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세가 좋지 않을 때는 독서를 하는 것도 방법이다. 홀로 존재할 수 있는 힘을 준다.
‘독립불구’(獨立不懼:홀로 있어도 두렵지 않음)하고 ‘둔세무민’(遁世無悶:세상과 떨어져도 근심이 없음)할 수 있는 힘은 바로 독서의 습관에서 나온다. 독서를 통하여 불운을 견딜 수 있었던 사람 가운데는 중세 피렌체 공화국의 서기관이었던 마키아벨리도 포함된다.
마흔셋의 나이에 반체제 사건에 연루되면서 잘 나가던 인생이 곤두박질친다. 직장에서 잘리고, 10년 봉급에 해당하는 액수의 벌금을 물었는가 하면, 감방생활을 거쳤다. 그는 피렌체에서 쫓겨나 시골의 허름한 산장에서 처자식과 함께 생계를 유지해야만 하였다.
낮에는 주막집에서 시골의 장돌뱅이들과 어울렸지만, 밤이 되면 흙으로 더러워진 평상복을 벗고 관복으로 갈아입은 다음, 책이 가득한 서재로 돌아가 독서에 몰입하곤 하였다.
시오노 나나미는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한길사)에서 그 대목을 이렇게 묘사하였다.
“예절을 갖춘 복장으로 몸을 정제한 다음, 옛 사람들이 있는 옛 궁전에 입궐하지… 그곳에서 나는 부끄럼 없이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의 행위에 대한 이유를 물어 보곤 하지. 그들도 인간다움을 그대로 드러내고 대답해 준다네. 그렇게 보내는 네 시간 동안 나는 전혀 지루함을 느끼지 않네. 모든 고뇌를 잊고, 가난도 두렵지 않게 되고, 죽음에 대한 공포도 느끼지 않게 되네.”
만약 마키아벨리가 독서하는 습관이 없었더라면 이 시절에 자살했을 가능성이 높다.
동양의 식자층들은 어땠는가. 중국 당나라의 관료들은 관청에서 퇴근하면 부인 자식들과 저녁식사를 하면서 잠깐 이야기를 나눈 후에 곧바로 서재로 들어가곤 하였다.
가장이 한번 서재로 들어가면 누구도 그 독서를 방해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정년 퇴직을 하면, ‘그 동안 읽지 못했던 책을 이제야 마음놓고 실컷 읽을 수 있겠구나!’ 하면서 더욱 독서에 몰입하였다고 한다.
이제 시대가 바뀌어 조기 퇴직이 대세이다. 항산(恒産)도 없는데, 항직(恒職)도 없으니, 항심(恒心)도 어려운 ‘삼난항’(三難恒)의 시대가 된 것이다. 삼난항의 시대에서 우울증에 걸리지 않으려면 책을 붙잡아야 한다.
[조선일보 2005-02-25 17:4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