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 과학이 발견한 인간 마음의 작동 원리와 진화심리학의 관점
스티븐 핑커 지음, 김한영 옮김 / 동녘사이언스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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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핑커
<빈 서판>,<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언어본능>,<사이언스 북>



















스티븐 핑커의 이 두툼한 책(962쪽)에 담겨진 내용은 실로 방대하다.

이 책을 두고 어떤 사람은 '읽고, 또 읽고, 연구하고, 토론할 가치가 있는 책'이라 말했다.

리뷰를 쓰기엔 너무 벅찬 일인 것 같아 포토리뷰의 형식을 빌어,
일부러 찍은 몇 장의 사진과 함께 밑줄친 스티븐 핑커의 '생각들'을 뽑아서,
임의대로 붙인 소제목과 해당 쪽수를 덧붙여 정리하여 옮겨 놓는다.
(스크롤의 압박 때문에 임의로 ① ② ③ ④로 나누어 정리)





 - 우리 눈에 예쁘게 보이는 이유(8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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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왜 사람들은 허구를 즐기는가 (8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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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즐거움 버튼 (8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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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자 757

세계 어디에서나 사람들은 권위, 찬성, 존엄, 우월, 명성, 존경, 체면, 지위, 탁월함, 위신, 지위, 존중, 평판, 신분, 고매함 등으로 불리는 그림자 같은 실체를 거머쥐려고 애쓴다. 사람들은 리본과 한 조각의 금속을 목에 걸기 위해 굶주리고, 목숨을 걸고, 재산을 탕진한다. 경제학자 소스타인 배블런은 사람들이 서로에게 감명을 주기 위해 너무 많은 생활필수품을 희생하기 때문에 마치 '고상한 정신적 필요'에 반응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지적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지위와 미덕이 매우 밀접하다는 것은 다음의 단어들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기사도 정신이 있는 chivalrous, 귀족적인classy, 품격이 있는courtly, 신사다운gentlemanly, 명예로운honorable, 고귀한noble, 위엄 있는princely. 정반대의 단어들도 마찬가지다. 버릇없이 자란ill-bred, 비천한low-class, 천한low-rent, 비열한mean, 역겨운nasty, 무례한rude, 인색한shabby, 천한shoddy. 개인의 사소한 외양에 대해서도 우리는 옳은right, 선량한good, 예절에 맞는correct, 흠잡을 데 없는faultless 같은 도덕적 비유로 그 멋을 표현하고, 볼품없이 입은 자를 비난할 때에는 대개 죄악을 가리키는 어조를 동원하여 초라한tacky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예술사가 쿠엔틴 벨은 그런 태도를 '의복 도덕성sartorial morality'이라고 칭했다.


해치거나 돕는 능력 758


혹시 이것은 지적 유기체를 건조하는 한 가지 방법이 아닐까? 이 강력한 동기들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많은 동물들이 무의미한 장식과 제식에 의해 감동을 받으며, 그 선택 요인은 더 이상 신비가 아니다. 그 핵심 개념은 다음과 같다. 생물들은 다른 생물을 해치거나 돕는 능력이 저마다 다르다. 어떤 것들은 더 강하거나 더 사납거나 더 독하고, 어떤 것들은 더 좋은 유전자나 더 많은 자원을 갖고 있다. 그 강력한 생물들은 자신의 강력함을 모두가 알아 주기를 원하고, 그들과 마주치는 생물들 역시 누가 강력한지 알기를 원한다. 그러나 모든 생물이 다른 모든 생물의 DNA, 근육의 양, 생화학적 구성, 사나움 등을 파악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잘난 생물들은 자신의 가치를 저마다 특정한 신호로 광고한다. 애석하게도, 잘나지 못한 생물들은 그 신호를 위조하고 이득을 수확하여 그 가치를 떨어뜨린다. 그러면 잘난 생물들은 위조하기 어려운 광고물을 만들어 내고, 잘나지 못한 생물들은 더 정교한 위조물을 만들어 내고, 제3자들은 분별 능력을 강화하는 경쟁이 벌어진다. 지폐의 경우처럼 그 표시들은 비길 데 없이 번드르르하고 본질적으로 무가치하지만, 마치 가치가 있는 것처럼 취급되고 또 그렇게 취급되기 때문에 가치를 갖게 된다.

그런 광고물들 뒤에 숨겨진 귀중한 내용물은 우위(누군가를 해칠 수 있다)와 신분(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으로 나뉠 수 있다. 누군가를 해칠 수 있는 사람은 그 능력으로 누군가를 도울 수 있기 때문에 두 능력은 종종 결합한다.


서투른 전략 759

모든 다툼에서 비참한 결말에 이를 때까지 싸우는 것은 서투른 전략이다. 상대방도 똑같은 행동을 하도록 진화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싸움은 패자에게 타격이 크다. 싸움을 하다가 다치거나 죽으면 애초에 상금을 포기했을 때보다 더 나빠지기 때문이다. 싸움은 또한 승자에게도 타격이 클 수 있다. 승자도 싸움의 과정에서 부상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양 당사자가 사전에 누가 이길 확률이 높은지를 사정하고 약자가 깨끗하게 물러난다면, 양쪽 모두에게 득이 될 것이다. 그래서 동물들은 누가 더 큰지를 보기 위해 서로 크기를 재거나, 누구의 무기가 더 센지를 보기 위해 무기를 휘두르거나, 누가 더 강한지를 확인할 때까지 씨름을 한다. 승자는 한 쪽이지만 둘 다 살아서 돌아간다. 패자가 패배를 인정하고 물러나면 다른 곳에서 승리의 길을 찾거나 상황이 더 좋아질 때를 기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서로 크기를 재는 동물들은 크기를 과장하는 방법을 진화시킨다. 목둘레 깃털, 가죽 부풀리기, 갈기, 강모, 뒷다리로 서기, 큰 소리로 울기(낮은 음은 체내의 공명강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가 그것이다. 싸움의 비용이 크고 승자를 예측할 수 없으면, 마치 경쟁하는 두 사람이 동전 던지기로 다툼을 결말짓는 것처럼, 누가 먼저 그곳에 도착했는가와 같은 임의적인 차이로 승부를 낼 수도 있다. 만일 동물들이 팽팽하게 맞서고 판돈이 충분히 높으면(예를 들면 첩처럼), 전면적인 싸움이 벌어지고 일부는 죽음에 이르기도 한다.


서열과 지위 761

인간에겐 엄격한 서열이 없지만, 모든 사회에서 사람들은 특히 남자들 사이에 일종의 서열 관계가 있음을 인정한다. 서열이 높은 사람은 의견의 우선권이 있고, 공동의 결정에서 발언권이 크고, 대개 공동의 자원을 더 많이 분배받고, 아내와 애인을 더 많이 거느리고, 다른 남자들의 아내와 더 많이 성관계를 맺는다. 남자들은 지위를 얻기 위해 노력하고, 동물학 교과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방법들과 인간에게 고유한 방법들을 이용해 지위를 획득한다. 싸움을 잘하는 남자들은 더 높은 지위를 얻고, 외모가 매력적인 남자들도 높은 서열을 얻는다. 자칭 이성적 동물이라는 종 사이에서도 큰 키는 의외로 강력하다. 대부분의 식량수집사회에서 '지도자'라는 단어는 '큰 사람'을 의미하고, 실제로 지도자들은 대개 큰 사람들이다. 미국에서 키가 큰 사람들은 고용이 더 잘 되고, 승진이 더 잘 되고, 더 많이 벌고(1인치당 연봉600달러), 대통령으로 더 많이 선출된다. 1904년부터 1996년 사이의 대통령 선거에서 키가 큰 후보가 스물네 번 중 스무 번이나 당선되었다. 신문의 개인 광고란에서 여자들은 키 큰 남자를 원한다. 수컷들이 경쟁을 하는 다른 종들과 마찬가지로 인간도 남성이 여성보다 크고, 낮은 목소리나 턱수염처럼 실제보다 더 커보이게 만드는 방식들을 진화시켰다.(턱수염은 머리를 더 커 보이게 만든다. 턱수염은 사자와 원숭이에게도 독립적으로 진화했다.) 레오니트 브레즈네프는 자신이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눈썹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세계 어디서나 남자들은 머리(모자, 투구, 머리 장식, 왕관)와 어깨(어깨심, 보드, 견장, 깃털 장식)의 크기를 과장하고, 몇몇 사회에서는 성기의 크기를 과장하기도 한다.(불룩한 바지 앞덮개나 성기 씌우개를 착용하는데, 어떤 씌우개는 길이가 1야드나 된다.)



