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아빠보고 나한테 소리 지르지 말라고 했지. 엄마도 소리 지르지. 엄마는 소리 지르지 말라고 했지 (엄마는 나한테 화내면서 왜 아빠한테 뭐라고 하냐는게 요점) 엄마는 내가 목에 가시 걸렸으면 좋겠어? (지난번에 장난처럼 그렇다고 했더니 그게 계속 맘에 남는 모양. 서운한 일 있을 때면 꼭 그 얘기를 한다) ‘이라고 했더니 아빠는 아니라고 했는데 엄마는 걸렸으면 좋겠어? 이라고 했더니 한숨

 

아침에 뭔가를 못하게 했더니 다른 뭔가를 하다가 늦어져서 실랑이를 벌였다. 계단을 내려가는데 아침에 먹은걸 토했다. 감정이 가라앉지 않아 무뚝뚝하게 대했더니 그 얘길 한다.

 

엄마는 내가 토했는데 아무렇지도 않아? 내가 아프면 좋겠어?”

아니, 누구가 아프면 속상하지. 미안해. 엄마가 정말 미안해.”

알겠어. 미안한거 받아줄게. (곰곰 생각하더니) 엄마는 내가 목에 가시가 걸리면 좋겠어?”

(당황하는 게 귀여워서 이라고 하고 싶었지만) “아니, 절대 아니지. 목에 가시 걸리지마.”

 

낮에 시장에 갔다가 장바구니를 잘못 잡아서 안에 있던 유리병을 바닥에 깨트렸다. 경황이 없었는데 같이 있던 아이는 엄마 괜찮아라고 묻더니 어떡하냐 하면서 바닥에 떨어진걸 주우려고 한다. 만류하고 내가 주웠는데 상대방을 탓하지 않고 의연하게 돌발상황을 대처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고맙고 미안했다.

 

팟캐스트 시스터후드에서 우리집 윤가은 감독이 나왔을 때 진행을 맡은 분이 아이들을 작은 어른(맞나? 작은 사람이었던 것도 같고)이라고 표현한걸 듣고 참 찰떡 같다고 생각했다. 다른 종류의 인간이 아니라 좀 더 작을 뿐. 나는 아이를 보면서 특히 같이 산책을 나가 그런 면을 많이 본다. 다리 아파서 산책을 못하겠다더니 온갖 놀이를 생각해내 집에 들어갈 때까지 쉬지를 않는 아이란 점은 있지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입주자대표 회의인데 다들 회의장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다. 회의가 얼른 끝나길, 질문하는 사람 저 세상 사람이란 무언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질문하고 따져 물었다. 대의제로 선출된 게 아니고 할 사람이 없어서,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아서 맡은 역할이지만 회의비만 축낼 수는 없었다. 내가 바꾸거나 잘할 수 있는 영역은 손톱보다 작았지만 질문으로 운영 전반을 조금이나마 파악할 수 있었다. 조급하게 내리꽂는 시선에 더 묻지 못하고 황급히 회의를 끝냈다.

 

회의를 마치고 식사를 하러 갔다. 집에 갈까, 싶었는데 불편해도 있고 싶었다. 입주단체대표의 개인사와 건강상태까지 시시콜콜하게 다 들었다. 대표가 시덥지 않은 일을 과장해서 마치 엄청난 활동처럼 부풀리길래 나도 그런 일 해봤다라고 말했다. 어떤 아이디어를 어떻게 실현했는지 간략하게 말을 했다. 다들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말의 말미를 끝마치지 못하고 헤매는데 일한지 얼마 안 된 관리소장이 웃음을 머금고 나와 눈을 마주쳤다.

 

옴마야, 심장아 나대지마라.

 

권한은 작은데 주변경계는 커져가서 자칫하면 내 바운더리가 아작나게 생겼다. 과연 나는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이 일은 내게 어떤 의미일까. 적성에 맞는다고 생각했는데 적성에 맞는 이 일을 매년 같은 루틴으로 반복하자니 지루해 미치겠다. 전망은 보이지 않고 근근히 월급쟁이로밖에 살 날만 남은 느낌이다. 앞서 말한 아이디어는 일종의 몸부림이었다. 뻔한걸 뻔한 방식으로 재탕하고 싶지 않다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내게는 큰 자부심으로 남아있는 일. 그런데 상대방이 그 맘을 읽은 것처럼, 내 맘을 다 헤아린 것처럼 웃는다.

