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를 소개합니다.

 

『돈키호테』는 흔히 '비교의 대상이 없는, 세계 최고의 장편소설'이라고 불리고 있지요. 지금으로부터 무려 400년 전에 쓰여진 소설이 도대체 무슨 이유로 지금껏 쓰여진 그토록 많은 소설들을 모조리 제치고 당당히 세계 최고의 소설이라는 위치를 차지하게 된 걸까요?

 

그 이유들을 살펴보기 위해 우리가 몇몇 인물들을 만날 필요가 있다면, 아마도 도스토예프스키 선생부터 가장 먼저 불러내야 마땅하지 싶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하지요.

 

전 세계를 뒤집어 봐도 『돈키호테』보다 더 숭고하고 박진감 넘치는 픽션은 없소이다.

 

현대 소설의 개척자로 불리는 『마담 보바리』의 작가 귀스타브 플로베르는 또 무슨 말을 했을까요?

 

나는 『돈키호테』 속에서 나의 근원을 발견했소이다.

 

『대중의 반역』,『돈키호테 성찰』을 쓴 스페인의 철학자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는 또 무슨 말을 남겼을까요?

 

아! 세르반테스의 문체가 어떤 것이며,

사물에 접하는 그의 방식이 어떠한 것이지 분명히 알 수 있다면 우리는 모든 것을 얻을 텐데!

 

'인문학계의 찰스 다윈'으로 불린 르네 지라르는 더욱 자극적인 말을 남겼습니다. 『돈키호테』 이후에 쓰인 소설은 『돈키호테』를 다시 쓴 것이나 그 일부를 쓴 것이라고 말이지요. 밀란 쿤데라도 이와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었지요. "모든 소설가는 어떤 식으로든 세르반테스의 자손들"이라고 말이지요.

 

예일대에서 오랫동안 문학을 강의하다 작년에 타계한 해럴드 블룸 또한 이 불후의 걸작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남겨놓았습니다.

 

소설을 읽는 방법과 읽어야 하는 이유를 말할 때 세르반테스의 『돈 키호테』는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 모든 소설의 선두요 최고를 차지하는 이 책은 소설 그 이상이다.

 

나는 지난 4세기 동안 상상력으로 흘러넘친 문학계에서 세르반테스야말로 셰익스피어의 유일한 경쟁자라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돈키호테는 햄릿의 대적자요 산초 판사는 폴스타프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 나는 그 이상의 찬사가 떠오르지 않는다.

 

『돈 키호테』에서는 끊이지 않고 사건이 일어나는데, 가장 중요한 건 산초와 돈키호테 간에 쉴새없이 이어지는 대화라고 볼 수 있다. 그냥 손길이 닿는대로 아무 페이지나 펼쳐 봐도 두 사람이 대화의 늪에 빠졌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다. 그 밑바탕에는 서로 으르렁거리며 변덕을 부리기는 해도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이 깔려 있다.

 

세르반테스는 우리 중 대다수의 사람에게 돈키호테적인 모습과 산초척인 측면이 섞여 있다고 생각했다. 왜 『돈 키호테』를 읽는가? 모든 극작가들 가운데 셰익스피어가 최고라면, 세르반테스의 작품은 모든 소설 중 으뜸이며 최상이다. 따라서 돈 키호테와 산초 판사를 알기 전에는 우리 자신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돈키호테』는 실로 까마득한 옛날에 쓰여진 작품인데도 그 작품을 읽는 독자들이라면 시대를 가리지 않고 누구나 웃음을 참지 못할 정도로 아주 재미있는 소설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이 작품이 유발하는 '웃음'이 참으로 정의하기가 어렵다는 점이 몹시 특별합니다. 또다른 문학평론가의 이야기를 들어보지요.

 

『돈키호테』는 아주 유머러스한 소설이다. 이 책과 관련하여 이런 일화가 전해진다. 스페인의 펠리페 3세가 지방 순찰을 나갔다가 길옆에서 책을 읽고 있던 어떤 남자가 눈물을 줄줄 흘릴 정도로 크게 웃고 있는 것을 보았다. 왕은 말했다. "저 남자는 미쳤거나 아니면 『돈키호테』를 읽고 있을 것이다." 어떤 독자들은 큰 소리로 웃고, 어떤 독자는 빙그레 웃고, 어떤 독자는 겉으로 웃고, 또 어떤 독자는 속으로 웃는다. 그리고 어떤 독자는 기쁨과 슬픔이 뒤섞인 기이한 감정 상태로 읽는다. 세르반테스의 유머는 정의하기가 어렵다.

