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점이 없다. 누군가를 위로할 깜냥도 안 되고 이 사안에서 내 기준에서의 옮고 그름을 논할만큼 성실하지도 않다. 사람들의 의견이 모아져 좀 더 나은 결론이나 모두가 납득할만한 절차를 밟는다면 모르겠지만 이건 그런 사안이 아닌 것 같다. 몇가지 얘기에서 언급된 '이달의 당선작'에 대해 내가 생각하는건 가연님이랑 비슷하다. '주면 좋고 안 주면 어쩔 수 없지'다. 명예랑 상관있는 것 같진 않고 적립금 들어온건 웬지 배부르달까. 리뷰가 아니라 페이퍼에도 적립금을 주기 시작하면서 페이퍼형 아치답게 열심히 썼는데도 당선이 안 되면 좀 서운하긴 하고 신간평가단이 당선 많이 되던데 혹시 그쪽만 밀어주나 싶기도 하지만 적립금 주는거야 알라딘 마음인데 내가 감놔라 배놔라 할만한건 아니라고 본다. 우리가 돈 모아서 공정하게 심사해 당선시키는게 아니라 알라딘 맘대로 선정하는 것이니 말이다.
* 알라딘에서 내가 맨 처음 페이퍼나 리뷰를 올리는 책은 드물다. 내가 무슨 책에 대해 얘기하는건 거의 뒷북이다. 신간보다 구간을 손에 넣기 쉬운 단순한 독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 역시 누군가 소개를 했겠지 했는데 웬걸. 내가 처음이다. 흴랄라~ 영화와 다르게 영상미학을 논하기 힘든 텔레비전에서 자신만의 철학과 영상을 표현해낸 PD. 7인의 사무라이를 따라한 듯한 제목은 멋쩍었지만 과연 무슨 이야기를 할지 궁금했다. 물론 읽기 시작할 때는 우려가 됐다. 보편화된 영상 문법과 메시지를 줘야하는 텔레비전의 매체 특성상 색다른 얘기가 나올 것 같지 않아서였다. 그런데 웬걸. 알차고 재미지다. 영상의 기술적인 부분이 1이라면 99는 인문학적인 바탕에서 나오는 것이라던가 연기술에 따라 연기를 잘 할 수는 있지만 덜어내는 연기를 하기는 어렵다는 얘기, 현장에서는 내가 성취하고자하는 바와 사람들에게 밀어붙일 수 있는 사이의 긴장이 있고 그걸 잘 풀어내야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얘기까지.
인터뷰집이 간혹 산으로 가거나 인터뷰어가 인터뷰하는 부분에 문외한이거나 별로 연관성을 갖지 못해 겉도는 얘기가 나오는 경우가 있다. 슬슬 지루해진다. 일단 인터뷰이가 같잖게 인터뷰어를 은근히 무시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자신도 잘 모르는 얘기들을 횡설수설하는 경우는 더더욱. 최근에 읽었던 몇몇 인터뷰집은 그런 면에서 꽝이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인터뷰어가 자신이 잘 아는 부분에 대해 장광설을 늘어놓는 것도 별로. 그런 면에서 조민준씨는 현명하고 똑부러지게 인터뷰를 한다. 오랫동안 시민 비평가와 칼럼리스트로 활동한 경력이 인터뷰에 도움이 됐다. 군더더기 없고 핵심을 짚는 인터뷰어 덕분에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이 커졌다.
* 인터뷰집은 아닌데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나도 혹시 제주? 하는 사람에게는 적극 추천하며 그렇지 않는 사람이 읽어도 무방하다. 처음에 사회적 관계망이 대단한 사람만 제주도에 내려갈 수 있나 염려되었지만 읽다보니 가족끼리 생활터전을 꾸려나가는 사람도 상관없는거였다. 금전적으로 성공한 사람만 나오는줄 알았는데 현명하게 사는 사람들이 나온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의 언어와 삶이 '제주이민' 아래 모아진다.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엮어내는 저자 기락의 솜씨도 남다르다. 억지로 문장을 만들거나 애써 극적인 장치 만든 기색 하나 없으니 재미있게 읽힌다. 막연하게 제주이민과 여행을 생각하다 제주는 작으니까 저끝에서 여기까지 자전거 타고 다녀도 되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제주의 긴축 끝점을 네이버 길찾기로 해봤더니 차로만 5시간 넘게 걸린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까. 제주도가 군산처럼 자전거 하나로 다 다닐 수 있는 조그만 섬으로 알았던 나는 이 나이 먹도록 뭘 한걸까. 그거야 나도 모르지.
