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소의 진실 - 안전하고 맛있는 채소를 고르는 방법
가와나 히데오 지음, 유수영 옮김, 송광일 감수 / 청림Life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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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설처럼 시작하다 부랴부랴 끝나버린 `채소의 진실`. 시도는 신선했지만 리뷰에서 읽은 부분의 근거가 부족했으며 계속된 부연 설명은 지루했다. 비문은 군데군데 보이는 것을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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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겁게 안녕 - 도시의 힘없는 영혼들에 대한 뜨거운 공감과 위로!
김현진 지음 / 다산책방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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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 군산에 다녀왔다. 집으로 돌아올 때 방에 처박혀있던 종이뭉치를 집어들고왔다. 정리의 마법을 다시 부려보고 싶은건 아니고 뭔가 찝찝했기 때문이다. 누군가 들춰봐도 괜찮을 기록일지 의심스러운건 둘째치고 대체 저기에 무슨 이야기가 들어있는지 궁금했다. 지난 시간 적어놓은 기록도 정리하고 싶었다. 내가 살아온만큼(나이 허세 돋네) 쌓인 일기와 영화와 책을 보며 적은 메모들, 누군가와 주고받은 편지, 이제는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누군가와의 만남에 관한 사적인 기록까지. 그리고 시나리오 공부. 벌써 3년이나 됐다. 시나리오 공부를 하겠다며 무작정 서울에 올라가 시나리오 공부대신 혹독하게 혼자 사는 방법을 배웠던 때가. 시나리오는 공부가 아니라 그냥 쓰면 됐다. 하지만 뭐든 기초부터 알아야 시작할 수 있다고 고지식하게 믿은 덕분에 무려 상경을 한 것이다.


 시나리오 공부를 하려고 올라갔지만 사실 공부보다는 어쨌든 쓰는게 더 중요했다. 하지만 어쩐지 글을 썼던 기억보다는 사람들과 어울렸던 일들이 더 기억에 남는다. 젊었던 우리는 항상 배가 고팠다. 수업이 끝나면 근처에 있는 술집에서 통닭과 생맥주를 마셨다. 어떤 날은 후라이드를 먹었고 다른 날은 반반을 시켜 먹었다. 비가 오는 날에는 골뱅이를 시켰고 안주가 나오기 전에는 기본안주만으로도 맥주잔을 퍽도 잘 비워냈다. 누군가 선생님의 권위를 생각해서 이래야 저래야한다 간섭하지 않았고, 어떤 줄에 서야 이 판에서 살아남는다며 잰체하는 사람도 없었다.(늘 그랬듯 나만 몰랐을지도 모르지) 헐렁한 모임이었고 느슨한 열정이었다.


  돌이켜보자면 시나리오 하나 쓰지 못했지만 그래도 그때 그 시절이 있었던게 때때로 위안이 될 때가 있다. 지금에서야 떠올리며 회한에 젖는 위안이 아니라 방세를 내려고 하기 싫은 일을 할 때도 든든해지는 위안이었다. 뭔가를 하고 싶었을 때 나와 같이 뭔가를 하고 싶었던 사람들과 그때를 함께 보냈다는게, 그들과 밤을 지새우고 초췌한 몰골로 새벽 거리를 걸었다는게, 강제가 아니라 맘에서 우러나야만 할 수 있는 몇몇 일들을 같이 도모하고 같이 했다는게 말이다.