 - 클리프턴 패디먼, 『평생독서계획』중에서

 

그렇습니다. 이 책은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소설이라고 불리면서도 정작 이 작품이 유발하는 '웃음'을 한마디로 정의하기가 어렵다는 점에서 몹시 특별한 책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잠깐 '웃음 연구'의 권위자인 프랑스의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의 말을 살펴볼 필요도 있을 듯합니다.

 

˝넘어지는 것은 물론 똑같다. 하지만 한눈을 팔다가 우물에 빠지는 것과, 별만 바라보다가 우물에 빠지는 것은 다르다. 돈키호테가 열심히 보았던 것은 바로 별이다. 이 공상과 망상의 정신이 추구한 웃음의 깊이는 얼마나 심오한가.˝
- 앙리 베르그송, 『웃음』중에서
 

 

그렇습니다. 중세에 유행했던 기사 소설에 미친 끝에 스스로 늙은 말 한 필을 이끌고 편력 기사가 되어 모험을 떠나고, 풍차를 거인으로 오해하고 달려들어 싸우다가 만신창이가 되는 등 온갖 기발한 모험을 끝없이 펼치는 이 용감무쌍하고도 초라한 몰골의 기사, 돈키호테 데 라만차를 우리는 단순히 미치광이로만 취급할 수가 없습니다. 그 까닭은 조금 더 뒤에 차차 살펴보기로 하고, 우선 이 걸작을 써낸 작가 세르반테스에 대해 조금 살펴보고 넘어가지요. 

 

이 소설을 쓴 세르반테스는 비록 '길거리에 떨어져 있는 찢어진 종이라도 주워 읽는 열렬한 독서광'이었다고는 하나, 제대로 된 대학 과정을 밟은 적도 없고, 『돈키호테』1부를 출판(1605년)한 58세 때까지 참으로 굴곡이 많은 삶을 살았던 인물이었습니다. 20대 초반에 그는 '스페인 법'을 어긴 일이 있었는데, 별로 중대하지도 않은 죄목으로 중벌에 처해지자 고향 마드리드를 떠나 이탈리아로 도망쳤고, 거기서 2년 동안 고위급 사제의 시종이자 수행원으로 일하다가 어느날 갑자기 군대에 자원 입대하게 되지요.

 

그가 참전한 전쟁은 저 유명한 '레판토 해전'이었습니다. 거기서 그는 투르크 군대와 용감무쌍하게 싸우다가 큰 부상을 입어 왼손을 잃게 되면서 '레판토의 외팔이'라는 별명을 얻지요. 그런 후에도 그는 5년 동안이나 더 군대에 몸을 담았습니다. 마침내 명예롭게 전역하기 위해 스페인으로 향하는 배에 올랐던 그는 그만 태풍에 휩쓸려 터키 해적의 습격을 받은 끝에 알제로 끌려가 그리스인 해적에게 양도되어 5년 동안이나 포로로 갇혀 지내는 신세가 되고 말지요. 포로로 노예 생활을 하는 동안 네 번의 탈출 시도가 모두 실패했지만 교회 수사의 도움으로 몸값을 치르고 극적으로 자유의 몸이 된 그는 다시 고국으로 돌아옵니다. 그가 전역 후 취직한 직장에서 맡은 일도 <무적함대>에 식량을 납입하고 조달하는 일이었다고 하지요. 그 일을 하면서도 그는 두 번이나 옥살이를 하는 등 늘 신체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곤궁한 삶을 살았던 인물이었습니다.

 

『돈키호테』를 구상한 것도 감옥에서였다고 하지요. 체납 세금 징수원으로 일하던 50세 때 하필 징수한 돈을 예금해 둔 은행이 파산하는 바람에 세비야에서 8개월 동안 감옥살이를 하던 무렵이었습니다. 이토록 굴곡진 삶을 살았던 그가 결코 적지 않은 나이인 58세 때 내놓은 소설이 바로『돈키호테』였습니다. 1부의 원제목은 『기발한 이달고 돈키호테 데 라만차』였지요. 그런데 더욱 놀라운 건 그가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인 68세 나이에 또다시 『돈키호테』 2부를 내놓았다는 점입니다. 그 책의 원제목은 『기발한 기사 돈키호테 데 라만차』였지요.

