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을 읽어라. 그전에 패디먼을 먼저 만나보라.
제2부 (22∼38)
22. 성 아우구스티누스, 354∼430, 고백록
이 책은 기독교를 믿지 않는 사람에게도 깊은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 책은 자기 고백의 걸작이고 진실한 인간이 어떤 단계를 거쳐서 인간의 도시로부터 신의 도시로 나아가는지 보여 준다. 심리학자들에게, 그리고 윌리엄 제임스[95]가 말한 종교적 체험의 다양성을 믿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무한히 흥미로울 것이다.
28. 무라시키 시키부, 976년경∼1015년, 겐지 이야기
독자가 『겐지 이야기』를 처음 집어 들면, 너무 두꺼운 책이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것을 극복하고 책을 읽어나가면 소설의 속도가 너무 느리고 너무 기이하여 인간의 세계가 아닌 느낌이 들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읽어나가기를 바란다. 마르셀 프루스트[105]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마찬가지로 일단 다 읽고 나면 평생 되풀이하여 읽게 될 책임을 알게 된다. 어느 지점에 이르면 기이함은 경이로움으로 바뀌게 된다. 무라사키의 산문은 너무나 세련되고 심리적으로 예리하여 독자를 상상력의 세계로 풍덩 빠트린다. 이것은 위대한 예술적 성취가 아닐 수 없다.
30. 단테 알리기에리 1265∼1321, 신곡
이 작품은 버니언의 『천로역정』[48]처럼, 이 지상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단지 단테가 지옥, 연옥, 천국을 상상함으로써 우리 인간의 지상에서의 상태를 더욱 생생하게 만들고 있다는 점만이 다를 뿐이다. 지상에서 사는 우리는 부분적으로 비참한 상태, 즉 지옥에서 살고 있다. 우리는 연옥에 떨어진 사람들이 그렇게 하듯이, 이곳 지상에서 죄를 짓고 그에 대한 속죄를 할 수가 있다. 단테 자신이 그렇게 열렬히 믿었듯이, 우리는 이성-『신곡』에서 단테의 안내자로 나오는 베르길리우스는 이성의 상징이다-과 신앙의 힘을 통하여 '천국'이라는 지복의 상태에 들어갈 수 있다.
32. 제프리 초서, 1342∼1400, 캔터베리 이야기
단테는 신을 사랑했고, 초서는 불완전하고 죄 많은 인간을 사랑했다. 단테는 파멸, 정화, 지복에 이르는 길들에 시선을 집중시켰다. 반면에 초서는 일상생활의 복잡한 고속도로에 시선을 집중시켰다. 두 작가 모두 여행에 대해서 썼다. 단테의 여행은 세 가지 상징적 세계(지옥, 연옥, 천국)로의 여행이었고, 초서는 14세기에 30여 명의 선남선녀가 영국의 길 위로 떠난 실제의 여행을 묘사한다.
33. 실명씨, 1500년경, 천일야화
'무삭제'는 『천일야화』의 의미와 호소력을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단어이다. 많은 사람들이 어릴 때 동화책에서 읽은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 이야기를 기억한다. 하지만 지난 수십 년 동안 과도하게 축약되고 편집된 어린이용 판본이 출판되어 왔다. 하지만 원래 이야기는 어린이용 디즈니 동화 같은 이야기가 전혀 아니었다. 원본은 음란한 유머가 가득하거나, 아주 노골적으로 성적이거나, 마음 약한 사람은 잘 소화하지 못하는 괴기한 모험의 요소가 많은 이야기들이다.
34. 니콜로 마키아벨리, 1469∼1527, 군주론
어떤 측면에서 보면 마키아벨리는 리버럴(자유주의자)이다. 하지만 그가 다음과 같이 주장한 것도 사실이다. "이상적 군주는, 정치적 목적에 도움이 안 되는, 도덕적 고려사항을 초월해야 한다." 종교와 국가의 관계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무력을 갖춘 예언자들은 정복을 했지만, 무력이 없는 예언자들은 실패했다." 아야톨라 호메이니는 이 말을 수긍했을 것이다.