 ㄲ님 아니었으면 김현진의 책을 다시 읽지 않았을 것이다. 한 블로거의 글로 그녀의 주사를 상세하게 알고 있거나 지난번 책이 실망스러워만은 아니었다. 더 이상 나는 현진씨에게서 누구나 하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때가 되면 졸업해야할 작가들이 있는 법이다. 내게는 바이올렛의 S가 그랬고 이런저런 직함으로 한때 반짝였던 많은 저자들이 그랬다. 그런데 '뜨겁게 안녕'은 김현진을 다시 보게 만들었다. 김현진이 제일 잘 할 수 있는 이야기, 그녀가 살 부대끼며 살고 실수하는 사랑하는 이야기이다. 혹은 너무 뜨겁지만 정작 자신은 뜨겁다는걸 알지 못해 자꾸 열이 나는 젊은 시절의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순진하게도 나의 창의력이라던가 그런 것이 꽤 가치 있는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 같다. 부끄러운 일이다. 이제는 이런 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고, 오래 버티는 놈이 이긴다는 것 정도는 안다. 그래도 그때는 시나리오 작가로서 뭔가 길이 열릴 거라는 바보 같은 믿음이라도 부여잡고 있지 않고서는 아홉시부터 여섯시까지 책상 앞에 딱 붙어 보내는 시간과 사람을 계속 회의적으로 만드는 온갖 회의들과 종종 회식 자리에서 삼겹살을 일정한 크기로 자르거나 시시한 농담을 귓등으로 들어넘기며 대리님과 과장님들 소주잔이 비면 잽싸게 빈 잔을 채워주는 시간을 그토록 잘 견뎌내지 못했을 거였다. 사실 잘 견뎌내지도 못했다. 나는 회사나 다닐 사람이 아니야! 라고 속으로 객기 부렸던 듯한데, 회사에서 먹여 살려주는 걸 고마워했어야 했건만 그땐 뭘 몰랐다. 내 능력이니 창의성이니 이런 게 뭔가 중요한 게 틀림없다는 큰 착각 속에 빠져 있어서 그랬다. 죄송하기 짝이 없다.


  거리마다 사연을 품고 있는 골목길과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 예쁘고 빛나는 분홍 새틴 원피스를 걸어두고 하수구를 뚫어야만 했던 일,  옳고 그름 대신 아프고 짠함을 보듬는 그녀.


 현진씨는 잰체하며 쓸데없는 말 늘어놓는 어른이 아니라 '진짜 어른'을 좋아한다. 나도 그런데.


사십 년 동안 같은 자리에서 순대국을 끓여온 할머니의 대답은 늘 명쾌했다.

-할머니, 회사 대리가 괴롭혀요.

- 아가야, 속 좁은 놈들은 별것도 아닝 게 무시해버려라잉.

- 할머니, 저 회사 그만뒀어요. 인제 어떡해요?

- 아가, 앞으로 돈 벌 날 하고 많응게 쪼매 안 벌어도 돼야. 안 굶어 죽는다.

- 할머니, 저 이렇게 술 많이 마셔서 어떡해요?

- 아가, 걱정하지 말아라. 들어갈 때 실컷 마셔라. 안 들어갈 날이 곧 온다.

-할머니, 멀리 이사 가는 거 아니고 가까운 데 가니까 자주 올게요.

-아가야, 그래도 이사 가면 여기 살 때랑 같나......

그제서야 알 것 같았다. 그 집에서 내가 먹어온 것은 순대만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차마 감당이 안 돼서 펄펄 날뛰다 못해 미친 개 같던 젊음을, 고달프고 외롭고 거친 혼자살이와 돈벌이의 어리광을 그 식탁 위에 조용히 내려놨었다는 것을. 아이고 이쁜이가 왔구나, 아가야 많이 먹어라, 하는 그 말에 넘치도록 위로를 얻어왔다는 것을.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도 그 집에서 내 맘대로 정한 내 지정석에 앉아 있으면 아무리 가난하고 춥고 외로워도 꼭 따사로운 봄날 같았다. 그토록, 따사로운 순대국이었다.


