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수업 (양장) - 글 잘 쓰는 독창적인 작가가 되는 법
도러시아 브랜디 지음, 강미경 옮김 / 공존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통해 글을 잘 쓰는 법보다는 작가가 되는 법을 배우게 된다면 나의 목적은 이루어지는 셈이다. 글을 잘 쓴다는 것과 작가가 된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작가수업'은 문장은 어떻고 소재는 어떻게 찾아내고 글의 구조는 어떻게 잡는지에 대한 책이 아니다. 지금까지 글쓰기 책이 세부적인 각론 퍼레이드였다면 이 책은 그동안 작법 책이 말하지 않는 비밀, 즉 어떻게 하면 작가가 될 수 있는지를 밝힌다. 짐작했겠지만 그 비밀, '시크릿'을 안다고 작가가 되는건 아니다. 다만 자기계발서의 온갖 맹점에도 불구하고 그 책들이 꾸준히 팔리는 이유를 추측할 따름이다. 세미나를 듣고, 이 책을 읽고, 좀 더 생각하고, 좀 더 쓴다면 어쩌면 나도 작가가 되지 않을까란 막연한 희망. 그렇다고 이 책을 작가의 자기계발서라고 보기엔 좀 그런 것 같지만.

  다음과 같은 구절들을 보면 왠지 불끈거리지 않는가. 어젯밤 내가 복분자주를 먹어서 그러는게 절대로 아니란 말이다.

 작가의 근본 문제는 자신감, 자존감, 자유의 문제다. 그런 점에서 작가의 수호정령은 무의식 속의 이런저런 유령들에게 붙잡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글쓰기 교사와 글쓰기 교본들은 유난히 비관적이다. 브랜디는 유독 글쓰기 분야에서만 이런 잘못된 비관주의가 기승을 부리는 이유를 파헤친다. 문제를 헤쳐나가는 데 다른 사람은 도움이 되지 않더라는 경험을 내세워 미리부터 자신의 한계를 드러내며 학생에게 책임을 돌림으로써 은연중에 학생의 문제를 더욱 심화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내가 그 동안 글을 못쓴건 다 자책감을 건드리는 작법책들 때문이었어! 이 얼마나 신속하고 약삭빠른 책임전가란 말인가. 글을 못쓴건 예능을 죄다 섭렵하고 시험 전날도 아닌데 안 하던 책상 정리를 하고 싶고 그도 아니면 책 속에 더 의미있는 이야기가 씌어질 것 같아 책을 읽어서라고 말하는 것보다 내 문제를 더 심화시킨 작법책 때문이라고 하는건 얼마나 터무니없으면서 그럴 듯 한가. 

재는 남다른 기질이나 훈련을 통해 자신의 무의식을 의식 작용과 상관없이 자신의 합리적인 의도에 완전히 이바지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다....재능이라는 자원은 그 양이 아무리 미미하다 하더라도 평생을 가도 다 쓸 수 없을 만큼 충만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타고난 재능을 더 늘리는 것이 아니라 활용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시대와 인종을 초월해 위대한 사람들은, 마치 처음부터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그야말로 순수한 재능을 타고나기라도 한 듯 너무나 위대해서 편의상 우리가 '천재'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삶과 예술 작업에서 나머지 인간들보다 그러한 기능을 좀 더 자유롭게 발휘했을 뿐이다.
 나도 어딘가에 숨어있을지 모를 재능을 활용하는 법만 배우면 된단 말이지. 얼쑤! 이것저것 뜸 들이는 법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보자. 작가가 되기 위해선 우선 일정한 시간을 정해서 글을 써야 한다. 정해진 시간 동안 글 쓰는게 가능해지면 그때부터는 시간을 바꿔가며 써본다. 즉 자리에 앉아서 정해진 시간 동안은 글이 술술 나오게 하는 훈련. 그 다음에는 

 몸을 가만히 놔두듯 마음을 가만히 놔두는 법을 익히라.
책을 덮고 눈을 감은 상태로 잠시만 마음을 가만히 놔두라. 단 한순간이라도 성공했는가? 전에 한 번도 그렇게 해본적이 없다면 마음이 얼마나 쉴 새 없이 분주하게 움직이는지 아마 깜짝 놀랄 것이다. 인도의 옛 현인은 자신의 마음을 반은 자조투로 반은 변명투로 '재잘대는 원숭이'에 비유했다. 성다시시 프란체스코(1182~1226, 이탈리아의 수도사)는 자신의 몸을 가리켜 '나의 바보 형제'라고 일컬었다. 어느 실험자는 이렇게 한탄했다.
"마음이 소금쟁이처럼 수면을 내달린다."
 하지만 조금만 훈련하면 마음의 부산스런 움직임에 제동을 걸고 적어도 자신의 목적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마음을 다스릴 수 있을 것이다.

