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 (元老) [월―] [명사] 1. 지난날, 관직이나 나이·덕망 따위가 높고 나라에 공로가 많던 사람. ¶ 원로 대신(大臣). 2. 어떤 일에 오래 종사하여 경험과 공로가 많은 사람.
9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는 전 국무총리, 전 국회의장, 전 장관 등 선언에 서명한 각계 ‘원로’와 시민 등 400여명이 모여들었다. ‘자유와 민주주의 선언을 위한 9·9 시국선언’을 하기 위해서였다. 국민의례가 끝나고 그들의 모임 첫머리를 장식했던 취지는 이렇다.
"오늘 이 자리는 대한민국을 지키고 발전시켜온 원로들이 대한민국이 위기에 몰려있음을 선포하고, 나라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엄숙한 자리입니다.”
그 자리에서 쏟아져 나온 말들중 걸작(?)들을 추려 보자.
“나라의 정체성과 국가이념이 중대한 도전을 받고 있다.…이 나라는 이른바 운동권 386 세대를 비롯하여 ‘친북·좌경·반미 세력’의 손아귀에 들어가고 있다.”
“전교조 교사들에 장악된 학교에서는 6·25는 남침이 아니라 북침이고, 우리의 주적은 북한이 아니라 미국이라고 사실상의 세뇌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제주 4·3 ‘무장폭동’을 대한민국 대통령이 ‘무장봉기’라고 미화시키고 있다.”
“국론을 분열시키는 소모적 수도이전, 국가보안법 폐지, 친일 등 과거사 청산, 언론 개혁 등의 일방적 추진을 중단하고 모든 국력을 경제와 안보 등 시급한 현안 해결에 집중하라.”
“북한 핵문제와 관련하여 더이상 소위 민족공조를 운운하는 북한의 사상전에 농락당하는 것을 그만두고 ‘한미 안보동맹’에 기초한 ‘한미공조’를 복구하여, 국제사회와 함께 북한의 핵무장 기도를 분명히 저지하라.”
“북한의 ‘적화통일’ 전략의 산물인 ‘연방제 통일’을 수용함으로써 명백히 우리 헌법을 위반한 6·15 남북공동선언을 파기하라.”
“노 대통령이 취소와 철회 및 사과에 불응할 경우 국회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를 발의할 것을 요구한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저지하기 위해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모든 국민들이 총궐기할 것을 호소한다.”
어지럽다. 그들이 쏟아낸 말들의 잔치를 그대로 수용하자면 얼른 마트에 가서 쌀이나 라면등을 사재기 해야 될것 같고, 미국 비자라도 받아서 전쟁의 포화를 피해 외국으로 도피라도 해야 할 것 같다. 김정일이 호시탐탐 전쟁을 노리고 있는 이 때 온 나라가 총화 단결해서 멸공을 부르짖어도 마땅치 않은 판국에 대한민국을 건국하고 지키셨던 우리 어르신들의 친일 경력을 들춰내는게 무슨 국익에 도움이 되겠는가? 나라가 이런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해 있는데 우리 국민들이 왜 이리 태평하게 살고 있는가? 우리 모두 무릎꿇고 반성해야 하려나 보다. 그들이 피눈물로 지켜온 이 나라가 위기에 빠져버렸구나. 오호 통재라.
유신시절, 5공화국, 노태우 정권 시절 국민들 위에 군림하면서 민중들의 희생을 등에 업고 호위호식했던 이들이 무슨 자격으로 자칭 "원로"라는 소리를 해 대는가. 정녕 그들이 "원로"라 자칭할 만한 근거가 되는 과거의 현직에 있었을 때의 이 나라로 다시 돌아가자는 말인가.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에게 입이 찢어져 죽더라도 공산당이 싫다고 외치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가르쳐야 속이 시원하겠는가? 방과후에 같은 동네의 아이들끼리 모여서 줄을 맞춰 "유신의 노래"를 부르며 귀가하던 그때 그 시절이 그리도 그리운가? 일본 제국주의의 교육 칙어를 그대로 본 딴 국민 교육 헌장을 달달 외우게 해 시험을 보게 하던 그 시절로 돌아가 손수 채점이라도 하고 싶은가? 당신들은 그리울지 몰라도 당신들이 시키는 대로 따라야 했던 나는 그 시절이 지긋지긋하다.
