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때문에 일주일에 한번 밖에 옥찌들을 못본다. 옥찌들은 잔소리쟁이 이모가 없으니 신나겠지만 엄마랑 동생은 옥찌들이 말을 안 듣는다며 난리다. 며칠 전 집에 갔을 때였다. 짐을 풀기도 전에 엄마가 옥찌들의 죄상(?)을 털어놓았다. 동생은 옥찌들이 늦게까지 논다며, 나쁜 말을 한다며 고해 바쳤다. 그래서였을까. 잘 지냈냐는 말 한마디 없이 옷 정리 잘 해놓으라고, 이를 제대로 닦으라고, 그림 일기 안 쓴거 쓰라며 옥찌에게 잔소리만 했다.

 다른 엄마들은 아이들 끼고선 공부 시키고, 지적인 자극인가 뭔가 준다는데 애들을 너무 놀게 하는건 아닐까. 자기가 해야할 일 하나 제대로 안 하면서 뭘 하겠다는건지. 그런데 이건 내가 늘 나 자신에게 했던 말 아닌가. 결국 나는 나란 거울을 통해 아이들을 보는데 내가 옥찌들보다 어질렀으면 더 어질렀지 깔끔한 편은 아닌데다 나 역시 내 일 하나 제대로 못하는데 고작 8살짜리 꼬마에게 책임감을 가지라는 꼴이었다.

 옥찌는 처음 몇 번 살갑게 굴더니 잔소리에 지쳤는지 금세 인상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그게 또 마뜩치 않다고, 왜 인상쓰냐고, 인상쓰다가 우는거냐고 몰아세웠다. 울음이 많은 지희가 나약한건 아닐까, 우는 것으로 문제를 쉽게 해결하는건 아닐까.(아이를 성인 대하듯이 하고 있다.) 

 그러다 울음을 참아서 목 언저리가 너무 아프다는 옥찌를 보고서야 지금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오랜만에 이모 봐서 반가웠는데 이모가 잔소리만 했네.' 어쩌고 저쩌고 '이제 이모 안 와야겠다'에서 더 소리내어 우는 지희를 어쩌지 못하고 꼭 껴안아줬다. 품 안에 꼭 들어온 몸이 많이 야위웠다. 봐서 좋지만, 잔소리만 하는 이모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울기만 하는 우리 지희. 지희 기분을 풀어준다며 우스꽝스러운 사람들 얘기도 해주고, 내가 요새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지도 얘기해줬다. 그래도 힝힝하길래 내 방으로 데려가 촛불을 켜놓고, 꼬마 니콜라를 읽어줬다. 이름도 어려운 녀석들이 나와서 카우보이 놀이를 하는걸 열심히 읽다보니 지희의 잠자는 숨소리가 들렸다. 


 큰 이모, 엄마에게 내일 간다는걸 들었어요.
신종플류가 아직도 유행이래. 그래서 손 깨끗이 씻어야되. 나도 이모에게 전화도 하고 동생과 사이좋게 놀게. 
3년 동안 동생과 사이좋게 못놀았지만 사이좋게 놀게. oo에 도착하면 전화해야돼. 그리고 사랑해. 

 이모께, 지희 올림

 이 나이 먹도록 잘하는거, 잘한거 뭐 하나 있었을까 싶었는데, 옥찌 이모된거 하나는 참 잘 한 것 같다. 그럼 잘 해야할텐데 그게 맘처럼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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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0-10-19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효, 자식 키우는 마음이 바로 그런거라니까요, 마지막 두줄이요.
오랜만에 지희 소식 반가와요. 그런데 지민이는요? 지민이 얘기도 곧 올려주세요 (이거 완전 명령조네요 ^^).

Arch 2010-10-20 10:58   좋아요 0 | URL
그런가요? ^^ 지민이, 지민이... 그러니까요. 지민이 얘기도 해야하는데, 우선 우리 둘 관계 회복을 좀 하고 해야할 것 같아요.

순오기 2010-10-20 0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이모만큼 만만하고 좋은 사람이 있을까요?
어쩌면 엄마보다 더 좋은 사람이 이모일거라고 생각해요~~~~ 옥찌 이모된 거 정말 잘한 일 맞아요!^^

Arch 2010-10-20 11:01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만만한 이모가 돼야하는데 이건 뭐, 꼬장꼬장한 이모라. 잘한 일 맞긴 하는데...

