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수업 (양장) - 글 잘 쓰는 독창적인 작가가 되는 법
도러시아 브랜디 지음, 강미경 옮김 / 공존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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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책을 통해 글을 잘 쓰는 법보다는 작가가 되는 법을 배우게 된다면 나의 목적은 이루어지는 셈이다. 글을 잘 쓴다는 것과 작가가 된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작가수업'은 문장은 어떻고 소재는 어떻게 찾아내고 글의 구조는 어떻게 잡는지에 대한 책이 아니다. 지금까지 글쓰기 책이 세부적인 각론 퍼레이드였다면 이 책은 그동안 작법 책이 말하지 않는 비밀, 즉 어떻게 하면 작가가 될 수 있는지를 밝힌다. 짐작했겠지만 그 비밀, '시크릿'을 안다고 작가가 되는건 아니다. 다만 자기계발서의 온갖 맹점에도 불구하고 그 책들이 꾸준히 팔리는 이유를 추측할 따름이다. 세미나를 듣고, 이 책을 읽고, 좀 더 생각하고, 좀 더 쓴다면 어쩌면 나도 작가가 되지 않을까란 막연한 희망. 그렇다고 이 책을 작가의 자기계발서라고 보기엔 좀 그런 것 같지만.

  다음과 같은 구절들을 보면 왠지 불끈거리지 않는가. 어젯밤 내가 복분자주를 먹어서 그러는게 절대로 아니란 말이다.

 작가의 근본 문제는 자신감, 자존감, 자유의 문제다. 그런 점에서 작가의 수호정령은 무의식 속의 이런저런 유령들에게 붙잡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글쓰기 교사와 글쓰기 교본들은 유난히 비관적이다. 브랜디는 유독 글쓰기 분야에서만 이런 잘못된 비관주의가 기승을 부리는 이유를 파헤친다. 문제를 헤쳐나가는 데 다른 사람은 도움이 되지 않더라는 경험을 내세워 미리부터 자신의 한계를 드러내며 학생에게 책임을 돌림으로써 은연중에 학생의 문제를 더욱 심화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내가 그 동안 글을 못쓴건 다 자책감을 건드리는 작법책들 때문이었어! 이 얼마나 신속하고 약삭빠른 책임전가란 말인가. 글을 못쓴건 예능을 죄다 섭렵하고 시험 전날도 아닌데 안 하던 책상 정리를 하고 싶고 그도 아니면 책 속에 더 의미있는 이야기가 씌어질 것 같아 책을 읽어서라고 말하는 것보다 내 문제를 더 심화시킨 작법책 때문이라고 하는건 얼마나 터무니없으면서 그럴 듯 한가. 

재는 남다른 기질이나 훈련을 통해 자신의 무의식을 의식 작용과 상관없이 자신의 합리적인 의도에 완전히 이바지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다....재능이라는 자원은 그 양이 아무리 미미하다 하더라도 평생을 가도 다 쓸 수 없을 만큼 충만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타고난 재능을 더 늘리는 것이 아니라 활용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시대와 인종을 초월해 위대한 사람들은, 마치 처음부터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그야말로 순수한 재능을 타고나기라도 한 듯 너무나 위대해서 편의상 우리가 '천재'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삶과 예술 작업에서 나머지 인간들보다 그러한 기능을 좀 더 자유롭게 발휘했을 뿐이다.
 나도 어딘가에 숨어있을지 모를 재능을 활용하는 법만 배우면 된단 말이지. 얼쑤! 이것저것 뜸 들이는 법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보자. 작가가 되기 위해선 우선 일정한 시간을 정해서 글을 써야 한다. 정해진 시간 동안 글 쓰는게 가능해지면 그때부터는 시간을 바꿔가며 써본다. 즉 자리에 앉아서 정해진 시간 동안은 글이 술술 나오게 하는 훈련. 그 다음에는 

 몸을 가만히 놔두듯 마음을 가만히 놔두는 법을 익히라.
책을 덮고 눈을 감은 상태로 잠시만 마음을 가만히 놔두라. 단 한순간이라도 성공했는가? 전에 한 번도 그렇게 해본적이 없다면 마음이 얼마나 쉴 새 없이 분주하게 움직이는지 아마 깜짝 놀랄 것이다. 인도의 옛 현인은 자신의 마음을 반은 자조투로 반은 변명투로 '재잘대는 원숭이'에 비유했다. 성다시시 프란체스코(1182~1226, 이탈리아의 수도사)는 자신의 몸을 가리켜 '나의 바보 형제'라고 일컬었다. 어느 실험자는 이렇게 한탄했다.
"마음이 소금쟁이처럼 수면을 내달린다."
 하지만 조금만 훈련하면 마음의 부산스런 움직임에 제동을 걸고 적어도 자신의 목적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마음을 다스릴 수 있을 것이다.