평판 762

인간은 언어와 함께, 우위에 대한 정보를 전파하는 새로운 방법을 진화시켰다. 바로 평판이다. 사회학자들이 오래전부터 당혹스럽게 생각해 온 사실은, 미국 도시에서 발생하는 살인의 동기들을 분류했을 때 가장 큰 범주는 강도, 불량한 마약의 거래, 또는 그 밖의 명백한 동기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모욕, 욕설, 부딪힘 같은 비교적 사소한 원인에서 시작된 언쟁"이다.
두 젊은이가 술집에서 누가 당구대를 사용할 것인가를 놓고 다툼을 벌인다. 그들은 서로를 떠밀면서 욕설과 무례한 말을 교환한다. 패자는 구경꾼들 앞에서 망신을 당하고 뛰쳐나간 후 총을 갖고 돌아온다. 살인사건은 '무분별한 폭력'의 축소판이고, 살인자들은 종종 미친 사람이나 동물로 간주된다.


댈리와 윌슨은 두 젊은이가 마치 당구대를 사용하는 것 이상으로 엄청난 것이 걸려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엄청난 것이 걸려 있다.

남자들은 같은 남자들을 두 부류로 나눠, '함부로 해도 되는 부류'와 '함부로 하면 큰코다치는 부류', 말이 곧 행동을 의미하는 사람들과 허풍이 전부인 사람들,
여자친구와 농담을 해도 별 탈 없이 넘어가는 녀석과 쓸데없이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은 녀석으로 인식한다.

대부분의 사회적 환경에서 남자의 평판은 부분적으로, 언제든 확실하게 폭력을 사용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느냐 못 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해 갈등은 어느 사회에나 존재하며, 한 사람의 이익은 경쟁자들을 미리 억제하지 않으면 언제든 침해당할 수 있다. 효과적인 억제책은, 나에게 손해를 끼치고 이득을 보려 한다면 반드시 가혹하게 응징할 것이고 그래서 장기판의 졸 따위를 희생하더라도 도전자에겐 치명적인 손실을 입힐 것이라는 확신을 경쟁자들에게 심어 주는 것이다.



명예(honor) 763

자기를 무시한다는 이유로 상대방을 칼로 찌르는 빈민가의 폭력배는 특정한 사회의 산물이 아니라 전 세계 모든 문화에서 비슷한 유형이 발견되는 보편적 인물이다. (영어를 포함하여) 많은 언어에서 명예honor라는 말은 불가피할 때는 피를 보더라도 모욕에는 반드시 복수를 하겠다는 결의를 의미한다. 많은 식량수집 사회에서 소년은 살인을 한 후에야 남자로서의 지위를 획득한다. 한 남자의 존경은 살인을 입증하는 증거의 수에 비례하고, 그에 따라 머리 가죽 벗기기나 머리 사냥 같은 관습이 탄생한다. '명예로운 남자들'의 결투는 미국 남부의 전통이었고, 많은 남자들이 결투를 통해 지도자의 지위에 올랐다. 10달러 지폐에 새겨진 알렉산더 해밀턴 재무장관은 아론 버 부통령과의 결투에서 목숨을 잃었고, 20달러 지폐에 새겨진 앤드로 잭슨 대통령은 두 번의 결투에서 승리했고 그 밖에도 여러 번 결투를 도발했다.



폭력을 야기하는 가장 큰 위험 인자 764

남성성은 폭력을 야기하는 가장 큰 위험 인자다. 댈리와 윌슨은 문자를 사용하지 않는 식량수집 사회들과 13세기의 영국을 포함한 14개 나라로부터 35개의 살인 통계 샘플을 분석했다. 모든 샘플에서 여자가 여자를 죽인 경우보다 남자가 남자를 죽인 경우가 월등히 많았는데, 그 수치는 평균 26배였다.



유전적 낭떠러지 764

또한 당구장의 살인자들과 그 희생자들은 무지하고, 가난하고, 미혼이고, 종종 직업이 없는 보잘것없는 사람들이다. 우리 인간들처럼 일부다처로 사는 포유동물 사이에서 번식 성공률은 수컷에 따라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 가장 치열한 경쟁은 성공 가능치가 0명에서 1명 사이를 오가는 수컷들이 몰려 있는 밑바닥에서 벌어진다. 남자들은 부와 지위로 여자를 유혹하기 때문에, 부와 지위가 없어서 여자를 얻을 방도가 없는 남자는 유전적 낭떠러지로 내몰리게 된다. 굶주림이 극에 달하면 위험한 영토로 뛰어 들어가는 새들이나, 1점 차이로 지고 있고 1분 후면 경기가 끝나는 상황에서 골키퍼를 빼고 공격 선수를 집어넣은 아이스하키 감독처럼, 미래가 없는 미혼 남자는 어떤 위험도 감수할 것이다. 밥 딜런이 노래했듯이, "가진 게 없으면 잃을 것도 없다."


지위 766

지위는 당신이 마음만 먹으면 남들을 도울 수 있는 자산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는 것이다. 그런 자산에는 아름다움, 독보적인 재능이나 전문성, 유력자들의 신뢰, 그리고 무엇보다 부가 포함된다.
지위를 뒷받침하는 자산들은 대용이 가능하다. 부는 인맥을 만들고, 인맥은 부를 만든다. 아름다움은 (선물과 결혼을 통해) 부로 전환되거나, 중요한 사람들의 주목을 끌거나,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구혼자를 끌어들인다. 그러므로 자산 소유자는 단지 자산 소유자로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후광이나 카리스마를 발산하고 그 때문에 사람들은 그들의 총애를 받고 싶어한다. 사람들이 당신의 총애를 원하게 만들면 항상 편리하므로, 지위는 그 자체만으로도 간절히 원할 가치가 있다. 그러나 하루의 시간은 정해져 있고 아첨꾼들은 누구에게 빌붙을지를 선택해야 하기 때문에 지위는 어디까지나 한정된 자원이다. A의 지위가 높으면 B의 지위는 낮을 수밖에 없으므로 사람들은 경쟁을 해야 한다.


심지어 족장의 지위를 다투는 동족상잔의 세계에서도 신체적 우위가 전부는 아니다. 샤농의 보고에 따르면 야노마뫼 족장들 중에는 드센 골목대장도 있지만 영리함과 분별력으로 족장에 오른 사람도 있다고 한다. 카오바웨라는 이름의 남자는 물론 겁쟁이는 아니었지만 형제들과 사촌들의 도움, 그리고 아내를 교환하는 방법으로 동맹을 맺은 친구들의 도움으로 권력을 거머쥐었다.


위신의 심리 768

베블런은 위신의 심리에는 세 가지 '취미의 금전적 표준'이 작용한다고 제안했다. 뚜렷한 여가, 뚜렷한 소비, 뚜렷한 낭비가 그것이다. 사람들이 지위 상징물들을 과시하거나 탐내는 것은 그것들이 반드시 유용하거나 매력적이라서가 아니라, 종종 그것들이 너무 희귀하거나 사치스럽거나 무의미해서 부유하지 않으면 소유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것들의 예로는, 지나치게 얇거나 크거나 꽉 죄거나 때가 잘 타서 입고 일하기가 불가능한 의류, 일상적으로 사용하기에는 너무 약하거나 구하기 힘든 재료로 만든 물건, 막대한 노동이 들어간 무용지물, 에너지를 소모하는 장식물, 평민들이 밭에서 일하는 지역에서의 창백한 피부, 평민들이 실내에서 일하는 지역에서의 선탠 등이 있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논리가 숨어 있다. 당신들은 내가 가진 모든 부와 수익 능력(내 은행 계좌와 토지, 나의 모든 동맹자들과 추종자들)을 볼 수는 없지만, 내 욕실의 황금 장식은 볼 수 있다. 재산이 많지 않으면 누구도 그런 것을 가질 수 없다. 그러므로 나는 부유하다.


