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의 진화


 어디서부터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언제부턴가 화장을 안 하기 시작했고 색조는 물론 기초 화장까지 안 해도 보기에 푸석한 것 말고는(화장을 하는데는 이런 이유가 크겠지) 그다지 피부가 당기지 않고 별 탈이 없었다. 그래서 아예 화장품을 바르지 않기 시작했다.


 물론 내게도 블링블링한 ‘온스타일의 get it beauty’ 시절이 있었다. 차홍이 나와서 깜찍한 얼굴로 오목조목 말해주면 나도 무슨무슨 웨이브쯤 단번에 할 것 같았고 실제로 해내기도 해서 한동안 아이롱을 달고 살며 스타일리쉬하게 다닌적이 있다. 아이라인의 신기원을 보여준 붓펜 아이라이너 덕분에 티 안 나는 화장에 살짝 티를 내기도 했고 촌스런 자연 홍조 대신 은은한 블러셔로 얼굴에 색을 입히기도 했다.


 하지만 겨울이다.(아주 오래 묵은 페이퍼 냄새) 내복을 벗으면 우스스 소름이 돋고 기모 스타킹도 막지 못하는 추위의 계절, 겨울. 부지런히 내복을 입고 두꺼운 옷을 입다보니 스타일이 살지 않는다. 머리카락에 웨이브를 주고 화장을 해도 목도리에 가려지거나 묻기 일쑤. 옷태는 물론 기운조차 앗아가는 추위에 ‘나의 스타일’은 당분간 중단되었다.


 스타일은 매체에서 상품판매로든 화려한 영상매체의 속성상 볼거리를 보여주는 차원에서든 지속적으로 강조된 사항이다. 옷 잘 못입는 사람 데려다가 변신시켜주는건 이젠 흔한 컨셉이다. 그래서 이렇게 사라고, 꾸미라고, 예뻐지라고 부추겨도 나로선 딱 나 좋을만큼만 할 자신이 있다. 내가 유독 쇼핑 자제력이 뛰어나서는 아니다. 꾸민다고 다 예쁘면 알아서 꾸밀텐데 미모 향상을 위해 이토록 광범위한 마케팅을 할 필요가 있을까. 부러 결핍감을 조장하는 미디어의 못난 속셈을 간파할 정도로 내 머리가 좀 커진 이유도 있겠다. (대두 인증?)


 

하지만 이런 경우,

 스타일이 없다는 건 자신이 게으르고 센스가 없다는 말과 다름이 아니란 시오노 나나미의 말에 찔린다면? (그렇다. 이 인용이 적힌 수첩을 찾다 봄이 되어서야 이 페이퍼를 쓰고 앉았는거다. 결국 봄이 다 지나가는데도 그 수첩을 못찾았다.) 




 루나파크가 가끔씩 하는 말 중에도 뜨끔한 부분이 있다.


‘감각이 섬세해진 분야가 생기면 삶이 배로 풍성해진다’

 

 루나파크는 그런 분야를 영국의 맥주 맛에서 찾았다는데 나는 그런게 있거나 있었던가. 꾸미는 얘기에서 시작했지만 결국 살아가는 방식의 얘기였다. 화장을 하느냐 안 하느냐, 봄 분위기 나는 립스틱을 바르고 화사한 연핑크 재킷을 입느냐 안 입느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일과에 치여 거울 앞에서 옷 한번 대보지 못하는 여유 없음, 집 한구석을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들로 아낌없이 꾸미는 노력 부족의 문제였다.


 외적인 것 뿐 아니라 내적인 스타일도 꾸미면 된다는 말로 방어하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좋은 책을 읽는게 아니라 남들이 괜찮다고 하는 것들에 눈 돌리는 내가, 누군가의 노력을 한번씩 하는 생색으로만 치부하는 내가, 다른 사람의 진심을 내 멋대로 단정 짓고 내치는 내가 과연 내면의 스타일까지 완성할 수 있을까. 역시 외모 치장할 때 의미로 쓰이는 스타일뿐 아니라 ‘그 사람 스타일’ 할 때 그 스타일 있게 사는 것 역시 어려운 것 같다.


 a는 요새 복통이 난 애인을 위해 죽을 쒀주고 있다. 몇 시간 불린 쌀을 계속 저어가며 흰물이 나올 때까지 뭉근하게 끓인 다음 예쁘고 보기 좋게 썬 당근, 미역, 양송이, 양파, 파를 넣고 소금으로 살짝 밑간을 한다. 양념장을 살짝 넣어서 먹으면 계속 아프고 싶을 정도로 맛난 죽이 된다. 대충 썰고 대충 익히고 대충 간하는 나로선 상상할 수 없는 맛.