 내 마음은 네온사인 같았다. 도저히 가만히 있질 않는다. 번쩍번쩍, 휙휙, 뭘 좀 더 먹은 다음에 이를 닦을까, 아냐 생각을 하지 말아야지, 눈을 감아볼까, 아 잠이 오려고해. 그럼 앞에 있는 무형의 점에 집중해보자. 오마이갓! 점이 춤을 추고 깜빡이고 난리도 아니다. 소금쟁이처럼 간질이는 맘은 도저히 가만히 있질 않는다. 마음 가만히 내버려두기 훈련이 끝나면 저자는 드디어 신묘한 비법을 알려준다. 바로 '예술적 혼수 상태' 불러내기!

  이제 이야기를 여전히 되는 대로 생각하면서 목욕을 한 다음 어두운 방으로 들어가 등을 대고 똑바로 누우라. 그런 자세가 너무 졸린다 싶으면 나지막하고 큼직한 의자에 앉아 적당히 긴장을 풀라. 편안하게 자세를 취했으며 더 이상 움직이지 말라. 몸을 가만히 놔두라. 그런 다음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라. 완전히 잠든 상태도, 그렇다고 완전히 깨어 있는 상태도 아닌 채로 그저 누워 있으라.
 잠시 후, 20분이 될 수도 한 시간이 될 수도 두 시간이 될 수도 있는데, 일어나고픈 욕구가 일면서 활력이 마구 샘솟을 것이다. 즉각 그런 욕구에 응하라. 쓰려고 하는 글을 제외하면 세상 어느 것에도 관심이 가지 않는 일종의 경미한 몽유병 상태에 빠질 것이다. 상상의 세계만 생생하게 와닿을 뿐 바깥세상은 그저 따분하게만 느껴질 것이다. 자리에서 일어나 종이나 타자기 앞으로 다가가 글을 쓰기 시작하라. 그 순간 그대의 상태는 예술가가 작업할 때 빠져드는 상태가 된다.

 나는 일정한 시간을 정해서 글을 쓰는걸 가까스로 삼일 하고(장하다), 마음을 가만히 내버리기 훈련은 시작도 못하고 끝내고 말았다. 맘이 자꾸 간지럽다고만 해서 '예술적 혼수 상태'를 불러내지 못했다. 결국 작가가 되지 못한거다, 라고 말하는건 너무 가볍지만 어쨌든 그렇다. 영적이라던가, 은유에 대해 감도 못잡고 있는 나로선 이 책을 읽으면 나의 무의식을 소환해 뭔가 나답지 않은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란 기대가 있었다. 의식하고 또 의식하는 글쓰기가 아니라 내가 상상하지 못했는데 글로 나와버리는 어떤 것 말이다. 하지만 저자가 말하는대로 실천도 안 했을뿐더러 맘이 네온사인 같아서 무의식은 커녕 의식하는 것을 곧이 곧대로 적는 것도 힘에 부쳤다. 흔한 계단 이론에 따르면 이런 부침을 겪으며 열심히 하면 한 계단 오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치인지라 어찌 글쓰기며 사는 게 계단처럼 오르고 말고의 문제일 수 있겠는가, 라며 적당히 타협해버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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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2-10-13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어려운데요. '마음의 부산스런 움직임에 제동을 걸고 적어도 자신의 목적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마음을 다스'리는 차원은 거의 보리수나무의 석가모니가 되는 수준인 것 같은데..근데 그렇게 할 수 있을 정도면 굳이 작가라는 거 안해도 되는 거 아닌가..뭐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은 '이런 잘못된 비관주의가 기승을 부리는' 것이겠지요.;; (그래도 일단 앉아서 아무거라도 쓰세요,라는 식보다는 훨씬 좋은 충고인 것 같음.)