 그리고 뜨겁게 안녕


 이제 사장님이 말아주는 술기운 없이 진짜 내 인생을 살아야 한다. 감정에 술을 섞지 말고 진짜 울 일에 울고 진짜 웃을 일에 웃고 기뻐할 일에 기뻐하고 슬퍼할 일에 슬퍼해야 한다. 16mm는 이제 안 도와준다. 다 내가 알아서 해야 한다. 어쩌면 그런 게 어른인건지도 모른다. 어른이 되기 싫어서 16mm의 폭탄주 잔을 아기 젖병처럼 붙들고 늘어져 있었는데, 이제 젖병 빨고 있을 나이 진작에 지난 것이다. 사랑했다. 정말 사랑했다. 사랑해서 헤어지는 게 이런 거구나, 너무 사랑해서 헤어진다는 게, 하고 신파조로 읊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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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da 2012-07-05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별 다섯이다!
적어도 이 책은 "누구나 하는 말"은 아니었죠?^^
순대국 할머니한테 제가 다 고마웠어요.
현진씨를, 그 많은 젊은 술꾼들을 위로해줘서 말이에요.



Arch 2012-07-05 16:42   좋아요 0 | URL
네!

나는 진짜 꽃양배추님처럼 멋지게 정리하고 예쁜 무릎과 순대국 할머니에 대해 쓰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시나리오 부분에서 꽂히고 그러다 그냥 막 끝내버렸어요. 내가 그렇지 뭐.
할머니 부분은 기쁠 때 읽어도, 쓸쓸할 때 읽어도 다 좋아요. 나만 기쁜 것 같은 특별함에서 벗어날 수 있고 쓸쓸할 때는 위로가 되어주거든요.

맥거핀 2012-07-05 1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현진씨 예전에 한겨레에 글 쓰실 때 읽었었는데, 요새는 잘 못 본 것 같아요.(이게 띄어쓰기가 맞나요? 잘 못 본 것..) 뭐 물론 요새는 제가 주의깊게 읽지를 않아서 그럴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할머니 말씀이 위로가 되는군요. 저도 할머님의 충고를 받아들여 들어갈 때 실컷 마시겠...

Arch 2012-07-06 09:56   좋아요 0 | URL
정말, 다 띄어쓰기 해야할 것 같은데 막상 띄어쓰자니 어색한데요. 저 같음 '요새는 못봤어요.' 이럴텐데^^
저는 다음날 숙취가 걱정돼서 술을 적당히 마시는 타입이었는데 저 말을 듣고 언젠가는 숙취고 뭐고 좀 먹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나이가 될거 아냐 싶은거에요. 그래서 막 들이붓... <---위로가 잘못 적용된 사례

숲노래 2012-07-05 1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마음을 먹고 마시면서
좋은 삶을 누린다고 생각할 수 있으면,
언제 어디에서라도
좋은 글을 실컷 쓰면서
즐거우리라 느껴요..

Arch 2012-07-06 09:57   좋아요 0 | URL
저도 그러리라 믿어요. ^^ 수시로 변덕스럽고 기분이 오락가락해서 좋은 마음이 될 순간을 갖기 어렵긴 하지만.

무해한모리군 2012-07-06 2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표지 사진 예쁘네요.
이 분은 제가 구독하는 작은책에 오래연재해서 왠지 아는 사이 같아서,
얼마전에 취직했다는 기사를 쓰셨길래 괜히 혼자 기뻐하기도 했어요 ㅎ

이 책도 참 좋구나. 저도 읽어봐야겠어요.
Arch님 안녕~

Arch 2012-07-10 13:38   좋아요 0 | URL
김현진다운 책이었어요. 휘모리님도 읽어보면 좋아하실 것 같아요 ^^

알로하 2012-08-02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은 솔직해서 좋았어요. 저희 집앞 커피숍에서 이 책을 처음 봤는데요. 갈때마다 조금씩 읽어서~ 이 책 다보려면 커피 더 자주 마셔야겠어요!ㅋ

Arch 2012-08-03 09:45   좋아요 0 | URL
솔직하다고 적나라하진 않은 것 같아요. 그렇게 조금씩 읽는 것도 참 좋더라구요. 감질맛나고 꼭 읽어야할 것 같고.
 
