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을 점검하고, 또 당신 자신이 경험한 테두리 안에서 일어난 일들을 회상하면서 사적인 삶이나 공적인 경력에서 대단한 불행을 겪은 사람들 거의 모두-그들에 대해 당신이 읽었거나 전해들은 내용이 있을 수도 있고, 당신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가 어떻게 행동했는지 주의 깊게 생각해 보라; 그들 가운데 절대 다수가 겪은 불행은 형편이 좋았을 때, 다시 말해 가만히 앉아 자족했더라면 그저 좋았던 때를 그들이 몰랐기 때문에 생겨났다는 사실이 드러날 것이다.
- 아담 스미스(Adam Smith), 『도덕감정론(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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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의 아내가 기소됐다.
범죄 혐의는 사문서 위조였다.
자녀 입시에 사용된 대학총장 표창장이 거짓이라는 것이다.
수많은 논란 끝에 마침내 사정이 여기까지 이르렀는데도 '조국 대전'은 끝날 줄 모르고 계속 진행중이다.
왜 이토록 어리석은 싸움을 누가 여기까지 이끌고 왔는지 도대체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조국이 아니면 사법개혁은 좌초되고 만다는 식의 무서운 집착이 빚은 결과임은 분명하다.
사태가 이토록 악화되기 전에 타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기회는 여러 번 있었다. 대통령의 지명 철회 기회는 셀 수도 없이 많았고, 후보 지명자에게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사모펀드 의혹과 사학재단 비리 의혹이 불거지고 장학금 특혜 수령 의혹이 불거질 때만 하더라도 사태 전개 양상이 지금처럼 심각해질 줄은 몰랐다.
고교생이 의학 논문의 제1저자로 등재된 사실이 드러났을 때가 아마도 맨 처음으로 찾아온 'STOP' 기회였는지 모르겠다. 그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데 사모펀드 투자금과 사학재단의 사회환원 카드를 내밀어 여론 반전을 시도했다. 그러나 분노한 민심은 수그러들 줄 몰랐고, 대학생들의 촛불시위로 번졌다. 그런데도 집권여당은 청문회 개최를 둘러싸고 야당과의 협상이 여의치 않자 난데없이 '국민 청문회'를 추진하기로 한다.
간난신고 끝에 이틀간의 청문회 개최가 가까스로 합의되지만 후보자 가족 등을 포함한 증인 채택 문제로 또다시 교착에 빠진다. 그러는 와중에 급기야 검찰이 대대적인 압수수색에 착수한다. 이미 사모펀드 관련 핵심 피의자들이 증거를 인멸하고 해외로 도주하기 시작했으니 더 이상 수사를 늦출 수 없다고 판단한 셈이다. 이 때부터 사태는 급류를 타기 시작하고 일파만파로 확대되기 시작한다. 검찰의 범죄 혐의 수사를 두고 '나라를 어지럽히는 일'이라는 등 집권세력의 무모하고도 거센 비판이 마구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이것이 집권여당의 첫 번째 패착으로 보인다.
두 번째 패착은 청문회를 둘러싼 증인 협상 결렬을 빌미로 결국 '기자 간담회'를 강행한 것이다. 원래 목 마른 사람이 샘을 파는 법이다. 연일 쏟아져 나오는 의혹에 대해 '청문회에서 소상히 밝히겠다'는 핑계로 버텨오던 후보자 입장에서는 무수한 의혹을 일거에 해소하고 싶은 갈망 때문에라도 그런 유혹을 떨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법무장관 후보자가 법에 정해진 절차까지 무시하고 기자들만 불러 '해명 간담회'를 열어봤자 악화된 여론을 되돌릴 수 없는 건 자명한 이치였다. 탄핵 직전까지 내몰린 박근혜 전 대통령이 여론이 최고조로 악화되었을 당시 청와대 출입기자들만 불러놓고 갖은 몸짓을 다해 자신의 억울한 처지를 거짓으로 해명하는 모습의 데자뷰일 뿐이었다.
특수부 수사 인력을 더욱 보강한 검찰은 내친 김에 동양대와 서울대 의전원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섰고, 이튿날 아침에 갑작스레 터져 나온 총장 표창장 위조 의혹은 숱한 관전자들을 경악 속으로 빠트렸다. 이번 사태가 전체 몇 막의 구성으로 그 장대한 결말을 마무리할 지는 몰라도 <조국 대전> 제1막 제1장의 클라이맥스라고 부를 만한 장면이 바야흐로 막을 올리는 순간이었다. 후보자 부인의 다급한 전화 통화 내용과 문자 메시지가 고스란히 드러났고, 후보자와 집권세력의 유력 인사들의 의심스런 통화가 잇따라 폭로되었다. 여론이 추스릴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었다.