Arch 2012-10-14 09:35   좋아요 0 | URL
ㅋㅋ 인용이 이렇게 걸맞다니~ 댓글 보고 엄마 미소를 지었어요.

저는 네온사인처럼 가만히 있지 않는 내 맘이 문제려니 했는데 어떻게 보면 그 경지야말로 도달하기 힘들겠단 생각이 드네요. 다시 뭔지 모를 의욕이 막 샘솟는, 기분만, 느낌만 그래요.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책은 무책임하고 '의지여, 타올라라'적인 면이 있긴 해요.


saint236 2012-10-14 1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구매하고 기다리고 있는 책입니다. 그런데 "어제 복분자주를 먹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라는 내용이 왜 자꾸 눈에 들어올까요? ㅎㅎ
 
남자의 자리
아니 에르노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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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나는 이 글을 천천히 쓴다. 일련의 사실들과 선택들 가운데에서 한 생애의 의미 있는 줄기를 드러내려 애쓸 때, 나는 점차로 아버지의 특별한 모습을 잃어 간다는 느낌이 든다. 그럴 때면 도식이 자리를 온통 차지해 버리고, 추상적인 생각이 제멋대로 달려가려 하는 것이다. 만약 이와는 반대로 추억의 이미지들이 미끄러져 들어오게 놔두면, 난 있는 그대로의 그의 모습, 그의 웃음과 그의 거동을 다시 보게 된다. 그는 내 손을 잡아 놀이 장터로 데려가고, 놀이 기구들은 날 오싹하게 만들며, 다른 이들과 공유하는 어떤 조건의 모든 지표는 내게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다. 그래서 언제나 나는 나의 개인적 관점이라는 덫을 떨치듯이 빠져나온다.


 이야기는 하나의 일화로 시작한다. (요새 서서비행을 읽는 중인거 티냄) 여자 아이는 동네에서 술을 드시는 아빠를 찾아나선 참이다. 남자는 머리 꼭대기까지 술을 마시는 날이 많았고 그날도 다르지 않았다. 아이는 어렸지만 '뭐든 심각해' 체질이라 남자가 술을 마시는건 의지가 없고 취미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몸 쓰는 일을 하는 사람이 술에 취해 잠들 수 밖에 없는, 의지와 돈과 몰취미의 문제가 아니라 몸이 쉬이 잠들지 않아 술이라도 먹어야 간신히 잠들 수 밖에 없는 일들이 있다는걸 그때의 아이가 알 리 없었다. 남자는 여자애의 조그만 어깨를 짚고 불안하게 걸음을 내딛었다. 


 아이는 술에 취한 아빠의 자전거 뒷자리에 탔다. 아이는 남자가 술을 많이 먹는 것 말고는 모든 일을 척척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불안할리가 없었다. 한아름 안기지 않는 남자 등에 매미처럼 붙어있었다. 비틀대며 움직이던 자전거는 아이를 떨어트린 것도 모르고 한참동안 앞으로 간다. 남자가 자전거를 멈췄을 때 아이는 울어야할지 떼를 써야할지 몰랐다. 90점짜리 시험지를 가져오면 '에게'였고, 100점짜리 시험지에는 '당연히'였던 남자라 아프다고 하면 '에게'할까봐 지레 겁먹었는지도 모르겠다. 남자는 자전거를 타고 아이 쪽으로 와서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아이를 자전거에 태운다.


 빨래하는 엄마를 쫓아 아이가 북북 기어나오면 엉덩이를 톡 때려서 방으로 데려가는건 남자였다. 사우디에 있을 때 아내보다 첫딸 사진을 더 보내달라고 편지에 썼지만 그런 딸이 막상 아빠를 보고 앙하고 울어버리자 바로 엄마에게 떠민 것도 남자였다. 남자는 서툰 아빠였고 그 시대의 여느 남자처럼 서툰 관계를 개선하려고 하지 않았다. 아이를 대하는 기술도 없었고 감정을 다스리지도 않았다. 부부 관계는 좋지 못했고 둘은 빈번하게 싸움을 했다. 아이들은 둘의 싸움을 무서워했지만 그 역시 티를 내지 않았다. 여자 아이는 그런 상황을 벗어날 용기도 없는 주제라 자기연민에 빠지기 일쑤였다.


