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조금 잡다한 여가 생활 및 취미 활동을 한다. 사실 내가 알라딘에 서재를 만들고도 다른 서재분들처럼 열심히 글을 쓰고 활발하게 활동하지 못하는 이유도 이런 저런 잡스러운 관심 분야가 많기 때문인것 같다. (아아.. 물론 게으름도 만만치 않다)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고 관련 업종에 종사하고 있지만 나는 여가 시간에 좀처럼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는다.
혈기방장했던 20대 시절에 비추어 보면 이제는 조금 덜 하긴 하지만, 나는 여전히 사람들 만나기 좋아하고, 밖에 나가 땀흘리며 운동하는 것을 좋아하고, 왁자지껄하게 모여 술마시는 것을 좋아한다. 컴퓨터 게임도 좋아하고 당구나 포카, 화투 같은 잡기들도 남들과 어울릴 만큼은 한다. 워크샵이라도 간다치면 나는 대개 '2~30%의 밤샘 철야 레이스 멤버'에 속하게 된다.
이런 저런 잡다한 야외 활동이 없이 집에 있을 때라면 책을 읽거나 스포츠 경기를 시청한다. 어찌 보면 밥벌이의 수단인 컴퓨터는 그닥 나와는 친한 사이가 아닌 셈이다.

전체적으로 여성의 비율이 높고, 연령대도 높으며, 책이라는 공통된 관심사로 형성된 알라딘의 서재 마을이라는 공간은 아무래도 정적인 분위기나 품성이 주류를 이룬다. 서재인들은 페이퍼를 쓰고 댓글을 다는 것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서로 서로 소통한다.
인터넷이라는 공간이 우리의 삶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 이후, 초등학교 시절 글짓기 숙제 이후 글이라고 할만한 글을 변변히 써 본적이 없던 사람들이 이런 저런 자신의 생각이나 주장을 글로 쓰게 될 순간에 종종 마주치게 되었다. 사람과 사람의 소통이 온전히 오프라인상의 직접적인 만남이나 유선상으로만 이루어 지던 시절에는 글솜씨 보다는 말솜씨가 훨씬 중요한 능력이었다. 학창 시절 미팅이라도 한다하면 말 잘하고 재미있는 사람이 보통 인기가 좋지 않았나. 그러나 이제는 글솜씨도 말솜씨 못지 않게 중요한 능력이다. 미팅에 나가서 달변과 유머로 인기를 끌지 않더라도 안방에 앉아 온라인상에 재미있거나 깊이있는 글을 올림으로써 자신의 매력을 발산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온라인은 더이상 폐쇄적인 공간이 아니다. 온라인은 온라인 내의 관계들 뿐 아니라 오프라인의 관계마저 창출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21세기의 사이버 세상은 이렇게 우리에게 다가왔다. 여러가지 부작용도 있고 해악도 있지만, 온라인은 끊임없이 사용자들에 의해서 진화할 것이다.
블로그라는 개념은 온라인 상에서 일대 혁신을 몰고 왔다. 점점히 흩어져 있거나 오프라인의 모임을 뒷받침하기 위해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던 네티즌들은 블로그를 통해서 각자 하나 하나의 주체가 되었다. 개인성이 부각됨으로 인해 오히려 소통은 더욱 활발해졌다. 홈페이지에서 손님과 주인으로 만나던 네티즌들은 이제 블로그 상에서 상호 대등한 관계로 만난다. 매니아 문화와 어우러져 충실한 블로거들은 자신의 관심분야에서 여느 지식인 못지 않은 일가를 형성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들의 콘텐츠들은 온라인을 통해  빠르게 확산된다. 앞으로도 블로그 같은, 온라인의 혁명은 계속 일어날 것이다.

글을 쓰는 것에 대해서, 자신의 마음을 글로 표현하는 것에 대해서 변변히 배운적도, 연습해 본 적도 없는 공대생 출신인 나의 글쓰기 이력은 그저 10여년을 온라인 상에서 굴러먹은 것(그것도 부수적으로 말이다)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이들의 유려하고 매끄러운 문장들을 접하면 부러운 마음부터 절로 든다. 글쓰기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 지는 능력이 아니다. 내면의 깊이도 필요하다.