쟈니 2010-10-26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너무 귀엽군요.. 저도 조카가 한 명 있는데, 아직 아기라서 말은 못해요. 그 녀석에게서 '이모' 소리 들으면 아마도, 기분이 날아가겠죠? 귀여운 조카 소식 또 기다릴께요~

Arch 2010-10-26 17:45   좋아요 0 | URL
히~ 쟈니님이 응원해주시니 힘이 나는데요. 조카가 얼른 커서 쟈니님한테 '이모'라고 했음 좋겠어요.
 

 * 아침에 아빠랑 밥을 챙겨먹고 재방송 되는 로드 넘버 원을 봤다. 소지섭이랑 김하늘, 연기 잘하는 윤계상 나오는 드라마 정도만 알고 있지 따로 재미있어서 챙겨볼 정도는 아니었다. 나로 말하자면 처음으로 보는거였는데 아빠는 김탁구 때문에 못봐서 늘 아쉬웠던 드라마였나보다. 로드 넘버 원이란 다리에서 헤어진 두 사람이 만나는 장면을 끝으로 드라마는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회환과 아쉬움을 드라마 문법으로 풀어내는건 좀 지루했고, 김하늘의 손녀라며 나온 김하늘은 좀 낯뜨거웠다. 혼자 꽁당거리며 마늘을 까며 볼만한 드라마라던가, 빨래라도 개야겠다며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데 아빠가 울고 계셨다.
 그렇게 만나고 싶다는, 너무 그리워하고 한 맺힐 정도로 애닮았던 두 사람을 보면서 아빠가 우신다. 드라마를 꾸준히 챙겨보지 않으셨고, 그저 어떤 만남을 음악과 화면으로 과장한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빠가 우신다. 
  아빤, 드라마를 보면서 인물들과 대화를 나눈다. 드라마 보면서 화내고, 웃고, 한마디 보태신다. 한마디 보태는 엄마 옆구리를 쿡쿡 찌르고, 어디서 생각해냈는지 모를 재미있는 얘기를 하신다. 그리고 내 앞에선 한번도 보인적 없는 눈물도 드라마를 볼 때면 무척 헤프다. 아빠가 지금이라도 눈물이 헤퍼져서 다행이다.

 * 아빠가 청소를 하신다. 나가서 걸레라도 빠는게 딸 된 도리겠으나 페이퍼질을 하는 중이라 짬이 안 났다. 물론 같이 해도 덜렁거리는 꼬라지를 보면 부아를 내시니 안 도와드리는게 서로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도 좋다. 방바닥이 고슬고슬하다. 냉장고에는 포스티잇으로 -살림의 여왕만 한다는- 불투명 반찬통의 내용물을 적어놓으셨다. 씽크대는 물기 하나 없이 닦아져 있고, 그릇들은 원래 자기들이 이렇게 반짝이는 애들이라며 콧방귀질이다. 뭐 하나 흠없이 완벽하게 해놓고 아빠는 샤워를 하러 욕실로 들어가셨다.
                                                                                                                                                                                                                                                                                                                                                 
 * 점심은 내가 하기로 했다. 표고 버섯, 다시마, 고추, 멸치, 새우, 마늘을 우려서 다싯물을 만들고, 호박과 파를 넣어 잔치국수를 끓였다. 맛이 어떠냐고 물었더니, 싱겁다고 하신다. '아빠, 국물도 쭉 들이켜야 시원해'라고 하자, 핏하고 웃는다. 마지막에 무척 요란스럽게 국물을 들이키시길래, 평소에 소리내서 밥 먹는걸 딱 질색하는 당신께서 어쩐 일이냐고 물었더니
 이래야 맛있어 보인다고 하셨다.

 * 그리곤 낮잠 시간. 텔레비전을 켜놓고 채널을 이리 저리 돌리다 주무신다.  

 * 낮잠을 달게 주무신 아빠는 지희를 데리고 치과에 갔다오셨다. 병원에 다녀와선 지희가 어어하고 울었다고, 바보라며 약올리기 시작했다. 장난으로 그러는건데 지희가 울 기미를 보이자 어어 하면서 달래신다. 당신께선 8살 때 사정없이 이를 뺐다며 그래도 눈물 한방울 안 흘렸다고, 그땐 다 그랬다고 말씀을 하신다. 여덟 살의 아빠는 상상이 안 된다.

