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잇 라이프 (보급판 문고본)
앨리스 카이퍼즈 지음, 신현림 옮김 / 까멜레옹(비룡소)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어제 저녁 오랜만에 펑펑 울었다. 참을 이유도 없었고 그러고 싶지도 않아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책장을 넘겼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눈가가 시큰하다. 아주 오랜만에, 책을 읽고 가슴이 울려서 펑펑 울어봤다.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상큼하게 가라앉는 하늘빛 바탕에 아기자기 귀여운 노란빛 그림들이 늘어선 표지는 자세히 보면 하늘빛 포스트잇이 붙어 있기에, 책을 다 읽은 지금 어쩐지 또 새롭다.

 

사실 이 책에 대해서 들은 건 좀 됐지만 별 생각은 없었다. 내용이 뭐다, 라고 들은 건 아니었고 새로나온 책을 체크할 때 독특하다는 사람들의 평을 본 것 뿐이었으니까. 거기다 사람들이 좋다, 좋다 하면 어쩐지 하기 싫어지는 이놈의 청개구리 기질 덕에 아예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런 내가 도서관에서 책을 고르던 중 이 책을 보게된 건, 아마 우연이었을 테지만, 필연이라 생각하고 싶다. 처음에는 흥미였다. 어, 나 이 책 어디서 들어봤어, 라는 아주 가벼운 흥미. 책도 가볍고 작아 책장에서 쏙 빼들어 대뜸 중간을 펼쳤다. 독특하다는 사람들의 평대로 속 안은 보통의 문단 형식이 아니라 노란 포스트잇 위에 적어놓은 짤막한 문장들로 되어 있었다. 한 장 두장, 사실 아무 생각 없이 넘겼다. 너무 일상적이고, 공간에 비해 글이 너무 적었으니까. 그런데.

 

쿠궁. 그냥 갑자기 눈가가 시큰해졌다. 눈물이 나오기 전 급격하게 몰리는 열기에 정신이 없었다. 도서관 같은 공공장소에서 울 수는 없어, 라는 쓰잘데기 없는 오기로 책을 가까스로 덮고 제 자리로 밀어넣었다. (*다 읽은 책은 북카트에 놓아주세요, 라는 말은 무시한 채)원래 목적이었던 책을 빌리고 돌아오는 길에 싱숭생숭 기분이 이상했다. 그냥 뜬금없이 엄마가 보고 싶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엉엉 울고 싶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내 머리 속을 제일 크게 차지하고 있던 생각은, 다음엔 꼭 빌려서 엄마랑 같이 읽어야 겠다, 였다.

 

그래서 빌려온 그 책을, 단숨에 다 읽고는 어린아이처럼 펑펑 울고 말았다. 귀엽지만 인간마음을 (당연히) 모르는 우리집 강아지는 주인이 울고 있는데도 아무것도 모르고 내 발가락을 물고 있었다. 이 책 덕분에 코가 다 헐었다. 나쁜 것, 날 울리다니.

 

내용은 아주아주 간단하다. 주의할 것은 절대 픽션이라는 것. 실화라고 생각하면 더 슬프다. 물론 실화일 수도 있다. 상황이 그만큼 일상적이니까.

부모가 이혼해 산부인과 의사인 엄마와 함께 사는 클레어는 겨우 15살 소녀다. 엄마가 너무 바빠서 제대로 얼굴 맞대고 이야기 할 시간도 없기에 그 둘은 냉장고 위에 포스트잇을 붙여가며 서로에게 말을 전한다. 심부름, 친구 이야기, 아빠 이야기, 토끼 이야기 등등. 바쁜 엄마에게 클레어가 조금 불만이 있던 것 빼고는 아무 이상이 없는 나날이었다. 하지만, 엄마가 덜컥 유방암에 걸렸다. 혼자 사는 엄마로서 딸에게 힘든 짐을 지우고 싶지 않던 엄마는 일상처럼 딸을 대하려고 노력하지만 그게 뜻대로 되지만은 않는다. 클레어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는 엄마가 정말 아픈건지 실감을 하지 못해 자신의 남자친구니 휴가니 하는 불만을 얼굴 보기 힘든 엄마에게 쏟아붓고 만다. 그런 와중에 엄마의 유방암이 특이해 계속 진행되고 클레어는 더이상 현실을 피할 수가 없다. 엄마 또한. 클레어는 엄마에게 기운을 북돋아 주고, 엄마의 일생을 좀 더 이해하고 싶었다. 엄마는 더이상 딸이 어린아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죽음 앞에서 인정해야만 했다.