아직까지 나는 오프라인형 인간에 가깝지만, 앞으로도 그러리라는 확신은 할 수 없다.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점점 온라인형 인간으로 변모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아직은 나의 잡다한 관심사들이, 오프라인의 사람 냄새가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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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4-10-08 1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여기서라도 사람냄새 맡아 좋구먼요...

oldhand 2004-10-08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알라딘은 온라인상에서는 보기 드물게 사람냄새 나는 공간입니다. ^_^
다들 좋으신 분들만 모여 있잖아요.

부리 2004-10-08 2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여년간 강호를 누비셨군요. 어쩐지 보통 분이 아니라 했죠... 전 이제 겨우 5년째랍니다. 2000년 말부터 온라인에 뛰어들었거든요. 저도 아직 오프라인형 인간입니다. 온라인에서는 술을 못마시잖습니까.

oldhand 2004-10-08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부리님께서 제 서재에 왕림하셨군요. 마태님은 요새 바쁘신가봐요.
강호를 누볐다고 하기엔 참 거시기한것이 저는 전형적인 눈팅족이라서요.. 하이텔 시절부터 그저 남들이 쓴 글 읽으러 돌아다닌게 대부분의 시간이랍니다.
 

6살짜리 조카애는 요새 또래들보다 조금 늦게 말문이 터져서, 한참 수다스러웠다.
그 나이 어린아이들의 상상력과 사고방식 속에서 만들어지는 적재적소에 터지는 말 한마디는 간혹 어른들의 상식을 뛰어넘는 개그를 선사한다.

추석 전날.

한 참 송편을 빚느라 (나는 옆에 앉아서 응원하느라, 잔심부름 하느라) 점심 준비를 따로 할 겨를이 없어서 중국집에 주문을 했다.
10여군데 전화를 해서 겨우 문을 연 중국집에 주문을 했더니, 배달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조카는 졸리는 지 현관문이 내다 보이는 문간방 한가운데에 문을 열어 둔 채 모로 누워있었다.

"띵동"

드디어 주린 배를 채우는 구나.
후다닥 나가서 문을 열어 주었다.
철가방을 내려 놓는 배달원 아저씨에게 조카가 모로 누운채 대뜸 말한다.

"안녕하세요?"

"응. 안녕"

자장면을 내려 놓으며 배달원 아저씨가 인사를 받아주자 여전히 누운 채 천연덕스럽게 하는 말.

"제가 졸려서 이래요"

누워서 인사하는 법이 아니라고 어디서 배웠는지, 줏어 들었는지.
짜식. 여자애가 넉살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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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후사 2004-09-30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카가 똑똑하군요. ^^

oldhand 2004-09-30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웬걸요. 지네 또래 애들보다 성장이 더딘 놈이랍니다. 말도 느리고. ^_^

로드무비 2004-10-01 0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모습이 상상이 됩니다.
애들은 뭘 해도 예쁘죠?^^

oldhand 2004-10-01 0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저도 조카들은 정말 예쁘더라구요.
물론 떼를 쓰거나 칭얼거릴 때는 악마로 돌변하기도 하지만요. ^^

마태우스 2004-10-03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칭찬인지 비난인지 잘 모르겠음^^

oldhand 2004-10-04 0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래 조카들이란게 만날 때 반갑고 헤어질 때 더더욱 반가운, 그런 존재들이지요. 으히히.
 

추석이다.
사실 명절은 나이가 들어 갈수록 그다지 반가운 날은 아니다. 특히나 결혼을 한 여성들에게는 엄청나고도 부당한 노동을 요구하는 날 아닌가? 여성주의 운동가 고은광순씨는 이런 현상을 가리켜서 '명절때 마다 벌어지는 불륜'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남자인 나로써는 이러한 정도의 스트레스는 없지만 명절이 경제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그다지 편한것은 아님에 틀림없다. '명절의 차례상과 여성이 강요당하는 일방적인 노동'에 관한 이야기는 더 구구절절하겠지만 이 글의 주제가 아니니 이만 줄인다.