 

그런데 어떤 작품이든지 전작이 빅히트를 치고 나서 그 다음에 후속편이 나오면 대개 그 후속편은 전작 만큼의 감동을 주기 어려운 게 일반상식이지요. 그렇지만 늘상 예외없는 법칙은 없듯이 『돈키호테』또한 그런 통념을 여지없이 깨트리는 불후의 걸작이 되었지요.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의 속편을 얼마나 훌륭하게 썼는지를 알게 되면 돈키호테의 전편만 읽고 소설 『돈키호테』를 다 읽었다고 말하는게 얼마나 어리석은 이야기인지도 알게 됩니다. 

 

이왕 얘기가 나온 김에 여기서 잠시 (작가의 말도 들어볼겸) 소설 『돈키호테』 속으로 직접 뛰어들어가 보지요. 


「그런데 혹시 ······.」돈키호테가 말했다. 「그 작가가 후속편을 약속하고 있소?」 

 

「그럼요.」삼손이 대답했다. 「하지만 아직 발견되지 않았으며 누가 그것을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 책이 나올 것인지 안 나올 것인지 우리도 궁금해하고 있답니다. 이런 사정인 데다 <속편은 절대로 좋지 않다>라고 말하는 자도 있어서 후속편은 나오지 않을 거라고들 생각하지요. 토성보다 목성의 영향 아래 태어난 사람들 중에는 <돈키호테 같은 짓을 더 보여 다오. 돈키호테는 돌진하고 산초 판사는 말하라, 무엇이든 간에 말이다. 그래야 우리가 그것으로 즐거울 것이다>라고 말하는 자들도 있긴 하지만요.」

 

「작가는 어쩔 생각이라 하오?」

 

「그가 혈안이 되어 찾고 있는 이야기를 발견하는 즉시, 다시 칭찬을 얻겠다는 뜻에서라기보다 그에 따를 이익 때문에 인쇄로 넘기겠지요.」

 

 - 『돈키호테 2』 <4. 산초 판사가 학사 삼손 카라스코의 의문을 풀어 주고 질문에 대답한 내용, 그리고 알아 두고 이야기할 만한 다른 일들에 대하여> 중에서


작가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 2부를 얼마나 긴밀하고도 흥미롭게 1부와 서로 엮어 놓았는지를 알게 되면 독자들은 누구라도 작가의 이야기 솜씨에 감탄하지 않을 도리가 없지요.

 

자, 그렇다면 이제부터 『돈키호테』의 이야기 속으로 조금 더 깊숙히 들어가 볼까요? 우선,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는 도대체 왜 그토록 무모하고도 어리석은 모험을 떠나게 되었을까요?

 

우리의 주인공 돈키호테는 스페인 라만차의 어느 마을에 사는 알론소 키하노라는 쉰을 넘긴 시골 노인네였습니다. 그는 이달고라는 신분에 어울리는 유유자적한 삶을 살고 있었는데, 당시 유행하던 기사도 소설에 빠져 식음을 전폐하며 탐독을 하다가 그만 미치게 되어 스스로 편력기사를 자처하게 되지요. 그리고 세상에 만연한 불의를 바로잡고 약한 자들을 돕는다는 원대한 꿈을 실현하기 위해 모험에 나서게 됩니다. 이때 그는 자신의 이름을 기사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처럼 돈키호테 데 라만차로 고치고, 이웃 마을의 촌부 알돈사를 둘시네아 델 토보소라는 이름의 공주이자 귀부인으로 격상시키고, 낡은 갑옷으로 무장하고, 비쩍 마른 말인 로시난테에 올라 길을 나서게 되지요.

 

첫 번째 출정에서는 객줏집 주인에게서 기사 서품을 받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지요. 기사로서 갖추어야 할 준비사항들이 너무 허술했기 때문이었지요. 집으로 돌아오는 중에도 그는 어설픈 기사 흉내를 내다가 상인들에게 우롱 당하고 심한 매질을 당하게 되지요. 만신창이가 되어 땅바닥에 뒹구는 돈키호테를 발견한 이웃 사람이 겨우 구출하여 집으로 데려오게 됩니다. 이로써 사흘간의 첫 출정은 끝나지요.