 

익숙하고 지리멸렬한 관계에서 조금 벗어나고 싶다. 새롭게 나를 자리매김할 수 있는 관계, 시간이 필요하다. 일상의 사소함에 집중하고 미묘한 차이에 감동을 받았다지만 단번에 바꿀 수 있는 용기가 부족해선 아니었을까. 노회한 전 관리소장은 내가 무슨 말을 할 때마다 세상물정 모른단 식이었는데 이 사람은 1년차란다. 집이 이런데 괜찮은지 물었더니 시간 날 때 언제든 연락주면 가서 봐주겠다고 한다. ! 나는, 누군가 부탁하면 흔쾌하고 호의적으로 반응했던가. ‘왜 그것도 몰라, 언제까지 알려줘야 돼였나. 처음의 내가 일을 낭만적으로 보고 호기롭게 도전했던가. 모든 게 설어서 우왕좌왕하고 배우려고 애썼던 이 일을 시작할 때 나를 떠올려 본다. 관리소장의 미소는 처음 내가 가진 갈망을, 맘가짐을 불러온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날이었다.

나는 일이 끝나면 쉬고 싶은데 아이를 본다고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그 주에는 무엇을 해도 아이는 금세 바닥에 누워 뒹굴 것처럼 화나 있었다.

아이고 뭐고 진짜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하기 싫은 마음에서 제일 큰 부분을 차지한 것은 아이를 안 보고 싶다는 감정.

힘을 내서 아이 기분을 맞춰주다 제풀에 지쳐 다시 사이가 틀어지고.

나는 우리 아빠처럼 아이를 대하고 싶지 않은데 어떻게 해야할까.

시간은 계속 흐르고 피곤함은 가실줄 모르니 고민은 공염불에 그치는 날이었다.

상냥함과 화의 반복, 설득과 으름장의 교차, 열정과 자포자기의 시간

 

주위에선 그 나이 아이는 다 그렇다고, 고집을 부릴 때라고 한다.

나도 그게 맞다고, 그럴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해하는 것과 그것을 받아들이는건 다르다.

몸이 힘드니까 아이를 받아줄 맘의 공간이 터무니없이 좁아졌다.

사소하게 화내고 끊임없이 자책했다.

 

 금요일엔 이 모든게 한꺼번에 들이닥쳤다.

아, 지겨워. 왜 이토록 지겨움을 가득 짊어지고 지친채로 살아야할까.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맥주를 먹기 시작했다.

밥을 안 먹겠다는 아이를 설득하고 사정해가며 밥을 주는 대신 아이가 먹고 싶은걸 줬다.

아이가 하고 싶다는 생일축하 놀이도 다 하고 웬만한 일들은 아무렇지 않게 넘어갔다.

나는 취했고 취하고 싶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아이는 내가 처음 사랑에 빠진 그 모습들을 가감없이 내보였다. 사랑스럽고 상냥한, 다정하고 멋진 모습들.

아이 안에서 계속 갖고 있지만 꺼내 보이지 않았던 모습들을 아낌없이 보여준다.

아이를 처음 보았을 때 애틋하고 따스한 마음이 피어났다.

나는 단박에 아이와 사랑에 빠졌다. 그 감정이 다시 되살아난다.

아이의 부정확한 발음과 동작, 표정이 죄다 사랑스럽다.

 

 내가 아무리 고민을 해도 풀어지지 않던게 어떻게 이렇게 한번에 변한걸까?

적정한 선과 적당함을 지키려는 방식이 아이에게 충분히 사랑받지 못한 느낌을 준 걸까?

일과를 마친 아이는 그토록 치열하게 다툼했던 양치질도 쉽게 끝내고 잠도 편안하게 잘 잔다.

 

 성공?의 경험을 한 나는 노심초사하며 아이 비위를 맞추지 않는다.

이제는 많이 사랑을 표현하고 아이랑 있는게 지금 나한테 얼마나 중요하고 소중한 일인지를 말한다.

신경이 곤두서서 조금만 자기 의사에 반하면 드러누으려고 했던 아이는 내 얘기를 순순히 들어주고 타협을 하고 대안을 제시한다.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아이 안에는 이미 좋은 심성이 있었다.