 사우디에서 돌아온 남자는 직장 대신 사업을 택했다. 김양식은 쫄딱 망했고 군부대에서 일을 할때는 제법 돈을 만졌다. 아파트로 이사간 것도 침대와 침대보, 새 책상을 산 것도 그즈음이었다. 건축붐이 있었고 서랍에 얼마인지 모를 돈을 보관할 정도로 돈이 많았던 시기였다. 그 후로는 지속적인 침체기였다. 남자로선 이게 사는건가 싶을 정도로 야박하고 심심한 일상이 지속됐다. 빚은 줄지 않고 벌이는 시원찮았다. 머리가 커진 딸들에게 들어갈 돈은 많았는데 항상 마이너스였다. 아이는 그가 호기롭게 사줬던 빨간색 차를 팔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좀 더 자란 아이와 남자는 비슷한 성향답게 날을 세울 때가 많았다. 외박을 하거나 말대답을 했다는 이유로 같은 집에 살면서도 얘기를 안 할 때가 종종 있었다. 한번은 몇달간 대화를 안 하다 대학합격 소식을 전하며, 아차 우린 말 안하고 있었는데 싶었던 적도 있었다. 서로를 대하는 방법을, 존중하는 방법을, 감정을 조금 누르고 마주하는 방법을 몰랐다. 남자는 답답한 아파트보다 시골이 좋다고 하지만 귀농하기 위해서 알아보는건 '6시 내 고향'을 보는게 다였다. 항상 텔레비전을 보고 일이 없는 날은 밤늦게까지 텔레비전을 보다 잠이 든다.


 친구들과 관계도 넓어지고 삶에 대한 자신감이 커지는 엄마에 비해 남자는 술이 없을땐 별로 말이 없다. 요새는 그마저도 피부병 때문에 못마신다. 남자가 술을 좋아한다기보다는 술을 먹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얻는건 아니었을까란 생각이 든다. 예전에 남자가 아이를 좋아하지만 겁냈다면 요즘은 손주들 보는 재미에 푹 빠졌다. 비록 1시간을 못넘기는 애정이지만 어찌나 살뜰한지 여자 아이는 자신도 그런 관심을 받았다면 좀 나은 여자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란 생각을 해본다. 남자는 추석에 뭐 먹고 싶냐고 묻다가 이것저것 말하는 딸들에게 '재료는 알아서 하는걸로'라고 농을 친다.


 난 런던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멀리 떨어져 있으니 아버지는 어딘가에 분명히 존재하는 어떤 추상적인 애정으로 환원되었다. 나는 나 혼자만을 위해 살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편지로 보고해 주었다. 여기는 추운데, 우리는 이런 날씨가 오래가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요번 일요일에는 그방빌에 사는 친구들을 보러 갔었다. X 어멈은 예순 살에 죽었는데, 그렇게 늙은 나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녀는 글로는 제대로 농담을 하지 못했다. 사실, 편지에서 사용한 언어와 표현들로부터가 그녀에겐 너무도 버거운 것이었다. 하지만 말을 하듯 자연스럽게 글을 쓰는 것은 한층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게 글을 쓰는 법을 한 번도 배운 일이 없었으니 말이다. 아버지는 서명을 했다. 나 역시 진술서 같은 어조로 그들에게 답장을 보냈다. 만일 공들여 다듬은 문체를 사용했다면, 그들은 내가 자신들과 거리를 두려 한다고 느꼈으리라. 


 '남자의 자리'는 '내가 부유하고도 교양 있는 세계에 들어갈 때 그 문턱에 내려놓아야 했던 유산을 밝히는 작업을, 난 이제 이렇게 끝냈다.'로 끝을 맺는다. 이 소설을 읽는건 독특한 경험이었다. 내가 언젠가 쓰려고 했던 누군가의 생애를 그리는 작업이란 점에서, 한번도 담담한 어조를 놓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랬다. 그래서 나도 그 '남자의 자리'를 짧게나마 적어보았다. 쉽게 읽히고 간결한 글을 읽는다고 해서 쉽게 읽히고 간결한 글을 쓸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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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껑 대신 마음을 여는 공감 글쓰기
이강룡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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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부님 강연을 듣던 중이었다. 벼농사 얘기를 하다가 퇴비는 적당히 줘야한다는 얘기가 나왔다. 손을 뽈딱 들고 질문했다. '퇴비를 적당히 주라는게 얼마 정도 줘야한다는건가요.' 강연하는 분은 '거 참, 쓸모없는 질문도 다 한다'는 표정으로 강연 끝나고 말해주신다고 했다. 강연 끝난 후 말해주신 내용도 별 게 없었다. 땅 상태를 잘 봐서 맞춰서 줘야한다는거였다. 그런데 얼굴이 왜 이렇게 화끈거리지?