 어쩌면 스타일이란 타고난건지도 모르겠다. 식탁에 밥과 반찬이 아니라 꽃을 놓는 센스나 어차피 입에 들어가더라도 보기 좋게 하려는 정성 역시 노력이나 경험으로만 나오진 않을테니 말이다. 그러니까 나는 내 스타일대로, 쓰레기 아무데나 버린 사람 신고해야겠다며, 아이를 막 대하는 선생은 화 잘 내는 이모보다 못하다며 성토하거나 이건 왜 이럴까 의문을 갖거나 이건 바꿔야한다며 말로만 분노하는 짓을 계속 할지도. 그러다 꼬장꼬장한 스타일로 굳어버릴까 살짝 겁난다.


  하지만 내 옆엔 봄이 왔으니 후리지아를 놓는 b와 당근을 예쁘게 써는 a가 있으니, 내가 뭔가를 열심히 하면 없어 보이지만 귀엽다고 해주는 옥찌와 받아쓰기는 20점 맞지만 가끔 기분 좋을 때 우윳 빛깔 큰 이모를 외치는 지민이가 있으니 마냥 꼬장꼬장해지진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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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2-05-27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스타일이란 건, '고유의'란 말과 같이 붙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해요. 그래서 저런 스타일에 대한 프로그램을 보고 있으면(아..언제 봤냐구요. 스맛폰의 '여자TV' 같은 어플을 통해..) 결국 저 프로그램을 본 많은 사람들이 저 '스타일'이 된다면 그건 스타일이라고 부를 수 없지 않을까..라는 따위의 쓸데없는 생각을 하긴 했어요.

그래서 아이를 막 대하는 선생은 화 잘 내는 이모보다 못하다며 성토하는 스타일도 괜찮은 거 아닐까. 그런 고유의 스타일은 거의 못봤으니까. 뭐 그런 스타일도 괜찮다는 얘깁니다.

Arch 2012-05-29 17:17   좋아요 0 | URL
맥거핀님이 짚은 부분이 정확해요. 스타일은 저마다 고유한 각자의 것이 있을테니까요. 그런데 화 잘 내는 이모가 더 낫다고 생각하는 스타일이 괜찮은지는 모르겠어요. 그냥 막 갖다 붙인거 같기도 하고. 예전엔 제 스타일을 찾으려고 좀 억지를 부린 부분도 있었지만 요새는 그렇게까지 하게 되진 않더라구요. 괜찮다고 해주셔서 고마워요.

치니 2012-05-27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쿵, 웬 복통이래요? 괜찮은 거여요?
아치 님 스타일, 실제로 어떤지 궁금해지네요. 훗. (왠지 엄살쟁이 포스가 줄줄)

Arch 2012-05-29 17:18   좋아요 0 | URL
배고픈게 아니라 배고플까봐 막 먹다가 그렇게 됐어요. 스트레스 때문인 것도 같고.
히~ 엄살쟁이 완전 맞아요. ^^ 말로만 다하는 타입 같고.

다락방 2012-05-28 1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페이퍼에 들어간 저 시오노 나나미 의 에세이도 읽다가 말았....도저히 읽을 수가 없더라구요. 전 이런 식의 글(어떻게 정의 내려야 할진 모르겠지만 여튼 이런 책)을 정말 못읽겠어요.

그건그렇고,
저 루나파크의 책은 얼마전에 로렌초의 시종님 리뷰에서도 읽고 보관함에 넣어뒀는데 역시 끝까지 못읽을까봐 망설이고 있네요. 그나저나, 아치, 오늘 아치 서재에는 스타일 사네요. 왜냐하면 제가 이런 숫자를 잡았기 때문이죠!