 내 마음은 네온사인 같았다. 도저히 가만히 있질 않는다. 번쩍번쩍, 휙휙, 뭘 좀 더 먹은 다음에 이를 닦을까, 아냐 생각을 하지 말아야지, 눈을 감아볼까, 아 잠이 오려고해. 그럼 앞에 있는 무형의 점에 집중해보자. 오마이갓! 점이 춤을 추고 깜빡이고 난리도 아니다. 소금쟁이처럼 간질이는 맘은 도저히 가만히 있질 않는다. 마음 가만히 내버려두기 훈련이 끝나면 저자는 드디어 신묘한 비법을 알려준다. 바로 '예술적 혼수 상태' 불러내기!

  이제 이야기를 여전히 되는 대로 생각하면서 목욕을 한 다음 어두운 방으로 들어가 등을 대고 똑바로 누우라. 그런 자세가 너무 졸린다 싶으면 나지막하고 큼직한 의자에 앉아 적당히 긴장을 풀라. 편안하게 자세를 취했으며 더 이상 움직이지 말라. 몸을 가만히 놔두라. 그런 다음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라. 완전히 잠든 상태도, 그렇다고 완전히 깨어 있는 상태도 아닌 채로 그저 누워 있으라.
 잠시 후, 20분이 될 수도 한 시간이 될 수도 두 시간이 될 수도 있는데, 일어나고픈 욕구가 일면서 활력이 마구 샘솟을 것이다. 즉각 그런 욕구에 응하라. 쓰려고 하는 글을 제외하면 세상 어느 것에도 관심이 가지 않는 일종의 경미한 몽유병 상태에 빠질 것이다. 상상의 세계만 생생하게 와닿을 뿐 바깥세상은 그저 따분하게만 느껴질 것이다. 자리에서 일어나 종이나 타자기 앞으로 다가가 글을 쓰기 시작하라. 그 순간 그대의 상태는 예술가가 작업할 때 빠져드는 상태가 된다.

 나는 일정한 시간을 정해서 글을 쓰는걸 가까스로 삼일 하고(장하다), 마음을 가만히 내버리기 훈련은 시작도 못하고 끝내고 말았다. 맘이 자꾸 간지럽다고만 해서 '예술적 혼수 상태'를 불러내지 못했다. 결국 작가가 되지 못한거다, 라고 말하는건 너무 가볍지만 어쨌든 그렇다. 영적이라던가, 은유에 대해 감도 못잡고 있는 나로선 이 책을 읽으면 나의 무의식을 소환해 뭔가 나답지 않은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란 기대가 있었다. 의식하고 또 의식하는 글쓰기가 아니라 내가 상상하지 못했는데 글로 나와버리는 어떤 것 말이다. 하지만 저자가 말하는대로 실천도 안 했을뿐더러 맘이 네온사인 같아서 무의식은 커녕 의식하는 것을 곧이 곧대로 적는 것도 힘에 부쳤다. 흔한 계단 이론에 따르면 이런 부침을 겪으며 열심히 하면 한 계단 오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치인지라 어찌 글쓰기며 사는 게 계단처럼 오르고 말고의 문제일 수 있겠는가, 라며 적당히 타협해버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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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2-10-13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어려운데요. '마음의 부산스런 움직임에 제동을 걸고 적어도 자신의 목적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마음을 다스'리는 차원은 거의 보리수나무의 석가모니가 되는 수준인 것 같은데..근데 그렇게 할 수 있을 정도면 굳이 작가라는 거 안해도 되는 거 아닌가..뭐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은 '이런 잘못된 비관주의가 기승을 부리는' 것이겠지요.;; (그래도 일단 앉아서 아무거라도 쓰세요,라는 식보다는 훨씬 좋은 충고인 것 같음.)

Arch 2012-10-14 09:35   좋아요 0 | URL
ㅋㅋ 인용이 이렇게 걸맞다니~ 댓글 보고 엄마 미소를 지었어요.

저는 네온사인처럼 가만히 있지 않는 내 맘이 문제려니 했는데 어떻게 보면 그 경지야말로 도달하기 힘들겠단 생각이 드네요. 다시 뭔지 모를 의욕이 막 샘솟는, 기분만, 느낌만 그래요.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책은 무책임하고 '의지여, 타올라라'적인 면이 있긴 해요.


saint236 2012-10-14 1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구매하고 기다리고 있는 책입니다. 그런데 "어제 복분자주를 먹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라는 내용이 왜 자꾸 눈에 들어올까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