 나는 강연을 들을 때마다 질문을 한다. 질문할 게 없으면 질문하려고 막 머리를 짜내기도 했다. (머리를 짜내면 아프다) 어렸을 때 질문하는게 좋다고 배운걸 곧이곧대로 실행하는 것이다. 질문을 할 때면 굳이 내가 나서서 지지해야하는 '나=똑똑한 여자'란 확신도 생기고 강의 집중도도 높아진다. 그런데 질문이 정말 좋은걸까. 관심의 표명이 아니라 정말 궁금해서 질문하는가란 의심에서부터 하찮은 존재감을 질문으로 드러내려고 발버둥치는건 아닐까 싶은 자학까지. 대체 질문은 어떻게 해야하는거야.   


'선생님 이게 무슨 뜻인가요?'가 아니라 '선생님, 저는 이 말이 이런 뜻이라고 이해했는데 맞습니까?'라고 해야한다. 자기 지식의 한계를 명확히 드러냄으로써 선생님에게 판단 근거를 제공한다. 생각나는대로 지껄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묻고 또 물어서 더 낫게 규정하고 맥락에 맞게 더 잘 보여주고자 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그랬구나. 아무 생각없이 앉아 있다가 찾아서 알아낼 수 있는 것까지 굳이 질문하고 '나= 질문하는 여자 사람'이란 몹쓸 자의식을 챙겼구나. 왜 화끈거렸는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뚜껑 대신 마음을 여는 공감 글쓰기'는 근래 보았던 어떤 글쓰기 책보다 쉽게 읽히고 재미있다. 쓰고 싶은 대로 쓰는게 아니라 남들과 공감할 수 있는 글쓰기를 해야한다는게 이 책의 요지다. 글 사이사이에 저자의 깨알같은 유머도 재미있고 부단히 메모했겠구나 싶은 예시나 일화도 흥미로웠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없다. 책 속 구절들이 마지막에 이르러선 너무 빈번해 재미를 반감시킨 탓에 별을 하나 뺐다. 작가님도 이해하리라 믿는다.


 내 멋대로 쓰는 글이 아니라 누군가 읽을 때 좋은 글을 쓰기란 어렵다. 내가 하고 싶고 쓰고 싶은 글이 아니라 상대방이 읽어서 좋은 글을 써야하기 때문이다. 그럼 나는 냉큼 이렇게 말하겠지. '아니, 내 서재에 내 맘대로도 못써?' 그렇다. 누구에게나 아무렇게나 글을 쓸 자유는 있다. 하지만 내 글을 읽는 불특정 다수가 글에서 괜찮은거 느낌을 받았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그래서인지 요새 페이퍼를 잘 못쓴다. 회사에서 정신적 스트레스를 과도하게 받아서인줄 알았는데 쓸만한 얘기가 없어서란걸 깨달았다.  예전엔 꾸역꾸역 써지던 글도 뭔가 부족해보이고 잘 안 써진다. 댓글 하나에 추천 하나에 일희일비하는 사람이라 그 모든 수치와 평가와 반응들에 좌지우지 하는 것이다. ㅍ ㅔ이퍼는 기우뚱거리다 갈팡질팡. 그래서 내 멋대로가 아니라 공감하는 글쓰기를 배우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반 에이크는 작은 개의 곱슬곱슬한 털 하나하나를 묘사하는데 온 정성을 쏟고 있는 반면에, 그로부터 이백 년 뒤의 벨라스케스는 개의 특징적인 인상만을 포착하려고 노력했다. 레오나르도처럼, 아니 오히려 그보다 더 한층 꼭 필요한 것만을 묘사하고 보는 사람에게 상상할 여지를 남겨놓고 있다.


