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샤브루베시를 거쳐 다시 카트만두로


열흘 남짓 '히말라야의 산길'만 죽어라 오르내릴 줄 알았던 우리 일행에게 '포카라에서의 1박 2일'은 예정보다 사흘씩이나 일찍 찾아온 고된 산행 후의 달콤한 휴식이었을 뿐만 아니라 말 그대로 '뜻밖의 여정'이었다.

솔직히 나는 '포카라'에 도착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그곳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다. 단지 포카라는 안나푸르나 쪽으로 트레킹을 가기 위해 거쳐가는 도시라는 정도만 어렴풋이 귀동냥으로 알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막상 포카라에 도착하고 보니 그곳은 카트만두와는 너무나 다른 도시였고, 왠지 며칠이라도 좀 머물며 편안하게 쉬었다 가고 싶은 느낌을 주는 그런 곳이었다.

매연으로 답답했던 카트만두와 달리 포카라는 공기부터 온화하면서도 쾌적했다. 길거리도 그만하면 카트만두보다 훨씬 더 깨끗한 편이었으며 우리가 머무를 숙소에 도착하고보니 말로만 들었던 안나푸르나의 '마차푸차레'가 야트막한 산능선 너머에 거짓말처럼 우뚝 솟아 있었다. 우리가 랑탕의 설산을 보기 위해 카트만두에서 버스를 타고 '하루 온종일'을 달려갔던 걸 생각하면 '안나푸르나'는 포카라에서 너무나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이른 아침부터 포카라행 비행기를 타느라 서둘렀던 우리는 호텔에 도착한 후 곧바로 '아침식사'를 하기 위해 '산마루'를 찾았다.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고산병 때문에 입맛을 잃었던 데다가 현지식 메뉴판은 펼쳐보기 두려울 정도였던 우리 일행들은 김치찌게와 된장찌게가 마냥 반가웠고, '우리 고유의 음식'에 대한 한동안의 간절했던 욕구를 '산마루'에서 상당부분 누그러뜨릴 수 있었다.

모처럼 아침을 든든하게 채운 우리는 산책도 할겸 포카라의 페와 호수 주변을 따라 이어진 일명 '레이크사이드'를 이리저리 걸어 다녔다. 그리고 '패러글라이딩'을 즐기고 싶은 사람들은 목사님과 함께 비용이 가장 저럼한 곳을 찾아 '예약'을 해 놓기도 했다.

오후에는 버스를 타고 이동하여 포카라 시내에 있는 '국제산악박물관'을 두시간 가까이 관람했다. 박물관에서 보여주는 '영상물'은 몹시 빈약했지만, 나머지 전시물들은 하나하나 눈여겨 볼 만했다. 특히나 히말라야 등정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한국 산악계의 영웅들'을 그곳에서 직접 만났을 땐 가슴 뿌듯한 자긍심도 느꼈고, 안나푸르나에서 대원 2명과 함께 실종된 박영석 대장과 낭가파르밧에서 하산하는 길에 추락사한 고미영 대장을 마주 대할 땐 가슴이 미어지는 듯한 슬픔과 함께 잠시나마 숙연한 마음으로 고개를 숙여 고인들의 명복을 다시금 빌었다.

두시간에 가까운 박물관 관람을 마친 우리는 다시금 '산마루'로 되돌아와 늦은 점심 겸 이른 저녁을 먹었다. '산마루'는 아침 식사도 정말 맛있었지만 두번째로 들러 늦은 오후에 마시는 '막걸리'와 '감자전' 맛이 그만이었다. 우리 일행은 '감자가루'가 바닥이 나도록 '막걸리'와 '감자전'을 끝없이 주문해서 배가 터지도록 먹어치웠다. 그리고는 햇살이 누그러지는 초저녁에 다시금 헤와 호수 주변 골목길로 산책을 나갔다.
 
서너명씩 자유롭게 호수까지 걸어가 보트를 타기도 하고 커피숍에 들러 차도 마시고 또 맥주를 마시기도 하였다. 뿔뿔이 흩어져 다니던 우리 일행들은 밤길에도 불구하고 용케도 길거리에서 다시 합류한 뒤 '맥주와 튀김닭'을 사들고 호텔 앞뜰로 이동하여 '맥주파티'를 즐긴 다음에 잠자리에 들었다.

