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뭉치를 이리저리 뒤지다가 오래 전에 썼던 글들을 새삼 읽게 된다. 그런 글들을 읽으면 부끄러움이 앞선다. 그렇지만 참으로 많은 분들께서 내가 오래 전에 썼던 글까지 찾아오셔서 추천을(얼마 전부턴 공감을) 꾹꾹 눌러 주셨고, 거기에 더해 정말 많은 분들이 열정적으로 수많은 댓글을 달아 주셨다는 사실도 다시금 알게 되었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건 분명 아니다. 오래 전부터 익숙하게 반복되어온 패턴이지만 추천 한 방, 댓글 하나 달리지 않았던 글들도 무수히 많았고, 그런 시간도 꽤나 오래였지만 그게 그리 서운한 일만도 아니었다. 예나 지금이나 그 생각이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많은 분들의 훌륭한 글들이 지금도 여전히 어디선가 조용히 싹이 트기를 기다리고 있다. 혹은 이미 활짝 꽃이 피어 향기조차 그윽한데 아무도 그 향기를 맡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남들이 가지 않는 뒤안길에 꽃길이 있다’라는 격언이 알라딘에서는 전혀 통하지 않는 얘기라고 누가 자신있게 단정할 수 있단 말인가.)

보잘것없는 제 글에 과분한 성원을 보내주신 모든 분들께 재삼 고맙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다. 내가 여기에 슬쩍 덧붙이고 싶은 말들은 내게 붙은 습관대로 진작에 다른 분께 맡기기로 했다. 그분은 지금 당장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을 대신 해줄 뿐만 아니라 내가 언젠가 미래에 하고 싶어하는 말까지도 대신 해준다. 그분은 참 성격이 좋으시다. 내 필요에 의해 숱하게 끌려 나왔으면서도 여전히 불평 한마디 없으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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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홈통

웅변이 자유롭고 유쾌하게 굴러가지 않으면 쓸모 있는 말을 하지 못한다. 어떤 작품들은 애써서 지은 품이 박혀 있어 어딘가 투박하고 무뚝뚝한 맛이 있기 때문에, 거기서 등불과 기름 냄새가 난다고 말한다. 그러나 어떤 것은 잘 지어 보려고 애를 쓰며 자기 일에 너무 긴장하고 억눌린 마음 때문에 자연스러운 웅변을 억누르고 꺽어 빽빽하게 만들고, 마치 풍부한 물이 억지로 맹렬하게 밀려 나가다가 좁은 홈통에서 빠져나갈 구멍을 찾지 못하는 것과 같은 격이 된다.(48쪽)



 

이책, 저책, 내 마음에 드는 문장을 도둑질해 다니며

우리는 기억력을 채울 생각만 하고, 이해력과 양심은 빈 채로 둔다. 마치 새들이 모이를 찾으러 나가서 그 모이를 새끼에게 먹이려고 맛보지 않고 입에 물어 오는 것과 똑같이, 우리 학자님들은 여러 책에서 학문을 쪼아다가 입술 끝에만 얹어 주고, 뱉어서 바람에 날려 보내는 짓밖에는 하지 않는다.

이 어리석은 수작이 얼마나 내 경우에 들어맞는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내가 여기 글을 쓰는 것도 똑같은 수작이 아닐까? 나는 이책 저책, 내 마음에 드는 문장을 도둑질해 다니며, 그것을 담아 둘 곳도 없어서, 내게 저장해 두지 못하고 여기다 옮겨놓는 것이다. 사실 이 문장들은 전에 있던 자리에서나 마찬가지로 여기에서도 내 것이 아니다. 우리는 현재의 지식으로만 배우는 것이고, 과거의 것은 미래의 것과 똑같이 지식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151쪽)

 


앵무새도 이만큼은 할 것

우리는 '키케로는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플라톤의 도덕이다. 이것이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다'라는 식으로 말할 줄 안다. 그러나 우리 자신으로는 뭐라고 말하나? 우리는 어떻게 판단하는가? 우리는 무엇을 하는 것인가? 앵무새도 이만큼은 할 것이다.(152쪽)



 

