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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그 영혼과 진실 - 돈의 본질과 역사를 찾아서
버나드 리테어 지음, 강남규 옮김 / 참솔 / 2004년 3월
평점 :
품절
한 인간의 비전이 3,000년의 역사를 아우를 수 없을 때,
그는 미망의 어둠 속에서 헤메이면서, 그 시대의 한계 속에서 살아야 한다. - 괴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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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돈'에 관해 쓴 책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현대사회는 세 가지 근원적인 금기를 안고 있다고 말한다. 섹스, 죽음, 돈(화폐)이 그것이다. 사실 '돈'에 대한 얘기는 수세기 동안 '정중한 자리'에서는 입에 담지 말아야 할 주제들이었다. 그렇지만 금기는 항상 우리의 삶에서 분리해서 내다버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돈과 문명의 관계는 DNA와 종의 존재와도 같다고 보며, 수천년 동안 인류 역사와 함께 해 온 '돈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물고기는 물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을까? 물고기는 그 속에서 헤엄을 치기 때문에 물의 실체를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인간이 돈에 대해 모르는 것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이처럼 돈에 대해 무지한 우리에게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과 그의 후예들이 제공한 중요한 단서들로부터 돈의 미스터리를 밝혀내는 긴 여정을 우리 앞에 마음껏 펼쳐내 보인다.
이 책의 저자는 현재 버클리 대학의 펠로우, 콜로라도 나로퍼 대학의 교환교수로 재직중이다. 전자공학, 국제금융학, 원형심리학 등 다방면에 걸쳐 해박한 지식을 쌓았으며, 단일통화 유로의 준비과정에도 참여하는 등 30여년 동안 돈과 관련된 분야에서 활동해왔고,「비즈니스 위크」에 의해 세계 최고의 머니트레이더로 선정되기도 했었다.
금융전문가이자 심리학자라는 독특한 이력을 지닌 지은이가, 신화, 역사, 심리학, 문화인류학 등 인문학의 성과를 빌려 돈의 영혼, 본질, 미스터리, 역사, 미래 등을 종횡무진 파헤치는 이야기는 정말 흥미진진하다.
그러나 이 책은 흔히 접하는 '돈버는 기술'이나 재테크에 대한 내용을 다루는 책과는 사뭇 다르다. 미국의 철학자 켄 윌버는 인간이 보유하고 있는 지식의 종류를 이해하는 데 요긴한 구조를 그의 명저 모든 것의 역사(A Brief History of Everything)를 통해서 제시했다고 한다. 윌버가 제시한 지식구조는 두 가지 축으로 구분되는데, 좌우는 내향성과 외향성을 기준으로, 상하는 개인과 집단을 기준으로 했다고 한다. 윌버의 분류를 활용하여 '돈 문제'를 구분해 본다면, 개인적이면서 외향성이 있는 현상을 다루는 것은 사분위의 오른쪽 윗면에 위치한다. 즉 개인이 어떻게 돈을 증식할 것인가를 다루는 투자이론이나 재테크 기술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 책은 개인적이면서 집단적인 내면의 세계를 다룬다. 이것은 윌버의 분류에서 볼 때 왼쪽의 윗면과 아랫면을 아우르는 영역이다. 이 책과 반대로 돈의 외향적이고 집단적인 세계를 다루는 책들은 주로 돈의 행태, 화폐시스템 및 유통과정 등이 핵심 화두이고, 이 책의 저자가 쓴 또다른 저서인「돈의 미래」라는 책이 여기에 해당되며 영국에서는 베스트셀러에 올랐을 만큼 화제가 되었다고도 한다.
또한 피터 번스타인의 황금의 지배(The Power of Gold)라는 책도 인류의 화폐시스템에 대해 다룬 책인데, 황금이라는 금속이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 3,000년간의 역사에 관해서 이야기를 풀어가는 번스타인의 탁월한 솜씨는 버나드 리테어와 많이 닮았다는 생각도 든다. 또한 이들 두 저자의 주장 가운데에는 '화폐(또는 황금)를 소유하고 축적하도록 부추기는 시스템 자체에 대해서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내용을 공통적으로 포함하고 있어서 흥미롭다.
내향적 측면에서 화폐시스템을 분석하는 일은 인간이 돈에 대해 가지고 있는 무의식을 탐색하는 일이기에 꽤나 힘겨운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칼 융이 '원형과 심리의 관계는 본능과 육체의 관계와 같다'고 말한 것처럼, 돈의 본질과 원형 그리고 이 원형이 만들어낸 두 개의 그림자까지 파헤쳐 들어가면, 현대 금융 시스템의 핵심 감정은 곧 '탐욕'과 '빈곤'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리고 돈이 가지고 있는 양극단의 그림자인 탐욕과 빈곤은 두려움에 의해 서로 연결(매개)되어 있다는 것이다.
돈은 단일한 실체이다. 돈은 인간에게 가장 큰 기쁨을 선사하는 사랑과 같은 반열이고, 인간에게 무한한 두려움을 일으키는 죽음과 같은 선상에 있다. - 존 케네스 갈브레이스,「불확실성의 시대 The Age of Uncertainty」中에서
저자의 말대로 이 책은 현대 금융 시스템에 내재되어 있는 인간 감정의 근원을 찾는 긴 여정의 로드맵이며, 돈이 유발한 강박관념과 충동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단서를 제공해 준다. 저자가 독자와 함께 떠나려고 하는 여정은 인간의 머리(사고방식) 속에 대한 탐험이고, 현대사회가 터부시하는 돈에 대한 도전이기도 한 셈이다.