『군주론』은 하나의 매뉴얼이다. 야심 많은 통치자들에게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고, 집중하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35. 프랑수아 라블레, 1483∼1553,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
그는 행복한 조너선 스위프트[52] 혹은 지성미 넘치는 월트 휘트먼[85]이다. 그의 특징적인 자세는 원만하게 포용하는 것이다. 그는 하느님과 술 취한 자를 동시에 사랑할 수 있었다. 그의 웃음은 아주 자유롭고 건강하다. 그의 투박한 태도, 인간의 신체가 만들어내는 영원한 코미디를 즐겨 바라보는 태도 등을 보고서 함께 웃지 않고 화를 내는 자는 위선적인 도덕군자들뿐이다.
그는 팡타그뤼엘의 사상을 이렇게 정의했다. "운명을 조롱하는 태도에서 나오는 즐거운 마음." 이 작품을 재미있게 읽으려면 먼저 독자 자신이 팡타그뤼엘이 되어야 한다.
37. 미셸 에켐 드 몽테뉴, 1533∼1592, 수상록
지난 4세기 동안 고전으로 읽혀 온 역사가 증명하듯이, 독자는 곧 몽테뉴의 매력, 지혜, 유머, 스타일, 정신적 경향에 호응하게 된다. 그는 처음에 견인주의자로 시작했으나, 곧 인간에 대해서 회의적인 견해를 품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냉소적이거나 부정적인 입장을 취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모든 것에 흥미가 있었으나 그 어떤 것도 확신하지 않았다. 그의 모토는 "나는 무엇을 아는가?" 였다. 그의 상징은 한 쌍의 저울이었다. 그는 카톨릭 신자로 태어나 평생 카톨릭으로 살았고 죽을 때에는 종부성사를 받았다. 하지만 그의 저작은 자유주의 사상이 성장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38. 미겔 데 세르반테스 사베드라, 1457∼1616, 돈키호테
이 책은 성경을 제외하고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번역되고 연구되는 대여섯 권의 책들 중 하나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훌륭한 이유들이 있다.
그런 이유들 중 하나는 아주 간단한데 세르반테스 자신이 제시했다. 그는 제2부의 2장에서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여윈 말을 볼 때마다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저기 로시난테가 간다.'" 달리 말해서, 그의 책에는 즉각 알아볼 수 있는 인간의 타입들이 존재하는데 이 경우에는 인간보다 타입에 강조점이 놓인다. 누군가를 가리켜 '돈키호테 같다'거나, '그것은 풍차에 돌진하는 행위이다'라고 말하면 온 세상 사람들이 그 뜻을 이해한다. 이처럼 영원히 살아 있는 문학 속의 인물은 몇 안 된다. 햄릿[39]이 그 중 하나이고, 돈키호테 또한 그 중 하나이다.
두 번째 이유 또한 간단하다. 독자가 『돈키호테』의 이야기를 천천히 따라가면, 그것이 『오디세이아』에 버금가는 모험 스토리라는 것을 알게 된다. 바로 이 때문에 이 책은 젊은이들을 위한 고전이 되었다. 몇 년 뒤 이 책을 다시 읽으면 이것이 마음의 모험담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세 번째 이유도 간단해 보이나 실은 그렇지가 않다.
『돈키호테』는 아주 유머러스한 소설이다. 이 책과 관련하여 이런 일화가 전해진다. 스페인의 펠리페 3세가 지방 순찰을 나갔다가 길옆에서 책을 읽고 있던 어떤 남자가 눈물을 줄줄 흘릴 정도로 크게 웃고 있는 것을 보았다. 왕은 말했다. "저 남자는 미쳤거나 아니면 『돈키호테』를 읽고 있을 것이다." 어떤 독자들은 큰 소리로 웃고, 어떤 독자는 빙그레 웃고, 어떤 독자는 겉으로 웃고, 또 어떤 독자는 속으로 웃는다. 그리고 어떤 독자는 기쁨과 슬픔이 뒤섞인 기이한 감정 상태로 읽는다. 세르반테스의 유머는 정의하기가 어렵다.
(제3부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