* "학교 끝나고 집에 가잖아. 집으로 오면서 나무에 매달린 벌통을 건드리고 냅다 뛰는거야. 그럼 뒤에 오는 애들은 벌에 쏘이고 난리가 나는거지"
"그래서?"
"다음부턴 내가 뛰기만 하면 뒤에서 다들 산으로 강으로 도망치기 바빴지."

*  꼭 챙기는 여섯시 내 고향을 보시면서는 김밥 아줌마 손을 보더니 (더러워서) 김밥 못먹겠다고 말을 보태셨다.

* 낮에 못받은 등기를 저녁에서야 받아왔는데 아빠 편지였다.

고향 형님 누구님에게 

시원한 자은 저수지가 그립고 봉두산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풀지게지고 내려왔던 방성쟁이가 눈에 선~합니다. 그동안 안녕하셨습니다? 

난 경찰관 정년 퇴직 후 연금 수급자로 방송대학생으로 남자의 후반생을 보내고 있습니다. 인사가 늦었으나 형과의 추억을 회상하며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마을 친구들과 술 먹고 사고(?)친 후 봉두산을 넘어 압록강을 건너 군산을 가다가 도중의 공사판에서 보름 정도 일하다 난 귀가하였던 일등 등...... 지난 과거가 아름다운 추억으로 정리될 때 우리의 인생도 즐겁지 않겠습니까? 가족과 형제들에게도 안부를 전합니다. 

 악수하고 소주라도 한잔하며 고향 이야기를 하고 싶으나 쉽지 않아 성의를 보내오니 형님 모시고 음료수라도 한잔하시기 바랍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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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10-10-11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힝 요즘은 어째 아빠 얘기를 할 때면 목이 메이는 거 있죠. 정작 전화 한 통 안드리면서 말이죠.
이 글의 아빠의 모습에 우리 아빠의 모습이 겹쳐져서 또 주책맞게 눈가가 촉촉. ㅎㅎㅎ
지금이 새벽2시고 나는 미친듯이 두들기는 하드락을 들으며 마음을 진정시키고 있는 와중이라 그런가봐요.

Arch 2010-10-11 21:00   좋아요 0 | URL
뽀, 그런가봐요. 아빠들은 따로 이렇게 하자며 입을 맞춘 것도 아닌데 서로 조금씩 닮은 것 같아요.

류승범은 일렉트로니카를 듣는데요. 줄듯 안 줄듯, 클라이맥스 없는 그 음악이 좋대요. 뽀는 하드락을 듣는구나.
 


 나에게 타인은 옆자리에서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전화통화 생중계를 하는 사람이며 무관심과 권태에 찌든 얼굴로 멍 때리는 기둥이며, 용기라곤 주정부릴 때 슬그머니 고개를 드는 게 다인 소시민일 뿐이었다. 타인이 볼 때 나도 별 다를 게 없을 것이다.

 버스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차에 타기 전에 화장실을 들러야 맘이 편해 터미널 옆 공중화장실로 갔다. 짙은 초록색 짧은 미니스커트에 킬 힐을 신은 여자가 화장실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옆 칸이 비어 있길래 그녀에게 사람이 있냐고 물었다. 여자는 있다, 없다란 말 대신 상태가 안 좋다고 했다. 물 내려서 되는 정도면 기다리는 것보다 낫겠다 싶어 문을 열었다. 그런데 이건 뭐, 변에 대한 철학적인 고찰을 통해 현대 사회에서 일어나는 사람들의 소외와 핍진한 삶을 묘사한 거라고 헐렁하게 지껄여도 좋을 정도로, 화장실은 굉장히 역겨웠다. 똥 씹은 얼굴로 화장실 칸막이에서 나왔다. 초록 스커트의 그녀는 나를 보더니 자기 차례를 양보했다. '거봐라, 내가 뭐랬니.'란 표정이 아니었다. 혹시 초록 스커트가 한 짓이 아닐까란 생각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사심 없는 친절이 고마웠다. 내가 표정과 온 몸으로 자리를 양보 안 하면 견딜 수 없다는 무언의 압박을 줬다면 미안한 일이지만.