포카라는 원래 자유롭게 떠돌아 다니던 히피들이 자연스레 이곳에 모여들면서 만들어진 도시였다고 한다. 지금은 히피들이 다 떠나고 없다지만 우리 일행이 단지 하루밖에 머물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곳이 왜 수많은 여행객들이 그토록 오래 머물러 있기를 좋아하는 곳인지 금방이라도 알 것만 같았다.


 - 포카라로 가는 비행기에 탑승하기 위해 미니버스로 이동중.




 - 우리가 탈 비행기는 대략 46인승쯤 되는 듯.




 - 히말라야의 햇빛 덕분에 검게 그을린 장대장님.




 - 매연이 자욱한 카트만두 상공




 - 오른편 창가로는 '히말라야 산군'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 비행한 지 불과 30분 만에 착륙.




 - 가로수처럼 심어놓은 나무엔 보라색 꽃이 활짝 피어 있다.




 - 호텔 베란다에서 바라본 '마차푸차레'(6,997m), 네팔 사람들이 가장 신성시하며 등정이 금지된 미답봉.




 - 한국음식점 '산마루' 한켠에 내걸린 광고 플랭카드.



 

 - 페와 호수 주변, 일명 '레이크사이드'




 - 레이크사이드를 산책하는 공이사.




 - 그 뒤를 따르는 상준이.




 - 저만치 앞서가는 이대표와 상준이 아빠.




 - 30여 년 전 안암골에서 함께 공부했던 세 분의 동창생.



 - 힘든 일도 억척스레 해내는 네팔 여인들.




 - 포카라는 벌써 한여름 분위기.




 - 태극기가 보이는 거리.




 - 이곳이 바로 여행자들의 천국




 - 셰계 최초로 산악 그랜드슬램(히말라야 14좌, 3극점, 7대륙 최고봉 등정)을 달성한 박영석 대장.




 - 김재수, 엄홍길, 한왕용 대장, 세 사람 모두 14좌를 완등했다.




 - 세계 최단기간 14좌를 완등한 김창호 대장, 촐라체 사고로 두 손을 잃은 박정헌 대장.




 - 고미영 대장.
    2006년부터 히말라야 8000m급 고봉 등정에 나서 4년간 11좌를 등정하였으나,
    마지막으로 등정한 낭가파르밧에서 하산하던 중 '칼날능선'에서 실족하여 사망했다.



 - 박영석 대장,
   1989년 랑탕리룽(7,225m)에 최연소 원장대장으로 도전해 동계 세계최초 등반. 
   1991년에는 에베레스트 남서벽에 도전했으나 100m 추락후 이틀 동안 의식을 잃는 사고를 당함.
   2001년 K2 등정에 성공함으로써 한국인 최초 14좌 완등, 세계에서는 8번째 기록.
   2004년과 2005년 남극점과 북극점 정복에 성공하여 세계 최초의 '산악 그랜드 슬램' 달성.
   2011년 안나푸르나(8,091m) 남벽에 신루트 개척을 위해 나섰다가 강기석, 신동민 대원과 함께 실종.



 - 전설 속의 설인, 예티




 - 산악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나오는 길.




 - WHO LOST THEIR LIVES




 - 보트를 타러 헤와 호수로~


 - 놀러 나온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그물'을 치며 고기를 잡는 중.



 - 페와 호수에 드리운다는 '안나푸르나'는 찾을 길 없고 꽃잎만 떠다니고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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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9. 포카라의 '낮술'에 모두가 쓰러질 뻔.
    from Value Investing 2013-06-03 14:17 
    포카라에서 하룻밤을 보낸 우리는 이튿날 '사랑곳의 일출'을 보기 위해 새벽 4시 30분에 미니버스를 타고 호텔을 출발했다. 날씨만 좋았더라면 이곳에서 바라보는 '히말라야의 일출'은 그야말로 장관이겠다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우리가 갔을 땐 연무 때문에 시정이 좋지 않았다. 그래도 여명을 뚫고 빨간 해가 짠~ 하고 나타났을 땐 속에서 절로 탄성이 나올 만큼 아름다웠다.일출을 감상한 뒤 호텔로 되돌아와 아침을 먹고 나서 패러글라이딩을 예약한 일곱명은 다시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