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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템플턴, 월가의 신화에서 삶의 법칙으로
로버트 허만 지음, 박정태 옮김 / 굿모닝북스 / 2004년 12월
평점 :
품절
이것은 책이 아니다. 이 책을 만난 사람은 한 인간을 만난 것이다.
- 월트 휘트먼, 『풀잎(Leaves of Glass)』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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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존 템플턴의 전기이다. 그런데 템플턴 자신이 쓴 책이 아니라, 그의 위임을 받아 템플턴 재단에서 일하고 있는 로버트 허만 박사가 쓴 전기이기 때문에 템플턴이라는 인물을 훌륭하게 보이도록 저자가 한쪽으로 치우치게 쓰지나 않았는지 걱정되는 독자들도 있겠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그런 염려는 기우에 지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회고록이나 자서전과는 달리 존 템플턴이 지나온 삶을 연대기 형식으로 비교적 평이하게 서술한 책이어서, 삶에 대한 '겸허한 접근'을 강조해온 템플턴의 인품과도 많이 닮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존 템플턴 경에 관한 책들이 늘 그렇듯이 이 책 또한 그의 월스트리트에서의 신화적인 성공 스토리에 대해서는 오히려 소박하게 다뤄진 느낌이 많다. 그 대신 절제와 검소함이 체화된 그의 고매한 인격과 높은 수준의 도덕성 및 인류에 대한 깊은 박애정신 등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존경심을 느껴볼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은 1912년에 미국 테네시 주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존 템플턴이 현존하는 월스트리트 최고의 펀드매니저에 이르기까지의 과정들을 무덤덤하리만치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어서 전기를 대할 때 우러나는 감동은 다소 부족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존 템플턴이 시골에서 고등학교를 마칠때까지의 성장 과정만 예로 들더라도 결코 평범한 인물에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니다. 그는 고교를 졸업할 때까지 11년 동안 한 과목에서도 A 아래의 성적을 받지 않았고, 센트럴고등학교를 졸업할 때는 졸업생에게 수여한 다섯 개의 금메달 가운데 네 개를 받았으며, 그가 다니던 학교에서 최초로 예일대학교에 진학했다! 그렇지만 이 책에서는 템플턴 경이 어릴 때부터 습득한 훌륭한 삶의 자세와 덕목들에 대해서 훨씬 더 중요하게 다루고 있으며, 이런 점들은 템플턴의 삶의 자세와도 일견 닮아 있어서 공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존의 성장과정에서의 몇몇 일화들은 먼 훗날 존 템플턴이 세계적인 인물로 부상하는 데 큰 밑거름이 되었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그는 어린 나이에 이미 불굴의 인내와 자발적인 행동이라는 중요한 덕목을 이해했으며, 그의 아버지조차 아들의 의지력과 성공하려는 집념, 1분 1초까지 아껴쓰는 능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지금까지 84년(지금은 92세) 이상을 살아오는 동안 텔레비전을 84시간도 시청하지 않았다고 한다.
예일대학교에 다닐때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잡지 구독을 권유하는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는데, 너무나도 어려웠던 그 일을 기어코 성공해 내는 과정을 통해 그는 근면과 자신감이 얼마나 중요한 지와 인생에서 시련에 부딪쳤을 때 이를 헤쳐나갈 수 있는 '불굴의 인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된다.