 월요일마다 듣는 수업 사이에 저녁을 먹는 시간이 있다. 보통은 눈 두는 곳마다 하나씩 있는 콩나물국밥을 먹는데 그 날은 좀 다른 것이 먹고 싶었다. 느끼하고, 포만감이 느껴지는 음식, 몸에 해롭지만 몸에 좋은 음식으론 도달할 수 없는 좀 해로운 맛을 가진 음식.

 주위를 둘러보다 근처에 예쁘장한 총각이 하는 튀김집이 눈에 띄었다. 저녁시간이어선지 가게는 붐볐다. 총각은 예쁘장한 얼굴을 피로나 초조로 찡그리는 법 없이 부지런히 튀김을 튀기고 주먹밥을 만들고 있었다. 두 명의 여자가 들어왔고, TV의 6시 내 고향은 분식집과 어울린 않는단 생각이 드는 찰나, 여자가 내게 말을 걸었다.

- 영화제 보러 혼자 오신거에요?

 뭐지? 전도하는 사람인가. 도를 아십니까는 아닌 것 같고. 뭐지?

- 영화제는 아니고 스텝 수업이 있어서 전주에 왔어요.

 우리는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 그녀는 자꾸 의심 가는 말을 했다. '왜 그렇게 예쁘게 말해요, 동안이시다.' 그런 말을 쑥쓰러우니까 나중에 서로 농담을 주고받을 수 있을 때 하는건 어떻냐는 제안을 해봤고, 서로가 시킨 메뉴를 나눠먹기도 했다. 어떻게 말을 걸게 됐냐고 물었더니 그녀는 '호기심이 많아서 말을 걸게 되더라구요.'란 대답을 했다. 동네 꼬마들에게 장난처럼 인사를 건네고 웃어보이는 것 말고는 어른에게 말을 걸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궁금했었다. 그녀 덕분에 '그냥' 말을 걸어보면 된다는걸 알았다.

 한대수 씨가 뉴욕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듯이, 안녕이란 말로 시작하면 된다는걸.

 버스가 잠시 서 있는 동안, 그는 약봉지에서 약을 꺼내 입에 털어 넣었다. 버스 노선을 알려주고, 운전을 하고, 요금을 받는 사람이 아니었다. 아프면 약을 먹고, 기분 좋을 때는 웃기도 하는, 타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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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08-20 1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그 여자분도 대단한데요. 어떻게 말을 걸 수 있지? 저는 못할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만약 누군가 말을 걸었다면 그렇게 기분 좋게 대답해주지도 못했을 것 같구요.

타인에게 말걸기는 저에게는 정말 쉽지 않아요.

Arch 2010-08-21 00:22   좋아요 0 | URL
우리 다락방은 새침한 서울 여자라 그래요. 저는 동네 꼬마들이 적선하듯 말 걸어주는 것도 재미있고 그렇거든요. 그렇게 말 거는게 서재에선 왜 어려운지 모르겠어요.

2010-08-21 00: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21 11: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푸른바다 2010-08-22 0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권태에 찌든 얼굴로 멍 때리는 기둥"과 "아프면 약을 먹고, 기분 좋을 때는 웃기도 하는, 타인." 말을 나누었을 때와 나누지 않았을 때의 차이가 이렇게 크군요.^^ 정말 좋은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생각하는 것 보다 좋은 사람이 많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합니다. '타인'에게 말을 걸 듯 처음으로 댓글을 남겨봅니다.^^

Arch 2010-08-22 15:33   좋아요 0 | URL
푸른 바다님 고맙습니다 ^^ 저도 그래야하는데 말 걸기가 참 어려워요. 먼저 말을 걸어줘서 고마워요.
 


 아빠는 요즘 독기가 빠져있다. 지민이랑 짖궂은 장난을 치고, 가끔씩 별거 아닌 일로(세탁한 빨래에서 썩은내가 난다던가, 식은 밥을 먹어야 한다던가, 아이스 커피를 마셔야 하는데 얼음을 다 처먹고-주로 내가!- 물을 안 넣어놓는다던가 등등) 성내시는거 빼곤 말이다. 오늘 아침엔 내가 설거지를 하면 다시 해야한다며, 빨래를 건성으로 넌다며 당신께서 그 모든 일을 다  하셨다. 긍정적으로 상황을 받아들인다기보다는 뭐랄까, 체념 내지는 포기하는 것 같아 죄송스러웠다. 물론 감사하기도 했다.

