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플라시보님을 알게 된 것은 알라딘에 가입한지 며칠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당시 알라딘에는 명예의 전당이란 코너가 있었는데, 거기 가입하는 사람들은 사진도 찍고 인터뷰도 했다. 그 중 한분이 플라시보님이었는데, 그녀가 어떤 인터뷰를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사진 속의 여인이 꽤 미인이었다는 건 지금도 기억난다. 인터넷을 하다가 상대가 여자라는 걸 알았을 때, 나를 비롯한 속물들은 상대의 얼굴을 궁금해한다. 예뻤으면 좋겠다는 게 솔직한 마음. 예쁘다고 해서 뭐 어떻게 해볼 건 아니지만, 이왕이면 예쁘면 좋잖은가. 플라시보님의 글을 읽을 때마다 유난히 가슴이 설렜던 것은 그녀가 ‘검증된 미인’이었기 때문이다 (근데 최근에 머리 자른 모습은 영 아니다. 기다릴 거예요. 머리가 자랄 때까지). 즐찾 숫자가 공개되었던 그당시, 내 즐찾이 한자리 숫자였을 때 그녀의 즐찾은 200명 정도 되었던 것 같은데, 난 그게 다 미모 때문인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다른 인터넷 사이트는 그렇다). 하지만 그건 아니었다. 알라디너는 여자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았고, 그녀가 즐찾이 많은 것은 그녀가 워낙 리뷰를 잘쓰고, 또한 페이퍼도 탁월하게 잘 쓰기 때문이었다.
라면만 먹어야 한다고 엄살을 떨었던 적이 여러번 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난 여전히 구미가 당길 때만 라면을 먹었다. 하지만 그런 나와 달리 플라시보님은 오랜 기간 라면을 드셔야 했으리라. 대학까지 부모님한테 학비와 용돈을 타서 쓰고, 그 뒤에도 엄마 집에 눌러사느라 모자란 거 없이 산 나로서는 집을 나와서 혼자 살면서 대학을 다닌다는 게 경이롭게만 느껴진다. 플라시보님은 고교를 졸업한 이후 집에다 손을 벌려본 적이 없다. 19세의 나이에, 여자 혼자서 공부를 하며 살아간다는 게 이 땅에서 얼마나 어려운지는 상상에 맡긴다. 그녀는 그 정글에서 훌륭하게 살아남았다. 그녀가 원래 사자였는지, 아니면 정글에서 자라며 사자가 된 건지 모르겠지만, 가끔씩 올라오는 그녀의 사진에는 갈기가 보이는 듯하다. 그녀의 글이 치열한 이유는 거기에 있을텐데, 서재질을 통해 서로의 삶을 공유하면서 그녀와 난 좋은 친구가 되었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걸까). 난 그녀를 통해서 “치열하게 산 사람도 저렇게 고울 수 있구나”는 걸 알게 되었고, 그녀는 나로 인해서 “제대로 자란 애들도 별 수 없구나”는 걸 느꼈을 것이다.
시간이 많다고 해서 누구나 페이퍼를 많이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스턴트맨같은 생을 사는 게 아니라면, 대부분의 사람은 그저그런 평범한 삶을 살기 마련이고, 그 속에서 소재를 발굴하는 건 그리 쉽지 않은 얘기다. 지나온 얘기를 한다해도 두세달이면 동이 나지 않는가. 하지만 플라시보님은 그런 면에서 발군이었다. 그녀 주위의 사람들은 그녀의 글로 인해 생생한 캐릭터를 얻었고, 그녀의 서재는 각종 캐릭터들이 뛰노는 무대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그녀가 글만 썼다하면 수십개의 댓글이 달렸다. 그 댓글을 단 사람 중엔 물론 나도 있었다. 최대한 조심스럽게, 몇 번이나 썼다 고쳤다를 반복하면서. 난 그녀의 인기가 부러웠지만, 열심히 한다고 저렇게 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나중에, 그녀가 내 서재에 왕림하셨을 때, 내가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생각해보면 그때의 난 내 서재에 와주시는 한분 한분을 겁나게 소중히 대했던 것 같다. 달린 댓글들을 한큐에 묶어 대꾸를 하는 지금은, 내가 생각해도 너무 거만하다. 하지만 플라시보님은 예나 지금이나 실시간 리플을 달아 주신다. ‘흐흐’ 하고 웃기도 하면서. 그녀가 아직도 서재계의 정상에 군림하는 건 바로 그런 성실함 때문이 아닐까. 참고로 말하면 난 원래 소재를 발굴해 우려먹는 게 특기였다. 그래서 난 플라시보님 역시 그리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결국은 내게 뒤질 것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물론 그건 착각이었고, 그녀는 여전히 엄청난 양의 페이퍼를 쏟아내고 있는 중이다. 과거 회사에서만 인터넷을 할 때도 따라잡기가 버거웠는데, 지금은 집에 인터넷을 깔아 밤낮으로 글쓰기가 가능해졌으니, 난 그저 “졌다”고 항복할 수밖에.
보이는 것이 전부 다인 사람은 많다. 심지어 보이는 것보다 못한 사람도 있다. 나도 그 중 하나인데, 16년 전에 날 사귄 여자애가 한 말이 지금도 생생하다.
“밖에서 보기엔 간이라도 빼줄 것 같았는데, 간은커녕 쓸개도 안주더라”
내가 인터넷에서 구축해가는 이미지는 필경 내가 아닐 것이다. 난 내가 글에 쓰는 것처럼 착하지도, 정의롭지도 못하다. 인터넷의 나는, 모든 사람이 그런 것처럼 자기 자신을 정의 편에 놓고 윤색을 해서 만들어진 결과일 뿐이다.
하지만 플라시보님은 보이는 것 이상의 매력이 있을 것만 같다. 엊그제 읽은 책에 의하면 은희경의 냉소와 위악은 상처받을 게 두려워 도망친 결과라는데, 플라시보님이 보여주는 쿨함은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해 따뜻함을 감추려는 의도적인 노력의 산물이 아닐까. 필경 그녀는 부드럽고 따뜻한 면을 속에 간직한 멋진 여성이리라. 그녀의 글을 읽다보면 그런 걸 많이 느낀다. 돈에 대한 개념이 없는 친구에게 그녀가 베풀어주는 우정이라든지, 동생에 대한 애틋한 정 같은 게 쿨한 글들 사이에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으니 말이다. 그녀의 나이 이제 서른, 공자가 뜻을 세운 바로 그 나이다. 현재 직장을 그만두고 뭔가 엄청난 일을 꾸미고 있는 듯한데, 마오쩌뚱도 평정하지 못한 알라딘을 펜 하나로 평정했듯이, 그녀가 하려는 일이 무엇이든간에 잘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서른살 생일을 축하드립니다 플라시보님.
-친구이자 경쟁자 마태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