 주관이 개입된 기술 대신 눈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옮겨서 판단은 독자에게 맡기기. 나는 언제쯤 그런 경지에 닿을 수 있을까. 그깟 서재에 글 하나 쓰면서 독자 운운에 콧방귀를 뀔 사람 분명 있을 것이다. 누군가 이런 글을 썼다면 나 역시 그랬을테니까. 그렇지만 책의 형태로 된 문자를 읽는 사람만 독자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내가 즐겁고 나와 같은 공간에서 글을 쓰고 누군가의 글을 읽는 사람들도 즐거울 수 있을까. 저자는 괜찮은 서재(혹은 블로그)로 거듭나는 좋은 평판을 얻기 위해서는 다음의 두 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좋은 글을 쓴다.

첫번째 원칙을 반드시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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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2-09-07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렸을 때 질문을 하는게 좋다고 배우셨군요.
잘 듣기만 하고 나오는 것과 질문을 하고 나오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해요.
'스누피의 글쓰기 정복'과 함께 위의 책도 저도 언제부터 벼르고만 있는 책인데 스누피도 읽었으니 이제 이 책도 읽어야겠어요.

Arch 2012-09-11 11:08   좋아요 0 | URL
고지식해서 곧이곧대로 질문하고 그랬어요.
스누피의 책은 김연수 때문에 읽었는데 그다지... 좋은건 정말 좋아요, 라고 말할 수 있는데 그다지인건 어떻게 말해야할지 모르겠어요.

숲노래 2012-09-07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쓰고 싶은 글을 쓰고
읽고 싶은 책을 읽고
그리고픈 그림을 그리면 돼요.

반 에이크는 '상상력을 안 남기'며 그림을 그리지 않았어요.
스스로 그리고픈 대로 그렸어요.
상상력이란, 그림을 보는 사람 스스로 빚는 마음이에요.
Arch 님 좋은 마음 잘 북돋우며 사랑스러운 글을 써 주셔요.

Arch 2012-09-11 11:09   좋아요 0 | URL
전 사랑스러운 사람이 아니라 ^^
고맙습니다. 된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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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이팟을 사고 싶었는데 어디서 사야할지 알 수 있어야지. '세계최초 신제품대박'은 살짝 쑥쓰럽지만 쪼끄만한게 기능은 참 많다. 그 기능을 쓸 일이 없다는건 안 자랑. 음질이 너무 아니다. 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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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08-08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팟은 알라딘에서도 파는데..나는 알라딘에서 샀는데..아치 바보.

http://gift.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7120210891

Arch 2012-08-08 17:20   좋아요 0 | URL
내가 지금 다시 검색했는데 액세서리밖에 안 나와요. 어쩌면, 정말 어쩌면 이제껏 아이팟 가격에 놀라서 못찾았다고 나를 속여온건지도 몰라요. <-- 어쩐지 씁쓸하구만. 뭐가 그렇게 비싸요~

다락방, 아이팟 좋아요?
아이팟 적금 들게. ㅋㅋ 이건 좀 청승인듯.

다락방 2012-08-08 17:46   좋아요 0 | URL
검색창에 아이팟을 치고 검색하면 악세사리가 주루룩 뜰거에요. 그럼 소팅을 '저가격순'으로 해요. 그리고 끝에서부터 봐요. 다시 말하자면 고가격순으로 보는거지. 오케? 그럼 뜰거에요.
 
스테들러 옐로우 연필 1다스 12자루 _ HB/2B 택1 - H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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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중국산이잖아요. 어, 그래서 싫다는건 아닌데 연질이 말랑한건 아닌데 왠지 말랑한 느낌의 독일 것과 비교된달까. 상품소개에 중국산이라고 해야할 것 같은데. 중국산이 다 나쁘다는건 아닙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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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꼬 2012-08-13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치님, 저는 변태일까요? 이 100자 평이 왜 이렇게 좋을까요? 아치님이 어떤 사람인지 알 것 같아요. 연필을 좋아하는 아치님. 단단한 연필을 좋아하는 아치님. 그렇지만 중국산이 나쁘다는 건 아니라고 꼭 말하고 싶은 아치님. 아 아치님.

Arch 2012-08-14 19:47   좋아요 0 | URL
제 100자평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니! 완전 좋아요.
저도 네꼬님 글을 볼 때마다 나에게 이런 기준, 이런 감성이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