나는 그 마음들이 나와서 스스로를 보듬어주는걸 지켜볼 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 뭔가 인형처럼? 귀여운 시절이 있었지. 그땐 나도 낯설고 조심스러우니까 아기에게 더 귀 기울이고 눈을 마주쳤지. 지금은... 조금만 멈추면 보일텐데 내가 바쁘기도 하고 아이의 요구와 감정이 다양해지니까 다 못헤아리는 느낌이 든다. 요샌 사실만으로 아이를 설득하지 못하니까 꾀가 늘고 거짓말도 많이 한다. 무서운걸로 겁주기 싫은데 부쩍 괴물을 들먹이고 윽박지르기 일쑤다. 절대 뽀로로로 아이를 달래지 않겠다고 생각했는데 아이 손에 핸드폰을 쥐어주기도 하고.
 겨울이라고 부모들이 아이들을 일찍 데려가는데 어쩌다 몇명 안 남은 아이들과 같이 있는 아이를 보고 짠하고 미안해서 맘이 미어졌다. 엉엉 울며 내가 무슨 영화를 보려고 아기를 맡기고 일하나, 너무 조급했다며 나를 책망했다. 그런지 얼마나 됐다고 아이가 협조를 안 한다고 화를 내고. 피곤해한다.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정신없이 타고 있다. 

 

* 자려고 누웠는데 잠이 안 오는지 쉬가 마렵다, 물이 먹고 싶다고 하는 아이. 에휴, 요구를 다 들어주고 같이 누웠는데 옆에서 코를 고는 a가 춥다며 몸서리를 친다. 쌩쌩한 아이에게 이불 덮어주라고 하자 이불을 들썩거리며 먼지를 한참 내더니 덮는 시늉 전까지 갔다가 아빠 배꼽을 보고 '아빠 배꼽이다, 배꼽이다'하면서 손가락을 넣어서 배꼽을 빼려고 애를 쓴다. 하, 둘 다 자는 시늉하다 깔깔대며 웃었다.

 

* 그래도 어쨌든 밤이고 자야하니까 다시 누웠는데 진짜 잠이 안 오나보다. 어디서 배웠는지 잠이 안 와, 란 말을 하며 뒤척이는 아이. 하, 자꾸 안 자면 엄마 나간다며 불을 끄고 거실로 나갔는데 단박에 나를 찾아낸다. 찾았는데 엄마 같이 자자고 하는 대신 내 엉덩이를 만지고 손을 잡으며 진짜 엄만지 확인하는 것처럼 구는데 자꾸 웃음이 나서 큭큭 웃었다. 다시 또 누워서 자려는데 진짜 또 너무 안 자서 자꾸 내 입에 손을 넣어서 손을 앙하고 물었더니 흑흑 울면서 엄마가 엄마가 물었다고 한다. 엄마가 안 그랬는데? 누가 그랬지? 하니까 엄마가 그런게 맞는데 이건 무슨 상황인지 어리둥절하다가 몇번 그러다 진짜 잠이 들었다.

 

* 목에 난 내 점을 보더니

- 엄마 이거 뭐에요?

- 엄마 점이에요.

점도 막 빼내려고 손으로 몇번 살을 꼬집다 포기했다.

 

* 모성신화?
아이가 잘 자고 있는지 보려고 방에 들어갔는데 잠에서 깬 아이가 멀뚱히 앉아있다. 피곤해보여 다시 재우려고 뉘였더니 저항해서 데리고 나왔다.
그런데 누구씨부터 다른분들까지 한마디씩 보탠다.

- 역시 엄마라 애기 잠 깬 소릴 들었나봐....
- 우린 못들었는데. 자긴 들었어?
- 엄마는 엄마야.

아니에요. 아니야. 우연히 맞은거에요. 그리고 아기 자는 방 앞에서 수다방 열었잖아요.
 모든 재능이 그렇 듯 육아도 관찰과 습관, 노력의 산물이지 타고나는 게 아니다. 엄마이기도 하고 주양육자라서, 육아서 자주 읽고 아기를 다른 사람보다 잘 알아서 아이를 잘 아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나는 아이를 대하는 양육 이론과 기술이, 아이 아빤 인내력과 따뜻함이 상대보다 상대적으로 나을 뿐이다.

 

* 시작은 육아방송
  콩으로 재미있게 노느라 어린이집에 늦었다는 아이 얘기를 듣고 콩을 갖고 놀면 재미있겠단 생각을 했다. 심심해하는 아이에게 콩을 줬다. 콩이 떼구르르 구르는 소리가 재미있는지 웃으며 그릇에서 그릇으로 옮기기도 하고 낱개로 줍기도 하며 한참을 신나게 논다. 저녁 먹고 다시 콩놀이를 하는가 싶었는데 코에서 콩이 나온다! 헉 코에 콩을 넣을진 상상도 못했는데. 먹지 말라고만 했는데. 가볍게 하나 넣었겠지 싶어 다시 보는데 저만치 또 하나. 간신히 콩을 빼고 안심했는데 재채기를 하고 자꾸 콧속에 손을 넣으려 한다.