명절하면 또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일은 끝없이 고속도로에 늘어선 차들과 귀향인파아니겠는가? 3년전에 가산을 정리하시고 자식들 곁에서 지내시려고 경기도 지역으로 터전을 옮기신 부모님 덕에 이제 나는 '귀향길의 정체'에 빠질 일은 없어졌다. 그러나 90년에 서울에 상경해서 마지막 귀향이었던 2001년 추석까지 10여년의 세월 동안 해마다 두 번의 명절 때면 어김없이 나도 귀향길에 올라야 했었다. 그나마 나는 좀 요령있게 움직였기 때문에 10시간 이상 걸리는 정체에 휘말린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혹자는 20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명절에 한번씩 고향길에 오른다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닌지라 이런저런 크고 작은 사건들이 고향길 가는동안 벌어지곤 했다. 고속도로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것은 아니지만 나도 파란만장했던 귀향길이 한 번 있었다.

................

1998년 1월 말.
설을 맞이해서 서울에 살던 우리 형제들은 귀향길에 오른다.
나는 위로 맏이인 형과 가운데 누나를 둔 막내다. 당시 형은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상황이었고, 누나는 먼저 결혼을 해서 두 명의 자녀를 두고 있었다. 설 연휴 전날을 다행히 휴가로 받은 나는 직장 일 때문에 귀향이 늦어진 매형을 대신해서(누나의 시댁도 역시 광주) 누나네 차를 운전해서 형과 누나, 조카 둘을 데리고 무사히 광주까지 가야하는 중차대한 임무를 맡게 된다. (형은 지금도 운전 면허가 없다. 음 -_-;)

출발일은 연휴 전전날 퇴근 이후 저녁시간. (연휴 전날을 휴가 냈기에)
일기예보에서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눈이 온다고 하는 불길한 소식을 들었지만 우리는 서울의 맑은 날씨에 "설마 눈이 올라고?" 하는 태평한 마음이었다.
당시 누나의 둘째는 겨우 돌이 갓 지난 젖먹이여서 누나가 안고, 큰 조카도 겨우 4살이라 베이비 시트를 사용해야 했다. (베이비 시트.. 정말 중요하다. 안전을 위해 반드시 사용하시길.) 금쪽 같은 어린아이들을 태우고 밤길 장거리 운전을 한다는건 무척 부담스러운 일이다.
연휴에 앞서 일찍 출발을 한 탓에 초반엔 순조로운 귀향이었다. 대전을 지나 전라북도에 접어 들어 여산 휴게소에서 잠깐 쉬려고 하니 눈발이 서서히 날리기 시작했다.
"더 오기 전에 빨리 가야 겠다"
우리는 서둘러 다시 출발을 했지만, 눈발은 점점 거세지고 급기야 시야도 제대로 확보가 안되는 상황.
고속 도로 바닥에는 눈이 날리고 있었지만 이 도로가 지금 빙판인지 아닌지도 제대로 구별할 수 없었다.
목적지는 멀지 않았는데 밤은 점점 깊어가고 눈보라는 휘몰아치고 마음은 초조해 진다.
전주를 지나 정읍에 조금 미치지 못한 길목에서 사건은 벌어진다.

시속 40 ~ 60 Km의 서행 운전 중이었는데 약간 좌측으로 구부러진 커브길을 돌아 나와보니 불과 전방 100여미터에 사고 차량들이 엉켜있는것이 아닌가!
얼떨결에 브레이크를 밟았으나 아뿔싸, 바닥은 이미 빙판이었다.
차는 시계 반대 방향으로 스무스하게 천천히 회전을 하기 시작했다. (정말 놀랬다. 차가 돌기 시작하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더라.) 차의 운전석 앞부분이 중앙 분리대를 부드럽게 주욱 긁으면서 우리는 어렵사리 사고 차량을 덮치지 않고 도로에 비스듬히 멈출 수 있었다.

'망했다. 내 차도 아닌데, 이리 긁어 놨으니 매형을 무슨 얼굴로 보냐.'라는 생각을 하며 망연히 앉아 있던 그 찰나의 순간, 조수석에 앉아 있던 형이 내 얼굴을 쳐다 보다가 갑자기 외쳤다.

"어어어~~ 받는다!!!"

그 소리에 놀라 운전석 옆 창문을 바라보니(차가 비스듬히 거의 가로로 서 있었으니 옆 창문을 내다보면 뒤 쪽이 보이는 시츄에이션) 오오오... 운전자와 조수석에 앉아 휘둥그렇게 눈을 치켜뜬 두명의 여인이 우리 차로 돌진하고 있는 것이었다.