 

돈키호테가 집에서 몸을 추스르는 사이에 참으로 안타까운 대참극이 하나 벌어집니다. '책' 때문에 '돈키호테 삼촌'이 너무 이상하게 변했다고 생각한 조카딸이 마을 신부에게 '서재 검열'을 요청했고, 그 검열에 참여한 신부와 이발사와 가정부와 조카딸이 주인장도 모르는 사이에 수많은 책들을 '화형'에 처하고 사건이 벌어졌으니까요.

 

그 때 불길 속으로 사라진 책들이 과연 어떤 작품들이었는지, 그 눈물겨운 화형식이 얼마나 흥미롭게 진행되었는지만 살펴 보더라도 돈키호테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또한 작가 세르반테스가 얼마만큼 지독한 독서광이었는지를 넉넉히 짐작하고도 남지요. 아무튼 그 엄숙한 검열과 화형식에 관한 이야기는 무려 11쪽 분량으로 길게 이어지는데, 그 때 살아남은 몇 권의 책 가운데 하나가 바로 『아마디스 데 가울라』였지요.

 

그 책은 스페인 기사 소설의 대표작인데,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01권』에도 포함될 정도로 걸작인 데다가, 소설 『돈키호테』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책이기도 하지요. 돈키호테는 바로 그 책을 전범으로 삼아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지요. 아무튼 그 때 화형식에 처해진 책들의 목록은 『장미의 이름』을 쓴 작가 움베르토 에코의 『궁극의 리스트』에도 등장할 만큼 무척 인상적입니다.

 

자신의 서재가 '엄숙한 검열'을 당한 끝에 애지중지하던 책들은 물론 서재까지 통째로 사라졌는데도 돈키호테는 태연스레 그 상황을 받아들입니다. 어떤 현자의 마법 때문에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조카딸의 대답에 응당 그럴 줄 알았다는 식으로 도리어 한 술 더 뜨는 반응까지 보이지요. 그는 여전히 자신만의 환상 속에서 깨어나기 싫을 뿐 아니라, 일부러라도 그런 상황 속으로 자신을 밀어넣을 정도였지요.

 

이렇게 해서 돈키호테가 다시 '편력 기사의 모험'을 떠나기 위해 '본격적인 준비'에 착수하는데, 바로 여기서 '서양 문학의 역사상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등장하니 그가 바로 '산초 판사'이지요.

 

이 기간 동안 돈키호테는 이웃에 사는 착한 ㅡ 이러한 표현을 가난한 사람에게 붙일 수 있다면 말이다 ㅡ 그러나 머리가 약간 모자라는 한 농부에게 간청했다. 돈키호테의 간절한 부탁과 설득과 약속으로 결국 이 가엾은 자는 돈키호테의 종자가 되어 집을 나가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돈키호테가 그에게 한 여러 가지 약속들 중 하나는, 만약 그가 기꺼이 자기를 따라나서 준다면 모험으로 아무리 못해도 어떤 섬을 얻게 되었을 때 그 섬을 다스리게 해주겠다는 것이었다. 이런저런 약속에 끌려 산초 판사는 마누라와 자식을 버리고 자기 이웃의 종자가 될 것을 승낙했다.

 

그다음 돈키호테는 돈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어떤 것은 팔고 어떤 것은 저당 잡히며 모든 것을 헐값에 처분하여 적지 않은 돈을 만들었다. 그런 다음 친구에게 방패 하나를 빌리고 부서진 투구도 최대한 잘 손질했다. …… 모든 준비가 끝나자 산초 판사는 처자식에게 작별 인사도 없이, 돈키호테는 가정부와 조카딸에게 작별 인사도 없이, 어느 날 밤 아무도 모르게 그곳을 떠났다. 그날 밤 얼마나 걸었던지 새벽녘이 되었을 때에는 누가 그들을 찾아 뒤쫓아 온다 해도 따라잡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산초 판사는 자루와 술통을 당나귀에 매달고 그 위에 앉아서 주인이 약속한 섬의 통치자가 되리라는 강한 희망에 사로잡힌 채 족장처럼 우쭐대며 가고 있었다. 돈키호테는 처음 길을 떠났을 때의 그 방향과 그 길로 우연히 다시 가게 되었는데 그곳은 바로 몬티엘 들판으로, 이번에는 지난 번보다 훨씬 수월하게 나아갈 수 있었다. 아침나절이라 햇살이 비스듬하고 뜨겁지 않아 그들을 지치게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때 산초 판사가 주인에게 말했다.