네 물건을 보여줘, 그럼 너에 대해 말해줄게.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 1
곤도 마리에 지음, 홍성민 옮김 / 더난출판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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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예전엔 이력서에 특기란이 있었다. 한참을 내 특기에 대해 고민하다 적은게 '정리하기'였다. 고백하자면 특기가 아니라 소망이었다. 나는 정말 정리를 잘하고 싶었다. 미적 취향이나 센스가 후져도 정리만 잘한다면 내 방도 봐줄만한 공간이 될 수 있을거란 희망에 부풀어서는 아니었다. 단지 원하는 물건을 바로 찾고, 언젠가 쓸거라고 모아둔 물건들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정리만 잘 한다면 책을 보고 메모만 해뒀던 '미처리 서류'에서 보석같은 구절들을 발견해 멋들어진 리뷰쯤은 쓱쓱 써낼 자신이 있었다. 정리만 잘 한다면 말이다.


 서재에서 이 책이 언급 될 때 좀 시큰둥했다. 정리를 잘한다고 인생이 빛나기까지 하겠어. 모든 실용서와 자기계발서가 그렇듯 잠깐 반짝하고 말거 아닌가 싶었다. 웬지 반항하고 싶었다. 책 하나로 내가 변할리가 없잖아, 그럴줄 알았다면 진즉 변했어야지 블라블라. 그래도 귀가 얇고 첫 의욕만 넘치는 나답게 책을 보고 정리를 시작했다.


 우선 옷. 설레지 않아도 버릴 수가 없었다. 겨울에 네겹씩 껴입던 기억이 나서 쉽게 버려지지 않았다. 계절별 수납을 하는 대신 다락에 있는 옷들을 옷장에 꾹꾹 눌어담았다. 행거에 뒤죽박죽 섞인 옷들도 티-셔츠-바지-원피스식으로 종류별로 걸어놨다. 아직 정리 안 된 한칸만 빼놓고 정리 완료.

 

 책은 한권도 버리지 않았다. 엄마 아빠 집에 책을 다 놓고 왔기 때문이다. 대신 서류, 특히 어마어마한 이면지 버리기는 당분간 보류했다. 이면지로 다이어리 만들기를 확실히 그만둘지 말지 결정을 못내리는 중. (혹시 이면지 다이어리에 관심있는 분, 손! 아.. 말빚만 지는건가. 그럼 다음에 만든다면 페이퍼에 한번 써보렵니다.) 책 내용이나 다큐 본걸 메모리한건 컴퓨터로 옯겨서 글로 작성할 예정이다. 임시저장 기간으로 기한을 정해서 그 안에 못쓰면 내 것이 아닌걸로.


 가장 큰 고비는 잡동사니였다.



 저 작은 서랍장은 진즉 미어터지고 있었다. 갖고 있었던 후로 한번도 안 쓴 머리핀, 예쁘다고 모아놓은 조개껍질, 세안제, 빨간약까지. 버리면 아까워서 갖고 있지만 정작 잘 쓰지도 않는 물건들로 서랍장은 한번씩 열어볼 때마다 한숨을 불러일으키는 공간이 되고 말았다. 옆에 쓰레기봉투가 있으니 갑자기 힘이 났다. 내가 갖고 있는 물건들은 정리하지 못한 과거는 지금 내 상태를 설명해주는 것이리라. 버리기는 아깝지만 그렇다고 자주 사용하면서 애정을 주는 관계도 아니었다. 