"쾅~~"

차가 요동치면서 밀린다.

'아, 자동차 사고가 나는 순간 소리 참 크게 나는구나.'

그리고 우리를 받은 차의 뒷차가 다시 연이어 덮치고 우리는 다시 후폭풍에 밀려서 또한번 "쾅~~".

연이어 그 뒤쪽에서도 끝없이 들려오는 소리. "쾅, 쾅, 쾅"

아.. 어찌나 정신이 없던지. 그 와중에 '이렇게 교통사고가 나는구나. 이러다가 사람이 죽는구나.' 등등의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정신을 수습해 보니 천만 다행으로 다친 사람은 없었다. 조카가 베이비 시트에 꽉 채워져 있었기에 가능한 일. 차의 뒷 문쪽이 20 cm 이상 안쪽으로 찌그러져 있고 앞부분도 충돌에 의해 밀리면서 부딪혀 많이 파손된 상태였다.

교통사고가 나니 제일 먼저 도착하는 것은 견인차량이었다. 우리 차를 보더니 대뜸 "견인해야 되겄소" 하였다. 우리는 부서져서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눈 내리는 한밤중에 견인차에 매달려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 전주에 도착했다.

폭설이 내려 온 도시는 고요했고, 우리는 차를 수리 센터에 맡긴 채 차에 실려있던 짐을 바리 바리 싸들고 한밤중의 차도 거의 다니지 않는 도시의 변두리 도로위에 남겨졌다. 짐은 또 왜 그렇게 많던지. 누나네는 시댁에 가져갈 일이 있다고 찜통까지 짐으로 싸왔다. 형은 광주에서 쓴다고 볼링공까지 싸왔다. -_-;;; (물론, 그것들은 차에 그냥 버려둔채 나왔지만)
겨우 겨우 택시를 잡아 터미널 근처의 여관에 방을 잡아 놓고 보니 난생 처음 와봤을 것임에 틀림없는 여관방의 특이한 환경이 신기했던 모양인지 천진난만한 두 조카애들은 신이 나서 헤헤 거리며 왔다 갔다.

형과 함께 새벽에 다시 나가 병원에 입원해 있던 우리 차를 덮쳤던 뒷 차량 운전자와 동승자들을 물어 물어 찾아 내어 보험 처리 약속을 받아 냈던 일 등은 사건의 사소한 후일담.
마지막으로 다음날 아침 전주에서 고속 버스를 타고 가며 노령 산맥 언저리에 내린 폭설로 고속도로 갓길에 여기저기 쳐박혀 있던 차들을 구경했던 것이 이 길었던 1박 2일 귀향길의 마무리다.

...........

올 추석 귀향 계획은 다들 세우셨나요?  먼길 가시는 분들, 모쪼록 모두 무사히 즐겁게 고향에 다녀 오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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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4-09-24 1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도 즐거운 추석 보내세요.
근데 님 남자분이세요??? 이런...

oldhand 2004-09-24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핫. 헷갈리셨었나요? 음.. 내 말투가 여자 같은가? -_-a
물만두님도 즐거운 추석 보내시길 바랍니다. 맛있는 것도 많이 드시구요.

물만두 2004-09-24 1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제가 좀 어리버리해서리... 한두번이 아니거든요... 그냥 닉네임에서 그렇게 느낀 듯 합니다... 죄송합니다...

oldhand 2004-09-24 1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죄송하긴요. 어차피 온라인 공간인데, 남자면 어떻고 여자면 어떻습니까 ^_^

로드무비 2004-09-25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번 여름 휴가 때 도로상에서 아찔한 경험 했는데......
전 서울 형님댁 가서 부침 개열심히 부치고 하루 자고 오면 돼요.
올드핸드님, 추석 잘 보내세요.^^

oldhand 2004-09-25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번 그런 사고가 있고나면 차 타기가 무서워지더라구요.
로드무비님도 추석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스포츠 중계방송을 보는 것은 나의 주요한 도락의 하나이다.
축구, 프로 야구, 메이저 리그, 프로 농구 등 종목을 가리지 않는 편인데, 공중파 TV나 드라마를 거의 보지 않는 나는 스포츠 중계방송과 게임 방송 때문에 케이블을 설치해야만 했다. 어제도 나는 프로 야구를(그것도 더블헤더였다) 보다가 졸다가 하며 오후를 소비했다.

