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을 읽어라. 그전에 패디먼을 먼저 만나보라.


제3부(39∼61)

39. 윌리엄 셰익스피어, 1564~1616, 전집

 

 

 

 














셰익스피어를 읽는 것은 에베레스트 산을 정복하는 것과 약간 비슷하다. 어떤 방법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등정의 결과가 달라진다.

그는 인간이었지 반신半神이 아니었다. 그는 콜리지[65]가 말한 것처럼 "일천 가지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매슈 아놀드가 말한 것처럼 "모든 사람들보다 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그는 무오류의 인간도 아니었다. 인류가 낳은 많은 천재들 중 하나였다. 그는 극단에 소속된 장인이었고, 바쁜 배우였으며, 영리하여 점점 번영을 구가한 사업가였다. 천재도 평범한 삶을 살 수 있고, 셰익스피어가 그 좋은 사례이다.

셰익스피어의 전집을 읽는 것은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다. 사람이 평균적으로 70세를 산다고 보고 그 중에서 반년 정도의 시간을 투입하여 전집을 읽는 다면 충분한 보상이 돌아올 것이다. 하지만 우리들 중에 그렇게 하기 위해 필요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다. 사람마다 다르게 판단하겠지만, 셰익스피어의 드라마 37편 중에서 다음 12편을 필독서로 권한다. 한꺼번에 다 읽을 생각을 하지 말고 평생에 걸쳐 한 권씩 한 권씩 읽는 방법이 더 좋다. 『베니스의 상인』, 『로미오와 줄리엣』, 『헨리 4세』1부와 2부, 『햄릿』, 『트로일로스와 크레시다』, 『되에는 되로』, 『리어왕』, 『맥베스』,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 『오셀로』, 『태풍』.


41. 실명씨, 1618년 발간, 금병매














『금병매』가 오로지 에로틱한 소설로 그쳤더라면 그처럼 폭넓은 관심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을 것이다. 성적으로 노골적인 문장이라고 해도 오늘날의 음란 소설에서 발견되는 것보다 한결 순화되어 있다. 이 책이 세계 문학의 고전으로 자리매김 되는 이유는 그 탁월한 사회 풍자와 비판 때문이다. 이 소설은 쇠퇴, 냉소주의, 권력 남용, 부정부패에 사로잡힌 16세기 중국을 가감 없이 묘사하고 있다.

42. 갈릴레오 갈릴레이, 1574∼1642, 2대 세계 체계에 관한 대화














"이제 독자들은 이것이 바로 코페르니쿠스 모델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천재가 번득이는 수사적 작품이고 1632년 못지않게 오늘날에도 설득력이 높다. 어떻게 이런 저서를 읽고서 납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로마의 교회 당국은 납득하지 않았다. 수사학은 도그마(교리) 앞에서 아무런 위력도 발휘하지 못했다. 갈릴레오는 종교재판에 소환되었고 그의 이론은 취소하기를 강요당했다. 나이가 든 데다 피곤하고 병이 든 그는 달리 선택할 수가 없었다. 그는 그 후에 평생을 피렌체의 집에서 가택 연금의 상태로 살았다. 비록 종교재판에 의해 분서형을 당했지만 그의 『2대 세계 체계에 관한 대화』는 계속 유통되었고, 몇 년 지나지 않아 유럽 전역의 학계에서는 코페르니쿠스의 우주 모델이 정설로 자리 잡았다.  갈릴레오는 자신의 이론이 결국 이길 것임을 알고 있었다.

43. 토머스 홉스, 1588∼1679, 리바이어던
















대부분의 현실주의적 정치 이론은 홉스나 마키아벨리[34]에 그 원천을 두고 있다. 그러나 민주적 정치 제도는 그 인간관에 있어서 반反 홉스적이다. 민주 제도는 권력 분점을 그 바탕으로 한다.(하지만 홉스는 왕, 귀족, 하원 사이에 권력이 분산되어 있기 때문에 내전이 발생한다고 보았다.) 또한 미국의 제도는 견제와 균형의 시스템, 대의적 형태로 표현되는 일반 의지라는 효능 입증된 이론 등에 바탕을 둔다. 미국의 제도와 기타 권위주의적 제도가 어떻게 다른지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리아비어던』을 읽을 필요가 있다.

그는 아주 까다롭고 빡빡한 문장을 구사한다. 난해한 책을 읽고 싶은 기분이 들 때 홉스의 책을 집어 들도록 하라. 가능하면 『리바이어던』의 서문과 1부와 2부는 모두 읽도록 하라.