 

 다시 살펴보니 아까 뺐던 코에 콩이 또 하나 들어가 있었다
귀이개를 소독해서 빼는데 너무 깊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콩이 폐로 가서 수술을 했다는 둥, 며칠동안 모르고 놔둬서 싹을 틔웠다는 둥 걱정스런 얘기만 나온다. 부랴부랴 응급실로 갔으나 클립으로 빼려다 실패. 전북대응급실에서 핀셋으로 하다 실패. 외래 이비인후과에...서 겸자로 콧구멍을 벌린 다음 진짜 귀이개 같은 걸로 살짝 빼니 드디어 콩이 쏙 나왔다. 이비인후과 최고.
아인 콩을 빼려고 할때마다 울고 병원 가면서 자고 어디가냐고 걱정스럽게 묻더니 집에 와 편하게 잠이 들었다.

뿔대로 뿔은 콩과 찬양해, 겸자!

 콧구멍은 두개라
설마 그렇게 많이 넣은줄 몰랐다.
다 뺀줄 알았는데 아이가 한쪽 코를 킁킁거리고 콧물이 줄줄 샌다. 혹시나 하는 맘에 다시 병원에 가서 내시경으로 봤더니 갈색의 무언가, 역시나 콩인 그것이 보였다. 도구가 없어 여기에선 못빼고 다시 시내로!
이번엔 뾰족한 기구에 끝이 살짝 구부러진 것으로 콩을 살짝 찍어서 빼냈다. 이게 무슨 난리인지. 왜 의사도 우리도 반대쪽에 콩이 있을거란 예상을 못했을까. 헉! 아인 울고불고 하다 콩이 나오니까 진정을 했다. 내 다신 콩놀이 하나봐. 콧구멍이 두개란걸 이렇게 절절하게 느낌.

 

* 막 말을 하는 시기를 지나 뇌의 세포들이 싹싹 연결되는 느낌을 받는 요즘. 어디서 배운 말을 하고 내 말을 따라하며 자기가 원하는대로 변형하고 원하는걸 표현한다. 인형처럼 마냥 귀여워만해도 되는 때도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았는데 지금은 다른 의미로 참 좋다. 가끔 내가 아이를 낳은게 실감이 안 나지만 단어가 잘 생각이 안 나고 뭘하려고 했는지 기억이 안 날 때면 맞아, 내가 아이를 낳았지 싶은 요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 아기가 아침을 먹으며 ‘포크포크’를 외친다. 누구꺼 있잖아. 그래도 포크포크. 아이의 다양하고 급변하는 요구를 들어주다가 이제 그만을 외치고 싶을 때면 스스로 묻는다. 이 요구는 안전한건가,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건가. 아니야. 포크를 꺼내서 줬더니 아기는 아빠한테 포크를 준다.

- 아빠 먹고 가. 이거이거

하며 사과를 집어준다. 아기 아빠는 전날 과음해서 속이 안 좋을텐데 이거 어쩌진 아니고 그것 참 쌤통이다 싶은 마음. 음하하

 

* 한밤중 칭얼거림. 달래고 토닥여 재워야하는데 내가 피곤하다. 아가야 자, 자야지 내일 친구들이랑 재미있게 놀지. 그래도 칭얼. 왜. 왜? 왜! 내 목소리를 따라 아기의 칭얼거림도 덩달아 커진다. 그러더니 이내 울음소리가 나고 나는 잠이 깨버렸다. 잠이 깨서 화가 나고 화를 아이한테 쏟고. 악순환이다. 연결고리를 누군가 끊어줘야하는데 대부분 a가 그 역할을 한다. a는 아이의 불편함을 들어주려 애쓰고 귀 기울인다. 나는 옆에서 날아간 잠을 불러들이며 왜 육아 이론은 내가 더 잘 아는데 a가 아기를 더 잘 보는걸까란, 당연히 이론보다 실제 맘이 더 중요한 이유를 갖고 괜히 생각해보고 있었다. 아이는 한밤중에 쉬를 싸고 싶어 칭얼거린거였다. 나도 아무 이유 없이 맘이 그럴 때가 있는데. 그럴 때 수용해주는 부모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라고 나에게 말했었는데 망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한밤중에 언성을 높여 미안한 맘에

- 누구야. 엄마가 어제 자는데 큰소리 내서 정말 미안해.

라고 했더니

- 엄마, 나도 미안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