뚜렷한 소비 769

뚜렷한 소비는 가장 부유한 사람들만이 사치를 누릴 수 있을 때 효과를 발휘한다. 계층구조가 느슨해지거나, 사치품(혹은 훌륭한 모조품)이 널리 유통되면, 중상 계층은 상류층을 따라하고 중간 계층은 중상 계층을 따라하는 식으로 각 계층은 한 단계 위의 계층을 모방한다. 서민들이 상류층을 닮기 시작하고 상류층이 돋보이지 않게 되면 상류층은 새로운 외관을 채택해야 한다. 그러나 중상 계층은 그 외관을 또다시 모방하고, 상류층은 또 다른 외관으로 변화를 꾀한다. 이것이 유행이다. 유행의 무질서한 순환, 즉 10년 동안의 세련된 모습이 다음 10년에는 초라하고 촌스럽게 보이는 현상을 지금까지는 의류 회사들의 공모, 민족성의 표현, 경제의 번영 등으로 설명해 왔다. 그러나 쿠엔틴 벨은 유행을 분석한 권위 있는 저서 《인간의 장식에 대하여 On Human Finery》에서, 단지 하나의 설명만이 유효하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인간은 다음과 같은 법칙을 따른다는 것이다. "당신보다 위에 있는 사람들처럼 보이려고 노력하라. 만일 정상에 있다면 아래에 있는 사람들과 다르게 보이려고 노력하라."


나비가 화려한 색을 진화시킨 이유 770

동물계의 또 다른 멋쟁이인 나비가 화려한 색을 진화시킨 것은 암컷을 감동시키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몇몇 종들은 유독하거나 맛이 없게 진화했고, 그것을 화려한 색으로 포식자들에게 경고했다. 그러자 다른 유독한 종류들도 그 색을 모방하여 기존에 유포된 두려움을 이용했다. 그런데 유독하지 않은 몇몇 나비들까지도 그 색을 모방하여 자신을 보호한 동시에 스스로 맛이 없는 나비가 되는 비용을 절약했다. 흉내쟁이들이 너무 많아지자 그 색은 더 이상 효과적인 정보를 전달하지 못하고 포식자들을 막아 내지도 못했다. 맛없는 나비들은 새로운 색을 진화시켰고, 먹을 수 있는 나비들은 또다시 그 색을 모방했다.


뚜렷한 위반 770

부 외에도 사람들이 과시하고 갈망하는 자산들이 있다. 복잡한 사회에서 사람들은 다양한 리그전에서 경쟁을 벌이는데, 모든 리그가 금권 정치가의 손아귀에 있는 것은 아니다. 벨은 베블런의 목록에 네 번째 표준을 추가했다. 뚜렷한 위반이 그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승인에 의존한다. 살아가는 데에는 상사, 선생, 부모, 의뢰인, 고객, 장래의 배우자 가족 등의 지지가 필요한데, 그러려면 일정 정도의 존경과 겸손함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적극적인 거부는 다른 사람들의 호의를 위태롭게 만들 정도로 자기 자신의 지위나 능력에 자신감을 갖고 있음을 광고하는 방법이다. 그것은 "나는 대단히 재능이 있고, 부유하고, 인기가 있고, 인맥이 좋아서 당신을 성나게 해도 괜찮다"는 것을 의미한다. 19세기에 조르주 상드라는 남작 부인은 바지를 입고 시가를 피웠으며 오스카 와일드는 긴 머리에 짧은 바지를 입고 단춧구멍에 해바라기를 꽂았다. 20세기 후반에 뚜렷한 위반은 관습이 되어 반항아, 야만인, 보헤미안, 변태, 불량배, 무례한, 성정체성 파괴자, 마우마우, 나쁜 녀석들, 갱스터, 섹스디바, 비치가디스, 요부, 방랑자, 머터리얼 걸 등이 장황한 퍼레이드를 벌이고 지나갔다. 유행의 원동력이 고급스러움에서 최신 정보의 추구로 바뀌었지만, 기초에 깔린 지위 심리는 동일하다.


우애적 사랑 778∼779

친구 관계에서는 호혜주의가 거짓말처럼 들린다. 저녁식사에 초대받은 손님이 지갑을 꺼내 주인 부부에게 저녁 값을 지불한다면 꽤나 의심스런 취미의 소유자로 취급당할 것이다. 바로 다음날 그 부부를 초대하는 것도 별반 다르지 않다. 맞대응은 우정을 굳게 하지 못하고 오히려 금이 가게 만든다. 친한 친구 사이에 차를 사고파는 등의 거래를 하는 것보다 더 어색한 일은 없을 것이다. 인생에서 가장 친한 친구인 배우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각자가 상대방을 위해 무엇을 해줬는지를 꼼꼼히 체크하는 부부는 가장 불행한 부부일 것이다.

친밀한 우정과 지속적인 결혼의 기초를 이루는 감정(낭만적이거나 성적이지 않은 사랑)인 우애적 사랑에는 독자적인 심리가 존재한다. 친구나 부부는 마치 서로에게 빚을 진 것처럼 느끼지만 그 빚은 계산하기가 불가능하고 변제의 의무는 부담스럽기는 커녕 대단히 만족스럽게 느껴진다. 사람들은 친구나 배우자를 도울 때 보답을 기대하거나, 보답이 없다고 자신의 호의를 후회하지 않고 자발적인 즐거움을 느낀다. 물론 그 호의들은 마음속 어딘가에 새겨지는데 장부상의 기록이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면 호의를 베푼 쪽은 빚을 회수하거나 더 이상의 신용거래, 즉 친구 관계를 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거래 기간은 길고 변제 조건은 관대하다. 따라서 우애적 사랑은 기본적으로 호혜적 이타주의와 모순된다기보다는 호혜를 보증하는 감정들-좋아함, 동정, 감사, 신뢰-이 최대한 연장된 탄력성이 강한 이타주의라 할 수 있다.


은행의 역설 779

우애적 사랑의 증거는 분명하지만 우애적 사랑이 진화한 이유는 무엇일까? 투비와 코즈미디스는 우정의 심리학을 역설계하려는 시도로 '은행의 역설 Banker's Paradox'이라는 교환 논리의 한 측면을 지적한다. 은행에 돈을 빌리러 간 많은 사람들이 정작 필요하지 않다고 입증할 수 있는 액수까지만 빌려 준다는 사실을 알고는 좌절감을 맛본다. 로버트 프로스트가 표현한 것처럼, "은행은 맑은 날 우산을 빌려 주고 빗방울이 떨어질 때 돌려 달라고 요구하는 곳이다." 은행들은 단지 투자할 돈밖에 없으며 대출은 모두 도박이라고 말한다. 은행은 수익을 내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업계에서 밀려나기 때문에, 고객들의 신용 리스크(변제 불능의 위험성)를 평가하고 잡초를 솎아 낸다.


'신용'을 연장할 수 있는 일종의 보험 780

불행이 당신을 위협할 때에도 다른 사람들로부터 '신용'을 연장할 수 있는 일종이 보험으로서 어떤 종류의 생각과 감정이 진화할 수 있었을까?

첫 번째 전략은 나 자신을 독보적인 존재로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도구 제작, 길 찾기, 분쟁 해결처럼 집단 내에서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전문 기술을 계발한다면 나는 위급한 때를 위해 따돌릴 수 없는 중요한 존재가 될 것이다. 모두가 내게 의존한다면 위기가 닥쳐도 나를 방치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자신만의 가치 있는 재능을 널리 알리거나 자신만의 재능을 독보적이고 가치 있다고 인정해 주는 집단을 찾는 일에 사회생활의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지위 추구는 자신을 독보적인 존재로 만들고자 하는 동기들 중 하나다.