오늘 100, 총 84000 방문


꺅 >.<

Arch 2012-05-29 17:23   좋아요 0 | URL
저는 시오노 나나미의 '내 인생은 영화관에서 시작됐다.' 제목이 확실한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런 비슷한 제목의 책이 더 좋았어요. 이 책에선 스타일에 관한 부분이 좋았구요.
루나파크의 웹툰을 좋아했다면 살짝 실망할 수도 있어요. 뭔가 좀 싱겁달까. 꽉찬 여행서가 아니라 강추는 못하겠구요. 루나파크 팬이라면 읽어야할 것 같지만 그렇다고 저자를 빼놓고 볼때 괜찮냐 싶으면 그건 좀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안 읽자니 서운한 책? (<==뭐래)

와, 멋진데요. 일하다 운 좋게 잡는 3:33만큼?

나 곧 있음 십만 서재인? ㅋㅋ

nada 2012-05-28 2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숫자 완전 쌔끈하네요.

저는 20대까지는 보헤미안 스타일을 좋아해서
덕지덕지 겹쳐 입거나 주렁주렁 매달거나 칭칭 동여매거나 그런 식이었는데
30대부터는 심플하게 입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튀고 싶어했던 20대가 좀 추했던 것 같아서요.
근데 그렇게 하고 다니니까 얼마 전에는 교회 언니 소리를 들었다는..(어이상실)
나의 내면과 잘 부합하는 스타일을 찾고 유지하고 고수한다는 게 참 어려운 것 같아요.

당근을 예쁘게 써는 a님 같은 사람이 제일 부러워요.
저는 오늘도 만두 튀겨서 후라이팬째로 먹었습니다. -.-

Arch 2012-05-29 17:30   좋아요 0 | URL
히~

저는 맨날 옷 바꿔입다가 영 아닌 옷까지 손대는 바람에 누더기 걸치고 다니냐는 소릴 들었는데 >,.<
음... 꽃양배추님은 그랬구나. 은근 상상돼요.
요새는 맨날 거의 같은 옷만 입고 다녀요. 사는 게 재미없어서 이런건지... 친구는 저보고 뭔가 초월한 사람 같대요. 30 넘은 여자가 화장을 안 한다고. 쳇

후라이팬째! ^^ 저도 좀 그런 편인데. 옷도 그렇고 뭔가 다 귀찮고 대충대충 하게 되니까 생각도 몸도 사는 것도 대충 살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설겆이 더 해야하고 폼도 안 나지만 가끔은 그릇에 덜어서 먹기도 해요... 뭔가 좀 측은하지만

a, 지 승질날 때는 당근이고 뭐고 막 썰어요.
 

 













 * 관점이 없다. 누군가를 위로할 깜냥도 안 되고 이 사안에서 내 기준에서의 옮고 그름을 논할만큼 성실하지도 않다. 사람들의 의견이 모아져 좀 더 나은 결론이나 모두가 납득할만한 절차를 밟는다면 모르겠지만 이건 그런 사안이 아닌 것 같다. 몇가지 얘기에서 언급된 '이달의 당선작'에 대해 내가 생각하는건 가연님이랑 비슷하다. '주면 좋고 안 주면 어쩔 수 없지'다.  명예랑 상관있는 것 같진 않고 적립금 들어온건 웬지 배부르달까. 리뷰가 아니라 페이퍼에도 적립금을 주기 시작하면서 페이퍼형 아치답게 열심히 썼는데도 당선이 안 되면 좀 서운하긴 하고 신간평가단이 당선 많이 되던데 혹시 그쪽만 밀어주나 싶기도 하지만 적립금 주는거야 알라딘 마음인데 내가 감놔라 배놔라 할만한건 아니라고 본다. 우리가 돈 모아서 공정하게 심사해 당선시키는게 아니라 알라딘 맘대로 선정하는 것이니 말이다. 