'프로 복싱'은 이제 우리 나라에서 비인기 종목이 되버린지 오래다. 70년대, 80년대 주말 황금 시간대를 달궜던 전국민적인 인기 종목 프로 복싱은 우리네 살림살이가 나아지고 경제적 수준이 올라감에 따라 선수층도, 팬층도 엷어지는 동반 하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야만적이라는 비판과 간혹 일어났던 링사고들도 복싱의 입지를 좁게 하였다.

주먹 하나로 인생을 걸겠다는 사내들의 노력과 그 처절한 경연도 더이상 찾아 보기 힘들게 된 것이다. 유제두, 홍수환, 김태식, 장정구, 유명우 등 한 때는 프로 복싱 세계 챔피언들이 국민적 영웅이고 어린이들의 우상이었으나, 이제는 누가 현역 챔피언인지, 우리 나라가 현재 보유하고 있는 세계 타이틀이 있기는 하는 건지 소수 매니아들을 제외하고는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부연하자면, 한동안 노챔프 국가 였던 우리 나라는 한국 복싱의 유일한 희망으로 불려온 지인진 선수가 올해 4월 세계적으로 대단히 인기 높은 황금 체급 중 하나인 페더급에서 WBC 타이틀을 차지하였다. 그것도 적지인 영국에서 통쾌한 KO승으로. 20년 전 같으면 난리가 났겠지만 조용히 소수 팬들의 환호 속에 지나간 사건이다. 7월에 1차 방어전을 역시 KO로 장식하고 11월에 2차 방어전을 가질 예정이다.

어제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는 빅 매치가 있었다.
미들급 통합 타이틀을 놓고 이 체급의 터줏대감인 버나드 홉킨스와 이에 도전하는 '골든 보이' 오스카 델라 호야의 경기였다. 오스카 델라 호야는 아마도 현역 복서중 '타이슨'(그도 아직 현역이다)을 제외하고는 가장 유명한 선수일 것이다. 92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출신이기도 한 호야는 90년대 중반이후 슈퍼 페더급 부터 무려 5체급 타이틀을 차지하고 6체급째인 미들급에 이르른 것이다. 게다가 조각같은 잘생긴 외모로 미국에서는 수많은 여성팬들을 거느린 가장 많은 대전료를 받는 초절정 인기 스타이기도 하다.

복싱 역사상 전무후무한 6체급 석권에 도전하는 골든보이 호야냐, 서른 아홉살이 되도록 헤글러 이후의 미들급에서 무적으로 군림하며 물경 18차례나 세계 타이틀을 방어한 '사형집행인' 홉킨스냐 몇 달 전부터 복싱 팬들의 지대한 관심을 끌었던 이 경기는 그러나 아쉽게도 국내에서 TV로 볼 수 없었다. 복싱의 인기가 떨어진 탓이리라. 예전 80년대를 수놓았던 레너드, 헌즈, 헤글러 등이 벌였던 전설적인 빅 매치는 모두 생방송으로 볼 수 있었는데 말이다.

경기는 데뷔이래 지나치게 많이 체급을 올려 한계에 도달한 호야가 생애 첫 KO패를 당함으로써 홉킨스의 빛나는 업적의 제물이 되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미국 시장도 예전 같지만은 않은 복싱계에 또 하나의 흥행 스타가 퇴장하는 사건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승리한 홉킨스도 나이가 무려 서른 아홉살이니(우리 나이로 40 - 41살 아니겠는가) 세월 앞에 스러질 날이 머지 않았다. 노쇠화 되가는 세계 복싱계에 또 다른 빛나는 실력과 흥행성을 겸비한 새로운 복서의 출현을 기대해 본다. 아울러 복싱팬이 다소나마 많아져서 케이블 TV의 스포츠 채널에서라도 좀 자주 방송해주었으면 좋겠다는 개인적 바램도 이루어 졌으면.