 물건들은 어서 자기 자리를 찾고 싶다고 하지만 쌓인 종이뭉치와 서랍을 외면하고 바쁜척 할 때도 많았다. 한번이라도 말끔하게 정리된 책상에서 책을 읽고 일기랑 금전출납부(?)를 쓰고 싶었다. 정리를 한 후, 미처리 서류함은 아직 비어지지 않았지만 책상은 몰라보게 깨끗해졌다. 비로소 내가 뭘 해야할지 알게 될줄 알았는데 허전하고 씁쓸하다. 내가 공을 들여가며 해야할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걸 알아챘기 때문이다. 결국 그동안은 정리를 핑계로 '정리만 된다면 내가 말이지'란 주문으로 근근히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은 영리한 책이다. 소비가 나를 증명하는 사회에서 사고자하는 욕망을 죄악시하는 대신 '왜 정리는 해도 해도 끝이 없을까. 혹시 방정리가 안 되는게 아니라 마음이 정리되지 않아선 아닐까.'란 물음으로 말문을 트기 때문이다. 물건을 자꾸 사는건 사회적, 환경적, 윤리적으로 문제될 소지가 다분하다. 물건으로 가득차 있지만 물건을 찾을 수도 잘 쓰지도 않는 상황을 직면해야 한다. 소비근절 다짐이 아니라 물건과의 관계를 제대로 정립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1. 어중간하게 정리하면 평생 정리할 수 없다.


2. 크게 두 가지만 생각하면 된다. '물건을 버릴지 남길지 결정하는 것'과 '물건의 제 위치를 정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3. 너무 정리가 하고 싶은 경우, 그것은 방을 정리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심리적으로 정리하고 싶은 다른 무언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4. 정리하지 못하는 타입-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타입, 물건을 제자리에 두지 못하는 타입, 두 가지를 혼합하는 타입


5. 안 읽은 책. "언젠가 읽을지 몰라서요.", 그 '언젠가'는 영원히 오지 않는다. '할 거 같다'고 생각할 뿐 아직 손도 대지 않은 책들은 전부 버려야 한다. 책의 부피 줄이기(베껴쓰거나 복사) 정리법을 하다 보니, 문득 그동안 만든 파일을 한 번도 다시 들여다본 적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했던 일은 단순한 위안에 불과했던 것이다. 책은 시기가 생명이다. 만난 그 '순간'이 읽어야 할 때다.


6. 미처리(서류) 박스는 '비어 있는 상태'를 전제로 해야 한다. 미처리 박스에 서류를 남겨두는 것은, 인생에서 아직 처리하지 못한 일들이 많다는 것임을 인식하고 언제나 박스 안을 비어 있는 상태로 유지하자.


7. 세미나는 배운 내용을 실천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세미나는 그곳에 참석해서 강좌를 듣는 순간 의미가 있고, 세미나를 받은 후에 그 내용을 실행할 수 있느냐가 핵심이다. 세미나에서 받은 자료는 '전부' 버릴 것이라는 각오로 수강하도록 하자.


8. 서랍의 이상한 상자- 실제로 상자 뚜껑을 열면 거기에는 동전, 머리핀, 지우개, 예비단추, 손목시계 줄, 다 쓴 건지 어떤지 모르는 건전지, 병원에서 처방받아 먹고 남은 약, 오래된 부적, 키홀더 등 각종 소품이 가득 들어 있다. (혹시 내 서랍도 열어본게 아닐까)


9. 정리를 해서 물건을 줄이면 생활 속에서 자신이 무엇을 중요시하는지 가치관을 확실히 알 수 있다. '버리지 못하는 것은 과거에 대한 집착 때문일까, 아니면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일까' 물건의 소유 방식이 삶의 가치관을 나타낸다. '무엇을 갖고 있느냐'는 '어떻게 사느냐'와 같다.내 눈앞에 있는 물건은 과거에 자신이 선택한 결과물이다. 위험한 것은 그것들을 보고도 못 본 척하거나, 자신의 선택을 부정하듯이 난폭하게 버리는 행위다. 그래서 나는 물건을 무의미하게 쌓아두거나, '일단 아무 생각 말고 버린다'는 생각에도 반대다. 물건 하나하나와 마주하면서 느낀 감정을 경험해야만 비로소 물건과의 관계가 정리될 수 있다. 물건을 버리는 것은, 자신의 가치관을 판단하는 경험의 연속이다. 물건을 버리는 것으로 결단력이 키워진다.