 

내가 딸이라 아들과 엄마, 아들과 아빠 사이는 잘 모른다. 그래도 딸과 엄마 사이는 좀 안다. 내가 겪고 있으니까. 나는 아빠에게 애교를 부리는 딸은 단연코 아니다. 게다가 아무래도 아빠와는 공통화제가 별로 없어 가끔( 아주 가끔은) 사랑하는 데도 불구하고 시간을 지내기가 불편할 때가 있다. (특히나 아빠와 내가 거의 혼자 놀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하지만 엄마와는 할 얘기가 무궁무진하다. 큰 딸이라 예전에는 해주지 않던 엄마의 힘들었던 시절, 친가, 외가 쪽 이야기, 우리 어렸을 적 이야기, 등등 민감한 이야기부터 가볍게는 연예인 이야기, 드라마 이야기 등. 불행히도 내 성격의 80%는 아빠쪽이라 엄마와 자주 싸우기도 하지만, 그만큼 엄마가 더 가까운 건 사실이다.

이 책에서 아무리 엄마가 바빴어도, 클레어가 엄마에게 느끼는 유대감은 아빠 사이의 유대감과는 또 다를거다. 엄마와 딸 사이니까. 같이 살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만큼 더 슬펐겠지.

 

어쩜 이렇게 이 책은 날 울리는지 모르겠다. 그냥 생각만 해도 찡해져서 뒤죽박죽이 된 채 울상이 되어 버린다. 우리 엄마가 낮잠 자고 있는 이 시간에도.

 

중학교 시절, 우리 가족이 처음으로 길렀던 강아지 하늘이가 죽었을 때 나는 일주일을 울었다. 처음 죽어있는 고 작은 털복숭이 강아지를 봤을 때는 충격으로 울었고, 그 차가워진 몸을 수건에 싸서 묻을 때도 울었고, 돌아오는 길에도 내내 울었다. 저녁 밥상에서도, 방 안에서도, 그 녀석의 물건들이 어느 순간에 튀어나올 때도 울었다. 저녁 밥상 앞에서 울고 있는 내가 엄마는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드러내놓고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우리만큼, 어쩌면 우리보다 더 하늘이를 좋아했던 엄마가 내게 말했다. "누군가가 죽은 뒤 우는 사람은, 그 사람 살아 생전에 잘 해주지 못해 미안해서 우는 거다."라고. 근데 사실이 그랬다. 처음엔 더이상 그 조그만 녀석이 왕왕 대며 짖는 소리도, 부드러운 털뭉치도, 따뜻했던 몸도 더이상 없다고 생각해 눈물이 나왔는데 시간이 지날 수록, 내가 녀석을 예뻐 할 줄만 알고 씻겨주지도 배설물을 치워주지도 않은 그 미안함에, 냄새난다고 놀아주지도 않았던 그 미안함에 울게 되었다. 너무 미안해서 죽을 것만 같았다.

 

고작 1년 지낸 개가 죽어도 그런데, 우리 엄마가 죽는다면... 클레어는 강한거다. 나 같으면 만날 울면서 지낼거야.

 

이 세상의 모든 딸들과 엄마들의 일상에 꼭꼭 필요한 책. 아들들도 보면 좋구요. 단지 남들이 우는 거 보기 싫으면 집에서 혼자 읽을 것!

 

*기억하고 싶은 글귀 (옮겨 쓰며 또 울고....)