 

「편력 기사 나리, 제게 약속한 섬 이야기를 잊으시면 안 됩니다요. 아무리 큰 섬이라도 전 문제없이 다스릴 수 있거든요.

 

 - 『돈키호테 1』, <7. 우리의 착한 기사 돈키호테 데 라만차가 두 번째로 집을 나서는 이야기>

 

산초 판사는 돈키호테와 모험을 함께 하는 동안 '섬 이야기'를 수백 번도 더 끄집어 내지요. 왜냐하면 그는 돈키호테와 달리 '지극히 현실적인 인물'이기 때문이지요. 그가 돈키호테와 함께 '편력 기사의 종자'로 따라다니며 온갖 곤욕을 다 치르면서도 결코 '동행'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도 오로지 '섬을 다스릴 부푼 희망' 때문이었지요. 그리고 돈키호테의 속편에서 (공작 부부의 농간에 의해) 진짜로 그 희망이 실현되었을 때 그는 비로소 자신의 꿈이 헛되다는 걸 절감하고 도리어 '평범했던 옛날'로 되돌아가기를 갈망하게 되지요.

 

주변 사람들이 한사코 만류하는데도 섬의 통치자에서 기어코 벗어나기를 갈망하는 산초의 이야기가 더욱 재미있는 건, 애시당초에 작가가 돈키호테의 전편을 쓸 때만 하더라도 그 이야기가 작가의 구상에는 전혀 없었다는 점이지요. 『돈키호테 1』이 너무나 빅히트를 치는 바람에 돈키호테의 속편을 내세우는 짝퉁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자 세르반테스는 결국 『돈키호테 2』를 썼는데, 나중에 쓴 이야기가 어쩌면 그토록 긴밀하게 『돈키호테 1』과 호응하는지 참으로 놀랍습니다. 아무튼 작가는 산초의 이야기를 통해 '능력 밖의 거창한 꿈'이 얼마나 어리석고 부질없고 허황된 것인지를 똑똑히 보여주지요. 

 

돈키호테가 산초 판사와 함께 나선 '두 번째 모험'에서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소설『돈키호테』를 상징하는 <풍차 모험> 이지요. 풍차를 보자말자 대뜸 거인으로 오인하고 덤벼들었다가 로시난테와 함께 크게 다친 돈키호테는 산초의 '제발 정신 차리라'는 충고를 듣고도 조금도 개의치 않지요. 두 사람은 도전하는 모험마다 거의 매번 만신창이가 되도록 부서지고 깨어지기만 할 뿐인데도 결코 모험을 멈추지 않지요. 그 어떤 터무니 없는 상황에서도 결코 현실을 잊지 않는 산초는 기회가 될 때마다 자신의 잇속을 챙기는, 겁 많고 순박하기 그지 없는 현실주의자의 전형을 보여주지요. 그 반면 돈키호테는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들에 늘 집중하지요. 군사, 행정, 법, 자유, 평등, 인류애, 문학, 통치, 철학 등에 관한 돈키호테의 놀라운 견해들은 이상주의적인 휴머니스트로서 나무랄 데가 없지요. 이렇듯 인간의 삶을 지탱하는 온갖 문제들에 관한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의 끝없는 충돌과 대화 속에는 그 어떤 훌륭한 금언집이나 속담집보다 훨씬 더 생생하고 유쾌한 해학이 가득 담겨 있지요.

 

돈키호테의 두 번째 모험은 끝내 그를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에 의해 좌절되고, 돈키호테는 우리에 갇히고 소달구지에 실린 채 집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마무리되지요. 그 다음에 이어지는 세 번째 모험 이야기는 전편이 출판되고도 무려 10년이나 더 지난 1615년에서야 다시 이어지게 되지요.

