지만 책 읽기는 그렇지 않을 뿐 아니라 또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 어떤 분류 체계를 선택하든 도서관은 예외 없이 책 읽기 행위를 지배하게 되며 그리하여 독서가들-호기심 많은 독서가, 예리한 독서가-로 하여금 각 범주의 울타리에서 책을 구출해 내도록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2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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