 정리 못한 책 메모는 리뷰 임시저장함에 담아뒀다. 한달 동안 글을 정리해서 리뷰를 안 쓰면 이 글들은 사라진다. 오늘 아침에 임시저장함을 열고선 한두자 수정한 후 문서를 다시 저장했다. 임시저장 기한은 뒤로 미뤄졌다.  나는 평생 정리 못할 타입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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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07-03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 읽은 책. "언젠가 읽을지 몰라서요.", 그 '언젠가'는 영원히 오지 않는다.
저도 이렇게 생각하게된 후, 안읽은책을 모조리 중고샵에 팔아버리고 있어요. 하핫

그나저나 아치도 이 책을 읽었네요. 이 책을 안읽은건 이제 나뿐인가 하노라.

머큐리 2012-07-04 0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맞는 말인데...꼭 정리를 해야 하는거냐는 반항심이...ㅋㅋ
락방님 이 책은 저도 안 읽었어요...읽어야 하나 고민 중입니다..에고

다락방 2012-07-04 13:24   좋아요 0 | URL
우린 읽지말아요, 머큐리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Arch 2012-07-04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같이 안 읽으려다 인생을 좀 빛내고 싶어서, 쿨럭

그런데 그 언젠가의 책들은 책장에 놔두면 정말 언젠가 읽을 것 같다는게 문제에요. 도저히 팔 수가 없어요. 한번 읽어봐서 아니다 맞다가 되면 모르겠는데. 아직 안 읽은 책처럼 매력있는 물건이 또 있을까요.
 
할머니의 마지막 선물 높은 학년 동화 16
휘스 카위어 지음, 김연정 옮김, 만서 포스트 그림 / 한겨레아이들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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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침은 아이들을 깨우고 식사를 준비하고 씻어라, 준비물 챙겨라 잔소리를 하며 후딱 지나간다. 하지만 오늘은 아이들 엄마가 쉬는 날. 밥과 반찬을 들고 내 방으로 들어와 모처럼 느긋하게 밥을 먹었다. 문 밖에서 신경질내거나 채근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가서 말을 거들까 하다가 내가 하는 일들, 특히 잔소리가 그동안 쓸모없는 짓이었다는 생각에 꾹 참고 가만히 있었다. 밥을 다 먹고 휘스 카위어의 책을 펼쳤다.


 책의 첫 부분을 읽은 다음 자전거를 타고 출근 했다. 아침부터 덥다. 자전거를 타고 오면서 문득 어렸을 때 할머니가 돌아가셨던 일이 생각났다. '할머니의 선물'에서도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마더리프는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왜 엄마에게 안 우냐고 묻는다. 예전에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나도 울지 않았다. 울지 않는게 너무 이상해 동생들을 불러다 할머니가 얼마나 좋은 분이셨는지를 얘기했다. 이제는 할머니를 볼 수 없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동생들도 나처럼 밍숭맹숭한 얼굴이었다. 나는 연극하는 것처럼 좀 더 감정을 실어 할머니의 죽음을 얘기했다. 나도 울고 동생도 울었다. 요즘도 상황과 맞지 않은 감정이 들 때면 가끔씩 그때 일이 생각난다.

 '할머니의 마지막 선물'은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마더리프의 시선으로 할머니를 추억하는 이야기다.  마더리프는 외로워서 울었다는 할아버지에게 불을 켠 다음 엄마를 불러보라고 위로해주지만 '나이가 들면 엄마를 부를 수 없단다.'란 할아버지 말에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어른이 되면 한밤 중에 깨어 아무리 무서워도 엄마를 부를 수가 없다.  할머니의 책을 보며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는 완전 어른용 책이었어요.'라고 말하는 귀여운 마더리프는 숲 속 작은 집에서 책 읽는 것을 좋아했던 할머니가 왜 집안일만 하는 작은 기계로 변했는지 궁금하다. 마더리프는 '책상의 할퀸 자국들은 격자 울타리예요. 그리고 울타리 속에 갇혀 있는 얼굴은 바로 할머니 자신이라구요.' 라며 할머니의 맘을 헤아려본다.