-피터와 함께 창밖을 보고 있었어, 클레어. 뜰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느끼면서. 따사로운 햇볕에 눈이 녹기 시작하고 피터의 부드러운 털이 햇살을 가득 머금고 있네. 모든 게 잘될 것 같아. (55)

-엄마, 지난밤에 피곤해 보이더라. 잠잘 가다 느꼈어. 지금보다 더 걱정해야 되나? 이런 건 글로 묻는 게 더 쉽고 편해. 엄마 기분이 어떤지, 치료를 어찌 되는지 물어볼 땐 말야. (84)

-내가 잘못하고 있는 거지. 엄마가 아픈데도 이러다니. 엄마 방사선 치료도 같이 못 가고, 이 세상에 나 혼자 있는 것처럼 이기적으로 굴어서 미안해요. (103)

-엄마는 엄마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말 안 하면서 왜 나는 엄마한테 다 얘기해야 해? (107)

-엄마, 집에 없네. 엄마는 늘 밖에 있는 사람이잖아. 전혀 이상할 건 없지. 안 그래? 냉장고에 붙은 엄마 메모 봤어. 만약 엄마가 있음 직접 말할 텐데. 없으니까 여기다 쓸 수밖에 없잖아!

마이클은 최고야. 재미있고, 똑똑하고, 귀엽고 내가 원할 때 내 곁에 있어 줘. 이건 엄마보다 더 나은 점이야. 아빠보다도. 그리고 엄마도 아빠랑 헤어졌으면서 마이클과의 일에 대해 충고할 입장은 아니라고 봐! (115)

-아빠는 우리가 너무 오래 싸우는 것 같대. 대화가 부족해서 그렇대. 난 엄마를 걱정해야 할지 그냥 내 인생이나 신경 써야 할지 모르겠어. (123)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이런 일들은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는 책은 없구나. 그런 책이 있음 좋겠어.

넌 학교도 다녀야 하고 좋은 친구도 사귀어야 하고 그 외에 보통의 열다섯 살짜리 아이가 할 일들을 해야잖니. 이런 것들이 각각 잘되야, 모든 것이 제대로 돌아갈 수 있어. (124)

-그동안 엄마한테 화내서 미안해. 그 어느 때보다 진심으로 미안해. (125)

-말할 수가 없어, 클레어. 미안하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어. (127)

-병은 나을 수 있어. 엄마를 위해 내가 강해지도록 노력할게. 엄마도 나을 거라는 거 잊지 마. 꼭 그래야 해. 엄만 좋아질 거야. (129)

-네가 몹시 필요할 만큼 엄만 너무 약해졌어. 하지만 나 때문에 네 생활이 흐트러지고 네가 고생하는 건 싫어. 그냥 엄마의 어린 딸로 남길 바란단다. 그래서 알리지 않았어. (132)

-엄마가 내 나이였을 땐 어땠을지 궁금해. 학교에서 우린 친구가 되었을지도 몰라. 우린 틀림없이 친구가 됐을 거야. (135)

-공원을 함께 걷자. 엄마가 좋아하는 분홍색 꽃들도 보고. 그 꽃 이름이 무였더라? 강가에 서서 해가 지는 풍경도 보고. 내가 산책하는 내내 엄마 손을 잡고 있을 거야. 4시에 만날까? (143)

-나는 여자인 엄마를 상상하는 게 어려웠어. 엄마를 여자가 아니라 엄마로만 알았던 거야.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알지? 여자로서의 엄마 얘기를 해 줄래요? (153)

-엄마를 바라볼 때/ 내가 꿈꾸는 여인을 본다/ 강인하고 용기있고/ 아름답고 자유로운/ 엄마, 사랑해 (160)

-의사가 "손가락과 발가락이 모두 다 있네?"라고 한 말이 기억나. 농담이었는데 엄만 농담으로 들리지 않았어. 내겐 기적이었어. (166)

-선물 몽땅 맘에 들어. 그중에 최고의 선물은 엄마야. 바깥에서 보다니. (167)

-때때로 인생이 어렵고, 세상이 힘든 곳이며, 우리 운명은 어쩔 수 없다는 걸 네게 보여 주고 싶지 않았는데.