복싱은 아름답다. 순간의 미학이 복싱만큼 매혹적인 스포츠도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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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성 2004-09-23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어, 정말로 대단합니다.
우리나라에선 퇴물급으로 대접받을 수도 있는 사람들이 외국에선 열심히 활동하는 것하며..
봐주는 사람이 있거나 말거나 어찌되었든 링을 지키는 이들의 모습두요. 전 스포츠를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저같은 사람때문에 방송을 안해주는 게 아닐까요..ㅜ_ㅜ) 잘 모르지만, 이렇게 복싱을 사랑하는 분이 계신데 방송해주지 않는다니, 안타까운 현실이로군요.
수요가 있어야만 공급이 있는 건가요. 수요가 있는지 없는 지도 정확히 모르면서 공급을 잘라버린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

마지막 문장에선, 파이팅이야말로 정말로 파이팅!이란 느낌이 드는군요. 히히.
저는 오학년~ 오울드핸드님은 육학년~ 히히;;;;;(웃을 게 아닌데.....(__))

oldhand 2004-09-23 1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포츠를 좋아하시지 않는 사과님이 읽기엔 지나치게 지루하고 긴 글이었겠네요. 체급도 생소하고 선수들 이름도 생소할텐데 말이죠..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엔 다들 '권투'에 흥분하던 친구들도 나이가 들더니 더이상 관심이 없어지더군요. 먹고 살기 바빠서 그런가봐요. 아니면 다들 골프치러 다니나?

미완성 2004-09-23 1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루하다뇨! 억울해요오ㅡ!

그래도 '호야'는 어렴풋하게 기억났다구요 흙흙~ 아무래도 요즈음 시대가 뭔가에 관심을 깊이 두기에는 힘든 시절이 아닐랑가요 히히^^

oldhand 2004-09-24 0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 지루하셨다면 다행이죠 ^_^
아.. 이제 또 가을 바람이 솔솔 불어오니 저는 또 프로야구 포스트 시즌으로 인해 한판 끓어 오르겠군요. 요새는 메이저리그도 봐줘야 하고... 복싱 중계 안해줘도 사실 볼건 많다니까요 으하핫
 

원로 (元老) [월―] [명사] 1. 지난날, 관직이나 나이·덕망 따위가 높고 나라에 공로가 많던 사람. ¶ 원로 대신(大臣). 2. 어떤 일에 오래 종사하여 경험과 공로가 많은 사람.

9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는 전 국무총리, 전 국회의장, 전 장관 등 선언에 서명한 각계 ‘원로’와 시민 등 400여명이 모여들었다. ‘자유와 민주주의 선언을 위한 9·9 시국선언’을 하기 위해서였다. 국민의례가 끝나고 그들의 모임 첫머리를 장식했던 취지는 이렇다.

"오늘 이 자리는 대한민국을 지키고 발전시켜온 원로들이 대한민국이 위기에 몰려있음을 선포하고, 나라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엄숙한 자리입니다.”

그 자리에서 쏟아져 나온 말들중 걸작(?)들을 추려 보자.

“나라의 정체성과 국가이념이 중대한 도전을 받고 있다.…이 나라는 이른바 운동권 386 세대를 비롯하여 ‘친북·좌경·반미 세력’의 손아귀에 들어가고 있다.”

“전교조 교사들에 장악된 학교에서는 6·25는 남침이 아니라 북침이고, 우리의 주적은 북한이 아니라 미국이라고 사실상의 세뇌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제주 4·3 ‘무장폭동’을 대한민국 대통령이 ‘무장봉기’라고 미화시키고 있다.”

“국론을 분열시키는 소모적 수도이전, 국가보안법 폐지, 친일 등 과거사 청산, 언론 개혁 등의 일방적 추진을 중단하고 모든 국력을 경제와 안보 등 시급한 현안 해결에 집중하라.”

“북한 핵문제와 관련하여 더이상 소위 민족공조를 운운하는 북한의 사상전에 농락당하는 것을 그만두고 ‘한미 안보동맹’에 기초한 ‘한미공조’를 복구하여, 국제사회와 함께 북한의 핵무장 기도를 분명히 저지하라.”

“북한의 ‘적화통일’ 전략의 산물인 ‘연방제 통일’을 수용함으로써 명백히 우리 헌법을 위반한 6·15 남북공동선언을 파기하라.”