 











* 알라딘에서 내가 맨 처음 페이퍼나 리뷰를 올리는 책은 드물다. 내가 무슨 책에 대해 얘기하는건 거의 뒷북이다. 신간보다 구간을 손에 넣기 쉬운 단순한 독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 역시 누군가 소개를 했겠지 했는데 웬걸. 내가 처음이다. 흴랄라~ 영화와 다르게 영상미학을 논하기 힘든 텔레비전에서 자신만의 철학과 영상을 표현해낸 PD. 7인의 사무라이를 따라한 듯한 제목은 멋쩍었지만 과연 무슨 이야기를 할지 궁금했다. 물론 읽기 시작할 때는 우려가 됐다. 보편화된 영상 문법과 메시지를 줘야하는 텔레비전의 매체 특성상 색다른 얘기가 나올 것 같지 않아서였다. 그런데 웬걸. 알차고 재미지다. 영상의 기술적인 부분이 1이라면 99는 인문학적인 바탕에서 나오는 것이라던가 연기술에 따라 연기를 잘 할 수는 있지만 덜어내는 연기를 하기는 어렵다는 얘기, 현장에서는 내가 성취하고자하는 바와 사람들에게 밀어붙일 수 있는 사이의 긴장이 있고 그걸 잘 풀어내야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얘기까지. 


 인터뷰집이 간혹 산으로 가거나 인터뷰어가 인터뷰하는 부분에 문외한이거나 별로 연관성을 갖지 못해 겉도는 얘기가 나오는 경우가 있다. 슬슬 지루해진다. 일단 인터뷰이가 같잖게 인터뷰어를 은근히 무시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자신도 잘 모르는 얘기들을 횡설수설하는 경우는 더더욱. 최근에 읽었던 몇몇 인터뷰집은 그런 면에서 꽝이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인터뷰어가 자신이 잘 아는 부분에 대해 장광설을 늘어놓는 것도 별로. 그런 면에서 조민준씨는 현명하고 똑부러지게 인터뷰를 한다. 오랫동안 시민 비평가와 칼럼리스트로 활동한 경력이 인터뷰에 도움이 됐다. 군더더기 없고 핵심을 짚는 인터뷰어 덕분에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이 커졌다.
















 * 인터뷰집은 아닌데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나도 혹시 제주? 하는 사람에게는 적극 추천하며 그렇지 않는 사람이 읽어도 무방하다. 처음에 사회적 관계망이 대단한 사람만 제주도에 내려갈 수 있나 염려되었지만 읽다보니 가족끼리 생활터전을 꾸려나가는 사람도 상관없는거였다. 금전적으로 성공한 사람만 나오는줄 알았는데 현명하게 사는 사람들이 나온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의 언어와 삶이 '제주이민' 아래 모아진다.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엮어내는 저자 기락의 솜씨도 남다르다. 억지로 문장을 만들거나 애써 극적인 장치 만든 기색 하나 없으니 재미있게 읽힌다. 막연하게 제주이민과 여행을 생각하다 제주는 작으니까 저끝에서 여기까지 자전거 타고 다녀도 되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제주의 긴축 끝점을 네이버 길찾기로 해봤더니 차로만 5시간 넘게 걸린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까. 제주도가 군산처럼 자전거 하나로 다 다닐 수 있는 조그만 섬으로 알았던 나는 이 나이 먹도록 뭘 한걸까. 그거야 나도 모르지.


 아무튼 이 책을 소개해주신 치니님 고맙습니다. (급마무리)
















 *  여섯시에 일을 마치고 돌봄교실이 끝나는 아이들과 집으로 온다. 한숨 돌리기도 전에 저녁 준비를 하고 밥을 먹고 식탁을 치우고 설겆이를 한다. 아이들 숙제를 봐주고 청소를 하고 간혹 빨래도 한다. 퇴근하고 혼자여서 심심하다고 징징대던 아치는 요새 풀가동되고 있다. 옥찌들과 함께여서 좋지만 가끔은 a랑 b도 같이 했으면, 퇴근 후에 뭘 배우러다닌다던가 하는 호사를 누릴 때 누군가 아이들과 함께였으면, 갑자기 늦게까지 일하게 될 때 007작전을 짜느라 머리가 하얘지지 않았으면, 아이들에게 여유를 갖고 충분한 관심과 사랑을 줬으면 하는 맘이 없는 것도 아니다. 아이들이 어렸다면 더했을 것이다.


