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다.
사실 명절은 나이가 들어 갈수록 그다지 반가운 날은 아니다. 특히나 결혼을 한 여성들에게는 엄청나고도 부당한 노동을 요구하는 날 아닌가? 여성주의 운동가 고은광순씨는 이런 현상을 가리켜서 '명절때 마다 벌어지는 불륜'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남자인 나로써는 이러한 정도의 스트레스는 없지만 명절이 경제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그다지 편한것은 아님에 틀림없다. '명절의 차례상과 여성이 강요당하는 일방적인 노동'에 관한 이야기는 더 구구절절하겠지만 이 글의 주제가 아니니 이만 줄인다.
명절하면 또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일은 끝없이 고속도로에 늘어선 차들과 귀향인파아니겠는가? 3년전에 가산을 정리하시고 자식들 곁에서 지내시려고 경기도 지역으로 터전을 옮기신 부모님 덕에 이제 나는 '귀향길의 정체'에 빠질 일은 없어졌다. 그러나 90년에 서울에 상경해서 마지막 귀향이었던 2001년 추석까지 10여년의 세월 동안 해마다 두 번의 명절 때면 어김없이 나도 귀향길에 올라야 했었다. 그나마 나는 좀 요령있게 움직였기 때문에 10시간 이상 걸리는 정체에 휘말린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혹자는 20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명절에 한번씩 고향길에 오른다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닌지라 이런저런 크고 작은 사건들이 고향길 가는동안 벌어지곤 했다. 고속도로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것은 아니지만 나도 파란만장했던 귀향길이 한 번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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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1월 말.
설을 맞이해서 서울에 살던 우리 형제들은 귀향길에 오른다.
나는 위로 맏이인 형과 가운데 누나를 둔 막내다. 당시 형은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상황이었고, 누나는 먼저 결혼을 해서 두 명의 자녀를 두고 있었다. 설 연휴 전날을 다행히 휴가로 받은 나는 직장 일 때문에 귀향이 늦어진 매형을 대신해서(누나의 시댁도 역시 광주) 누나네 차를 운전해서 형과 누나, 조카 둘을 데리고 무사히 광주까지 가야하는 중차대한 임무를 맡게 된다. (형은 지금도 운전 면허가 없다. 음 -_-;)
출발일은 연휴 전전날 퇴근 이후 저녁시간. (연휴 전날을 휴가 냈기에)
일기예보에서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눈이 온다고 하는 불길한 소식을 들었지만 우리는 서울의 맑은 날씨에 "설마 눈이 올라고?" 하는 태평한 마음이었다.
당시 누나의 둘째는 겨우 돌이 갓 지난 젖먹이여서 누나가 안고, 큰 조카도 겨우 4살이라 베이비 시트를 사용해야 했다. (베이비 시트.. 정말 중요하다. 안전을 위해 반드시 사용하시길.) 금쪽 같은 어린아이들을 태우고 밤길 장거리 운전을 한다는건 무척 부담스러운 일이다.
연휴에 앞서 일찍 출발을 한 탓에 초반엔 순조로운 귀향이었다. 대전을 지나 전라북도에 접어 들어 여산 휴게소에서 잠깐 쉬려고 하니 눈발이 서서히 날리기 시작했다.
"더 오기 전에 빨리 가야 겠다"
우리는 서둘러 다시 출발을 했지만, 눈발은 점점 거세지고 급기야 시야도 제대로 확보가 안되는 상황.
고속 도로 바닥에는 눈이 날리고 있었지만 이 도로가 지금 빙판인지 아닌지도 제대로 구별할 수 없었다.
목적지는 멀지 않았는데 밤은 점점 깊어가고 눈보라는 휘몰아치고 마음은 초조해 진다.
전주를 지나 정읍에 조금 미치지 못한 길목에서 사건은 벌어진다.
시속 40 ~ 60 Km의 서행 운전 중이었는데 약간 좌측으로 구부러진 커브길을 돌아 나와보니 불과 전방 100여미터에 사고 차량들이 엉켜있는것이 아닌가!