 

그런데 속편 돈키호테가 전편 돈키호테보다 훨씬 더 뛰어나면서도 재미있는 까닭은 앞에서도 미리 말씀드렸듯이,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가 전편에서 겪은 일들이 이미 책으로 출판되어 세상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다는 전제 하에 이야기가 진행되기 때문이지요. 소위 현대문학에서 말하는 마술적 리얼리즘이 이미 돈키호테에서 진작에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웠던 셈이지요. 돈키호테 1편을 너무나 재미있게 읽은 독자들인 공작 부부가 주변 사람들과 미리 짜고 이 두 주인공을 골탕 먹이려고 '진짜 마법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얘기야말로 배꼽을 잡는 유머의 또다른 핵심이지요.

 

기사 신분의 돈키호테가 (산초에게 속아 넘어가) 마법에 걸려 농사꾼 아낙네로 변모했다는 못 생긴 둘시네아 공주를 만나는 이야기, 산초 판사가 공작 부부의 농간으로 마침내 오랫동안 꿈꾸었던 섬의 통치자가 되어 훌륭한 통치술을 발휘하는 이야기, 자신을 편력 기사로 착각하는 돈키호테를 고향으로 데려가기 위해 끈질긴 추적에 나섰던 삼손 카라스코 학사가 <하얀 달의 기사>로 분장한 끝에 돈키호테와의 대결에서 승리하여 마침내 편력 기사로서의 모험에 종지부를 찍게 만드는 이야기, 초라한 몰골로 집으로 되돌아온 돈키호테가 마침내 꿈을 잃은 자로서 우울증에 빠져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은 그저 단순한 우스개 모험 소설을 뛰어 넘어 독자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스스로의 삶을 진지하게 성찰하도록 자극하지요.

 

특히, 마지막 임종을 앞둔 돈키호테에게 어서 일어나 편력 기사의 모험을 다시 떠나자며 오열하는 산초 판사의 모습을 보노라면, 돈키호테의 무모하기 짝이 없는 용감한 모험들도 결국은 인간의 근원적인 한계 앞에서 멈출 수밖에 없다는 서글픈 감정에 빠져들게 됩니다. 또한 그렇게 무모하리만치 용감하게 모험을 떠났다가 실패로 귀결된 그 두 사람의 여정이야말로 자신들의 꿈을 행동으로 옮겼던 가장 아름다운 순간들이었음을 깨닫게 해줍니다.

 

또한 산초 판사의 모습 속에는 어느덧 피동적으로 편력 기사의 모험에 마지 못해 따라 나섰던 지극히 현실적인 인간이었던 인물이 어느새 자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망상에 빠진 이상주의자였던 돈키호테에게 동화되고 감화된 나머지, 스스로가 주체적인 인물로 우뚝 성장해 돈키호테처럼 과감한 모험에 나설 채비가 갖춰진 성숙한 인간 유형도 엿볼 수 있지요.

 

작품 『돈키호테』는 오늘날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에 버금가는 탁월한 모험소설로 대접받고 있지요. 사람들은 늘 오뒷세우스나 돈키호테가 겪은 영웅적인 모험담을 마음 속으로 꿈꾸면서도 정작 현실에서는 지극히 이해타산적인 인물 속에 머무르고 말지요. 또한 사람들은 누군가가 우리 대신 나서서 사회 도처에 만연한 불의를 돈키호테처럼 속시원히 용감하게 바로잡아 주기를 바라면서도 정작 그 임무가 자신들한테 떠맡겨지는 건 무슨 핑계를 대더라도 회피하기에 급급하지요.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는 어찌보면 바로 그런 인간 내면에 도사린 기묘한 이중성을 상징하는 인물이지요. 많은 독자들이 『돈키호테』를 읽으며 기쁨과 슬픔이 뒤섞인 기이한 감정 상태에 빠지는 이유 또한 우리들의 내면 상태가 끊임없이 그 두 인물 사이를 드나들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돈키호테』가 마음의 모험담으로 읽히는 이유 또한 그런 까닭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이것으로 소설 『돈키호테』에 대한 소개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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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링크 주소는 ☞ https://youtu.be/wkO5h2o2lU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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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0-09-14 19: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성스러운 글 잘 읽고 갑니다^^

oren 2020-09-14 20:33   좋아요 0 | URL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