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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탄생 (양장)
윌리엄 번스타인 지음, 김현구 옮김 / 시아출판사 / 200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잘 살아 볼 시간을 천연시키는 일은 강을 건너려고 물이 다 흘러가 버리기를 기다리는 촌 사람 격이니라. 그 동안 강물은 흐르며 영원히 흘러갈 것이다.
- 호라티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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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세계의 발전에 관한 종합적인 그림을 좀 살펴볼 수 없을까? 이 책은 이같은 물음에 대해 정말 놀랍도록 많은 그림들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번스타인 박사는 미국내 투자 분야의 손꼽히는 전문가다. 또한 그는 금융전문지『모닝스타』의 객원 애널리스트로도 활동하고 있다. 저자의 이런 독특한 배경은 경제사라는 다소 어렵고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무척 쉽게 읽을 수 있게 만드는 바탕이 되고 있다.
600쪽에 가까운 두툼한 분량과 책의 뒷부분에 딸린 수많은 참고문헌들을 두루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학술서와 비슷한 책에서 마주칠까봐 걱정스러운 지루함 혹은 부담감(다소 어렵게 느껴질지 모르는 학구적인 논증과 주장들을 애써 따라가야만 할 것 같은) 등을 느낄 겨를이 별로 없다. 왜냐하면 이 책은 기본적으로 부의 급작스러운 변화에 촛점을 맞추고 있기도 하지만, 저자의 이야기 전개 자체가 폭넓은 시공간을 무대삼아 종횡무진으로 워낙 속도감있게 펼쳐지기 때문이다.
이 책은 경제 뿐만 아니라 역사, 지리, 정치, 군사, 과학 등 인류 문명의 거의 전부분을 다루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읽다보면 인류 역사를 장식해온 온갖 흥미로운 사건이나 인물들과 끊임없이 마주치게 된다. 그래서 저자의 이야기를 조금만 따라가보면 어느새 저자가 이끄는 흥미진진한 역사 탐험단의 일원으로 나선 듯한 묘한 즐거움도 느껴진다. 좀 더 과장해서 말한다면 타임머신을 타고 세계 곳곳을 두루 한바탕 신나게 휘젓고 다니면서 '부의 흐름'들을 살펴볼 수 있는 신명나는 탐험기라고 해도 좋을 정도이다.
이 책의 저자가 '부(富)의 흐름'을 살펴보기 위해 주된 분석 틀로 삼은 것은 4가지 요소이다. 즉 재산권, 과학적 합리주의, 자본시장, 빠르고 효율적인 통신과 수송이 그것이다. 저자는 이 4가지 요소를 국가의 부를 창출하는 필수적인 요소라고 주장한다.
이 책의 제1부에서 저자는 번영에 꼭 필요한 이들 네 가지 요인들에 대해서 설득력 있는 새로운 자료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인류의 진보 속도가 1820년경까지는 거의 제로였다는 점, 구텐베르크와 베이컨 이전 시대의 기술 진보가 얼마만큼 더뎠던가 하는 점 등은 인간의 삶이 홉스가 말한 '고독하고 가난하며 불결하고 야만적이며 부족한' 자연 상태로부터 벗어나기가 얼마만큼 어려웠던가를 절감하게 한다.
종이, 인쇄술, 화약을 발명한 중국인들 못지 않게 영이라는 개념을 최초로 창조해낸 인도의 수학자들 얘기도 중요하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오, 뉴턴 및 핼리를 거쳐오면서 실제 모습의 우주에 다가서는 '과학적 합리주의'가 얼마만큼 넓은 영역에 걸쳐서 인류의 번영을 촉진시켜 왔는가 하는 점은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다.