 이모된 주제에 엄마인척하는거 맞지만 정말 엄마라면 어떻게 감당해야하나 답이 안 나올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없는 엄마들. 가장 손쉬운 방법은 그녀들이 아이를 낳고 직장을 그만두는 것을 '선택'으로 보는 시각. 하지만 돈을 버는 것만큼이나 자신이 하는 일에 만족하는 여성들이 육아와 직장생활 둘을 병행할 수 없을 때 어렵게 내리는 '선택'이 정말 그녀들 맘 속에서만 일어나는 일인 것마냥 치부하면 안 된다. 출산 거부가 왜 일어나는지, 보조금으로만으로는 왜 육아와 직장생활을 같이 할 수 없는지 여성들의 입장에 서봐야 한다.


 인터뷰 중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건 엄기호 방식이다. 직접 사람들을 만나 자기 식으로 재단해서 속단하지 않고 끊임없이 깨닫고 자기 역시 공부하며 여전히 진행중인 질문을 던지는 것 말이다. 육아전쟁에선 비교적 평이한 결론을 담고 있다. 가사를 돕지 않는 남편, 고용주의  육아를 바라보는 편견보다 더 바뀌어야하는건 국가의 정책이라고 말이다. 책에선 미국의 엄마들을 인터뷰하며 그들이 어떻게 육아와 직장 중에서 선택해야만 했는지, 유럽의 육아 친화적 정책이 엄마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알아본다. 아울러 육아의 모든 책임을 엄마에게 묻는 미국의 방식이 개선되어야할 것도 주문한다. 미국의 무관심한 육아 정책과 별반 다르지 않는 우리나라에서도 아직 갈길이 멀다. 할머니, 할아버지, 아는 사람의 보모화로 겨우 지탱되는 지금의 시스템은 분명 바뀌어야 한다. 


 저출산을 여성의 이기심이라고 말하는 것만큼 뻔해서 뻔뻔하고 파렴치한 주장은 없을 것이다. 저출산은 왜 여자들이 출산파업을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자세히 살펴보고 정책을 세우지 않은채 예측 가능한 일반론에만 기대는 실무자의 불성실함에 가장 큰 원인이 있다. 결국 가장 잘 먹히는 당사자 비난으로 손쉽게 면피하려는 것이다. 어제 음캠에서 임진모가 말한 것처럼 고시원 월세를 내야하는 처지에서 창의성이니 젊은이의 패기를 보여달라고 주문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닐까.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갑자기 격양됐지. 혹시 격양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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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04-20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앙, 아치다. 아치, 안녕?
:)

가연님 글 좋죠? 아프락사스님도 언급한 바 있고 또 아치도 가연님도 말씀하셨듯이 나도 이달의 당선작 주면 좋고 안줘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저는(그리고 대부분의 많은분들이) 페이퍼나 리뷰를 쓸 때 적립금을 타기 위해 쓰지는 않으니까요. 적립금을 타기 위해 글을 쓴다니, 그건 주객이 전도된 행위라서 저는 용납할 수가 없어요. 저는 쓰고 싶고 말하고 싶고 전달하고 싶고 듣고 싶어서 글을 써요. 저는 저를 위해서 글을 써요.

그나저나 아치, 아치라면 제주도와 퍽 잘어울릴것 같긴한데요, 그래도 제주도로 가지는 말아요(간다고 한건 아니지만 ㅋㅋㅋㅋㅋ). 왜냐하면... 우리가 자주 보는 사이도 아니긴 하지만...그래도 더 멀어지는 건 싫어요. 이런 마음이 뭔지, 더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알죠? 히히.

