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로관의 살인사건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YUKITO AYATSUJI / 학산문화사(만화) / 1997년 7월
평점 :
절판


  실제로 그 사건을 지켜본 사람은 누구일까? 라는 질문으로 시작하는 이 작품은 시시야 카도미라는 사람이 지은 <미로관의 살인사건>이 본문을 이루고 있는, 다시 말해서 액자식 소설이다. 관 시리즈마다 등장하는 시마다는 이 <미로관의 살인사건>이라는 책을 받아서 실제 독자와 같은 시선에서 작품을 읽는 이중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벌써 흥미로운 구조가 아닐 수 없다. ㅎㅎ 

  역시 관시리즈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인물, 관(館)을 지은 천재 건축가 나카무라 세이지. 그가 미로관을 지은 장본인이다. 따라서 관시리즈를 처음부터 읽은 독자라면 당연히 숨겨진 비밀 공간이 존재하며 밀실은 눈에 보이는 그대로의 밀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아야츠지 유키토도 독자가 그 정보를 알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서 작품을 전개해나간다. 처음에 아야츠지 유키토라는 작가는 왜 나카무라 세이지라는 건축가의 특징으로 숨겨진 장소가 꼭 있을 것이라는 정보를 대놓고 독자에게 알려주는지 의아했다. 독자를 바보로 보는건가 싶을 정도로... 하지만 그런 사실 역시 시리즈를 지탱하는 커다란 줄기라는 건 관시리즈에 대한 나의 애착을 키우는 요소가 아닌가 싶다.)  

  <미로관의 살인사건>은 추리소설의 대가, 그러나 이제 건강상의 이유로 산중에 미로관을 짓고 틀어박혀 사는 미야가키 요타로가 자신의 환갑잔치에 촉망받는 추리작가 4명을 모아놓고 최고의 추리소설을 써낸다면 유산을 상속하겠다는 유언을 남기고 자살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대가답다고 모두들 생각하고, 나도 생각했다. 미스터리 소설에 등장하는 대가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일반인과는 다른 포스가 풍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추리소설을 쓰던 4명이 모두 살해당한다. 그것도 자신이 쓰던 소설 속 살인과 그대로. 그런데 추리소설 대가의 비서는 행방불명이다. 집은 완전히 봉쇄당해서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상태로 만들어놓고 말이다. 의혹은 당연히 사라진 비서에게로  향한다. 

  결국 범인은 밝혀지지만, 범인을 찾았을 때는 이미 죄를 물을 수 없는 상태였다. 나카무라 세이지가 남긴, 진정한 주인의 방을 향한 미로 속에서 한번쯤 살인해 보고 싶었다는 범인의 메모만이 덩그러니 남고, 미로관에서 살아남은 사람 중 한사람이 시시야 카도미라는 필명으로 <미로관의 살인사건>이라는 책을 출간하기에 이른다. 시시야 카도미가 덧붙인 작가 후기에서 '등장 인물 가운데 누가 시시야 카도미일까?'라고 도전장을 던진다. 여기에서 작가는 살아남은 몇 안되는 사람 중에 대체 누가 시시야 카도미일지 처음부터 알아내려고 애쓰게 된다. 누구 한 사람 시시야 카도미로 보이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이 작품의 매력은 서술트릭과 액자식 소설이 주는 다층적인 트릭에 있다. 살인사건의 트릭은 이미 밀실이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는 정보를 독자는 가지고 있기에 의미가 없지만 마지막 5장을 남기고 이 작품은 추리소설이 표현할 수 있는 모든 트릭들이 동원되어 독자를 강타한다. 물론 소소하다고 할 수 있다. 원래 미스터리 소설의 가장 큰 트릭은 살인사건에 쓰인 트릭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머지 트릭이 소소할지라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시시야 카도미의 <미로관의 살인사건>은 서술트릭을 구사하고 있고, 아야츠지 유키토 역시 서술트릭을 구사하는, 이중 서술트릭으로 진범과 시시야 카도미의 정체를 눈치채지 못하게 작품을 꾸며놓았다.  

  관시리즈가 별로라는 사람도 많은데, 난 이런 소소함하지만 꽉찬 느낌의 추리소설이 좋다. 크게 살인사건에 쓰인 트릭하나 터트려놓고 마무리 제대로 못하는 것보다, 앞선 관시리즈를 복제해가면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는 관시리즈에 많은 애정이 간다. 심각하지 않게, 지적유희를 즐기기 위해서 가볍게, 하지만 작가와의 치열한 두뇌싸움을 벌일만한 관시리즈를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데 왜 한스미디어에서는 '십각관'과 '시계관'과 '암흑관'만 출판했는지, 조금 서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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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fong 2010-03-05 1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관시리즈중 암흑관이 젤 재미있더군요.

돌이 2010-03-07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계관이 베스트라고, 암흑관은 그저 그렇다고 했는데.. 님께선 암흑관이 베스트라고 하시니..암흑관까지 달려봐야겠네요. ㅎㅎㅎ

지젤 2010-06-21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시계관이 제일 재밌었어요. 십각관은 아가사크리스티 느낌이 나긴 했지만 약간은 부족한 느낌이었고, 암흑관은... 걸작이긴 하지만 너무 길고 주저리주저리 하는것이 저한텐 읽기가 좀 벅찼어요 ㅠㅠ

돌이 2012-12-22 1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암흑관의 그 분량은 손대기도 전에 사람을 질리게 하죠..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