두 번째 전략은 당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들로부터 이익을 얻는 동지들과 연합하는 것이다. 그러면 단지 당신의 삶에 힘쓰고 당신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이익을 증진시키는 부수적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결혼이 가장 분명한 예다. 남편과 아내는 자식들의 안녕으로 이익을 공유한다. 두 번째 예는, 마오쩌둥의 어록에 담긴 "나의 적의 적은 나의 동지"다. 세 번째 예는 이를테면 집으로 가는 길 찾기에 능숙한 것처럼 나에게도 이익이 되는 동시에 남들에게도 이익이 되는 기술을 소유하는 것이다. 그 밖의 예로는 나와 같은 온도의 방을 좋아하는 사람이나 나와 같은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과 같이 사는 것이다. 이 모든 예에서 우리는, 비용이 발생하는 동시에 그에 대한 보답이 요구되는 생물학적 의미의 이타주의와는 무관하게 다른 사람에게 이익을 줄 수 있다.


우정 781

일단 나 자신을 누군가에게 가치 있게 만들면 그 사람도 나에게 소중한 존재가 된다. 내가 그(그녀)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내가 어려움에 빠졌을 때 그(그녀)도 내가 곤경에서 벗어나는 것에 이해관계가(비록 이기적인 이해관계이지만) 걸려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그 사람을 소중하게 여긴다면 그들은 나를 더욱 소중히 여겨야 한다, 나는 나의 재능이나 습관 때문에 그들에게 소중할 뿐만 아니라, 궂은 날에 그들을 곤경에서 구하는 일에 이해관계가 걸려 있기 때문에 소중하다, 내가 그 사람을 소중히 여기면 여길수록 그 사람은 나를 더욱 소중히 여긴다. 이렇게 계속되는 과정을 우리는 우정이라 부른다. 만일 사람들에게 당신들은 왜 친구냐고 물으면 그들은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우리는 좋아하는 것이 같고, 서로를 위해 항상 옆에 있어 줄 것임을 안다."


'좋은 날만의 친구fair-weather friend'라는 특별한 이름 781∼782

다른 종류의 이타주의처럼 친구 관계도 사기에 취약하다. 우리는 그 사기꾼들을 '좋은 날만의 친구 fair-weather friend'라는 특별한 이름으로 부른다. 사이비 친구들은 가치 있는 사람들과 교제하면서 그로부터 나오는 이익을 거둬 가고, 그들 자신도 가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온정의 표시를 흉내 낸다. 그러나 빗방울이 떨어지면 그들은 감쪽같이 사라진다. 사람들에겐 좋은 날만의 친구를 솎아내도록 설계된 것처럼 보이는 감정 반응이 있다. 곤경에 빠졌을 때 도움의 손길은 대단히 감동적으로 느껴진다. 우리는 뭉클한 감동을 느끼고, 그 관대함을 결코 잊지 못하고, 또 그것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지 않고는 못배긴다. 진화론의 관점에서 우정의 요점은 곤경에 빠진 친구를 구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소외와 외로움의 원천 782

투비와 코즈미디스는 더 나아가, 마음에 설계된 우정의 감정들이 수많은 현대인들이 느끼는 소외와 외로움의 원천일 수 있다고 추측한다. 눈에 보이는 교환과 주고받기식 호혜는 우정이 없고 신뢰가 낮을 때 의존하는 낮은 차원의 이타주의다. 그러나 오늘날의 시장경제에서 우리는 수도 없이 낯선 사람들과 호의를 교환한다. 이 때문에 우리는 다른 인간들과 깊이 연결되어 있지 않으며 어려움이 닥치면 쉽게 버림받을 수 있다는 인식을 갖게 된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우리에게 물리적 편안함을 주는 환경이 정서적으로는 우리를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는지 모른다. 그런 환경에서는 위기가 최소화되어 누가 진정한 친구인지를 알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호전적 애국주의 789

싸워서 얻을 희귀한 자원이 없는 경우에도 호전적 애국주의는 무서우리만큼 쉽게 촉발된다. 사회심리학자 앙리 타즈펠과 그의 동료들이 수행한 수많은 실험에서, 사람들은 예컨대 화면에 뜬 점들의 수를 과대평가하는지 과소평가하는지, 또는 클레의 그림을 좋아하는지 칸딘스키의 그림을 좋아하는지와 같은 우연하고 표면적이고 사소한 기준에 따라 두 패로 나뉜다. 각 패에 속한 사람들은 즉시 상대편 사람들을 싫어하고 더 나쁘게 생각하며, 자기 집단에 손해가 될 경우에도 그들에게 보상이 돌아가지 않게끔 행동한다. 이 즉흥적인 자민족 중심주의는 심지어 실험자들이 점이나 그림으로 하는 촌극의 막을 내리고 그들의 면전에서 동전을 던져 패를 나눌 때에도 발생한다! 그로부터 나오는 행동상의 결과는 결코 사소하지 않다. 한 권위있는 실험에서 사회심리학자 무자퍼 셰리프는 중산층 출신의 착실한 미국 소년들을 신중하게 선발해 여름 캠프를 연 다음 소년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고 스포츠와 촌극으로 경쟁을 붙였다. 며칠 내에 양 집단은 막대기, 방망이, 돌을 넣은 양말 등으로 상대방 집단을 습격하고 폭행하여 결국 소년들의 안전을 위해 실험자들이 개입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인생의 의미 799


예술의 기능이 베일에 싸인 이유 800

모든 대학에는 예술을 가르치는 교수진이 있고, 그들은 수적으로나 대중의 눈으로나 예술계를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수만 명의 학자와 수백만 장의 논문은 '왜 인간은 예술을 추구하는가'라는 질문에 거의 어떤 답도 제시하지 못한다. 예술의 기능이 두터운 베일에 싸여 있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예술은 미적 심리를 반영할 뿐만 아니라 지위 심리를 반영한다. 진화생물학에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예술의 무용성이 경제학과 사회심리학에서는 너무 잘 이해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경제적 여유가 있다는 것을 과시하려면, 배를 채워 주거나 비를 막아 주지는 못하지만 값비싼 재료, 오랜 세월의 훈련, 불명료한 텍스트에 대한 능숙한 이해, 또는 엘리트 계층과의 친분을 요구하는 장식품과 묘기에 돈을 쓰는 것보다 더 좋은 증거가 무엇이겠는가?

소스타인 베블런과 쿠엔틴 벨은 취미와 유행에 대한 분석에서 소비, 여가, 위반을 통한 엘리트 계층의 광고물들이 하층 계급에 의해 모방되면 엘리트 계층은 모방하기 어려운 새 광고물을 찾아 나선다는 이론을 제시하는 한편, 이 이론이 아니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예술의 기이한 특성들을 적절하게 설명했다. 연대기적 호칭인 동시에 비판적인 용어이기도 한 단어들(고딕, 매너리즘, 바로크, 로코코)에서 알 수 있듯이, 한 세기에 호화로웠던 양식들이 다음 세기에는 낡은 것이 된다. 예술의 확고부동한 후원자들은 귀족과 귀족 계층에 속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다.


존경스러울 정도로 무익한 생활의 증거들 801∼802

학자들과 지식인들은 문화의 욕심쟁이들이다. 오늘날 엘리트 계층의 모임에서, 개인의 건강이나 공공 정책과 관련된 문제를 결정하려면 과학 교육이 대단히 중요하고 필수적인데도 당신이 시인을 위한 물리학 강좌나 지질학 개론을 간신히 통과했고, 그 후로는 과학이라는 것을 접해 본 적이 없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그저 웃고 넘어갈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제임스 조이스라는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없다거나 모차르트를 들어 보려고 했지만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더 낫더라고 말하면, 그것은 당신이 옷소매로 코를 풀거나 당신의 세탁소에 어린아이들을 고용했다고 말하는 것만큼이나 엄청난 충격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인간의 마음에 예술, 지위, 미덕이 결합되어 있다는 사실은 7장에서 보았던 벨의 '의복 도덕성'과 일맥상통한다. 즉 사람들은 모든 비천한 필수품으로부터 해방된 존경스러울 정도로 무익한 생활의 증거들 속에서 품위를 발견하는 것이다.