점심에 삼계탕 먹고 왔어요. 한 마리 시켜서 먹었는데 뚝배기 설거지한듯 깨끗이 비웠더니 배가 터질것 같아요. 그래서 치마의 지퍼를 내렸..................( '')

Arch 2012-04-20 13:49   좋아요 0 | URL
우왕, 다락방 안녕~ ^^

가끔은 이주의 페이퍼를 위해 글을 쓴적이 있어요. 추천도 없고 댓글도 안 달리니까 어떤 목적이라도 있어야겠다, 잘 써야겠다 막 이런 집착으로. 그런데 그것도 한풀 꺾여서 자꾸 안 되니까 안 되려니 해요. 내가 집착할수록 내가 피곤해지고(난 또 집착 같은거 잘하잖아요.) 재미도 없으니까. 한번 받아본 사람의 적립금 맛이랄까, 이게 은근히 홀리는 맛이 있어놔서.

그런데 한편으로는 알라딘에 요구한다는 측면에서 전에 불매운동을 했을 때랑 이주의 당선작 부분에 대해 건의할 게 있다는거랑 어떤 차이인지는 좀 헷갈려요. 그때는 부작위의 요구여서 나만 불매하면 끝이라고 생각했다면 지금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란 생각도 들고. 알라딘이 내가 원하는 뭔가를 하길 바라는 점에서 말이죠. 전에 좀 무턱대고 했으니 지금은 될대로 되라는건가. 아니면 전의 경험으로 알라딘은 수익을 만들어내는게 우선인 기업이란걸 뒤늦게 알았다는건지.

제가 제주도 가면 다락방은 비행기 타고 숑 날라오면 되죠. 그래도 무슨 말인지 나 다 알어~

벌써 삼계탕? 아, 무슨 댓글이 19금이에요!!!

다락방 2012-04-20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아치가 격양아치, 이런것처럼 자기 맘대로 말 만드는 거 볼때마다 미잘 생각이 너무 나요. 완전 보고싶어져요. ㅎㅎ
그 미소년이 이런 나의 마음을 알기나할까.. ㅎㅎ

Arch 2012-04-20 13:51   좋아요 0 | URL
알걸요. 미잘은 집도의니까.ㅋㅋ
그러고보면 아치란 이름이 막 갖다붙이긴 딱인거 같아요.

치니 2012-04-20 1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격양아치 님, 읽다 보니 저도 격양! 저출산 문제를 그 따위로 말하는 사람이 내 앞에 있으면 불을 뿜을 태세입니다. 우씨.

Arch 2012-04-21 09:19   좋아요 0 | URL
용치니? 치니용? 막 갖다 붙인다. ^^

정책을 개발하라고 그 자리에 있는데 수세적으로 처신하는데 급급한 것 같아요. 육아전쟁의 세세한 결을 살린 리뷰를 꼭 쓰고 싶은데 그날이 언제쯤 오련지...

치니 2012-04-20 1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참, ㅎㅎ 제주는 섬 중에서도 무지 큰 섬이야요. 하지만 제주 옆의 우도 정도는 자전거로 끝에서 끝, 로망 실현 가능할 듯. 그러니 일단 한번 놀러오세여 ~

Arch 2012-04-21 09:22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자전거로 한번 휙 돌면 되겠거니라고 생각한게 참... 제주 이민에 나온 사람들을 보는걸로 여행계획으르 세워도 좋겠고 올레길을 걸어도 좋고. 그런데 책 속 사진을 보니까 새삼 제주가 아릅답더라구요.

hnine 2012-04-20 2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치님, 옥찌들을 돌보고 계시군요. 힘드실텐데... 저는 지금도 그런 얘기만 나오면 격앙하는데, 격앙하시는거 하나도 안 이상해요.

Arch 2012-04-21 09:24   좋아요 0 | URL
^^ 막 잘 쓰진 않는데 그래도 나름 쓴다고 조곤조곤 얘기하다가 육아전쟁 얘기하면서 혼자 막 흥분이되는거에요. 웃겼어요.
옥찌들이랑 지내는건 어렵지 않은데 자꾸 아이들한테 미안한 일이 생기고 제 감정을 조절 못하는 게 어렵죠.

숲노래 2012-04-21 0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금 더 가난한 아줌마 공무원'이 늘어나면 나라정책이 좀 달라지겠지요...

Arch 2012-04-22 21:53   좋아요 0 | URL
생물학적인 것만으로 구분이 잘 안 되더라구요. 경험하고 깨닫거나 그럴 의지가 있다면 계급이나 성별에 상관없이 육아 친화적인 정책을 세울 수 있지 않을까요.
 