이건 네 잘못이 아니야, 클레어. 누구의 잘못도 아니야. 가끔 누구 책임도 아닌 일이 일어나기도 해. (171)

-클레어, 오늘 아침 부엌에서 춤추던 네 모습이 떠올라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어. 풀잎 끝이 갈색으로 물들어 가고 불쌍한 피터는 아직도 더위에 헐떡거리는데, 춤추는 너만이 맑고 신선했단다. 사랑해. (183)

-나도 엄마의 아픔을 함께하고 싶어. (187)

-길이 구부러지고 휘어져도

  우리는 함께 있을 거야

  구부러진 인생을 껴안고

  우리는 기댈 거야

  서로에게

  엄마는 나에게

  나는 엄마에게 (196)

-넌 나에게 큰 힘이 되고 있어. 나도 너한테 이렇게 잘해 준 적이 있었던가 싶다.

  나는 좋은 엄마였니? 이건 모든 엄마들이 묻고 싶어도 감히 묻기 힘든 질문이지. 물론 엄마들에겐 물을 기회도 잘 없겠지. (200)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 엄마는 내 엄마잖아. (201)

-엄마는 네가 정말 필요해, 아가. 아무에게도 기댈 수 없던 싱글맘인 내가 너한테 기대는 건 익숙치 않아서 그랬어. 자신을 돌봐 줄 딸이 절실히 필요한 반쪽 여자가 되는 게 쉽지가 않네. (206)

-나는 널 어리고, 맑고, 빛으로 가득 찬 존재로만 끌어안고 있었지. 내가 너에게 몹쓸 짓을 했더구나. 내가 널 어른이 되도록 해 주면 넌 그렇게 될 거야. 그리고 난 그렇게 해야 하고. (2007)

-내가 가질 시간이 이제 없는 것 같아. 아무래도 그 시간들을 낭비하고 중요한 걸 놓친 것만 같구나. 그래도 나에겐 네가 있지.

사랑하는 딸이. 너는 내 삶에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의미와 기쁨을 주었어. (207)

-문득 내가 엄마 인생을 거의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어. 내 나이에는 어땠어? 아빠와 주로 무엇을 얘기했지?

(중략) 이런 모든 질문들이 날 울려요, 엄마. 왠지 모르겠어. 아마도 이런 질문들이 이제 막 알기 시작한 어른들 세상으로 들어가는 문 같기 때문인가 봐. 나 무섭고 싫어. (209)

-부엌에 앉아 사진 자르는 네 모습 영원토록 봤음 좋겠다. (212)

-엄마는 내게 미래와 당당히 맞설 힘을 줬어요.

최악을 준비하며 최선을 희망한다. 엄마, 좋은 생각이죠? (213)

-그리고 난 '더 좋은 엄마'를 바라지 않아요. 나에겐 엄마는 최고의 엄마야. (215)

-미래가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지 모르겠구나. 하지만 넌 괜찮을 거야. 그렇지?

더 이상 멋진 딸은 없단다. (222)

-나에게도 더 멋진 엄마는 없어. (223)

-우리에게 더 많은 시간이 있었으면 좋았을걸. 엄마, 이게 내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이야. 엄마랑 함께한 시간이 더 많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래도 우리가 함께한 시간이 있어서 기뻐. (229)

 

+세상의 모든 딸과 어머니께

+펑펑 울고 싶으신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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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잡학사전 - 영어에 목마른 미드족의 필수품, 미국 드라마
박수진 지음 / 길벗이지톡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제목에서 보다시피 미국드라마 통칭 미드에 관한 책이다. 그렇다고 각종 미드를 정리, 분석해 놓은 책이란 뜻은 아니고.
 