알기 어렵게 만드는 경향 802∼803

마음속의 무엇 때문에 사람들은 형태와 색과 소리와 농담과 이야기와 신화로부터 즐거움을 느끼는가? 이 질문에는 답이 있을 수도 있지만, 예술 전반에 대한 질문들은 답을 할 수가 없다. 예술 이론들은 자신의 이론을 무너뜨리는 씨앗을 품고 있다. 평범한 사람들이 CD와 그림, 소설을 구입할 수 있는 시대에 예술가들이 출세를 하려면 낡은 것을 피하고,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기존의 지식(그리고 예술을 정의하려는 수십 년에 걸친 헛된 시도들)을 조롱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 동역학을 알아보지 못한다면 어떤 논의도 생산적인 결론을 내지 못한다. 그런 논의에서는 '음악'의 정의에 무조의 재즈, 반음계의 곡들, 지적인 연습곡들을 포함시키기 때문에 왜 음악이 우리의 귀를 즐겁게 해주는지를 설명하지 못할 것이다. 또한 유머를 오스카 와일드의 교묘한 재치로 정의하기 때문에 음탕한 웃음과 가벼운 조롱을 이해하지도 못할 것이다. 예술적 탁월성과 아방가르드는 세련된 취미를 위해 창조되고, 한 장르에 오랫동안 몰입하고 그 장르의 관습과 상투적 표현에 익숙해질 때 나온다. 그것들은 한 수 앞을 내다보는 머리, 불가해한 암시, 특수한 감식안에 의존한다. 아무리 매혹적이고 훌륭해 보여도 그것들은 미적 심리를 밝혀 주기는커녕 오히려 알기 어렵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즐거움 중추를 자극하는 방법들 804

마음의 어떤 부분들은 우리에게 즐거운 감정을 부여함으로써 적응도의 증가를 기록한다. 또 어떤 부분들은 원인과 결과에 대한 지식을 이용해 목표들을 산출한다. 이것들을 결합하면 생물학적으로 무의미한 과제(즉 혹독한 세계로부터 진정한 적응도 향상을 얻어 내는 불편함을 겪지 않고 뇌의 즐거움 회로에 도달하여 순간적인 즐거움들을 얻어 내는 방법)에 도전하는 마음이 탄생한다. 쥐의 내측전뇌다발에 전극을 심고 그곳에 전기 자극을 가하는 레버를 쥐 가까이 두면 쥐는 음식, 물, 섹스의 기회를 마다하고 지쳐 쓰러질 때까지 맹렬하게 그 레버를 누른다. 지금까지 인간의 즐거움 중추에 전극을 심는 신경외과 수술은 존재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다른 수단들을 통해 즐거움 중추를 자극하는 방법들을 알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기분 전환용 약물인데, 이런 약물들은 즐거움 회로의 화학적 접점에 스며든다.


즐거움 테크놀로지 804∼805

즐거움 중추에 도달하는 또 다른 경로는 감각을 경유한다. 감각은 우리 조상들의 환경에서 적응도를 높여 주었을 환경에 처하면 즐거움 회로들을 자극한다. 물론 적응도를 높이는 환경이 직접 나서지는 않는다. 그런 환경은 감각들이 등록할 소리, 광경, 냄새, 맛, 감촉의 패턴들을 발산한다. 이제 지적 기능들이 그 즐거움 패턴들을 알아보고, 깨끗이 다듬고, 농축시킬 수 있다면, 뇌는 성가신 전극이나 약물 없이도 스스로를 자극할 것이다. 뇌는 보통 건강에 좋은 환경들로부터 발산되는 광경과 소리와 냄새의 충분한 분량을 인위적으로 생성할 것이다. 우리가 딸기치즈케이크를 좋아하는 것은 딸기치즈케이크를 위한 미각을 진화시켰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가 진화시킨 것은 잘 익은 과일의 달콤한 맛으로부터 소량의 기쁨을, 견과류와 고기로부터 지방과 기름의 부드럽고 매끄러운 감촉을, 신선한 물로부터 시원함을 느끼게 해주는 회로들이다. 치즈케이크에는 자연계의 어떤 것에도 존재하지 않는 감각적 충격이 압축되어 있다. 그 속에는 우리의 즐거움 버튼을 누르려는 분명한 목적을 위해 인공적으로 조합한 과다한 양의 유쾌한 자극들이 가득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포르노 역시 또 하나의 즐거움 테크놀로지다. 이 장에서 나는 예술도 그와 같은 것임을 보이고자 한다.


종교와 철학 805

마음의 설계로부터 매력적이지만 생물학적으로 무익한 활동들이 나올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이 있다. 지성은 자연적·사회적 대상들의 방어망을 깨기 위해 진화했다. 지성은 사물, 인공물, 생물, 동물, 인간의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추론하는 모듈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세계에는 그 외의 다른 문제들이 있다. 세계는 무엇으로부터 생겨났는가, 유형의 육체로부터 어떻게 무형의 마음이 나올 수 있는가, 왜 착한 사람에게 나쁜 일들이 일어나는가, 죽으면 우리의 생각과 느낌은 어떻게 되는가와 같은 문제들이다. 마음은 그런 의문들을 품을 수 있지만, 심지어 질문 자체에 답이 있는 경우에도 그런 답들을 구하는 장비를 구비하진 못한 것 같다. 마음이 자연선택의 산물이라면 모든 진리에 접근하는 기적 같은 능력을 갖기는 불가능하다. 마음은 단지 우리 조상들의 세속석인 생존 과제들과 충분히 비슷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능력만을 가져야 한다. 아이에게 망치를 주면 온 세상이 못이 된다는 말이 있다. 만일 어떤 생물종이 기계학, 생물학, 심리학의 기초를 이해하는 능력을 갖게 되면, 세상은 온통 기계가 되고 정글이 되고 사회가 된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종교와 철학은 어떤 면에서 마음의 도구들이 애초의 설계 목적에서 벗어나는 문제들에 적용된 결과라는 것이다.


음악은 순수한 즐거움 테크놀로지 810

음악은 순수한 즐거움 테크놀로지, 즉 우리가 대량의 즐거움 회로들을 일시에 자극하기 위해 귀로 섭취하는 기분 전환용 약물들의 칵테일일 것이다.


음악 언어 814

음계에는 또한 감정적 색채를 가미하는 음들이 포함될 수 있다, C장조에서 미가 반음 내려와 미플랫이 되고, 으뜸음인 도와 단3도 간격을 이루면 장3도와 비교하여 슬픔, 고통, 비애의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단7도 역시 '블루 노트'로, 부드러운 슬픔이나 애처로움을 불러일으킨다. 그 밖의 음정들은 냉철하고, 간절하고, 긴요하고, 위엄 있고, 불협화적이고, 당당하고, 무섭고, 결함이 있고, 단호하다는 말로 표현되는 감정들을 발산한다. 이 감정들은 음들이 선율의 일부로서 연속해서 연주될 때에도 촉발된다. 한 음악 언어에 익숙해지려면 각 음정에 내포된 감정들을 경험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그 감정들이 정확히 보편적이라고 하긴 어렵지만 그것은 또한 자의적이지도 않다. 4개월 된 어린 아기들조차도 단2도 같은 불협화음보다는 장3도 같은 협화음을 더 좋아한다. 그리고 그보다 더 복잡한 정취를 배우기 위해, 기쁘거나 우울한 가사와 함께 화음을 듣거나 기쁘거나 우울한 기분에 맞춰 화음을 듣는 등의 파블로프식 조건화를 거칠 필요도 없다. 단지 충분한 시간에 걸쳐 특정한 음악 언어의 선율들을 들으면서 음정 간의 패턴과 대비를 습득하면, 그 속에 내포된 감정들이 자연스럽게 발달한다.