온 나라를 병영화 하고 그것도 모자라 반상회를 통해 서로 서로 감시하게 하고 남자들은 머리도 기르지 못하고 여자들은 마음대로 옷도 못입던 그 시절, 전시 폭격에 대비해 한 밤중에 불도 못 켜고 티비도 못 보게 하는 등화관제 훈련을 수시로 해 대고, 초등학생들까지 민방위 사이렌이 울리면 수업 하다 말고 방공호로 대피하는 훈련을 받던 그 시절, 전 국민에게 "국민 체조"를 가르쳐 온 국민들의 건강 관리까지 국가가 통제하고자 했던 그 시절, 대통령의 이름도 함부로 부르지 못 해 문 닫고 쉬쉬 해가며 소리 죽이고 살던 그 시절, 우리는 북한과 다름없었다. 박정희가 사망하자 온 나라가 조기를 내걸고, 국민들은 그의 죽음 앞에서 통곡하고 티비는 방송을 중단한 채 삼일 밤낮을 온 종일 추모 방송만 내보내던 당시의 우리 나라의 모습이 김일성 사망 당시의 북한과 무엇이 다른가? 전두환이 외국 순방이라도 나갈라 치면(외국은 왜 또 그리 자주 나갔는지) 방송사들은 정규방송 팽개치고 대통령 출국 장면을 생중계 해 주었고 국민들은 그저 그걸 묵묵히 보고 있어야만 했던게 불과 20년 안팎의 일이다.
광주에서 무참하게 양민을 학살하고 대통령이 된 전두환의 재임 시절, 뻔뻔스럽게도 그는 가끔 광주를 방문했었다. 그가 일정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가던 날이면 매번 고속도로 초입에 위치했던 나의 중학교는 수업을 중단하고 전교생이 철통같은 호위속에 그저 쌩하고 지나가 버리는 대통령을 연호하기 위해 1시간씩 길가에 서서 기다려야만 했다. 양민을 도륙하고 학살을 자행했던 그 피가 채 마르기도 전인 80년 대 초반의 광주에서 말이다.
그들이 적이라 말하는 북한과 그 시절의 대한민국이 그렇게 적대관계로 대치하고 으르렁 거릴 만큼 서로 다른 점이 얼마나 있었던가? 100번을 양보하여 설령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북한이 공존을 불허하는 적이라 할지라도 적을 이기는 방법은 적과 닮아 가는 것이 아니라 적과 다른 길을 가는 것이다. 북한이 노동당 규약을 폐지하지 않고 있으니 우리도 국가 보안법을 폐지하면 안된다라는 주장은 북한이 온 국가를 병참기지화 하여 전쟁에 대비하고 있으니 우리도 다시 온 국토를 30년전 군사정권 시절처럼 병참 기지화 하고 전 국민을 국가 권력의 꼭둑각시로 만들자는 주장과 다를 바 없다. 시대는 흘러가고 역사는 진보한다. 떨쳐 버릴 것은 떨치고 가는 것이 순리다. 설혹 과거에는 좋았던 것도 현재에 맞지 않는 다면 없애는 것이 도리이거늘 하물며 무고한 사람들을 숱하게 죽음으로 몰고 갔던, 과거에도 현재에도 결코 좋았던 적이 없는 국가 보안법임에랴.
대한민국을 지키지 못해 안달난 소위 자칭 국가 원로들, 노닥거릴 시간 있으면 일본의 우익들이 호시탐탐 상륙작전을 시도하려고 엿보고 있는 독도나 가서 지키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