 할머니는 정말 어떤 사람일까.

"(브뤼셀로 신혼여행을 갔을 때) 할머니는 아주 예뻤단다. 그리고 네 할머니는 많은 것을 보고 싶어 했어. 도시 구석구석을 말이지. 나는 그것이 참 좋았어. 할머니는 하루 종일 환하게 웃었어. 할머니가 기뻐하면 나 역시 즐거웠고.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그렇게 된단다."

 마더리프의 엄마는 할머니를 이렇게 기억한다.

" 모험을 하고 싶어 했고 할아버지 옆에도 있고 싶어 했어. 그리고 자식도 갖고 싶어했고. 그 모든 것을 함께 할 수는 없는 노릇이잖니. 인생은 늘 선택을 해야 하니까."

 나는 동생이랑 조카들과 사는 것을 선택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동생이 좀 더 조카들을 챙겼다면, 엄마가 한번씩 전화를 해서 아빠와 동생이 얼마나 안 맞는지 얘기하지 않았다면, 내가 혼자 있는 것을 견딜줄 아는 어른이었다면 이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지금 상황을 감당못할 정도는 아니다. 조카들과 지내면서 즐겁고 행복한 순간도 많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조카들을 챙겨야하고 동생과 내가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 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게다가 나와 같이 지내는 사람들은 행복하지도 않다.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다른 것, 흥미롭고 가슴 떨리게 만드는 것, 새로운 만남과 색다른 일이 벌어질걸 기대하는건 아직 철이 덜 들었단 얘기다. 할머니는 어른이 되지 못해서 가보지 못한 길을 그토록 갈망했을까. 책에는 이런 부분들을 개인의 성향 문제보다 여자들의 삶에 대한 은유로 빗대지만. 모든게 정해지고나면 정해진 역할에 충실하면서 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정말 그렇게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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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20 12: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6-20 13: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숲노래 2012-06-21 0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쪼록 언제나 좋은 삶 될 수 있기를 빌어요.
서로 다른 생각으로 살아가는 어른과 아이라 하지만,
서로 좋은 사랑을 꿈꿀 수 있으리라 느껴요.
 
섹스, 폭탄 그리고 햄버거 - 전쟁과 포르노, 패스트푸드가 빚어낸 현대 과학기술의 역사
피터 노왁 지음, 이은진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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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의 선전효과를 위한 촬영기술과 통신장비의 발달은 섹스 산업의 기상천외한 소통도구와 영상을 발달시킨다. 전쟁의 물품 조달과 보급을 위해 이용된 기술은 대량 표준화 시스템으로 물건을 생산하는 방식을 도입시킨다. 패스트푸드 업체는 잠수함의 좁은 주방에서도 효율적으로 음식을 생산하는 방식에 착안해 분업형 조리과정을 시도한다. 


 심플롯의 감자튀김에서부터 패스트푸드의 질 나쁜 쇠고기를 대처하기 위해 공급업자를 획기적으로 줄인 사례, 반GMO나 동물권리 보호 운동가의 입장이 아니라 그 반대편에 놓인 사람들의 이야기,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생활용품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미국 경제의 종교적 신념이 GMO제조회사와 어떤 연관을 갖는지 등등. 책에는 흥미를 잡아끄는 구석이 많다. 게다가 제목과 표지마저 혹할만하다. 


 플레이보이의 휴 헤프너에 관한 부분도 재미있다.


 에스콰이어지 카피라이터 휴 헤프너. 청고도적인 가정에서 순결을 강요받으며 자란 헤프너는 성생활을 재정립하고 싶은 강한 욕구에 시달리다가 킨제이 보고서에서 크나큰 영감과 확신을 얻었다. 이 신예 저널리스트는 관습에서 벗어난 게걸스러운 성적 취향을 지닌 사람이 자기 혼자가 아닐 뿐더러 그런 욕구가 아주 흔하고 평범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매우 기뻐했다.