 아빠는 장난을 잘 치시는데 지금이나 예전이나 고지식했던 나에겐 그게 참 곤혹스러웠다. 90점 맞은 시험지를 갖고 가면 아빠는 9개 맞은거 말고 1개 틀린걸 지적하셨다. 지금이야 아빠 사실 기분 좋은데 그렇게 말하는거 아니냐며 생짜를 놓고 웃으며 넘긴다. 이제야 아빠를 좀 이해할 수 있겠다며 이러고 앉았는데 막내랑 옥찌 얘기는 좀 달랐다.

 막내는 아빠가 장난치고 싶어서 그랬다는걸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알았댄다. 막내가 아빠에게 불만이었던건 큰 딸만 챙기는 차별 대우였단다. 차별을 눈 씻고도 느껴본적 없는 나로선 막내가 조목조목 차별 목록을 얘기해도 뭘 그런 것 같고 그러냐고 얼버무릴 수 밖에 없었다. 의식을 못할 수 밖에.

 언젠가 옥찌가 받아쓰기 시험지를 갖고 왔는데 아빠가 나한테 그랬던 것처럼 한 개 틀린거 갖고 뭐라고 한 적이 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우리 아빠도 참)옥찌에게 가만히 다가가 할아버지가 저러시는거 서운하지 않냐고 물었다. 옥찌는 뭐 그런 말이 다 있냐는 듯한 표정으로

- 할아버지 장난치는 거잖아.

한다. 나만 몰랐다. 나만 빼고 다 알았다. 
  
 일이 없을 때면 하루 종일 텔레비전을 보시는 아빠를 보면 답답할 때가 많았다. 별거 아닌 일에 화내시고, 손톱만한 가장의 권위를 내세우려고 하실 때면 그래선 안 되겠지만 한심하기도 했다. 누군가의 미욱한 점이 자꾸 눈에 거슬리는 건 결국 그 모습에서 나를 보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쩌면 장난을 받아들이는데 이토록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나랑 아빠는 어느 면에선 닮았단 생각이 든다. 누군가의 건성에 불같이 화를 내고, 모임에서 주인공이 아니면 다른 역할이라도 하려고 안달을 내고, 잔소리가 심하고, 말투 자체가 화난 사람 같은 것까지 말이다.

 아빠가 널어놓은 빨래에선 새물내가 물씬 난다. 아빠가 해놓은 그릇에선 윤기가 자르르 흐르고, 아빠가 청소한 집은 꼭 딴 집 같다. 늙은 아빠가 일하게 한다고 불만이 가득하지만 일을 하시는 아빠는 참 멋지다. 무슨 일이든 자기 솜씨를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흔한가. 대충이 몸에 익은 나로선 정녕 도달할 수 없는 경지다.

- 아빠, 아빠는 우리 낳았을 때 겁나지 않았어?
- 겁나긴. 지금이야 이렇지, 젊었을 땐 어딜 가든 밥벌이는 했어.
- 난 겁나는데. 내가 능력이 없어서 옥찌들이 자기도 모르게 부족한 것에 익숙해질까봐 겁나는데.

아빠는 아무 말씀도 안 하셨다.

아빠와 나는 같이 늙는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해에 한 살씩 나이를 먹는다.

* 끓인 물을 식히려고 얼음을 쓰다가 얼음 커피 생각이 났다. 
- 아빠, 물 바로 넣어놓을테니까 조금 있다가 커피 드시는건 어때? 
- 알았어.
- 설마 나 욕하는거 아니지?
- 바로 욕은 안 하지.
- 그럼 나중에 한다는 소리야?
- 나중에 해야지. 지금 하면 따지고 물고 늘어지니까.

 어쩌면 손톱만한 가장의 권위 운운은 병풍처럼 있기 싫다는 얘기일지도. 누군가를 챙기는데 서투른건 아빠랑 나랑 다를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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穀雨(곡우) 2010-08-09 15: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빠주의자....마음에 팍 꽂히네요. 새물내가 나고 윤기가 흐르고 정갈한 아빠, 저두 그러고 싶네요..^^

Arch 2010-08-10 10:15   좋아요 0 | URL
곡우님은 벌써 그런 아빠 아니신가요? ^^
 


 여자는 늦었다. 늦은 다음에 훌륭한 강의를 한다면야 시간 개념은 미심쩍지만 강사 능력까지 의심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변명이 아주 길었다. 자신이 왜 늦었는지에서부터 오늘 무슨 일이 있었고, 자기가 해온 일이 어떤거였는지, 나로선 전혀 관심 없는 내용을 오뉴월 엿가락처럼 늘였다.  

