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는 우리 의지를 부인하는 것이며, 우리를 아무 데로나 되는 대로 끌고 돌아다니는 미친 생각에 대한 반대 심정에 불과하다. 그것은 이 자에게 지난 날의 도덕과 순결성을 부정하게 한다.

 - 몽테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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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사태>가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될 가능성은 이제 거의 사라진 듯하다. 검찰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고, 조국이 죽든지 윤석열이 죽든지 둘 중 하나는 반드시 죽어야 이 게임이 끝나게 생겼다. 돌이켜 보면, 임명 강행이냐 철회냐를 두고 고민하던 시절이 그나마 좋았다. 사태는 언제나 옴싹달짝 못하는 구석으로 점점 내몰리게 마련이다.

 

조국의 가족 입장에서라면 지금의 시간을 어디까지로 되돌리고 싶을까? 법무장관 임명장을 받기 직전? 아니면 청문회가 끝난 직후? 아니면 동양대 총장과의 통화가 끝난 뒤? 그것도 아니라면? 어쩌면 민정수석에서 물러날 때쯤이 가장 알맞은 때로 보일지 모른다. 법무장관 자리만 탐하지 않았더라면 이 모든 끔찍한 악몽이 눈앞의 현실로 나타났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을 테니 말이다.

 

이제 와서 후회한들 다 무슨 소용일까. 억센 운명에 휩쓸리면 인간의 판단력이 얼마만큼 나약하면서도 보잘 것 없는 것인지를 절감할 수밖에 없다. '그 때 멈췄더라면' 하는 매 순간들까지 아무리 되돌려 놓고 생각하더라도, 과연 그 때 정말로 멈출 수 있었을까 의심스러운 게 인간사의 진행 방식이니 말이다.

 

미래를 내다볼 줄 알았더라면 어느 누가 불행의 심연 속으로 끌려들어갔겠는가?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아내가 그토록 뜯어말렸음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별 일 없으리라 믿고' 원로원에 나아갔다가 기어이 브루투스에게 칼을 맞아 죽었다. 나폴레옹은 자신의 힘만을 믿고 모스크바까지 넘보다가 결국 수십 만 군대를 잃고 자신마저 황제에서 쫓겨났다. 나폴레옹과 전쟁터에서 마주쳤던 프로이센의 장군 클라우제비츠는 『전쟁론』을 써서 '승자의 교만'을 경계했다. 승리의 한계 정점을 알고 적당할 때 멈출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 그 책의 가장 큰 핵심 교훈이다.

 

<조국 사태>가 바야흐로 정점을 향해 가파르게 치닫는 느낌이 든다. 현직 법무장관의 자택을 압수수색한 이후에 전개되는 소식들은 대략 어떤 것들일까. 내신이나 외신이나 아마도 이런 뉴스들로 장식되지 않을까.

 

한국 검찰, 신임 법무장관의 부인에 대해 구속영장 청구

한국 법원, 신임 법무장관의 부인에 대해 구속영장 발부, 구속 수감

한국 검찰, 역사상 최초로 현직 법무장관을 피의자로 소환 조사

한국 사회, 법무장관 퇴진 요구 및 대통령에 대한 비난 시위 갈수록 확산

한국 검찰, 조국 사태 관련 수사 결과 발표, 법무장관 (불)구속 기소

한국 정부, 법무장관 사임(해임) 발표,

한국 대통령, 대국민 사과문 발표

 

기껏 쓰고 보니 조국 장관 임명 직전에 썼던 관전평과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 결국 이번 사태는 이런 식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장관으로 임명한 사람이나 장관에 임명된 사람이나 '검찰 개혁'에만 너무 집착한 나머지 그보다 훨씬 중요한 '헌법 정신'을 무시한 탓이 크다.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고, 다수의 국민이 부적격이라고 반대하는 인물을 기어이 법무장관에 앉혔으니, 검찰로서도 끝까지 파헤칠 수밖에 없을 터이다. 주권자인 국민 대다수는 '진실'을 알고 싶어 하고, 그런 주권자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것이 '헌법 정신'에도 부합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두 달 가까이 이어지는 <조국 대전>은 과연 언제쯤 마무리될까. 10월말? 11월말? 어느 누가 그걸 알겠는가?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예측할 수 있을 듯하다. 오래 끌면 끌수록 대통령과 집권여당에게 불리하리라는 사실이다. 주권자인 국민들은 <조국 대전>이 하루라도 빨리 마무리되길 원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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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과 역(逆)의 우연

  

그 사람만이, 이탈리아와 이집트에서 만들어낸 영광과 위대(偉大)의 이상, 정상적인 궤도를 벗어난 자기 찬미, 대담한 범죄, 그럴듯한 거짓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만이 이제 일어나려고 하는 일을 정당화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는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곳에 필요한 인간이었으므로 거의 자기의 의지에 관계없이, 그의 우유부단과 무계획, 그가 하는 모든 잘못에도 불구하고 그는 권력 획득을 목적으로 하는 음모에 휘말려 그 음모가 성공을 거둔다.