허구에 몰입했을 때 느끼는 즐거움을 강화하기 위해 824∼825

텔레비전 방송국에는 악한 역을 맡은 배우를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시청자들의 우편물, 실연한 등장인물에게 충고를 하는 편지, 아기 출연자들에게 보내는 선물들이 쏟아져 들어온다. 멕시코 영화 관객들은 스크린을 향해 총을 난사한 적이 있다고 한다. 배우들은 팬들이 그들과 그들의 배역을 혼동한다고 불평한다. 《스타트렉》에 출현했던 레너드 니모이는《나는 스폭이 아니다》라는 제목의 회고록을 썼다가 해명을 포기하고 《나는 스폭이다》라는 회고록을 썼다. 이 일화들은 종종 신문에 오르내리면서, 우리 시대의 사람들이 공상과 현실을 구별하지 못한다는 인상을 심어 준다. 내가 생각하기에 사람들은 정말로 착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허구에 몰입했을 때 느끼는 즐거움을 강화하기 위해 극단으로 치닫는 것 같다. 모든 사람에게서 발견되는 그 동기는 어디에서 비롯하는 것일까?


기쁨과 교육 825

호라티우스는 문학의 목적은 "기쁨과 가르침을 주는 것"이라고 썼고, 몇 세기 후에 존 드라이든도 연극을 "인간 본성의 정열과 유머를 표현하고 인간 본성을 지배하는 운명의 변화를 표현하는 인간 본성에 대한 정확하고 생생한 이미지로, 그 목적은 인간의 기쁨과 교육"이라고 정의했다. 여기에서 우리는 인간의 즐거움 버튼을 누르는 무익한 테크놀로지의 산물인 기쁨과 인지적 적응의 산물인 교육을 구별하는 것이 유익할 것이다.


왜 사람들은 허구를 즐기는가? = 왜 사람들은 삶을 즐기는가? 825

착각이 효력을 발휘할 때, "왜 사람들은 허구를 즐기는가?"라는 질문의 답은 명약관화하다. 그것은 "왜 사람들은 삶을 즐기는가?"라는 질문과 동일하다. 책이나 영화에 빠졌을 때 우리는 숨이 멎을 듯한 경치를 관람하고, 중요한 사람들과 허물없이 사귀고, 매혹적인 남녀들과 사랑에 빠지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켜 주고, 불가능한 목표를 성취하고, 사악한 적을 물리친다. 7달러 50센트치고는 결코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다!


최루성 영화는 비극에 대한 승리감을 고취한다 826∼827

그렇다면 착각에 이끌려 슬픔에 빠지는 것을 즐기는 관객들을 위한 최루성 영화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심리학자 폴 로진은 최루성 영화를 흡연, 롤러코스터, 매운 고추, 사우나 같은 양성 마조히즘의 다른 예들과 한 부류로 묶는다. 양성 마조히즘은 한계를 시험하는 시험 비행사의 운항과 같다. 그것은 낭떠러지에 떨어지지 않고 재난의 가장자리까지 얼마나 접근할 수 있는가를 조금씩 시험함으로써 삶의 선택사양을 넓히려는 노력이다. 물론 만일 이 이론으로 불가해한 모든 행동들을 유창하게 설명하려 한다면 공허함에 빠질 것이고, 만일 그 이론으로 사람들은 손톱 밑을 바늘로 찌르기 위해 돈을 지불한다고 예측하려 한다면 그 또한 잘못일 것이다. 그러나 그 개념은 좀 더 섬세하다. 양성 마조히스트들은 그들이 심각한 피해를 전혀 입지 않을 것을 확신해야 한다. 그리고 피해를 제어하고 완화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 최루성 영화의 테크놀로지는 그런 조건에 잘 들어맞는다. 관객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가 끝나면 사랑하는 사람과 무사히 극장 문을 나설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여주인공은 심장마비에 걸리거나 핫도그가 목에 걸려 죽는 것이 아니라 진행성 질병에 걸려 생을 마치기 때문에 우리는 다가올 비극에 대해 감정의 준비를 할 수가 있다. 우리는 여주인공이 죽을 것이라는 추상적인 전제만을 받아들여야 한다. 불쾌한 세부 묘사는 안 봐도 그만이다. 그리고 관객은 주인공이 아니라 가까운 가족과 동일시하고, 그들의 노력에 공감하고, 주인공이 죽어도 삶은 계속된다는 확신을 느껴야 한다. 최루성 영화는 비극에 대한 승리감을 고취한다.


모임을 갖고 소문을 퍼트리는 이유 827

보통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보여 주는 약점들을 추적하는 것도 즐거움 버튼을 누를 수 있다. 이른바 '가십'이 그것이다. 아는 것이 힘이기 때문에 가십은 모든 인간 사회에서 사랑받는 오락이다. 누가 호의를 필요로 하고 누가 호의를 베풀 위치에 있는지, 누가 믿을 만하고 누가 거짓말쟁이인지, 누가 솔로이고(혹은 곧 솔로가 되고) 누가 질투심 많은 배우자나 가족에게 사로잡혀 있는지를 아는 것은 인생의 게임에서 명백한 전략상의 이익을 제공한다. 특히 그 정보가 아직 널리 퍼지지 않아서 마치 내부자 거래처럼 듣는 사람이 기회를 누구보다 먼저 이용할 수 있을 때 전략상의 이익은 더욱 명백하다. 우리의 마음이 진화한 소규모 집단에서는 모든 사람이 다른 모든 사람을 알았고 그래서 모든 가십이 유용했다. 오늘날 우리는 꾸며 낸 인물들의 사생활을 엿보면서 같은 종류의 가십을 스스로에게 속삭인다.


체스 게임보다 수가 많은 인생 831

인생의 수는 체스보다 훨씬 더 많다. 사람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항상 갈등을 겪고, 그래서 사람들의 수와 대응 수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수의 상호작용으로 늘어난다. 가상의 딜레마에 빠진 죄수들처럼 파트너들은 현재의 수와 다음 수에서 협조를 할 수도 있고 변절을 할 수도 있다. 부모, 자식, 형제들은 유전자의 부분적 중복 때문에 공통의 이해와 대립적 이해를 모두 갖고 있으며, 한쪽이 상대방에게 행하는 어떤 행동이든 이타적이거나 이기적일 수 있고 또는 둘의 결합일 수도 있다. 소년이 소녀를 만날 때 어느 한쪽이나 양쪽 모두 상대방을 배우자로 보거나 하룻밤 상대로 보거나 무의미한 사람으로 볼 수 있다. 배우자는 충실할 수도 있고 바람을 피울 수도 있다. 친구는 미덥지 못한 친구일 수 있다. 동맹자는 공평하게 분담한 위험보다 적은 양만을 떠안거나, 운명의 화살이 그에게 향하는 순간 변절을 할 수가 있다. 낯선 사람은 경쟁자일 수도 있고 완전한 적일 수도 있다. 여기에 사기의 가능성이 더해지면 게임들은 더 높은 차원으로 확대되어, 모든 말과 행동이 참이거나 거짓이거나 자기기만일 수 있고, 자기기만일 때에는 진지한 말과 행동조차 참이거나 거짓일 수 있다. 여기에 역설적 전술과 대응 전술이 더해지면 게임들은 더욱 높은 차원으로 확대되어, 개인의 평범한 목표들-통제, 이성, 지식-은 본인에 의해 무효화되고 단지 그를 협박할 수 없는 사람, 믿을 가치가 있는 사람, 또는 도전하기에 너무 위험한 사람으로 만드는 수단이 된다.