양학으로는 지루성 피부염과 주사, 한의학에서는 심장의 열기가 몸 전체로 돌지 못하고 얼굴로 올라오는 병. 혈액순환과 예민함의 문제. 전통적으로는 화병

한의원에서 침 맞고 약을 먹었다. ‘반드시 낫게 하겠다는 한의사의 단언이 의미 없을 정도로 약을 먹으면서 더 힘들고 울적해서 왜 그런지 물었더니 몸보다는 맘의 문제라 한다. 심리적인건데 그 부분이 극복되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한다. 한의원에서 예약 잡기도 힘들고 별 차도가 없어 피부과에 가서 항생제를 먹기 시작했다. 2개월 동안 먹고 그나마 괜찮아진 것 같아 병원을 안 갔는데 다시 올라온다. 얼굴이 상시로 빨개져있고 조금 민감해지거나 신경쓰면 얼굴에 열감이 느껴진다.

 

그냥 빨간 채로 살아도 되는데 주변에서 한마디씩 술 먹었냐, 무슨 일 있냐, 피곤해보인다등으로 거드는 말이 귀찮고 나도 매순간 열감의 실체를 느끼는게 버거웠다. 치료는 다시 실패로 돌아갔다.

 

나는 두리뭉실한 사람이 아니다. 누구나 그렇듯 관계는 늘 힘들고 일적으로도 중간에 낀 것 같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이 일에선 역량보다 정치적이고 전략적인 역할이 요구된다. 나의 최선이 최선이 아닌 순간, 나는 더 이상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외부적으로 압박하는 실체와 언니 동생하면서 지내는게 정말 답일까. 문제는 계속 상존하는데? 애써 다독이고 잘해보자는 마음이 순식간에 허물어진다. 이럴 때마다 나는 어떤게 두렵고 무서워서 계속 일을 하는지, 내가 잘 할 수 있는 건 뭔지, 나는 왜 이렇게 쓸모가 없을까란 벽에 부딪힌다. 그 생각이 너무 아프고 서럽다. 나에겐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 툭툭 털고 일어날 수 있는 회복탄력성이 없다. 벽에 부딪히면 그냥 주저앉아 땅굴을 파고 자책한다.

 

씩씩하고 의연하게 자기 역할을 해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사소한 문제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헤쳐나가는 사람, 그렇게 마음 힘이 강한 사람이 되고 싶다.

아이 낳고 조급하게 일을 구하던, 나에 대한 확신이 부족해 늘 쫓기듯 일을 찾아나선 그때에서 한발짝도 나아지지 않았다.

이건 호르몬 영향일까?

피곤하지만 쉬고 싶지 않다. 인정욕구 때문에 계속 일을 하려는걸까.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 두려워서 이러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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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아빠보고 나한테 소리 지르지 말라고 했지. 엄마도 소리 지르지. 엄마는 소리 지르지 말라고 했지 (엄마는 나한테 화내면서 왜 아빠한테 뭐라고 하냐는게 요점) 엄마는 내가 목에 가시 걸렸으면 좋겠어? (지난번에 장난처럼 그렇다고 했더니 그게 계속 맘에 남는 모양. 서운한 일 있을 때면 꼭 그 얘기를 한다) ‘이라고 했더니 아빠는 아니라고 했는데 엄마는 걸렸으면 좋겠어? 이라고 했더니 한숨

 

아침에 뭔가를 못하게 했더니 다른 뭔가를 하다가 늦어져서 실랑이를 벌였다. 계단을 내려가는데 아침에 먹은걸 토했다. 감정이 가라앉지 않아 무뚝뚝하게 대했더니 그 얘길 한다.

 

엄마는 내가 토했는데 아무렇지도 않아? 내가 아프면 좋겠어?”

아니, 누구가 아프면 속상하지. 미안해. 엄마가 정말 미안해.”

알겠어. 미안한거 받아줄게. (곰곰 생각하더니) 엄마는 내가 목에 가시가 걸리면 좋겠어?”

(당황하는 게 귀여워서 이라고 하고 싶었지만) “아니, 절대 아니지. 목에 가시 걸리지마.”

