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그인 2004-10-19
하치의 마지막 연인 중에서 제가 좋아하는 몇몇 대목입니다. 어설픈 첫 방명록이 되는 군요 :)
- 그때부터 나는 말로 설명하지 않기로 하였다. 하염없이, 하염없이 설명하면 내 혈관으로 흐르는 피까지 알아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나의 안이함은, 실제 나이보다 늙어 보이는 내가 쓸쓸한 내 육체로부터 전 우주를 향하여 발산한 유일한 어린 마음이었다. 그때 나는 비로소 어른으로 홀로서기를 하였고, 내 혼과 사랑에 빠졌다. 단 한 순간이라도 자기 자신과 농밀한 사랑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삶에 대한 증오는 사라진다. 고마워요, 하치, 그렇게 소중한 일을 가르쳐 준 일, 평생 잊지 않을게요. 설사 사이가 나빠져서 말조차 걸지 않게 되더라도, 서로를 미워하게 되더라도, 그 일에 대한 감사는 지우지 않을게요. 열다섯 살 나는 굳게 결심하였다.
- 슬픈 이야기인데, 현실감이 없다. 모두 거짓말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얼토당토않은 둘러대기고, 그저 여기저기 방황하고 싶을 뿐인지도. 얽매이고 싶지 않을 뿐인지도. 그럴 가능성이 많았다. 하지만 설득하여 그의 생각을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런 일을 많이 보아왔다. 설득의 거짓말 월드를. 진짜로 거짓말을 한 것보다 더 나쁜 것은, 자기 생각으로 타인을 움직이려 하는 것이다. 설사 좋은 뜻으로 하는 일이라도, 그리고 아무리 가볍거나 무거워도, 죄임에는 틀림이 없다. 타인의 생각이 어느 틈엔가 자기 사정에 맞게 바뀌도록 압력을 가하다니, 끔찍한 일이다.
- 나리타에서 하치가 날아가고, 한동안은 외로움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한 밤에 눈물로 눈을 떴는데, 하치의 몸이 옆에 없다니. 용납할 수 없었다. 토하리만큼 울기도 하고, 머리를 베개에 부딪치기도 하면서, 오로지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렸다. 눈이 퉁퉁 부어 외출도 못하고, 뭘 봐도 하치 생각만 나서, 지옥이었다. 그때는 하치가 살아 있는데도 만날 수 없음이, 무엇보다 고통스러웠다. 차라리 죽음으로 헤어지는 편이 깨끗이 단념할 수 있다, 고 생각했다. 내일, 인도로 떠나자, 고 한밤에 몇 번이나 다짐하였다. <평생 찾아다니자, 찾으면, 돌아와, 필요하니까 돌아와 달라고 애원하자.> 그러면 마음이 가벼워지고, 고통이 사그라든다. 하지만 아침이 오면, <역시 그만두자>고 생각한다. 그러면 또 아픔이 밀려온다. 참내, 이별이란 이 얼마나 성가신 것인가.
방명록의 압박.... 후훗~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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