예술의 기능 832

갈등에 빠진 사람들의 음모는 너무나 많은 측면들과 결합하면서 증가할 수 있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마음의 눈으로 모든 행동의 결과를 펼쳐볼 수가 없다. 허구의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언젠가 직면할 수 있는 운명의 수수께끼들과, 그 속에서 전개할 수 있는 전략들의 결과를 요목별로 정리해 준다. 만일 나의 삼촌이 나의 아버지를 죽이고 그의 자리를 빼앗고 내 어머니와 결혼했다는 의심이 든다면 내가 취할 수 있는 선택사양은 무엇인가? 만일 나의 불행한 형이 가족 내에서 전혀 대접받지 못한다면 형이 나를 배반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을까? 아내와 딸이 주말여행을 떠났을 때 어느 의뢰인이 나를 유혹했다면, 벌어질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은 무엇일까? 시골 의사의 아내로서 나의 지루한 삶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바람을 피운다면 어떤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수 있을까? 오늘 당장 내 땅을 빼앗으려는 악당들에게 무모한 충돌을 피하는 동시에 당당한 모습을 잃지 않으면서 내일 넘겨주겠다고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에 대한 답들은 어느 서점이나 비디오가게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인생이 예술을 모방한다는 진부한 표현은 사실이다. 예술의 기능은 인생이 그것을 모방하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위엄의 격하 839

위엄의 격하는 또한 성적이고 외설적인 유머의 보편적인 매력을 뒷받침하는 기초다. 전 세계 대부분의 위트는 알공킨 원탁모임보다는《애니멀 하우스》에 더 가깝다. 샤농은 야노마뫼족의 가계조사를 시작할 때, 저명한 사람들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는 그들의 터부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다. 샤농은 피조사자들에게 저명한 개인의 이름과 그 친척들의 이름을 귀에다 속삭이라고 요청했고, 그 때문에 어색한 과정을 몇 번씩 반복한 후에야 이름을 정확히 들을 수 있었다. 이름이 거론된 사람이 샤농을 노려보고 구경꾼들이 킥킥대고 웃으면 샤농은 안심하고 그의 진짜 이름을 기록했다. 몇 달에 걸쳐 정성스럽게 가계를 정리한 후 이웃 부락을 방문하던 중에 샤농은 자랑삼아 그곳 추장 부인의 이름을 불쑥 꺼냈다.

순간 싸늘한 침묵이 흘렀고 잠시 후 온 마을이 걷잡을 수 없는 웃음, 목메임, 헐떡거림, 아우성에 빠졌다. 사람들 앞에서 나는 비사시테리의 추장이 "털 많은 성기'와 결혼했다고 생각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 그뿐 아니라 나는 추장을 '기다란 음경'으로, 그의 형제를 '독수리 똥'으로, 그의 한 아들을 '병신 같은 놈'으로, 그의 딸을 '방귀 냄새'로 부르고 있었다. 다섯 달 동안 심혈을 기울여 가계조사를 한 결과가 터무니없는 헛소리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닫자 관자놀이에 피가 솟구쳤다.


관계의 기초 847

우위와 지위의 논리는 암묵적인 위협과 뇌물에 기초하고, 윗사람이 그것을 유지할 수 없게 되면 물거품처럼 사라진다. 우정의 논리는 어떤 상황에서든 끝까지 돕겠다는 약속에 기초한다. 사람들은 지위와 우위를 원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친구를 원한다. 지위와 우위는 시들 수 있지만 친구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곁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둘은 양립이 불가능하고, 그래서 신호의 문제가 발생한다. 어떤 관계의 두 사람이든 한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더 강하거나, 영리하거나, 부유하거나, 잘생겼거나, 인맥이 좋기 마련이다,. 거기에는 항상 지배-복종, 또는 유명인-팬의 계기들이 존재하지만, 친구 사이라면 어느 쪽도 관계가 그런 방향으로 발전하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이 친구 위에 군림할 수 있거나 친구가 당신 위에 군림할 수 있는 속성들을 나쁘게 말한다면, 적어도 당신에게는 관계의 기초가 지위나 우위가 아니라는 점을 상대에게 전달하는 셈이 된다. 만일 그 신호가 무의식적이고 그래서 조작하기 힘든 것이라면 더욱 좋을 것이다.

만일 이 이론이 옳다면 그것은 성인의 웃음과, 모의 공격 및 간지럼에 대한 아이들과 침팬지의 반응 간의 상동성을 설명해 준다. 웃음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너를 해치려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실은 우리 둘 모두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 중이야.' 위의 이론은 또한 왜 농담이 두 사람의 관계를 평가하는 정밀기계인지를 설명해 준다. 우리는 윗사람이나 낯선 사람을 놀리지 않는다. 물론 한 사람이 시험적으로 재치 있는 농담을 날리면 분위기가 부드러워지고 우정이 싹틀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놀림이 달갑지 않은 웃음이나 냉랭한 침묵을 유발한다면 그것은 상대방에게는 당신의 친구가 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다는 뜻이다. 친구 간에도 한쪽이 우위를 점하게 만드는 유혹들이 상존하지만, 좋은 친구들이 끊임없이 킥킥거리는 것은 관계의 기초가 여전히 우정이라는 것을 재확인하는 행위다.


종교는 어떻게 인간의 마음에 딱 들어맞는 것일까? 848∼849

"모든 어리석음 중에 가장 흔한 것이 명백한 거짓을 열정적으로 믿는 것이다. 그것이 인간의 주업이다"라고 H.L. 멩켄은 썼다. 모든 문화에서 사람들은 영혼은 죽지 않고, 질병과 불행은 혼령, 유령, 성인, 요정, 천사, 악마, 신령, 악령, 신이 주거나 가져간다고 믿는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오늘날 미국인의 25퍼센트가 마녀를 믿고, 거의 절반이 유령을 믿고, 절반이 악마를 믿고, 절반이 창세기의 내용을 곧이곧대로 믿고, 69퍼센트가 천사를 믿고, 87퍼센트가 예수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했다고 믿고, 96퍼센트가 신이나 만유의 영을 믿는다고 한다. 종교는 어떻게 명백한 거짓을 거부하도록 설계되었을 것만 같은 인간의 마음에 딱 들어맞는 것일까? 사람들은 자비로운 목자, 우주의 설계, 사후 세계 등을 생각하면서 위안을 얻는다는 일반적인 설명은 불만족스럽다. 그래 봤자, "왜 인간의 마음은 명백한 거짓으로 보이는 믿음에서 위안을 찾도록 진화했을까?"라는 질문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얼어붙고 있는 사람은 자기 몸이 따뜻하다는 믿음으로 위안을 얻지 못하고, 사자와 마주친 사람은 그것을 토끼라고 믿음으로써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한다.


'기도하다' 850

이제 종교의 심리학을 구성하는 정말로 특별한 부분에 초점을 맞춰 보자.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는 모든 문화의 종교들을 관통하는 공통점을 최초로 지적했다. 즉, 종교는 성공의 기술이라는 것이다. 앰브로즈 비어스는 '기도하다'를 '자신의 무가치함을 고백하는 단 한 명의 기원자를 위해 세계의 법칙들을 폐기시켜 달라고 요청함'으로 정의했다. 세계 어디서나 사람들은 병의 쾌유를 위해, 사랑이나 전쟁에서의 성공을 위해, 좋은 날씨를 위해 신들과 혼령들에게 기도한다. 종교는 판돈이 크고 성공의 인과관계에 유효한 일반적인 기술(의료, 전략, 구애, 그러나 날씨의 경우는 속수무책이다)이 소진되었을 때 사람들이 의존하는 최후의 수단이다.


호모사피엔스의 마음 859

철학적 문제들이 어려운 것은 아마도, 그것들이 신성하거나 환원 불가능하거나 무의미하거나 현실적인 과학이기 때문이 아니라, 호모사피엔스의 마음에 그런 문제를 해결하는 인지적 장비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천사가 아니라 유기체이고, 우리의 마음은 진리로 통하는 파이프라인이 아니라 생물학적 기관이다. 우리의 마음은 조상들의 생사를 좌우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도록 자연선택에 의해 진화했지, 정확함을 벗삼기 위해서나 온갖 질문에 답하기 위해 진화한 것이 아니다. 인간은 단기 기억에 1만 단어를 담지 못한다. 인간은 자외선을 보지 못한다. 인간의 마음은 물체를 4차원으로 회전시키지 못한다. 그리고 인간은 자유의지나 감각력 같은 수수께끼도 풀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인지 기능의 수가 우리보다 적은 생물체를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개에게는 우리의 언어가 "어쩌구 저쩌구 어쩌구 저쩌구"로 들리고, 쥐는 먹이 가지의 개수가 소수인 미로를 학습하지 못하고, 자폐아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아이들은 섹스 때문에 왜 그런 법석을 피우는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어떤 신경계 환자들은 얼굴의 모든 부분을 알아보면서 정작 누구의 얼굴인지는 식별하지 못하고, 입체맹시인 사람들은 입체그림을 기하학상의 문제로 이해하면서도 그것이 다른 깊이로 튀어나오는 것을 보지 못한다. 만일 그들이 사실을 알지 못한다면, 3차원 영상을 기적이라 부르거나, 그것은 그냥 존재하는 것이므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거나, 그것을 일종의 속임수로 치부해 버릴지 모른다.