44. 르네 데카르트, 1596∼1650, 방법서설

 
















젊은 시절에도 데카르트는 수학 이외에 자신이 배운 모든 것의 근본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의심은 파리와 푸아티에에 체류하던 시절(1614∼18)에 몽테뉴[37]를 읽으면서 더욱 강화되었다. 그는 마침내 공부를 걷어치우고 가벼운 군사적 모험과 여행의 길로 나섰다. "나 자신에 대한 지식과 이 세상의 위대한 책을 제외하고는 더 이상 다른 학문을 추구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데카르트는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 기타 학자들의 새로운 물리학과 천문학으로부터 자극을 받아 새로운 철학 체계를 수립했다. 그는 새로운 과학 혁명의 정신을 이어받았고 그 과학 정신은 아이작 뉴턴에 이르러 최고조에 달한다.

45. 존 밀턴, 1608∼1674, 실낙원, 리시다스, 그리스도 탄생의 날 아침에, 소네트, 아레오파지티카

 
















밀턴을 읽기 위해서는 특별하면서도 고통스러운 노력을 해야 한다. 설사 박물관 진열품이라고 할지라도 밀턴의 시는 여전히 희귀하고 소중한 작품이다. 『실낙원』의 메시지를 잘 이해하지 못하겠거든, 그 엄청난 소리 효과, 그 정교한 이미지, 타락한 천사(밀턴은 이 천사와 유사한 점이 많다)인 사탄의 초상화 등을 따라가 보라. 그 어떤 작가도 앞으로 이렇게 글을 쓰지는 못할 것이다. 그 누구도 밀턴의 웅장한 산문에서 발견되는 우뢰와 같은 미문美文을 구상하지 못할 것이다.

47. 블레즈 파스칼, 1623∼1662, 팡세

 


















이 책은 단편적인 미완성의 노트들인데, 원래는 좀 더 거대한 계획 아래 집필된 것이었다. 파스칼은 당대의 자유사상가들의 공격과 무기력으로부터 기독교를 옹호하는 대작을 쓰기 위해 이 노트들을 준비했으나, 일찍 죽는 바람에 대작을 쓰지는 못했다. 이 노트들에서 파스칼은 우주의 거대함, 영원의 무한한 흐름, 신의 전지와 전능에 비해볼 때 인간이란 너무나 덧없고 무의미한 존재라고 지적했다. 현대의 반 인간적 염세주의는 상당 부분 파스칼에서 유래한다. 종교 옹호자든 허무주의자든, 인간이 우주의 중심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팡세』를 마음에 들어 할 것이다. 파스칼은 인간의 아주 심오한 심적 분위기를 대변한다. 인간은 자신의 위력에 때로는 영광을 느끼지만 결국에 가서는 그 자신을 가련하고 이해할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사상 분야의 파스칼은 그 문장 스타일과 강렬한 정서적 열정 때문에 평가를 받는다, 영혼의 심리학자인 그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킨다. 때로는 고상하고 때로는 광적인 그의 경건주의를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들도 그 예리한 인간 심리의 통찰은 높이 평가한다.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외침인 파스칼의 두 명언은 아직도 기억된다, 첫 번째 것은 "이 무한한 우주의 침묵은 우리를 겁나게 한다"이고, 두 번째 것은 "인간은 자연에서 가장 허약한 존재인 갈대에 지나지 않지만, 그는 생각하는 갈대이다"이다. 이 두 명언은 기독교 신자든, 불가지론자든, 무신론자든, 혹은 다른 사상을 가진 자든, 모든 선남선녀들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진실이다.

49. 존 로크, 1632∼1704, 통치론

 
















홉스의 "계약" 사상은 개인의 권력을 절대적 권한을 가진 군주 혹은 의회에게 넘겨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로크의 "사회 계약"은 동등한 사람들 사이에 맺어지는 것이며 이 사람들은 "그 계약에 적극 참여하여 하나의 사회를 만든다." 정부는 신의 뜻에 따라 조직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절대적 권위를 가진 것도 아니고 그 권위는 권력 분산에 의해 제한을 받아야 마당하다. 권력은 나누어 가져야 하고, 견제와 균형을 이루어야 하며, 개인의 영속적인 "양도 불가능한 권리"를 인정해 주어야 한다. 로크가 볼 때 생명, 자유, 재산 등이 개인의 그런 양도 불가능한 권리이다. 만약 정부가 이러한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 정부에 대한 저항은 정당한 것이다.

50. 마쓰오 바쇼, 1644∼1694, 오쿠노 호소미치
















그는 험준한 오지인 산간 지역을 도보로 여행했다. 그런 만큼 바쇼의 여행담에는 비좁고 불확실한 길들을 걸어가야 하는 나날의 근심이 묻어난다. 하지만 책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밝으며, 저자의 쾌활하고 낙관적인 기질, 새로운 사물에 대한 호기심, 모든 것이 결국에는 잘 될 것이라는 확신을 드러낸다.