“노 대통령이 취소와 철회 및 사과에 불응할 경우 국회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를 발의할 것을 요구한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저지하기 위해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모든 국민들이 총궐기할 것을 호소한다.”

어지럽다. 그들이 쏟아낸 말들의 잔치를 그대로 수용하자면 얼른 마트에 가서 쌀이나 라면등을 사재기 해야 될것 같고, 미국 비자라도 받아서 전쟁의 포화를 피해 외국으로 도피라도 해야 할 것 같다. 김정일이 호시탐탐 전쟁을 노리고 있는 이 때 온 나라가 총화 단결해서 멸공을 부르짖어도 마땅치 않은 판국에 대한민국을 건국하고 지키셨던 우리 어르신들의 친일 경력을 들춰내는게 무슨 국익에 도움이 되겠는가? 나라가 이런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해 있는데 우리 국민들이 왜 이리 태평하게 살고 있는가? 우리 모두 무릎꿇고 반성해야 하려나 보다. 그들이 피눈물로 지켜온 이 나라가 위기에 빠져버렸구나. 오호 통재라.

유신시절, 5공화국, 노태우 정권 시절 국민들 위에 군림하면서 민중들의 희생을 등에 업고 호위호식했던 이들이 무슨 자격으로 자칭 "원로"라는 소리를 해 대는가. 정녕 그들이 "원로"라 자칭할 만한 근거가 되는 과거의 현직에 있었을 때의 이 나라로 다시 돌아가자는 말인가.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에게 입이 찢어져 죽더라도 공산당이 싫다고 외치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가르쳐야 속이 시원하겠는가? 방과후에 같은 동네의 아이들끼리 모여서 줄을 맞춰 "유신의 노래"를 부르며 귀가하던 그때 그 시절이 그리도 그리운가? 일본 제국주의의 교육 칙어를 그대로 본 딴 국민 교육 헌장을 달달 외우게 해 시험을 보게 하던 그 시절로 돌아가 손수 채점이라도 하고 싶은가? 당신들은 그리울지 몰라도 당신들이 시키는 대로 따라야 했던 나는 그 시절이 지긋지긋하다.

온 나라를 병영화 하고 그것도 모자라 반상회를 통해 서로 서로 감시하게 하고 남자들은 머리도 기르지 못하고 여자들은 마음대로 옷도 못입던 그 시절, 전시 폭격에 대비해 한 밤중에 불도 못 켜고 티비도 못 보게 하는 등화관제 훈련을 수시로 해 대고, 초등학생들까지 민방위 사이렌이 울리면 수업 하다 말고 방공호로 대피하는 훈련을 받던 그 시절, 전 국민에게 "국민 체조"를 가르쳐 온 국민들의 건강 관리까지 국가가 통제하고자 했던 그 시절, 대통령의 이름도 함부로 부르지 못 해 문 닫고 쉬쉬 해가며 소리 죽이고 살던 그 시절, 우리는 북한과 다름없었다. 박정희가 사망하자 온 나라가 조기를 내걸고, 국민들은 그의 죽음 앞에서 통곡하고 티비는 방송을 중단한 채 삼일 밤낮을 온 종일 추모 방송만 내보내던 당시의 우리 나라의 모습이 김일성 사망 당시의 북한과 무엇이 다른가? 전두환이 외국 순방이라도 나갈라 치면(외국은 왜 또 그리 자주 나갔는지) 방송사들은 정규방송 팽개치고 대통령 출국 장면을 생중계 해 주었고 국민들은 그저 그걸 묵묵히 보고 있어야만 했던게 불과 20년 안팎의 일이다.

광주에서 무참하게 양민을 학살하고 대통령이 된 전두환의 재임 시절, 뻔뻔스럽게도 그는 가끔 광주를 방문했었다. 그가 일정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가던 날이면 매번 고속도로 초입에 위치했던 나의 중학교는 수업을 중단하고 전교생이 철통같은 호위속에 그저 쌩하고 지나가 버리는 대통령을 연호하기 위해 1시간씩 길가에 서서 기다려야만 했다. 양민을 도륙하고 학살을 자행했던 그 피가 채 마르기도 전인 80년 대 초반의 광주에서 말이다.

