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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죄
미나토 카나에 지음, 김미령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법칙1. 인간은 그 어떤 관계이건간에 서로에게 상처를 준다. 법칙2. 인간은 어른이든 아이든 이기적인 동물이다.
인간은 생물학적인 아버지와 어머니가 만나서 탄생시킨 존재다. 그리고 한 인간은 보통 그 생물학적인 부모와 함께 평생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대부분의 사회에서는 한 인간이 성년이 되기까지 만 20년정도 부모의 보호를 받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그래서 누구나 생물학적인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으며 대부분의 인간은 부모와 성년이 되기전까지 같은 공간에서 지낸다. 결론-- 부모와 자식은 가장 먼저 서로에게 상처주는 존재가 된다.
이 작품에는 한 아주머니와 여섯 아이가 등장한다. 아주머니는 유복한 환경에서 부족함 없이 자라 세상에 대해 전무하고 아가씨라는 호칭이 잘 들어맞는 자기중심적인 사람이다.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아주머니는 부모에게 제대로 인생과 세상에 대해 배우지 못하고 물질에만 둘러쌓여 자라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에라는 아이는 '내 딸이 아니어서 다행이다'라는 엄마의 말이 평생 뇌리에 박힌 채 살아간다. 마키의 엄마는 아이가 자율적으로 참가하는 학교 봉사 활동에 빠졌다는 것을 알고 등과 머리를 때리며 혼을 내는 사람이다. 아키코의 부모는 아키코도 아들이었으면 하는 말을 자주한다. 유카는 엄마에게 탐욕스러워 보이는 눈이라는 소리를 자주 들으며 언니에게 부모의 사랑을 빼앗긴 채 성장하는 아이다. 타카히로는 사이가 나쁜 부모에게 애정을 받지 못해 결국 이상성애자가 된다.
흔히들 부모는 아이를 아껴주고 보호해주고 사랑해준다고 생각한다. 특히 어머니라는 존재는 제 배 아파서 나은 자식에 대해 모정이라 부르는 사랑으로 가득차 있다고 여겨지기 십상이다. 그래서 엄마는 어떻게 생겨난 자식이든 포기할 수 없다고 흔히들 말한다. 불륜으로 생긴 아이든, 강간으로 생긴 아이든, 일단 뱃속에서 같이 시간을 보내면 절대 포기할 수 없다는 장면은 익숙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그렇게 열달 열흘을 함께 보낸 아이가 세상에 나오면, 어느덧 그 아이와의 생활이 지속된다. 밥먹고, 일하고, 돕고 도와주는 일상적인 생활. 그 속에서 타인에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부모는 아이에게 알게 모르게 상처를 준다. 아이도 부모에게 많은 상처를 준다. 그런 관계 속에서 아이는 사회를 배우면서 커간다.
문제는 이 작품속의 인물들은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에다가 아주머니에게 '살인자'라는 소리까지 들으면서 인생이 비틀어지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친구를 죽인 범인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죄, 그것과 가족들에게 받은 상처가 복합적으로 얽히면서 목격자인 네 아이의 인생은 결국 살인으로 귀결되고 만다. 우연이 극단으로 치달으면서 죄는 연쇄적으로 아주머니와 에미리를 둘러싼 인물들을 파괴한다. 철없이 내뱉은 말에 누군가는 자살하고, 철없던 시절에 인형을 동경하던 마음은 죽음으로 귀결되고....등등등..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죄의 연쇄는 시작부터 끝까지 극단적으로 인간을 일그러뜨린다.
이런 죄의 연쇄를 보면서, 결국 인간은 이기적이라는 두번째 법칙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간다. 모정이라는 것도 어머니와 아이의 관계가 아닌, 사회적인 테두리 안에서 타인과 선을 긋는 시점에서 생겨나는 이기적인 것이 아닌가 싶다. 부모도 깨물어서 더 아픈 자식에게 애정을 더 쏟으면서 다른 아이는 상처받기도 하고, 부부관계가 소원하다고 해서 자식을 방치한다거나, 자식도 부모에게 무한한 애정을 갈구하는 이기적인 모습을 보인다. 타인과의 관계는 말할 것도 없다. 약혼자를 사랑한다는 것을 아는 친구에게 약혼 반지를 자랑스레 꺼내보이고, 자신의 컬렉션을 자랑스레 내보이며 우위에 서기를 원하다거나, 과거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신의 자식에게 해를 가하는 부모까지. 이 작품 속에는 이기적인 인간이 가득하다 못해 책을 비집고 나오려 한다.
미나토 가나에라는 작가가 대체 어떤 사람인지 슬슬 궁금해진다. 전작 <고백>에서 충격적인 결말을 보면서 '와.. 어떻게 살아왔길래 이런 식으로 인간을 바라볼 수 있을까' 싶었는데 이번 작품에서도 아주 냉정한 시선은 변하지 않았다.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에 틈하나 없다. 아이라도 용서가 없다. 전직이 선생님이었다고 하는데, 학부모와 아이들을 지켜보면서 사회에 대해 온기 하나 없는 냉정한 시선을 얻게 되지 않았나 싶다. 서로에게 가차없는 아이와 부모와 선생과 친구들이 가득한 세상....
전작 <고백>에 비해서 서술 형태가 너무 일정하다는 것이 책을 읽어나가는데 너무 방해가 되었다. 네 명의 소녀와 아주머니는 모두 자기 독백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사에와 마키를 지나고 나면 슬슬 지루해지는 것은 확실히 이 작품의 약점이다. 게다가 네 아이의 패턴이 모두 똑같아서 작위적이라는 느낌도 지울 수가 없었다. 죄의 연쇄에 대해 많은 생각은 한 흔적은 보이지만 에미리의 죽음과 관련된 인물들이 모두 같은 패턴이라는 것은 역시 부자연스럽다.
그녀의 세번째 작품 <소녀>는 작가가 어떤 형식을 갖추고, 또 어떤 시선으로 사회를 바라보는지 궁금해지면서 앞선 두 작품과 같은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걱정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