그렇다면 인지 기능이 우리보다 '더 많은' 생물체나, 인지 기능이 우리와 '다른' 생물체는 없을까? 그런 생물체가 있다면 그들은 자유의지와 의식이 어떻게 뇌로부터 생겨나는지, 의미와 도덕성이 어떻게 객관세계와 맞아떨어지는지를 쉽게 알아낼 것이고, 그런 문제에 직면했을 때 우리가 허전함을 달래기 위해 시도하는 종교적·철학적 물구나무서기를 보고 재미있어 할 것이다. 그들이라면 우리에게 답을 설명해 줄 수 있겠지만, 막상 우리는 그 설명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자연계의 훌륭한 고안품 862

수학에서 정수는 덧셈에 대해 닫혀 있다고 말한다. 두 정수를 더하면 정수가 나오고, 절대로 분수가 나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것은 정수의 집합이 유한하다는 뜻은 아니다.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생각은 우리의 인지 기능에 대해 닫혀 있기 때문에, 철학의 수수께끼들에 대한 정답을 알아낼 수는 없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도달 가능한 생각의 집합은 무한할 수 있다.

인지적 닫힘은 비관적인 결론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나는 그것이 아주 고무적이며, 마음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거둔 대단한 진보의 증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나에게 이 책의 목표, 즉 독자들로 하여금 잠시 자신의 마음 밖으로 걸아 나와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유일한 존재 가능성으로서가 아니라 자연계의 훌륭한 고안품으로 보게 하는 것을 달성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첫째, 마음이 자연선택에 의해 설계된 기관들의 체계라면, 왜 우리는 마음이 모든 신비를 이해하고 모든 진리에 도달할 것이라고 기대해야 하는가? 우리는 과학적 문제들이 식량수집 조상들의 문제에 대해 구조상 충분히 닫혀 있어서 우리가 이 정도의 진전을 이루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한다. 만일 우리가 이해하지 못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 우리는 마음을 자연의 산물로 바라보는 과학적 세계관을 문제시해야 할 것이다.


마음의 힘 863

어떤 문제들이 왜 우리의 이해력을 벗어나는지를 얼핏 볼 수 있다는 것만 해도 한결 다행스런 일이다. 이 책에서 반복되어 온 주제는, 마음의 복잡한 생각들은 좀 더 간단한 생각들의 조합물이고, 전체의 의미는 부분들의 의미 및 부분과 전체를 연결하는 관계(전체의 부분, 범주 속의 사례, 한 장소에 존재하는 사물, 힘을 가하는 행위자, 결과의 원인, 믿음을 품는 마음)의 의미에 의해 결정된다. 이 논리적이고 법칙적인 관계들은 일상적 언어를 구성하는 문장의 의미를 제공하고, 유추와 은유를 통해 과학과 수학의 내밀한 내용에 자신의 구조를 빌려 주면 과학과 수학에서는 그것들을 결합하여 점점 더 큰 이론적 구조물들을 만들어 낸다. 우리는 물질을 분자·원자·쿼크로 이해하고, 생명을 DNA·유전자·계통나무로 이해하며, 변화를 위치·운동량·힘으로 이해하고 수학을 기호와 연산으로 이해한다. 이 모두가 법칙에 따라 구성된 요소들의 결합물이고, 그래서 전체의 특성은 부분들의 특성과 그 결합 방식으로부터 예측이 가능하다.


우리의 마음이 자연의 일부라면 865

'나'는 신체 부위들이나 뇌 상태들이나 정보 단위들의 조합이 아니라, 시간과 함께 존재하는 자아의 통합체이며 구체적인 위치에 존재하지 않는 단일한 궤적이다. 자유의지는 사건들과 상태들의 인과적 연쇄가 아닌 것이 자명하다. 의미의 조합적 측면(말이나 생각이 어떻게 결합하여 문장이나 명제의 의미가 되는가)은 밝혀졌지만 의미의 핵심, 즉 어떤 것을 지시하는 단순한 행위는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이상하게도 그것은 지시된 대상과 지시하는 개인 간의 어떤 인과관계와도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지식 역시 인식자가 한 번도 부딪혀 본 적이 없는 것을 알고 있다는 모순을 던져 준다. 우리가 의식, 자아, 의지, 지식의 수수께끼들에 속수무책인 것은 그 문제들의 본질과 자연선택이 우리에게 갖춰 준 계산 장치들 간의 불일치 때문일 것이다.

이 추측이 옳다면, 우리의 정신은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괴롭힘을 선사할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부정하기 힘든 존재인 우리의 의식은 영원히 우리의 개념적 이해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의 마음이 자연의 일부라면, 그것은 기대할 만하고 심지어 환영할 만한 일이다. 자연계는 생물체들과 그 부분들의 특화된 설계로 경외감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는 독수리가 땅 위에서 어색하게 행동한다고 해서 그들을 놀리지 않고, 눈이 소리를 못 듣는다고 해서 초조해하지 않는다. 하나의 설계는 다른 과제들과 타협할 때에만 자신의 과제를 탁월하게 해결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의 불가사의 앞에서 느끼는 인간의 좌절감은 인간의 마음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들, 즉 단어와 문장, 이론과 방정식, 시와 선율, 농담과 이야기의 세계를 열었던 조합적 마음을 얻기 위해 지불한 비용일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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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09-24 0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크랩 글귀를 보다보니, 얼마 전에 읽은 <집단 정신의 진화>라는 책이 떠올려집니다.

<우리의 마음이 자연의 일부라면>의 글귀를 열심히 읽어보는 중입니다.
가끔 우리는 사물이나 세상을 너무 조각내어 다루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결국 자연의 일부인데 말이죠. 동양의 사상처럼, 인디언의 종교처럼 자연스러운 합치가 가장 좋겠지만, 참 어려워요.
제가 지금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종종 모르겠다고 느낀답니다. ^^

oren 2010-09-24 13:42   좋아요 0 | URL
마고님의 댓글 끝부분을 보니, 문득 yamoo님이 소개해주셨던 '악마의 사전'이 생각납니다.
스티븐 핑커의 또 다른 책《빈 서판》에 나오는 내용인데 옮겨봅니다.
이 대목이 나오는 책의 여백에는 '내 마음 나도 몰라....'라고 적어놨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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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수수께끼들 422

우리의 조합적 지능으로 최선을 다해 분석해 봐도 그 이상한 실체들을 낚아 올릴 만한 낚싯바늘을 얻어낼 수가 없어서, 그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은 어쩔 수 없이 그 존재를 부정하거나 신비주의로 빠지게 된다. 좋건 궂건 우리의 세계는 항상 약간의 신비를 간직하고 있어서 우리 후손들은 끝없이 종교와 철학의 오래된 수수께끼들을 숙고할 것인데, 그 수수께끼들은 결국 물질과 마음의 개념들과 연결되어 있다. 앰브로즈 비어스의 『악마의 사전』에서는 마음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마음 [명] 뇌에서 분비되는 신비한 물질 형태. 주요 작용은 자신의 본질을 확인하려는 노력에 있으나, 그 시도가 무익한 것은 자신의 본질을 알기 위해 오직 자기 자신에게만 의존해야 한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마녀고양이 2010-09-26 16:10   좋아요 0 | URL
어머! 전 야무님의 리뷰를 헛읽었나봐요!
<악마의 사전>이 앰브로즈 비어스의 저서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