저자는 여러 과학적 발견보다 훨씬 더 역사가 오래된 재산권의 흔적에 대해서도 깊숙히 파고든다. 로마의 치명적 결함이 어디에 있었는지, 인류생태학자 가렛 하딩의「공유지의 비극」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으로서의 '재산권의 마련'이 얼마만큼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해서도 실감나게 설명한다. 왜 북한은 99%의 문자 해독률과 더불어 정말 부지런히 일하는 사회이지만 일인당 GDP가 900달러에 지나지 않는지에 대해서도 친절한 설명을 덧붙여 놓았다. "사실 재산권은 그 어느 때보다 오늘날 더욱 중요하다. 현대 세계에서 안전한 재산권은 부국과 빈국, 번영을 두고 벌이는 경쟁의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모든 것이다."
"'인민'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재산의 수용과 강제 매각은 아무리 의도가 좋다고 하더라도 가난에 속박된 주민을 구해내는 데 필요한 제도 자체를 좀먹을 뿐"이라고 말하는 저자의 주장은 요즈음의 여러 경제정책들과 관련해서도 음미해볼 만한 내용들이라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번영을 불러오는 마지막 요소는 수송과 통신의 발달이다. 동력과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이용할 줄 아는 지혜가 정보의 전파 속도를 눈부시게 향상시킴에 따라 부가 뒤따랐음은 너무나 당연해 보인다. 오늘날 정보 통신 시대의 엄청난 발달이 초래하고 있는 놀라운 번영 속도에 대해서 저자는 '댐이 터지는' 것처럼 멈출 수 없는 급류가 계속 되리라고 비유적으로 말한다.
이 책의 제2부에서는 부자 나라와 가난한 나라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가장 먼저 부를 창출한 국가인 네덜란드와 잉글랜드, 두 번째로 부를 창출한 국가인 프랑스, 스페인, 일본, 마지막으로 뒤처진 국가들인 이슬람 세계와 라틴아메리카에 대해 두루 살펴볼 수 있는 내용들이 무척 많다.
금고와 장롱 속에 묻혀진 돈의 의미가 무엇인지, '땅에서 일하기'라는 한 가지 직업이 오늘날 1만 2,740개의 직업으로 나눠지게 된 '분업'(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중요하게 다룬)의 진화, 스페인과 로마제국의 쇠퇴기 동안 일어난 일들이 얼마나 유사했던가에 관한 내용들, 이슬람 세계의 미래가 여전히 많은 의문점들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들은 이 책 속에서도 여전히 흥미롭게 다뤄지는 이야기들이다.
이 책의 제3부에서 다루는 내용은 좀 더 놀라운 이야기들이 많다. 부유해지면 행복할까, 국가의 번영과 개인의 행복은 어떤 관계인가, 만인의 소득 증가가 만인의 행복을 보장하는가, 소득 불평등은 어디까지 용인될 수 있을까 등등에 대한 이야기가 상당히 설득력있는 근거들과 함께 담겨 있다. 오랫동안 경제학자들은 사람들이 부를 소득의 비례적 증가에 따라 '로그함수적으로' 인지한다고 가정해 왔는데, 이것은 인간이 실제로 경제학자들의 예측대로 행위하는 드문 예들 중의 하나로 증명된 사례라고도 한다.
헨리 루이스 멩켄이 좀더 통렬하게 지적했듯이, 부자란 그의 동서(아내의 여동생의 남편)보다 더 많이 버는 사람을 가리킨다는 말은 무척 현실적이다. 경제사가 찰스 킨들버거는 "친구가 부자가 되는 것만큼 한 사람의 복지와 판단에 혼란을 주는 것도 없다."고 표현했다. 인간 본성의 기반을 이루는 것 중의 하나인 이 '이웃 효과'(neighbor effect)는 다른 많은 분야에도 적용될 만큼 보편적인 경향이 있음도 사실이다.
