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로우의 문장을 읽다가 정말 뜻밖에도 어디선가 본 듯한 '구경꾼'을 만났다. 온 몸에 전율감이 느껴졌다.
* * *
연극이 끝나면 구경꾼도 떠난다
나는 나 자신이 인간이라는 존재, 달리 말하면 생각과 감정을 지닌 존재라는 걸 알고 있다. 또한 내게는 어떤 이중성이 있어, 타인에게만큼이나 나 자신에게서 초연할 수 있는 듯하다.20 내 경험이 아무리 치열하게 진행되더라도, 그 경험에 참여하지 않고 구경꾼 입장에서 그 경험을 기록하는 나의 일부가 내 안에 존재하는 걸 알고 있다. 엄격히 말하면, 그 일부는 나의 일부가 아니다. 당신도 아니고 나도 아니다. 삶이라는 연극은 비극일 가능성이 크다. 그 연극이 끝나면 구경꾼도 떠난다. 구경꾼의 입장에서 보면 삶이라는 연극은 일종의 허구, 즉 상상이 빚어낸 작품일 뿐이다.(195쪽)
- 『주석달린 월든』, 「고독」중에서
주석
20. 소로는 일기에서 이런 이중성에 대해 언급했다. "내가 일기 쓰는 것들에 대해 실제로는 거의 관심을 갖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깜짝 놀란다." 에머슨도「뉴잉글랜드의 삶과 문학에 대한 역사적인 기록」에서 "이 시기의 핵심은 정신이 정신 자체를 인지하게 됐다는 것인 듯했다"라고 말했다.
아무래도 지워 버릴 수 없고 모든 인간에게 공통된 '전율감(Grausen)'이 초래되는 것
무한한 과거나 무한한 미래에서도 고뇌에 가득 찬 끝없는 세계는 그에게는 미지고, 또한 옛날 이야기이기도 하다. 보잘것없는 그의 일신, 길이가 없는 그의 현재, 순간적인 그의 기쁨, 이것들만이 그에게는 현실성을 갖고 있으며, 그 이상의 인식으로 눈이 뜨이지 않는 한, 그는 이것들을 유지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다하는 것이다. 그때까지는 단지 의식의 가장 깊은 곳에 막연한 예감이 있어서, 이 모든 것들이 본래 자기와는 그다지 관계없는 것이 아니고, 개별화의 원리에 의해 차단할 수 없는 어떤 연관이 그 사이에 있다고 느끼고 있다. 이 예감에서, 아무래도 지워 버릴 수 없고 모든 인간(뿐만 아니라 아마 비교적 영리한 동물까지도)에게 공통된 '전율감(Grausen)'이 초래되는 것이다.(892쪽)
-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