예일대를 졸업한 후 로즈 장학생으로 옥스퍼드 대학교에 진학한 그는 투자자문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졸업 직후인 1936년에는 세계일주를 떠나 7개월간 35개국을 여행하기도 했다. 그 여행을 통해 얻은 다양한 경험이 후일 그가 세계적인 글로벌 투자가로 자리메김하는 데 커다란 밑거름이 되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세계일주 여행을 마친 뒤에 그는 월 스트리트에 있는 페너&빈의 신설된 투자자문 부서에 취직하게 된다. 결혼 초기부터 그는 자신의 소득 가운데 무조건 50%를 저축하기로 다짐했고, 철저하게 검약의 원칙을 지켰으며, 자동차와 집, 가구를 구할 때는 남편과 아내 중에 누가 더 "말도 안되는 가격"으로 살 수 있는 지 게임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가 200달러가 넘는 자동차를 처음으로 구입한 것은 그의 재산이 25만달러를 넘어선 다음이었다고 하며, 맨해튼에서 월세 아파트로 이사갈 때는 가장 많은 돈을 주고 산 가구가 5달러에 산 소파였는데 그 후 25년 동안이나 잘 썼다고 한다.
존 템플턴이 1939년에 세계대전 발발 가능성을 코앞에 두고도 주식을 매수한 일은 아마도 템플턴에 관한 일화 가운데 가장 유명한 얘기일 것이다. 그는 1달러 미만으로 거래되는 모든 종목을 100달러어치씩 매수했으며, 부도여부와 관계없이 총 104개 종목을 매수했다. 그가 투자한 원금 1만 달러는 평균 4년 정도 보유한 뒤에는 4만 달러 이상으로 불어나 있었다!
그 당시 그가 투자했던 최고의 주식은 주당 0.125달러에 100달러어치 총 800주를 매수한 철도회사 주식이었는데, 전쟁이 터진 뒤 주당 5달러까지 상승하자 모두 팔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 뒤 5년만에 이 주식은 무려 105달러까지 치솟았다고 한다. 100달러 어치를 사서 4,000달러에 판 주식이 그 뒤 5년만에 무려 84,000달러(840배 상승)까지 치솟았던 셈이다.
존 템플턴은 사실 미래에 대해 매우 낙관적이며 누구보다도 장래를 밝게 내다보는 인물이다. 그렇지만 그의 핵심적인 투자전략은 "비관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매수하는 원칙"을 고수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늘 이렇게 묻습니다. 어느 곳의 전망이 좋으냐고 말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질문입니다. 올바른 질문은 이렇게 해야 합니다. 어느 곳의 전망이 최악이냐고 말입니다"
그가 제정해 1973년부터 인류애와 종교적 성취가 뛰어난 인물을 선정해 시상하고 있는 템플턴상은 종교계의 노벨상에 비견된다. 지금까지 테레사 수녀와 빌리 그레이엄 목사, 한국의 한경직 목사 등이 템플턴상 수상자로 선정된 바 있다.
존 템플턴은 펀드 운영에서 공식 은퇴한 뒤 현재 템플턴 재단의 자선활동에 전념하고 있으며, 매년 4000만 달러 이상의 금액을 자선단체에 기부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은 사후에 전재산을 자선사업에 쓸 수 있도록 재단에 기증하기로 했으며, 자식들에게는 일체의 유산을 남겨주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후반부에는 존 템플턴이 직접 모은 "삶의 원칙" 200가지가 고스란히 소개되어 있는데, 그가 평생 동안 좌우명으로 삼고 있는 명언들도 두루 음미해 볼 수 있어서 좋다.
이 책에서 존 템플턴이 보여준 삶의 철학과 원칙은 일반적인 성공 원칙과 별로 다르지 않다. 일에 자신의 전부를 투자하고, 마지막 땀 한 방울을 더 흘리고, 시간을 제대로 활용하고, 꾸준히 더 나아지도록 노력하면 성공을 향해 나아갈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또 삶이란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을 도움으로써 스스로를 돕고, 부정적인 데서 긍정적인 것을 찾아내고,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서 행복을 찾는다면 행복은 저절로 찾아올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전기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다. 인생에 대한 이야기, 누구나 한 번쯤 살아보고 싶은 성공적인 삶에 관한 이야기를 접하는 일은 늘 흥미롭다. 그리고 보람있는 삶에 좀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도록 부단히 이끌어주는 힘이 있어서 좋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