 졸음이 왔고, 짜증이 났다. 전날 늦게 잔데다 아침부터 페달질을 했더니 몸도 노곤노곤해지고 아주 죽을 맛이었다. 그런데다 교육법을 알려준다면서 오만가지 주제들을 다 갖고 들어가니 정신도 없었다. 15년 강사 경력이 무색할 정도로 중구난방인 강의를 들으며 갑자기 생각이 나는 뭘 한다고 공부를 하고 있는지에까지 미치자 폴짝 뛸 정도로 답답해졌다.  

 질문할 기회만 노리다 강사가 '남성이 여성보단 인정 욕구가 더 크다'란 말을 홱 낚아챘다. 성별적인 성향은 사람마다 다른데 그렇게 범주화할 수 있냐고. 여자는 차근차근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대체적인 비율상 그렇단 얘기에서 무슨 말 끝엔가 페미니즘은 결국 휴머니즘의 다른 말이란게 자신의 가치관이란 말까지 나왔다. 흥미로웠다. 성별적인 양육 태도에 대한 질문에서도 반대 성의 역할을 경험할 수 있게 하는 방식은 좋다는 얘기도 괜찮았다.  

 나중에 강의 소감을 묻길래 실례를 무릎쓰고 말했다. '처음에 개인적인 얘기를 하고, 평이한 내용만 나와서 지루했다, 교육이론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었는데 그 부분은 지나쳐서 아쉬웠다. 지적 자극을 원했지만 강사가 무슨 얘기를 하려고 한건지는 대충 알았다' 등등의 얘기. 지루했지만 어느 정도 감은 잡았단 소린데 결국 감은커녕 감나무조차 구경하지 못했다는걸 알았다.

 강의할 때마다 사람들이 요구하는 지점은 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감정적으로 소통되길 바라는가하면, 다른 사람은 사고를, 정보를 많이 주는 강의를 원한다. 강의에서 정보를 통해 의식을 바꾸는건 정말 어려운 목표이다. 처음 도입 부분을 길게 잡은건 정서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우선 내가 오픈해야 편안하게 자기 자신을 드러낼 수 있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전달하려는 내용이 아무리 훌륭해도 와닿지 않는다.

 무능한건 나였다. 사람의 감정을 헤아리고, 그 사람의 입장에 서볼 수 없을 정도로 닫힌건 바로 나였다. 닫힌 문 앞에서 아무리 그럴싸한 정보와 자극을 준다고 열릴리 없었다. 
 

 강사의 강의로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인상 깊었던 강의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했다. 전에 성매매와 성폭력에서 느꼈던 지적 자극과는 달랐지만, '행복한 세상, TV 동화' 같은 이야기에 흔들리는게 또 나란 인간이었다. '나, 지금 당신 강의 안 들어요'를 온몸으로 말하던 내가 참 부끄러웠다. 강의가 끝난 후 강사에게 이런 저런 얘기를 하자, 자신도 그렇게 말해줄 수 있어서 고맙다고는 했지만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왜 나는 남들 다 알아서 잘하는건 이렇게 못난 방식으로밖에 표현하지 못하는걸까.

 강의법엔 다른 차원이 있고, 섣부르게 속단하진 말자는 식으로 정리하고 어제 다시 수업에 갔는데 어떤 분이 나를 불러선 참 고마웠단 얘기를 했다. 들어본즉슨, 내가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를 제 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말해줬다는거다. 그 강사가 전 시간에 다른 강의도 했는데 아주 지루해서 폴짝 뛸 뻔했다고, 아무도 듣고 싶지 않은 얘기를 왜 매 시간마다 하며 왜 매 시간마다 늦는지 알 수 없다는 얘기를 덧붙였다.

 결국 난 누군가의 방어 기제에 놀아난걸까. 아니면 내게 말을 건 수업보다 핸드폰 진동에 집중하는 분의 말을 믿어야할까. 그런데 뭐 꼭 둘 중 하나만 믿을 필요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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