하이쿠는 하나의 작은 경이, 갑작스러운 깨달음의 작은 불꽃이 된다. 『오쿠노 호소미치』는 기술의 절정에 오른 천재의 솜씨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51. 대니얼 디포, 1660∼1731, 로빈슨 크루소

 
















로빈슨 크루소와 마찬가지로 거의 모든 남자가 완전 자급자족이 되는 상태를 꿈꾼다. 자신이 절대적인 왕으로 군림하는 자기만의 영지를 꿈꾼다. 외로움의 왕국을 혼자 견디다가 단 한 명의 노예를 발견하여 그에게 인자한 독재자로 군림하는 꿈을 꾼다. 경쟁에 의해 위태로워지거나 사소해지지 않는 부와 권력의 축적을 꿈꾼다. 허약하고 시시하게 머리를 써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완력과 상식을 사용하여 성공하는 꿈을 꾼다. 지루한 일상생활에서 훌쩍 벗어난 아주 외진 곳에서 이런 꿈들을 성취하길 바란다. 처자식에 대한 부담감 없이 자신의 힘으로 만든 1인 유토피아에서 살기를 꿈꾼다. 『로빈슨 크루소』와 『모비딕』[83]은 여성을 등장시키지 않고서도 탁월한 성공을 거둔 걸작이다.

우리는 어린 시절 순전히 오락용 책자로 이 소설을 읽었다. 그러나 나중에 나이 들어 재독해 보면 이 소설이 왜 불후의 명작인지 깨닫게 된다.

 

53. 볼테르, 1694∼1778, 캉디드와 기타 작품들

 

 

 

















볼테르는 84세의 나이로 사망했을 때, 유럽 지성계의 왕관 없는 제왕이었고, 계몽 시대의 우뚝한 지도자였으며, 프랑스 혁명에 의해 붕괴된 구체제의 기반을 가장 맹렬하게 파괴한 자로 평가되었다. 극작가, 시인, 역사가, 이야기꾼, 재담가, 신문사 특파원, 논쟁가, 화려한 성격의 소유자 등으로 엄청난 명성을 거두었다. 그의 창작 능력은 엄청난 것이었다. 그는 1만 4천 통의 편지와, 2천 건 이상의 책과 팸플릿을 남겼다. 하지만 사흘 만에 써냈다는 달콤하면서도 씁쓸한 농담의 책으로 유명하다. 그가 써낸 무수한 냉소적 작품들도 이 단 한 편의 아이러니를 당하지 못한다.

『캉디드』는 후대의 소설들이 즐겨 취하는 성장 소설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가령 『적과 흑』[67]도 성장소설이며 『마의 산』[107]은 좀 더 심화되고 확대된 형태의 성장소설이다. 캉디드가 받은 교육은 아주 폭력적인 것이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볼테르가 내린 결론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결코 최선이라고 볼 수 없는 이 세상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일은 "우리의 정원을 가꾸는 것"이다.

독자들은 이 위악적인 아이러니가 넘치는 걸작을 읽고서 볼테르가 조롱의 대가였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는 버나드 쇼처럼 재치가 넘치지만 동시에 쇼처럼 인간의 정신의 해방을 위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용감하게 싸우는 전사였다.

56. 조설근, 1715∼1763, 홍루몽

 












『홍루몽』은 중국어로 씌어진 소설 중 가장 위대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반 자서전적인 작품이지만 동시에 많은 상상력이 가미되어 있다. 『금병매』[41] 등 중국 고전문학에 대한 저자의 깊은 이해가 작품의 배경을 이루고 있으나, 이 작품이 다루고 있는 문학적 범위는 일찍이 중국 문학에서 시도된 적이 없었다. 120장으로 구성된 거대한 작품이며 30명의 주요 인물들과 400명의 보조 인물들이 등장한다. 러브 스토리인가 하면 풍속소설이고 사회 비평서이기도 하다.

57. 장 자크 루소, 1712∼1778, 고백록

 
















루소를 가리켜 사회 부적응자라고 말하기는 쉽다. 또 자연과 인간의 착한 본성을 옹호하는 그의 태도는 조직 사회의 요구에 적응하지 못하는 태도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러한 지적은 사실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의 사상-그의 주장은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예전에 그처럼 강력하게 표현된 적이 없었다-은 그의 시대가 원하는 것이었다. 이 기이한 예언자 루소, 흄[54]이 "피부가 없다고 할 정도로 민감한 사람"은 아주 정확하게 시기를 맞추어서 태어났다.

루소는 자기 자신에 대하여 거짓말을 하고, 과장을 하고, 때때로 자기 자신을 왜곡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선언 중 한 가지 사항은 잘못된 것이었다. 그는 "앞으로도 모방자가 없을, 그런 과업을 시작하려 한다"고 했는데 그건 틀린 예언이었다. 수천 명의 후배들이 그를 모방했다. 고백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현대의 자서전들은 모두 루소의 『고백록』을 흉내 내고 있다.

(제4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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