아무튼 이 책을 소개해주신 치니님 고맙습니다. (급마무리)
* 여섯시에 일을 마치고 돌봄교실이 끝나는 아이들과 집으로 온다. 한숨 돌리기도 전에 저녁 준비를 하고 밥을 먹고 식탁을 치우고 설겆이를 한다. 아이들 숙제를 봐주고 청소를 하고 간혹 빨래도 한다. 퇴근하고 혼자여서 심심하다고 징징대던 아치는 요새 풀가동되고 있다. 옥찌들과 함께여서 좋지만 가끔은 a랑 b도 같이 했으면, 퇴근 후에 뭘 배우러다닌다던가 하는 호사를 누릴 때 누군가 아이들과 함께였으면, 갑자기 늦게까지 일하게 될 때 007작전을 짜느라 머리가 하얘지지 않았으면, 아이들에게 여유를 갖고 충분한 관심과 사랑을 줬으면 하는 맘이 없는 것도 아니다. 아이들이 어렸다면 더했을 것이다.
이모된 주제에 엄마인척하는거 맞지만 정말 엄마라면 어떻게 감당해야하나 답이 안 나올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없는 엄마들. 가장 손쉬운 방법은 그녀들이 아이를 낳고 직장을 그만두는 것을 '선택'으로 보는 시각. 하지만 돈을 버는 것만큼이나 자신이 하는 일에 만족하는 여성들이 육아와 직장생활 둘을 병행할 수 없을 때 어렵게 내리는 '선택'이 정말 그녀들 맘 속에서만 일어나는 일인 것마냥 치부하면 안 된다. 출산 거부가 왜 일어나는지, 보조금으로만으로는 왜 육아와 직장생활을 같이 할 수 없는지 여성들의 입장에 서봐야 한다.
인터뷰 중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건 엄기호 방식이다. 직접 사람들을 만나 자기 식으로 재단해서 속단하지 않고 끊임없이 깨닫고 자기 역시 공부하며 여전히 진행중인 질문을 던지는 것 말이다. 육아전쟁에선 비교적 평이한 결론을 담고 있다. 가사를 돕지 않는 남편, 고용주의 육아를 바라보는 편견보다 더 바뀌어야하는건 국가의 정책이라고 말이다. 책에선 미국의 엄마들을 인터뷰하며 그들이 어떻게 육아와 직장 중에서 선택해야만 했는지, 유럽의 육아 친화적 정책이 엄마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알아본다. 아울러 육아의 모든 책임을 엄마에게 묻는 미국의 방식이 개선되어야할 것도 주문한다. 미국의 무관심한 육아 정책과 별반 다르지 않는 우리나라에서도 아직 갈길이 멀다. 할머니, 할아버지, 아는 사람의 보모화로 겨우 지탱되는 지금의 시스템은 분명 바뀌어야 한다.
저출산을 여성의 이기심이라고 말하는 것만큼 뻔해서 뻔뻔하고 파렴치한 주장은 없을 것이다. 저출산은 왜 여자들이 출산파업을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자세히 살펴보고 정책을 세우지 않은채 예측 가능한 일반론에만 기대는 실무자의 불성실함에 가장 큰 원인이 있다. 결국 가장 잘 먹히는 당사자 비난으로 손쉽게 면피하려는 것이다. 어제 음캠에서 임진모가 말한 것처럼 고시원 월세를 내야하는 처지에서 창의성이니 젊은이의 패기를 보여달라고 주문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닐까.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갑자기 격양됐지. 혹시 격양아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