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자리
아니 에르노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이 글을 천천히 쓴다. 일련의 사실들과 선택들 가운데에서 한 생애의 의미 있는 줄기를 드러내려 애쓸 때, 나는 점차로 아버지의 특별한 모습을 잃어 간다는 느낌이 든다. 그럴 때면 도식이 자리를 온통 차지해 버리고, 추상적인 생각이 제멋대로 달려가려 하는 것이다. 만약 이와는 반대로 추억의 이미지들이 미끄러져 들어오게 놔두면, 난 있는 그대로의 그의 모습, 그의 웃음과 그의 거동을 다시 보게 된다. 그는 내 손을 잡아 놀이 장터로 데려가고, 놀이 기구들은 날 오싹하게 만들며, 다른 이들과 공유하는 어떤 조건의 모든 지표는 내게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다. 그래서 언제나 나는 나의 개인적 관점이라는 덫을 떨치듯이 빠져나온다.


 이야기는 하나의 일화로 시작한다. (요새 서서비행을 읽는 중인거 티냄) 여자 아이는 동네에서 술을 드시는 아빠를 찾아나선 참이다. 남자는 머리 꼭대기까지 술을 마시는 날이 많았고 그날도 다르지 않았다. 아이는 어렸지만 '뭐든 심각해' 체질이라 남자가 술을 마시는건 의지가 없고 취미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몸 쓰는 일을 하는 사람이 술에 취해 잠들 수 밖에 없는, 의지와 돈과 몰취미의 문제가 아니라 몸이 쉬이 잠들지 않아 술이라도 먹어야 간신히 잠들 수 밖에 없는 일들이 있다는걸 그때의 아이가 알 리 없었다. 남자는 여자애의 조그만 어깨를 짚고 불안하게 걸음을 내딛었다. 


 아이는 술에 취한 아빠의 자전거 뒷자리에 탔다. 아이는 남자가 술을 많이 먹는 것 말고는 모든 일을 척척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불안할리가 없었다. 한아름 안기지 않는 남자 등에 매미처럼 붙어있었다. 비틀대며 움직이던 자전거는 아이를 떨어트린 것도 모르고 한참동안 앞으로 간다. 남자가 자전거를 멈췄을 때 아이는 울어야할지 떼를 써야할지 몰랐다. 90점짜리 시험지를 가져오면 '에게'였고, 100점짜리 시험지에는 '당연히'였던 남자라 아프다고 하면 '에게'할까봐 지레 겁먹었는지도 모르겠다. 남자는 자전거를 타고 아이 쪽으로 와서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아이를 자전거에 태운다.


 빨래하는 엄마를 쫓아 아이가 북북 기어나오면 엉덩이를 톡 때려서 방으로 데려가는건 남자였다. 사우디에 있을 때 아내보다 첫딸 사진을 더 보내달라고 편지에 썼지만 그런 딸이 막상 아빠를 보고 앙하고 울어버리자 바로 엄마에게 떠민 것도 남자였다. 남자는 서툰 아빠였고 그 시대의 여느 남자처럼 서툰 관계를 개선하려고 하지 않았다. 아이를 대하는 기술도 없었고 감정을 다스리지도 않았다. 부부 관계는 좋지 못했고 둘은 빈번하게 싸움을 했다. 아이들은 둘의 싸움을 무서워했지만 그 역시 티를 내지 않았다. 여자 아이는 그런 상황을 벗어날 용기도 없는 주제라 자기연민에 빠지기 일쑤였다.


 사우디에서 돌아온 남자는 직장 대신 사업을 택했다. 김양식은 쫄딱 망했고 군부대에서 일을 할때는 제법 돈을 만졌다. 아파트로 이사간 것도 침대와 침대보, 새 책상을 산 것도 그즈음이었다. 건축붐이 있었고 서랍에 얼마인지 모를 돈을 보관할 정도로 돈이 많았던 시기였다. 그 후로는 지속적인 침체기였다. 남자로선 이게 사는건가 싶을 정도로 야박하고 심심한 일상이 지속됐다. 빚은 줄지 않고 벌이는 시원찮았다. 머리가 커진 딸들에게 들어갈 돈은 많았는데 항상 마이너스였다. 아이는 그가 호기롭게 사줬던 빨간색 차를 팔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좀 더 자란 아이와 남자는 비슷한 성향답게 날을 세울 때가 많았다. 외박을 하거나 말대답을 했다는 이유로 같은 집에 살면서도 얘기를 안 할 때가 종종 있었다. 한번은 몇달간 대화를 안 하다 대학합격 소식을 전하며, 아차 우린 말 안하고 있었는데 싶었던 적도 있었다. 서로를 대하는 방법을, 존중하는 방법을, 감정을 조금 누르고 마주하는 방법을 몰랐다. 남자는 답답한 아파트보다 시골이 좋다고 하지만 귀농하기 위해서 알아보는건 '6시 내 고향'을 보는게 다였다. 항상 텔레비전을 보고 일이 없는 날은 밤늦게까지 텔레비전을 보다 잠이 든다.


 친구들과 관계도 넓어지고 삶에 대한 자신감이 커지는 엄마에 비해 남자는 술이 없을땐 별로 말이 없다. 요새는 그마저도 피부병 때문에 못마신다. 남자가 술을 좋아한다기보다는 술을 먹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얻는건 아니었을까란 생각이 든다. 예전에 남자가 아이를 좋아하지만 겁냈다면 요즘은 손주들 보는 재미에 푹 빠졌다. 비록 1시간을 못넘기는 애정이지만 어찌나 살뜰한지 여자 아이는 자신도 그런 관심을 받았다면 좀 나은 여자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란 생각을 해본다. 남자는 추석에 뭐 먹고 싶냐고 묻다가 이것저것 말하는 딸들에게 '재료는 알아서 하는걸로'라고 농을 친다.


 난 런던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멀리 떨어져 있으니 아버지는 어딘가에 분명히 존재하는 어떤 추상적인 애정으로 환원되었다. 나는 나 혼자만을 위해 살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편지로 보고해 주었다. 여기는 추운데, 우리는 이런 날씨가 오래가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요번 일요일에는 그방빌에 사는 친구들을 보러 갔었다. X 어멈은 예순 살에 죽었는데, 그렇게 늙은 나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녀는 글로는 제대로 농담을 하지 못했다. 사실, 편지에서 사용한 언어와 표현들로부터가 그녀에겐 너무도 버거운 것이었다. 하지만 말을 하듯 자연스럽게 글을 쓰는 것은 한층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게 글을 쓰는 법을 한 번도 배운 일이 없었으니 말이다. 아버지는 서명을 했다. 나 역시 진술서 같은 어조로 그들에게 답장을 보냈다. 만일 공들여 다듬은 문체를 사용했다면, 그들은 내가 자신들과 거리를 두려 한다고 느꼈으리라. 


 '남자의 자리'는 '내가 부유하고도 교양 있는 세계에 들어갈 때 그 문턱에 내려놓아야 했던 유산을 밝히는 작업을, 난 이제 이렇게 끝냈다.'로 끝을 맺는다. 이 소설을 읽는건 독특한 경험이었다. 내가 언젠가 쓰려고 했던 누군가의 생애를 그리는 작업이란 점에서, 한번도 담담한 어조를 놓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랬다. 그래서 나도 그 '남자의 자리'를 짧게나마 적어보았다. 쉽게 읽히고 간결한 글을 읽는다고 해서 쉽게 읽히고 간결한 글을 쓸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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