요즘 유행하는 미국드라마를 통해 영어배우기, 정도의 책이라고 볼 수 있다. 볼 수 있다, 라는 애매한 표현을 쓰는 이유는 아무래도 본격적으로 잡아주는 것 보다는 미국 드라마를 보면서 속어로 쓰인 표현들을 모아둔 책이라 미국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흥미를 돋구어 영어에 관심을 가지게 할 순 있어도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영어 배우기>의 정석에 해당하진 않기 때문이다.

 

사실 표지는 굉장히 친근하다. 각종 미드들의 주인공들을 캐리커쳐로 그려놓았는데 난 밑바닥에 보이는 그리썸 반장님이 너무 귀여우셔서 ㅠ (캐릭터 편애중) 일단 유명한 미국 드라마는 그 당시 대박이었든 <프리즌 브레이크>를 포함해 다 모였었고, 혹시 그 드라마를 모르더라도 예문이 적혀 있어서 가볍게~ 즐기면서 읽을 수 있다.

 

내가 제일 좋았던 부분은 CD가 함께 들어 있어서 들을 수 있다는 점이었고, 둘째로 좋았던 건 내가 아는 드라마가 많이 나왔다는 점이었다. Friends는 물론이고 NCIS, Numb3rs, CSI, House 등등.... (취향이 보이고 있다)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만한 드라마이면서 각종 <전문>계 드라마다 보니 생소하고 전문적인, 그러면서도 관용적으로 쓰이는 표현들이 많이 나와서 좋은 예가 많았고, 거기에 미국의 배경문화까지 설명해 놓아서 읽는 즐거움까지 있었으니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사실 미국 드라마 뿐만 아니라 미국 영화에서도 당연한 얘기지만, 미국 내에서 실제로 많이 쓰이는 대사가 많이 나온다. 문제는 그 대사를 우리 나라 사람들은 문화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데에 있다. "토툐, 여기는 이제 캔자스가 아닌가봐." 라는 대사가 과연 무슨 뜻일까. 물론 아시는 분은 이게 <오즈의 마법사>에서 예쁘게 양갈래를 묶고 나왔던 도로시가 애완견 토토에게 말을 걸었던 대사라는 걸 알아차리셨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일상 생활에서 이 대사가 쓰인다면 무슨 말일까. 혹은 hair of the dog이 무슨 뜻일까. 이 책을 보다보면 전-혀 예상치 못했던 관용적 해석이나 역사, 혹은 문화에서 우러나오는 관용적 표현 덕에 졸려울 틈이 없다.

 

당시 꾸역꾸역 노트북에 옷가지, 무거운 책들까지 싸들고 기내로 짐을 들고 갔는데도 이 책을 놓을 수가 없어 손에 들고 들어갔던 기억이 난다. 공항에서 다음 비행기를 기다릴 때도 읽고, 비행기 안에서 혼자 심심할 때도 읽고. 나중에 거기서 나온 드라마를 보다가 생각나면 또 읽고.

여러모로 재미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미드를 좋아하시는 분

+가볍게 읽을 영어관련 책이 필요하신 분

+미드를 볼 때 속어 때문에 궁금한 게 많으셨던 분

+미국 문화에 관심이 있으신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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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형의 Paris Talk - 자클린 오늘은 잠들어라
정재형 지음 / 브이북(바이널)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파리라... 어렸을 적 나에게 '파리'라는 장소는 도시라기보단 밤낮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가로등에 화려한 옷을 입은 예쁜 사람들이 거리를 활보하는, 그런 꿈의 장소였다. 그 이미지는 고등학생이 되어도 변하지 않아 다른 또래 아이들처럼 파리에 대한 반짝이는 환상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 꿈이 깨진 건 고등학교 때의 친구가 돈을 모아 홀로 파리여행을 하고 난 뒤였다. 고등학교 때의 교복과는 확연히 틀린 살랑거리는 치마를 입고 찾아온 친구는 그 대도시가 무려 '더럽다'고 했다. 물론 무척이나 멋진 곳이만 환상을 가지면 실망할 곳이라고. 그렇게 경험자다운 충고를 하며 자랑스럽게 보여준 앨범 안의 파리는 '더럽다'는 말에 꿈이 깨진 환상속의 이미지보다 훨씬 멋진 곳이었다. 차가운 파랑빛이 비치던 외국의 건물들. 이국적인 카페와 벽돌길. 나는 정말 한없이 친구가 부러웠다.