지식은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과 지식을 받아 담는다. 그것뿐이다. 지식은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불이 필요해서 이웃집에 불을 얻으러 가서는, 거기서 따뜻하게 피어오르는 불을 보고 멈춰서 쬐다가 얻어 온다는 것을 잊어버리는 자와 같다. 배 속에 음식을 잔뜩 채워 보았자, 그것이 소화가 안 되고 우리 속에서 변화되지 않으면, 또 우리들을 더 키워 주고 힘을 주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학식이 많아서 경험이 없이도 그렇게 위대한 장수가 되었던 루쿨루스는 우리들의 방식으로 지식을 섭취했다고 생각하는가?

우리는 너무 심하게 남의 팔에 매달려 다니다가 결국 우리 자신의 힘마저 없애고 만다. 내가 죽음의 공포에 대비할 생각을 가지면? 나는 겨우 세네카의 사상에서 꺼내올 뿐이다. 내가 자신이나 또는 남을 위해서 위안의 말을 찾아보고 싶으면? 나는 그 말을 키케로에게서 빌려온다. 사람들이 나를 그 지식으로 단련시켜 주었던들, 나는 그것을 자신에게서 찾아 가졌을 것이다.(152∼153쪽)

 


나는 살아가는 데 쓸모없는 보배에는 결코 영수증을 떼어 주지 않습니다.

내가 사람들과의 교섭을 포기하려는 이 시간에, 새로 나를 추천해서 그들 앞에 내놓는다는 것은 어리석은 심정일 것입니다. 나는 살아가는 데 쓸모없는 보배에는 결코 영수증을 떼어 주지 않습니다. 내가 어떠한 자이건, 나는 종잇장으로 된 일보다는 다른 일로 받고 싶습니다. 내 기술과 기교는 나 자신을 더 가치 있게 하는 데에 사용되었습니다. 내 공부는 행할 줄 알기 위한 것이지, 글 쓰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나는 내 인생을 만드는 데 온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이것이 내 직분이고 내 사업입니다. 나는 다른 일꾼은 되어도 책 만드는 일꾼은 아닙니다. 나는 현재의 본질적인 편익에 소용되기 위해서 능력을 바란 것이지, 내 후계자들에게 저축과 예비 재산을 쌓아 주려고 한 것은 아닙니다.

어떠한 장점을 가진 자는 그것을 자기 행동 습관에, 여느 때의 말과 행동에, 사랑하거나 싸우는 행동에, 놀음에, 잠자리에, 식탁에, 자기 일처리에, 자기 집 세간살이에 드러낼 것입니다. 내가 보는 바 추레한 잠방이를 만들어 입고 좋은 책을 지어 내는 자들은, 내 말을 믿었더라면 먼저 잠방이를 만들어 입었을 것입니다. 스파르타 인에게 훌륭한 군인보다 훌륭한 수사학자가 되고 싶은가를 물어 보십시오. 나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내게 밥을 차려 주는 자가 없다면 차라리 익숙한 요리사가 되겠습니다.

정말입니다! 부인, 글 쓰는 데는 유능한 인간이고, 다른 데서는 쓸모없는 바보 인간이라는 따위의 칭찬을 내가 얼마나 싫어하는지요. 나는 내 능력을 사용할 자리를 그렇게 못나게 골라잡았다기보다는 차라리 여기저기서 바보로 통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나는 이런 어리석은 수작으로 어떤 새로운 명예를 얻으려고 기대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862∼8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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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4-01-28 0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즐겁게 나눈 이야기들은 언제나 마음에 새록새록 남아서
두고두고 아름답게 흐르겠지요

oren 2014-01-28 11:18   좋아요 0 | URL
여기서 보낸 시간들도 즐거웠지만, 되돌아보니 '자연과 함께 했던 순간들'이 훨씬 더 소중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책을 읽을 시간들은 아직도 얼마든지 많이 남아 있는 듯하지만 '자연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시간들은 시시각각 줄어들고 있을지 모른다는 조바심이 들 때도 있거든요. 사실 책을 읽는 데 조바심을 느끼기란 저로서는 그리 흔한 일은 아닌 듯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