 

낮에 시장에 갔다가 장바구니를 잘못 잡아서 안에 있던 유리병을 바닥에 깨트렸다. 경황이 없었는데 같이 있던 아이는 엄마 괜찮아라고 묻더니 어떡하냐 하면서 바닥에 떨어진걸 주우려고 한다. 만류하고 내가 주웠는데 상대방을 탓하지 않고 의연하게 돌발상황을 대처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고맙고 미안했다.

 

팟캐스트 시스터후드에서 우리집 윤가은 감독이 나왔을 때 진행을 맡은 분이 아이들을 작은 어른(맞나? 작은 사람이었던 것도 같고)이라고 표현한걸 듣고 참 찰떡 같다고 생각했다. 다른 종류의 인간이 아니라 좀 더 작을 뿐. 나는 아이를 보면서 특히 같이 산책을 나가 그런 면을 많이 본다. 다리 아파서 산책을 못하겠다더니 온갖 놀이를 생각해내 집에 들어갈 때까지 쉬지를 않는 아이란 점은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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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주자대표 회의인데 다들 회의장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다. 회의가 얼른 끝나길, 질문하는 사람 저 세상 사람이란 무언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질문하고 따져 물었다. 대의제로 선출된 게 아니고 할 사람이 없어서,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아서 맡은 역할이지만 회의비만 축낼 수는 없었다. 내가 바꾸거나 잘할 수 있는 영역은 손톱보다 작았지만 질문으로 운영 전반을 조금이나마 파악할 수 있었다. 조급하게 내리꽂는 시선에 더 묻지 못하고 황급히 회의를 끝냈다.

 

회의를 마치고 식사를 하러 갔다. 집에 갈까, 싶었는데 불편해도 있고 싶었다. 입주단체대표의 개인사와 건강상태까지 시시콜콜하게 다 들었다. 대표가 시덥지 않은 일을 과장해서 마치 엄청난 활동처럼 부풀리길래 나도 그런 일 해봤다라고 말했다. 어떤 아이디어를 어떻게 실현했는지 간략하게 말을 했다. 다들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말의 말미를 끝마치지 못하고 헤매는데 일한지 얼마 안 된 관리소장이 웃음을 머금고 나와 눈을 마주쳤다.

 

옴마야, 심장아 나대지마라.

 

권한은 작은데 주변경계는 커져가서 자칫하면 내 바운더리가 아작나게 생겼다. 과연 나는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이 일은 내게 어떤 의미일까. 적성에 맞는다고 생각했는데 적성에 맞는 이 일을 매년 같은 루틴으로 반복하자니 지루해 미치겠다. 전망은 보이지 않고 근근히 월급쟁이로밖에 살 날만 남은 느낌이다. 앞서 말한 아이디어는 일종의 몸부림이었다. 뻔한걸 뻔한 방식으로 재탕하고 싶지 않다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내게는 큰 자부심으로 남아있는 일. 그런데 상대방이 그 맘을 읽은 것처럼, 내 맘을 다 헤아린 것처럼 웃는다.

 

익숙하고 지리멸렬한 관계에서 조금 벗어나고 싶다. 새롭게 나를 자리매김할 수 있는 관계, 시간이 필요하다. 일상의 사소함에 집중하고 미묘한 차이에 감동을 받았다지만 단번에 바꿀 수 있는 용기가 부족해선 아니었을까. 노회한 전 관리소장은 내가 무슨 말을 할 때마다 세상물정 모른단 식이었는데 이 사람은 1년차란다. 집이 이런데 괜찮은지 물었더니 시간 날 때 언제든 연락주면 가서 봐주겠다고 한다. ! 나는, 누군가 부탁하면 흔쾌하고 호의적으로 반응했던가. ‘왜 그것도 몰라, 언제까지 알려줘야 돼였나. 처음의 내가 일을 낭만적으로 보고 호기롭게 도전했던가. 모든 게 설어서 우왕좌왕하고 배우려고 애썼던 이 일을 시작할 때 나를 떠올려 본다. 관리소장의 미소는 처음 내가 가진 갈망을, 맘가짐을 불러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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