 

우연이, 무수한 우연이 그에게 권력을 주고 모든 인간들이 상의라도 한 것처럼 그 권력의 강화에 협력한다. 우연이, 당시의 프랑스 총재들의 성격을 그에게 복종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든다. ……

 

…… 그런데 갑자기 그때까지 계속된 일련의 승리에 의해서, 실로 시종일관해서 그를 예정된 목적지로 이끌어온 우연과 천재 대신에, 보로지노의 코감기에서, 혹한과 모스크바에 불을 붙인 하나의 불꽃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역(逆)의 우연이 나타난다. 그리고 천재 대신에 유례없는 어리석음과 비열함이 정체를 드러낸다.

 

침략자는 패주하여 뒤로 물러났고, 다시 패주해서 모든 우연이 이제는 그의 편을 들지 않고 끊임없이 그에게 등을 돌린다.

 

파리ㅡ최종 목적지에 도착한다. 나폴레옹 정부와 군대는 붕괴된다. 나폴레옹 자신은 이제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그의 모든 행위는 분명히 비참하고 혐오스럽다. 그런데 또 설명할 수 없는 우연이라는 것이 생긴다. 동맹자들이 나폴레옹을 자기들의 불행의 원인이라고 생각하고 미워한다. 힘과 기능을 빼앗기고 악행과 간지(奸智)가 폭로된 이상, 그는 10년 전이나 1년 후에 그랬던 것처럼 동맹자의 눈에 무법한 악당으로 비쳐야 했다.

 

(…)

 

그 막은 끝난다. 마지막 연기가 끝난다. 배우는 옷을 벗고 눈썹과 입술연지를 씻어내도록 명령된다ㅡ그는 이제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인간이 고독하게 자기의 섬에서 스스로 자기에게 비참한 희극을 연출하고, 정당화가 이제 필요 없을 때에 자기 사업을 정당화하려고 쩨쩨한 책략을 꾸미며 거짓말을 하고, 보이지 않는 손이 이 사나이를 인도하고 있었을 때, 사람들이 힘이라고 착각했던 것은 도대체 무엇이었던가를 온 세계에 알리는 데에 수년의 세월이 흐른다.

 

모든 일을 꾸몄던 자가 연극이 끝났을 때 배우의 옷을 벗기고 우리들에게 보인다.

 

"보시오. 당신들이 믿었던 것을! 이거요! 이제 알겠죠? 이 사나이가 아니라 내가 당신들을 움직였다는 것을."

 

태양이나 우주 공간의 하나하나의 입자는 그 자체로서 완결되어 있지만, 너무나 거대해서 인간으로서는 알 수가 없는 전체적인 것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각 개인도 자기 자신 속에 자기의 목적을 가지고 있지만, 그 목적은 인간에게는 알 수 없는 전체의 목적에 유용하게 사용하기 위한 것이다.

 

꽃에 머물고 있던 벌이 어린이를 쏘았다. 그래서 어린이는 벌을 무서워하고, 벌의 목적은 사람을 쏘는 것이라고 말한다. 시인은 꽃 속에서 꿀을 따고 있는 벌에 정신이 팔려, 벌의 목적은 꽃의 향기를 들이마시는 일이라고 말한다. 양봉가들은 벌이 꽃가루를 모아 벌집으로 가져오는 것을 보고 벌의 목적은 꿀을 모으는 일이라고 말한다. 다른 양봉가는 더 자세히 벌들의 생활을 연구하여, 벌은 새끼를 기르고 여왕벌을 양성하기 위해 꽃가루를 모으고 있으며 그 목적은 종(種)의 유지에 있다고 말한다. 식물학자는 암수가 서로 다른 식물의 꽃가루를 몸에 묻혀 암꽃으로 날아옴으로써 벌이 수분(受粉)을 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식물학자는 그것을 벌의 목적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은 식물의 확산을 관찰해서 벌이 그 확산을 돕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이 새로운 관찰자는 이것이 벌의 목적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벌의 궁극적인 목적은 인지(人知)가 분명히 밝힐 수있는 제1, 제2, 제3의 어느 목적에 의해서도 모두 밝혀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 목적을 해명하는 데에 있어 인지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궁극적 목적을 헤아릴 수 없다는 것이 더욱더 분명해진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벌의 생활과 그 이외의 생활 현상과의 상관을 관찰하는 것뿐이다. 역사적 인물과 여러 국민의 목적도 마찬가지다. (1545-1551쪽) 

 

 - 톨스토이, 『전쟁과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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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9-09-25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관자리에 욕심내지 않았다면...386세대의 흔히착각하는 소명의식(자신은 절대선이란 생각)이 강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이정도까지 몰리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드네요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