국가의 장기적인 번영과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늘 중요하다. 이와 관련하여 번스타인이 이 책에서 던지는 중요한 메시지 중의 하나는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애덤 스미스가 번영의 필수 조건으로서 '평화, 가벼운 세금, 적절한 사법행정'을 최초로 확인한 이후 250년 동안 경제학자들은 그의 간단한 처방전을 세련화시켜왔다. ...... 안전한 재산권과 법치로부터 생겨나는 번영은 민주적 발전을 촉진한다. 부가 민주주의를 낳는 것이지, 그 역은 아니다. 바로 그 번영이 역시 군사적, 지정학적 힘을 낳는다. 개략적으로 말해, 법치와 재산권을 가치있게 생각하는 국가는 민주주의와 힘을 동시에 확보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이 책은 폴 케네디의 강대국의 흥망,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말 등에서 인용한 부분이 여러 곳 있다. 저자가 이 책에서 즐겨 인용한 이들 책은 물론이거니와 저자의 이 책까지 포함시켜 봤을 때 두드러진 특징 두 가지가 무척이나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중 한 가지는 이 책들은 본질적으로 딱딱한 학술서가 아니라는 점이고, 나머지 한 가지는 책을 쓴 저자들의 박학다식함과 경탄할 만한 이야기 솜씨이다.
최근에 이와 비슷한 주제를 다룬 책 가운데 찰스 P. 킨들버거의 경제 강대국 흥망사 1500-1990라는 책을 접할 수 있었다. 비슷한 주제를 다룬 두 권의 책을 연이어 읽어보는 것도 여러모로 대비되는 점들이 눈에 띄어서 흥미로웠다. 킨들버거의 책이 경제사 분야의 대가 다운 깊이와 꼼꼼하기 그지없는 자료들이 돋보이는 반면, 번스타인의 책은 그에 반해 다양한 부문을 두루 아우르는 넓이와 대중적인 접근성 측면에서는 좀 더 돋보이는 책이라는 생각도 든다.
킨들버거의 책이 상당히 어렵고 빡빡한 내용이지만 대단히 풍부한 내용들을 담고 있어서 아주 훌륭한 경제학 교과서라고 부를 수 있다면, 번스타인의 책은 쉽고 흥미롭게 접근할 수 있는 실용적인 교양서에 가깝다고도 할 수 있다. 번스타인의 이 책에서 굳이 아쉬운 점을 얘기하자면, 경제적 번영이나 부의 축적에 수반되는 경제적 감속과 부의 쇠퇴 등에 대한 접근을 거의 배제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역사가 증명해온 사실 대로 모든 위대한 국가들의 최종적인 운명은 쇠퇴와 몰락이었다. 번영과 부, 몰락과 쇠퇴, 위험의 추구와 회피, 검약과 과시소비, 기업가적 동력과 혁신 능력의 약화 등등 여러 다양한 주제들을 우리나라의 현실과 함께 생각해 보면 마음이 편치 못한 점들도 적지 않다. 인구학적인 "부양력과 회복력"의 상실이 우려될 만큼 출산율이 급격하게 저하되고 고령화가 유난히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점은 걱정스럽다.
"생명력과 에너지를 가진 젊은 국가들은 오래된 독점권에 도전하지만, 늙은 국가들은 이러한 도전에 혁신적으로 대응할 능력이 없다"는 킨들버거의 주장과 우리나라의 인구 구조학적 고령화 현상과는 별 관계가 없기를 희망해 본다. 베이컨이 말했듯이 "인간에게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도 관련성을 찾아내고 음모를 추측하는 본성을 지닌, 패턴을 추구하는 영장류"라고 하지만, 이것 또한 인간 본성의 결함 가운데 하나일 뿐이니까 말이다.
끝으로 국가의 번영과 부에 관해 놀랍도록 재미있는 얘기들을 담고 있는 번스타인의 이 책에 대해 덧붙일만한 게 한 가지 더 있다면 신문 지상에 실렸던 아래의 두 줄 정도가 아닐까 싶다.
봐야할 사람 : 1순위 현직 대통령, 2순위 차기대권 노리는 정치인...
보면 짜증날수도 : '부의 탄생'이라면서 내 돈 만드는 법은 한마디도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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