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껑 대신 마음을 여는 공감 글쓰기
이강룡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농부님 강연을 듣던 중이었다. 벼농사 얘기를 하다가 퇴비는 적당히 줘야한다는 얘기가 나왔다. 손을 뽈딱 들고 질문했다. '퇴비를 적당히 주라는게 얼마 정도 줘야한다는건가요.' 강연하는 분은 '거 참, 쓸모없는 질문도 다 한다'는 표정으로 강연 끝나고 말해주신다고 했다. 강연 끝난 후 말해주신 내용도 별 게 없었다. 땅 상태를 잘 봐서 맞춰서 줘야한다는거였다. 그런데 얼굴이 왜 이렇게 화끈거리지?


 나는 강연을 들을 때마다 질문을 한다. 질문할 게 없으면 질문하려고 막 머리를 짜내기도 했다. (머리를 짜내면 아프다) 어렸을 때 질문하는게 좋다고 배운걸 곧이곧대로 실행하는 것이다. 질문을 할 때면 굳이 내가 나서서 지지해야하는 '나=똑똑한 여자'란 확신도 생기고 강의 집중도도 높아진다. 그런데 질문이 정말 좋은걸까. 관심의 표명이 아니라 정말 궁금해서 질문하는가란 의심에서부터 하찮은 존재감을 질문으로 드러내려고 발버둥치는건 아닐까 싶은 자학까지. 대체 질문은 어떻게 해야하는거야.   


'선생님 이게 무슨 뜻인가요?'가 아니라 '선생님, 저는 이 말이 이런 뜻이라고 이해했는데 맞습니까?'라고 해야한다. 자기 지식의 한계를 명확히 드러냄으로써 선생님에게 판단 근거를 제공한다. 생각나는대로 지껄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묻고 또 물어서 더 낫게 규정하고 맥락에 맞게 더 잘 보여주고자 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그랬구나. 아무 생각없이 앉아 있다가 찾아서 알아낼 수 있는 것까지 굳이 질문하고 '나= 질문하는 여자 사람'이란 몹쓸 자의식을 챙겼구나. 왜 화끈거렸는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뚜껑 대신 마음을 여는 공감 글쓰기'는 근래 보았던 어떤 글쓰기 책보다 쉽게 읽히고 재미있다. 쓰고 싶은 대로 쓰는게 아니라 남들과 공감할 수 있는 글쓰기를 해야한다는게 이 책의 요지다. 글 사이사이에 저자의 깨알같은 유머도 재미있고 부단히 메모했겠구나 싶은 예시나 일화도 흥미로웠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없다. 책 속 구절들이 마지막에 이르러선 너무 빈번해 재미를 반감시킨 탓에 별을 하나 뺐다. 작가님도 이해하리라 믿는다.


 내 멋대로 쓰는 글이 아니라 누군가 읽을 때 좋은 글을 쓰기란 어렵다. 내가 하고 싶고 쓰고 싶은 글이 아니라 상대방이 읽어서 좋은 글을 써야하기 때문이다. 그럼 나는 냉큼 이렇게 말하겠지. '아니, 내 서재에 내 맘대로도 못써?' 그렇다. 누구에게나 아무렇게나 글을 쓸 자유는 있다. 하지만 내 글을 읽는 불특정 다수가 글에서 괜찮은거 느낌을 받았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그래서인지 요새 페이퍼를 잘 못쓴다. 회사에서 정신적 스트레스를 과도하게 받아서인줄 알았는데 쓸만한 얘기가 없어서란걸 깨달았다.  예전엔 꾸역꾸역 써지던 글도 뭔가 부족해보이고 잘 안 써진다. 댓글 하나에 추천 하나에 일희일비하는 사람이라 그 모든 수치와 평가와 반응들에 좌지우지 하는 것이다. ㅍ ㅔ이퍼는 기우뚱거리다 갈팡질팡. 그래서 내 멋대로가 아니라 공감하는 글쓰기를 배우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반 에이크는 작은 개의 곱슬곱슬한 털 하나하나를 묘사하는데 온 정성을 쏟고 있는 반면에, 그로부터 이백 년 뒤의 벨라스케스는 개의 특징적인 인상만을 포착하려고 노력했다. 레오나르도처럼, 아니 오히려 그보다 더 한층 꼭 필요한 것만을 묘사하고 보는 사람에게 상상할 여지를 남겨놓고 있다.


 주관이 개입된 기술 대신 눈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옮겨서 판단은 독자에게 맡기기. 나는 언제쯤 그런 경지에 닿을 수 있을까. 그깟 서재에 글 하나 쓰면서 독자 운운에 콧방귀를 뀔 사람 분명 있을 것이다. 누군가 이런 글을 썼다면 나 역시 그랬을테니까. 그렇지만 책의 형태로 된 문자를 읽는 사람만 독자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내가 즐겁고 나와 같은 공간에서 글을 쓰고 누군가의 글을 읽는 사람들도 즐거울 수 있을까. 저자는 괜찮은 서재(혹은 블로그)로 거듭나는 좋은 평판을 얻기 위해서는 다음의 두 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좋은 글을 쓴다.

첫번째 원칙을 반드시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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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2-09-07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렸을 때 질문을 하는게 좋다고 배우셨군요.
잘 듣기만 하고 나오는 것과 질문을 하고 나오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해요.
'스누피의 글쓰기 정복'과 함께 위의 책도 저도 언제부터 벼르고만 있는 책인데 스누피도 읽었으니 이제 이 책도 읽어야겠어요.

Arch 2012-09-11 11:08   좋아요 0 | URL
고지식해서 곧이곧대로 질문하고 그랬어요.
스누피의 책은 김연수 때문에 읽었는데 그다지... 좋은건 정말 좋아요, 라고 말할 수 있는데 그다지인건 어떻게 말해야할지 모르겠어요.

숲노래 2012-09-07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쓰고 싶은 글을 쓰고
읽고 싶은 책을 읽고
그리고픈 그림을 그리면 돼요.

반 에이크는 '상상력을 안 남기'며 그림을 그리지 않았어요.
스스로 그리고픈 대로 그렸어요.
상상력이란, 그림을 보는 사람 스스로 빚는 마음이에요.
Arch 님 좋은 마음 잘 북돋우며 사랑스러운 글을 써 주셔요.

Arch 2012-09-11 11:09   좋아요 0 | URL
전 사랑스러운 사람이 아니라 ^^
고맙습니다. 된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