어쨌거나 데드라인을 하루 앞두고 가까스로 합의된 맹탕 청문회만 건너뛰고 나면 무사히 '임명 절차'를 밟을 수 있으리라 믿었던 청와대는 스모킹 건이나 다름없는 '표창장 조작 의혹'을 덮기 위해 총력을 동원했고, 그런 무리수들이 결국 검찰과의 정면 충돌로 이어졌다. 급기야 청와대의 모 행정관은 검찰을 향해 “미쳐 날뛰는 늑대마냥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물어뜯겠다고 입에 하얀 거품을 물고 있다”는 극언까지 퍼부었다. 집권 세력이 사건의 실체를 규명하겠다는 검찰의 행보에 대해 이토록 흥분하는 까닭이 도대체 무엇인가. 청문회를 하루 앞두고 여권 전체가 약속이나 한 듯 검찰을 향해 온갖 험악한 비난을 퍼부은 것이 이번 사태의 세 번째 패착이었다.
어젯밤의 맹탕 청문회가 무미건조하게 막을 내리면서 제1막이 싱겁게 마무리되는가 싶었다. 그런데 곧바로 1막 이상으로 드라마틱한 제2막이 활짝 열리면서 관객들의 시선을 다시금 사로잡았다. 후보자 아내의 소환조사 마저 건너뛴 불구속 기소가 7년이라는 기나긴 공소시효 마감을 딱 한 시간 앞두고 전격적으로 단행된 것이다.
여기까지가 지금까지 진행되어 온 <조국 대전>의 대략적인 줄거리이다. 물론 이번 대전의 깊숙한 정치적 배경이나 등장 인물들이 쏟아낸 수많은 명대사들은 굳이 언급하지 않았다. 이미 TV나 뉴스에 너무 많이 노출되어 식상할 정도가 되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궁금한 건 지나간 이야기가 아니라 '앞으로의 전망'이다. 과연 어떻게 전개될까.
가장 싱겁게 끝나는 해피엔딩(?)은 갑작스레 드라마가 끝나는 것이다. 조기 종영되는 이유는 딱 하나다. 주인공이 일신 상의 사유로 갑자기 무대에서 내려오는 경우다. 물론 감독의 교체 사인이 중도 하차의 근본 원인일 수도 있다.
가장 불행한 네버엔딩 스토리는 드라마가 계속 이어지는 경우다. 이럴 경우에는 감독과 주인공뿐 아니라 관객들이 중요한 변수로 등장할 개연성이 매우 높다. 물론 최악의 경우는 관객이 무대의 주인공뿐 아니라 감독까지 끌어내리겠다고 덤벼드는 국면이다. 그때는 말 그대로 파국으로 끝난다. 설마 그토록 흉악한 드라마가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으리라고 믿고 싶진 않다.
아무쪼록 사태가 여기서 더 크게 나빠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당장 내일이라도 대통령이 법무장관 임명을 포기하면 그것으로 기나긴 싸움은 간단히 끝난다. 물론 그 싸움은 '집권세력의 완패'로 규정되면서 수많은 후폭풍을 불러올 게 틀림없다. 그런데, 지금으로서는 그럴 가능성이 별로 안 보인다는 게 진짜 문제다.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하면 어떻게 될까? 그리 되면 결국 '해피엔딩'의 가능성은 완전히 사라지고, 이번 사태는 결국 비극으로 끝맺을 수밖에 없다. 임명 강행이 '파국' 없이 어떻게 마무리될 수 있을까. 나 또한 임명 강행=불행한 결말을 예상한다. 단지 불행의 크기만이 문제될 뿐.
임명 강행 이후에 전개되는 소식들은 대략 어떤 것들일까. 외신에는 아마도 이런 뉴스들로 장식되지 않을까.
한국 대통령, 자녀 입시 비리로 검찰에 기소된 배우자를 아내로 둔 핵심 측근을 신임 법무장관으로 임명.
한국 사회, 신임 법무장관 임명 강행을 둘러싸고 여야 극한 대치, 대학생 및 시민들 대규모 항의 집회
한국 검찰, 최근에 임명된 신임 법무장관의 부인 강제 소환(혹은 구속영장 청구)
한국 검찰, 최근에 자녀 입시부정 스캔들에 연루된 법무장관 피의자로 소환
한국 사회, 신임 법무장관 퇴진 요구 및 반정부 시위 갈수록 확산
한국 검찰, 조국 사태 관련 수사 결과 발표, 법무장관 불구속 기소
한국 정부, 법무장관 사임 발표
한국 대통령, 대국민 사과문 발표
과연 <조국 대전>은 언제까지 전개될까. 지켜보는 관객들 가운데 극히 일부는 파국을 바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민들은 조기 종영을 바라마지 않는다. 이제껏 시달려온 내우외환만으로도 충분히 지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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