이 책은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하고는 흥미가 생겨서 사게 된 책이다. 그리고 책을 읽고 난 뒤에는 읽기 전에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걸 알게 해준 고마운 책이기도 하다. 저자는 고대 이집트 왕조 시대의 온갖 여신 숭배 이야기에서부터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한 탐구를 거쳐, 기나긴 암흑기의 중세 중기의 이야기까지 돈의 본질과 관련된 인간 심리의 근원적 의식을 탐구하기 위해 수많은 책들로부터 얻은 방대한 지식들을 아낌없이 독자들에게 내보여준다. '머니(Money)'라는 말이 로마 신화의 여신 유노의 별칭인 모네타(Moneta)에서 유래되었다는 사실에서 부터, 금융투기 및 공황과 관련된 현대의 언어 가운데 매니아는 마에나드스에서, 패닉은 신의 이름인 판에서 유래되었다는 온갖 다양한 얘기들도 빼놓지 않는다.
중세의 끔찍했던 마녀사냥의 얘기는 특히 흥미로운데, 이것은 인간의 의식속에 내재되었던 엄청난 '강박관념'이 얼마만큼 가공할 만한 수준의 '광기'를 드러내 보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서 부족함이 없으며, 근대 이후의 온갖 금융투기를 이해하는 데에도 중요한 단초를 제공해 준다고 설명한다.
한편, 유럽을 여행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궁금해하는 일 가운데 하나가, 각 나라마다 도처에 널려있는 웅장한 성당 건축물들이 과연 '언제 어떻게' 지어졌을까 하는 점일 것이다. 이에 대해서도 저자는 '중세 중기로의 여행'에서 성당 건축의 사회경제적 진행과정들을 아주 이해하기 쉽게 풀어내어 설명해 주며, '성당은 서유럽의 역사가 현대인에게 남긴 최고의 선물'이라고 극찬하기도 한다. 그리고 성당은 중세 중기 민중의 신념, 장인의 천재성, 지역민의 단결, 헌신의 상징이었다는 해석을 덧붙인다.
서구인들은 화폐시스템이 낳은 결과에 대해 무지하지만, 다른 문화권에 속한 관찰자들은 이를 쉽게 발견하고 지적한다는 점 역시 흥미롭다. 예를 들어 퉁가섬의 한 추장은 축장이 가능한 양의 화폐에 대해 진실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돈은 다루기 쉽고 실용적이지만 썩지 않는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그저 소유하고 축적하려 들고 다른 사람과 나누려 하지 않고는 이기주의자가 된다. 만일 한 사회에서 음식이 가장 중요한 소유물이라면, 그들은 이를 영원히 보관할 수 없다. 상하기 전에 다른 쓸모있는 것과 교환하거나 이웃과 나누려 들 것이다. 교환하지 않을 경우 먹고 남은 음식은 아무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유럽 사람들이 왜 이기적인지 잘 알고 있다. 바로 돈 때문이다."
이 대목에 이르면, 앞서 언급한 피터 번스타인의 황금의 지배(The Power of Gold)라는 책에서의 주장과 너무 닮았다는 생각도 든다.
반짝이는 것 외에는 아무런 능력도 가지고 있지 않은 황금이 인류경제의 중심에서 그토록 오랜 시간동안 그토록 중요한 역할을 했던 까닭은 다름 아닌 인간 자신에게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우리 이야기에서 가장 현명한 주인공들은 그들의 생명을 이어줄 소중한 소금을 침묵 속에서 금과 교환했던 젠느와 팀북투의 소박한 원주민들인지도 모른다......
이 책의 저자가 시종일관 해답을 구하려는 문제의 핵심 또한 '빈곤감에서 벗어나 창조와 지속가능한 복지를 가져올 수 있는 금융시스템에 눈돌리도록 하자'는 데 있다. 저자의 이러한 주장은 앞으로도 점차 그 설득력을 더해 가리라는 생각이 든다. 대안 화폐(보완 화폐)에 관해서는 월가의 스승이라고 얼컬어지는 벤저민 그레이엄도 이미 1936년에《비축과 안정》이라는 제목의 책을 출판한 적이 있었을 만큼 높은 관심을 보였던 적이 있었다. 그의 책 벤저민 그레이엄에서 그는 '나의 이름이 미래 세대에게 기억될 가능성이 있다면, 상품준비통화 계획의 창안자로서 기억됐으면 하고 바란다'고 말할 정도였다. 또한 경제학자 E.A. 톰슨 등은 표준적인 노동시간을 근간으로 하는 화폐시스템을 주장하고 있기도 하다.
이 책이 철학적이고 심리학적이며 역사적으로 음의 화폐시스템을 추적하여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는 것이라서 다소 생경하게 느껴지는 점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지은이가 경제학적인 개념과 논리 대신 심리학, 신화 등 인문학적 방법으로 설명하는 점들이 경제학적인 개념과 분석틀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돈의 미스터리까지 해결해 준다는 점에서, 이 책은 '인문학'의 힘과 가치를 새삼 느끼게 해주는 책이기도 하다.
또한 이 책은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박물관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온갖 그림과 사진들이 풍성하게 담겨 있어서 읽기에 별로 지루하지도 않다. 인류의 영원한 친구인 신화의 세계를 돈과 함께 여행하는 재미도 풍부하며, 여행이 가져다주는 즐거움 중의 하나인 몰랐던 사실 혹은 덜 알려진 사실들을 알아가는 재미도 듬뿍 담겨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