 

정재형의 Paris Talk는 마치 일기장같은 책이다. 딱히 유머스럽다기보다는 정겨운 세련됨이 흐르는 그런 일기장. 책 속의 사진들과 일러스트들은 파리의 모습을 그의 시각에서 보여주는 듯 하다. 솔직히 말해 내가 보고 싶었던 건 '정재형'이라는 사람보다 '파리'라는 도시였다. 반짝거림보다 이국적인 음울함이 사랑스러운. 하지만 책을 덮고나면 파리라는 도시와 한 발 가까워짐을 느낌과 동시에 정재형이라는 사람에게도 다가섰다는 걸 느낀다.

 

위의 표지는 상당히 밝게 나와있지만 실제론 조금 더 커핏빛으로 띠지 속 샌드위치와 잘 어울려 아주 분위기가 있는 책이다. 제목의 폰트도 무척 마음에 들어서 받고나서 자랑하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속안의 사진들과 일러스트들은 전부 컬러라 알록달록 가라앉은 화려함을 뽐내 맘에 들었다.

 

내가 책을 읽고 동질감을 느꼈다면 너무 오만한걸까. 하지만 외국에 나가서 생활하는 입장은 여기서 거기, 결국은 통하게 되어 있는 것 같다. 내가 어학연수로 미국에 나가있던 그 나날들이 생각나서 나도 모르게 맞아맞아, 라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으니까. 물론 정재형이라는 사람과 나는 다른 사람이라 표현의 방법이 전혀 달랐지만. 예술을 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매우 감각적이고 아슬아슬하다. 난 물고기 이야기에서 조금 놀라 멍해지기도 하고, 연예계라면 거의 3살난 아이 수준과 다름 없는 내가 아는 몇몇 연예인들의 이름이 나와 어리둥절 몰입해 보기도 했다. 읽으면서 느껴지는 건, 화려한 낭만과 패션의 도시가 아니라 생활지로서의 파리, 그리하여 더 친근한 도시였다.

 

언젠가 이 책의 일러스트와 함께 있는 지도를 참고해 파리로 가 나만의 파리여행을 마음껏 즐겨보고 싶다.

 

+프랑스 파리가 너무 좋으신 분

+정재형씨를 좋아하시는 분

+파리로 가는 여행에서 가볍게 읽을 걸 원하시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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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니 비치 - 앞서가는 그녀들의 발칙한 라이프스타일!
로리 프리드먼.킴 바누인 지음, 최수희 옮김 / 밀리언하우스 / 2008년 4월
평점 :
품절



완벽한 S라인의 소유자가 되는 것, 모든 여자들의 꿈이 아닐까 싶다.

단 한 순간도 '날씬해' 본 역사가 없는 나로서는 인터파크 북피니언 이벤트에서 당첨된

Skinny Bitch는 내가 전혀 모르던 세계의 입구 같았다.

 

내가 처음 책을 받아봤을 때, 나는 참 민구하게도 막 음식점에서 시킨 돈까스를 먹고 있었다. 바삭하게 튀겨진 돈까스를 우적우적 씹으면서 책 표지를 보니 이번엔 '참 나도♡'라고 무난히 넘길 수 없는, 가슴의 쓰라림이 밀려들어왔다. 물론 돈까스는 다 먹었지만서도.

일단 맛나게 돈까스를 먹고 손을 씻은 뒤 정식으로 책을 집어들어 읽기 시작하면서, 내 안색은 급속도로 어두워져 갔다.