그들이 적이라 말하는 북한과 그 시절의 대한민국이 그렇게 적대관계로 대치하고 으르렁 거릴 만큼 서로 다른 점이 얼마나 있었던가? 100번을 양보하여 설령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북한이 공존을 불허하는 적이라 할지라도 적을 이기는 방법은 적과 닮아 가는 것이 아니라 적과 다른 길을 가는 것이다. 북한이 노동당 규약을 폐지하지 않고 있으니 우리도 국가 보안법을 폐지하면 안된다라는 주장은 북한이 온 국가를 병참기지화 하여 전쟁에 대비하고 있으니 우리도 다시 온 국토를 30년전 군사정권 시절처럼 병참 기지화 하고 전 국민을 국가 권력의 꼭둑각시로 만들자는 주장과 다를 바 없다. 시대는 흘러가고 역사는 진보한다. 떨쳐 버릴 것은 떨치고 가는 것이 순리다. 설혹 과거에는 좋았던 것도 현재에 맞지 않는 다면 없애는 것이 도리이거늘 하물며 무고한 사람들을 숱하게 죽음으로 몰고 갔던, 과거에도 현재에도 결코 좋았던 적이 없는 국가 보안법임에랴.

대한민국을 지키지 못해 안달난 소위 자칭 국가 원로들, 노닥거릴 시간 있으면 일본의 우익들이 호시탐탐 상륙작전을 시도하려고 엿보고 있는 독도나 가서 지키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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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4-09-10 1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늙는 게 참 어려운가봐요.
그렇게 고래고래 나서고 싶을까요?^^;;;

oldhand 2004-09-10 1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로드무비님.
그 사람들이 늙어서 더 그런것도 있겠지만, 워낙에 그렇게 생겨먹은 사람들이려니 할라구요.. 나라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겠다는 사람들 무리중에 "허문도"까지 있더군요. 그러면서 "언론개혁"을 하라마라라니요. 기가 막힐 노릇이죠. 방구석에 쳐박혀서 평생을 뉘우치며 살아도 부족한 인간들이...

노부후사 2004-09-10 2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기 나왔던 사람 가운데 '노재봉'이란 사람이 있죠. 노태우인가 김영삼때, 총리를 지냈고 나중엔 민자당 국회의원으로 맹활약(?)했던 분이죠. 그런데 얼마 전에 구입한 리영희 선생의 <전환시대의 논리> 뒤페이지를 보니까 그 양반이 추천사를 써놓았더군요. 곱게 늙는거... 진짜 힘든 일인가 봅니다.

파란여우 2004-09-10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사람들에게 독도 수비를 맡겼다간 큰일 납니다. 위급하면 팔아 먹을지도 모르거든요.또 어떤 인간은 폭파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어여 죽으라고 그게 애국이라고 차라리 저는 그렇게 말하렵니다.아참, 노재봉은 서울대 교수 출신이죠...학자가 변절한 안 좋은 대표적인 예입니다.

oldhand 2004-09-11 0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피메테우스님 / 노재봉은 70년대 중반까지 중도적 학자였던 사람이었으나 보수화를 거듭 노태우 정권시절에 국무총리를 지내면서는 국내 대표적인 보수(?) 학자가 되어있었습니다. 김영삼 정권때는 민자당이 보수성을 잃어간다고 비판하면서 무소속 국회의원 출마까지 했었지요. 전환시대의 논리 뒷 표지는 저도 보고 놀랐었답니다.
여우님 / 일본의 우익들은 그래도 목숨 걸고 독도 상륙작전 같은 이벤트도 벌리는 데 우리나라의 소위 우파라 자처하는 인간들은 그럴 용기도 없는 듯 해보입니다. 사실 그들은 그저 사익추구 집단이자 기회주의자들일 뿐이죠.

마태우스 2004-10-03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드핸드님, 너무도 훌륭한 글이어요.... 제가 서재질에 뜸한 사이 이리도 좋은 글을 올려주셨네요....

oldhand 2004-10-04 0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지금 다시 한 번 보니 조금 흥분을 많이 한 글 같기도 하고 그러네요. 근데 그 늙은이들 하는 짓 보고 있으면 어쩔수 없이 끓게 되는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