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중계방송을 보는 것은 나의 주요한 도락의 하나이다.
축구, 프로 야구, 메이저 리그, 프로 농구 등 종목을 가리지 않는 편인데, 공중파 TV나 드라마를 거의 보지 않는 나는 스포츠 중계방송과 게임 방송 때문에 케이블을 설치해야만 했다. 어제도 나는 프로 야구를(그것도 더블헤더였다) 보다가 졸다가 하며 오후를 소비했다.

'프로 복싱'은 이제 우리 나라에서 비인기 종목이 되버린지 오래다. 70년대, 80년대 주말 황금 시간대를 달궜던 전국민적인 인기 종목 프로 복싱은 우리네 살림살이가 나아지고 경제적 수준이 올라감에 따라 선수층도, 팬층도 엷어지는 동반 하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야만적이라는 비판과 간혹 일어났던 링사고들도 복싱의 입지를 좁게 하였다.

주먹 하나로 인생을 걸겠다는 사내들의 노력과 그 처절한 경연도 더이상 찾아 보기 힘들게 된 것이다. 유제두, 홍수환, 김태식, 장정구, 유명우 등 한 때는 프로 복싱 세계 챔피언들이 국민적 영웅이고 어린이들의 우상이었으나, 이제는 누가 현역 챔피언인지, 우리 나라가 현재 보유하고 있는 세계 타이틀이 있기는 하는 건지 소수 매니아들을 제외하고는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부연하자면, 한동안 노챔프 국가 였던 우리 나라는 한국 복싱의 유일한 희망으로 불려온 지인진 선수가 올해 4월 세계적으로 대단히 인기 높은 황금 체급 중 하나인 페더급에서 WBC 타이틀을 차지하였다. 그것도 적지인 영국에서 통쾌한 KO승으로. 20년 전 같으면 난리가 났겠지만 조용히 소수 팬들의 환호 속에 지나간 사건이다. 7월에 1차 방어전을 역시 KO로 장식하고 11월에 2차 방어전을 가질 예정이다.

어제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는 빅 매치가 있었다.
미들급 통합 타이틀을 놓고 이 체급의 터줏대감인 버나드 홉킨스와 이에 도전하는 '골든 보이' 오스카 델라 호야의 경기였다. 오스카 델라 호야는 아마도 현역 복서중 '타이슨'(그도 아직 현역이다)을 제외하고는 가장 유명한 선수일 것이다. 92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출신이기도 한 호야는 90년대 중반이후 슈퍼 페더급 부터 무려 5체급 타이틀을 차지하고 6체급째인 미들급에 이르른 것이다. 게다가 조각같은 잘생긴 외모로 미국에서는 수많은 여성팬들을 거느린 가장 많은 대전료를 받는 초절정 인기 스타이기도 하다.

복싱 역사상 전무후무한 6체급 석권에 도전하는 골든보이 호야냐, 서른 아홉살이 되도록 헤글러 이후의 미들급에서 무적으로 군림하며 물경 18차례나 세계 타이틀을 방어한 '사형집행인' 홉킨스냐 몇 달 전부터 복싱 팬들의 지대한 관심을 끌었던 이 경기는 그러나 아쉽게도 국내에서 TV로 볼 수 없었다. 복싱의 인기가 떨어진 탓이리라. 예전 80년대를 수놓았던 레너드, 헌즈, 헤글러 등이 벌였던 전설적인 빅 매치는 모두 생방송으로 볼 수 있었는데 말이다.

경기는 데뷔이래 지나치게 많이 체급을 올려 한계에 도달한 호야가 생애 첫 KO패를 당함으로써 홉킨스의 빛나는 업적의 제물이 되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미국 시장도 예전 같지만은 않은 복싱계에 또 하나의 흥행 스타가 퇴장하는 사건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승리한 홉킨스도 나이가 무려 서른 아홉살이니(우리 나이로 40 - 41살 아니겠는가) 세월 앞에 스러질 날이 머지 않았다. 노쇠화 되가는 세계 복싱계에 또 다른 빛나는 실력과 흥행성을 겸비한 새로운 복서의 출현을 기대해 본다. 아울러 복싱팬이 다소나마 많아져서 케이블 TV의 스포츠 채널에서라도 좀 자주 방송해주었으면 좋겠다는 개인적 바램도 이루어 졌으면.

복싱은 아름답다. 순간의 미학이 복싱만큼 매혹적인 스포츠도 드물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미완성 2004-09-23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어, 정말로 대단합니다.
우리나라에선 퇴물급으로 대접받을 수도 있는 사람들이 외국에선 열심히 활동하는 것하며..
봐주는 사람이 있거나 말거나 어찌되었든 링을 지키는 이들의 모습두요. 전 스포츠를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저같은 사람때문에 방송을 안해주는 게 아닐까요..ㅜ_ㅜ) 잘 모르지만, 이렇게 복싱을 사랑하는 분이 계신데 방송해주지 않는다니, 안타까운 현실이로군요.
수요가 있어야만 공급이 있는 건가요. 수요가 있는지 없는 지도 정확히 모르면서 공급을 잘라버린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

마지막 문장에선, 파이팅이야말로 정말로 파이팅!이란 느낌이 드는군요. 히히.
저는 오학년~ 오울드핸드님은 육학년~ 히히;;;;;(웃을 게 아닌데.....(__))

oldhand 2004-09-23 1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포츠를 좋아하시지 않는 사과님이 읽기엔 지나치게 지루하고 긴 글이었겠네요. 체급도 생소하고 선수들 이름도 생소할텐데 말이죠..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엔 다들 '권투'에 흥분하던 친구들도 나이가 들더니 더이상 관심이 없어지더군요. 먹고 살기 바빠서 그런가봐요. 아니면 다들 골프치러 다니나?

미완성 2004-09-23 1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루하다뇨! 억울해요오ㅡ!

그래도 '호야'는 어렴풋하게 기억났다구요 흙흙~ 아무래도 요즈음 시대가 뭔가에 관심을 깊이 두기에는 힘든 시절이 아닐랑가요 히히^^

oldhand 2004-09-24 0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 지루하셨다면 다행이죠 ^_^
아.. 이제 또 가을 바람이 솔솔 불어오니 저는 또 프로야구 포스트 시즌으로 인해 한판 끓어 오르겠군요. 요새는 메이저리그도 봐줘야 하고... 복싱 중계 안해줘도 사실 볼건 많다니까요 으하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