얼떨결에 브레이크를 밟았으나 아뿔싸, 바닥은 이미 빙판이었다.
차는 시계 반대 방향으로 스무스하게 천천히 회전을 하기 시작했다. (정말 놀랬다. 차가 돌기 시작하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더라.) 차의 운전석 앞부분이 중앙 분리대를 부드럽게 주욱 긁으면서 우리는 어렵사리 사고 차량을 덮치지 않고 도로에 비스듬히 멈출 수 있었다.
'망했다. 내 차도 아닌데, 이리 긁어 놨으니 매형을 무슨 얼굴로 보냐.'라는 생각을 하며 망연히 앉아 있던 그 찰나의 순간, 조수석에 앉아 있던 형이 내 얼굴을 쳐다 보다가 갑자기 외쳤다.
"어어어~~ 받는다!!!"
그 소리에 놀라 운전석 옆 창문을 바라보니(차가 비스듬히 거의 가로로 서 있었으니 옆 창문을 내다보면 뒤 쪽이 보이는 시츄에이션) 오오오... 운전자와 조수석에 앉아 휘둥그렇게 눈을 치켜뜬 두명의 여인이 우리 차로 돌진하고 있는 것이었다.
"쾅~~"
차가 요동치면서 밀린다.
'아, 자동차 사고가 나는 순간 소리 참 크게 나는구나.'
그리고 우리를 받은 차의 뒷차가 다시 연이어 덮치고 우리는 다시 후폭풍에 밀려서 또한번 "쾅~~".
연이어 그 뒤쪽에서도 끝없이 들려오는 소리. "쾅, 쾅, 쾅"
아.. 어찌나 정신이 없던지. 그 와중에 '이렇게 교통사고가 나는구나. 이러다가 사람이 죽는구나.' 등등의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정신을 수습해 보니 천만 다행으로 다친 사람은 없었다. 조카가 베이비 시트에 꽉 채워져 있었기에 가능한 일. 차의 뒷 문쪽이 20 cm 이상 안쪽으로 찌그러져 있고 앞부분도 충돌에 의해 밀리면서 부딪혀 많이 파손된 상태였다.
교통사고가 나니 제일 먼저 도착하는 것은 견인차량이었다. 우리 차를 보더니 대뜸 "견인해야 되겄소" 하였다. 우리는 부서져서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눈 내리는 한밤중에 견인차에 매달려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 전주에 도착했다.
폭설이 내려 온 도시는 고요했고, 우리는 차를 수리 센터에 맡긴 채 차에 실려있던 짐을 바리 바리 싸들고 한밤중의 차도 거의 다니지 않는 도시의 변두리 도로위에 남겨졌다. 짐은 또 왜 그렇게 많던지. 누나네는 시댁에 가져갈 일이 있다고 찜통까지 짐으로 싸왔다. 형은 광주에서 쓴다고 볼링공까지 싸왔다. -_-;;; (물론, 그것들은 차에 그냥 버려둔채 나왔지만)
겨우 겨우 택시를 잡아 터미널 근처의 여관에 방을 잡아 놓고 보니 난생 처음 와봤을 것임에 틀림없는 여관방의 특이한 환경이 신기했던 모양인지 천진난만한 두 조카애들은 신이 나서 헤헤 거리며 왔다 갔다.
형과 함께 새벽에 다시 나가 병원에 입원해 있던 우리 차를 덮쳤던 뒷 차량 운전자와 동승자들을 물어 물어 찾아 내어 보험 처리 약속을 받아 냈던 일 등은 사건의 사소한 후일담.
마지막으로 다음날 아침 전주에서 고속 버스를 타고 가며 노령 산맥 언저리에 내린 폭설로 고속도로 갓길에 여기저기 쳐박혀 있던 차들을 구경했던 것이 이 길었던 1박 2일 귀향길의 마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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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추석 귀향 계획은 다들 세우셨나요? 먼길 가시는 분들, 모쪼록 모두 무사히 즐겁게 고향에 다녀 오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