 그렇지만 지식백과적인 기술발전 이야기가 기술문명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그치진 않는다. 이 책은 현대 과학기술에 대한 가치 판단을 하지 않는다는 암시를 준다. 기술에 대해 말하면서 어떤 입장에 서지 않으며 그간의 논쟁과 기술발전에 대해서만 서술한다. 암시는 중립적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식품 가공 기술이 불러온 나쁜 영향을 좋은 가공 기술로 보완하는 움직임이 공식적으로 시작됐다'는 말처럼 기술의 폐해는 기술로 대체한다는 주장을 보면 꼭 중립적인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어떤 입장이 없다보니 책은 여러군데에서 머뭇거리는 듯 보인다. <갈등의 씨앗>에는 비타민이 들어있는 황금눈쌀의 연구자가 처음에는 모든 특허권을 갖고 있는 다국적 생명공학 회사가 공익을 목적으로 하는 자신의 연구에 훼방을 놓는다며 불만을 드러낸다. 연구 특허권을 허용받은 다음에는 유럽 쪽에서 반GMO 식품 규제가 심해 생산할 수 없다는 말로 끝맺는데 GMO의 안전성 검증은 물론 비타민이 함유된 것 말고 어떤 영양학적 가치가 있는지는 전혀 다루지 않는다. 그동안 GMO와 관련된 크고 작은 논란도 생략했다. GMO 책이 아니니 당연한거지만 예외적인 사례(예외적인 사례조차 다국적 종자회사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식량이 부족한, 혹은 문명의 혜택을 못받는 나라를 도와준다'는 식)를 통해 시장이 알아서 할 일을 이데올로기로 규제한다는 식의 기술문명 낙관주의는 좀 아닌 것 같다. 게다가 시장은 불공정하고 자본권력쪽으로 편중되어 있다. 


 저자는 사람을 살상하는 전쟁에 대해서도 건강을 해치는 패스트푸드에 대해서도 음탕한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포르노 산업에 대해서도, 일견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 오히려 저자의 전략과 의도는 어떤 태도를 드러냄을 통해 현대 과학기술에 대해 만연되어 있는 모종의 이데올로기에 강박되어버리는 것을 넘어서고자 하는 데 놓여있다. 이를 위한 시작점은 현실을 직시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그를 통해서만 인류에게 진정 필요한 그 어떤 종류의 실천적이고 생산적인 태도와 행동이 나올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 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중요한 건 기술이 결국 시장에 나온다는 점”을 깨닫는 것이다.  <알라딘 책소개>

 

 피터 노왁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그 기술을 발명하고 생산하는 사람들, 현대에 이르러선 대부분 다국적 기업에서 대부분 도맡은 부분을 짚지 않았다. 아니 책에서는 분명히 짚었다. 가치 중립적으로. 하지만 누가 기술을 개발하고 어떤 의도로 사용하는지, 어떤 가치 판단을 하는지도 중요한게 아닐까. 나쁜 기술이 어떻게 더 나쁘게 되었는지, 기술개발은 황금빛 미래를 약속하지만 세계는 더욱 불평등해지고 자원은 고갈되는 문제도 짚어야하지 않을까.  저자는 단지 어떻게 나쁜 기술이 현대 문명을 발전시켰는가를 보여주는데 책의 목적이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책을 넘어서는 오독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책소개에 나온 부분을 '기술은 시장에서 결정한다'로 잘못 읽었다. 어떻게 읽더라도 마찬가지다. 기술이 시장에 나오더라도 그 기술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지금처럼 기술을 위한 기술 예찬이 타당한지는 잘 모르겠다. GMO 뿐 아니라 각종 화학물질은 발암물질로 의심되고 화학물질 범벅 음식은 각종 질환을 발생시키고 있다. 이것 역시 현대 의학과 발전된 기술로 통제될 수 있다고 주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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