뭐야...난 인생을 참으로도 비뚤게 살아왔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기 때문이었지만 첫 장을 넘기니 훨씬 마음이 편해졌다. 미친 듯 먹어댔던 초콜릿과 사탕의 기억에서 벗어나자 새로운 각오와 호기심이 동시에 들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의 나는 조금 바빴다.

"엄마! 우유 안에 극소량의 모르핀이 들어있대요!"

"엄마! 우유가 몸에 나쁘대요!"

새롭게 알아낸 사실을 엄마에게도 나누어 주고 싶어서. 혹은 우유를 죽어라 먹지 않던 날 칭찬해 달라고.

 

본격적인 리뷰를 하자면, 우선 책 표지부터. 늘씬한 그림자 여인이 멋지게 머리를 휘날리는 표지와 섹시한 보라색에 '빅토리아 베컴, 제시카 알바'라고 쓰인 띠지는 확실히 눈에 확 들어온다. 거기다 Skinny Bitch라는 제목은 좀 강렬하면서도 호기심이 일어난다. (Bitch는 속어라 보통 '나쁜 년'이라는 뜻으로 통하니까;)

 

스키니 비치는 확실히 말해 '다이어트 방법' 책이 아니라 '라이프스타일'에 관한 책이다. 잘못 알려진 다이어트 상식을 바로 고쳐주고 여러가지 살 뺄 수 있는 팁을 제시해 주긴 하지만 그건 정형화된 방법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말 그대로 조언에 가깝다. 문체는 소설이 아니기에 묘사적이라기보다는 설명적이지만 읽기 쉽고 이해하기도 쉽도록 쓰여졌다. 하나를 제시할 때에는 그에 대한 반론도 확실히 잡아 제시해 좀 더 내용이 풍부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내가 제일 흥미롭게 봤던 건 <우유>에 관한 부분으로, 야채나 과일 좋은거야 다들 알고 있으니 좀 더 정확한 정보를 얻은 것에 신은 났지만 유제품에 관한 새로운 정보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당장 티비만 틀어도 우유가 몸, 특히 뼈에 좋다는 광고가 흘러나오고 어렸을 적부터 들어 이제는 진리나 다름없는 그 상식이 사실이 아니었다니! 쿠궁, 이게 무슨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야. 그럼 이제껏 내가 몸에 좋으라고 꾸역꾸역 학교서 나눠주는 우유를 마셨던 건 뭐가 되는거야. 나는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는 기쁨보다 여태껏 내게 우유마시기를 강요했던 학교에 대한 배신감에 몸을 떨어야만 했다. 그리고 앞으론 불가피한 일이 아니면(학교를 졸업한 내게 더이상 불가피한 일이란 없겠지만!) 우유를 마시지 않겠다 엄마 앞에서 당당히 선언했다.

 

조금 어긋난 방향이지만 (왜냐면 아직 육류보다 채소!란 마음가짐은 아니니까) 스키니 비치가 내게 미친 영향은 크다. 바로 채식주의자가 될 순 없겠지만, 채소를 죽어라 먹지 않는 내가 적어도 샐러드 정도는 먹어야 겠다고 생각한 건 내 평생 처음이었으니까. 이런 식으로 많은 독자들에게 각자 취향에 맞는, 그러면서도 안전한 '날씬한 라이프 스타일'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다이어트를 하실 계획이 있는 분

+혹은 다이어트 하시는 분

+다이어트는 잘 모르지만 건강과 몸매를 둘 다 잡고 싶으신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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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세자의 고백
이덕일 지음 / 휴머니스트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어쩐지 표지가 다르다 했더니 내가 도서관에서 빌린 건(위의 표지) 2004년판이었다... 큰 줄기는 바뀌지 않았을거라 생각하지만서도. )

 

내가 학창시절 제일 싫어한 과목은 수학도 과학도 아닌 사회였다. 그 중, 국사가 제일 싫었다. 매년 되풀이 해 배우지만 억지로 배우려니 머리에 남는 건 하나도 없었다. 워낙 주입식 교육을 싫어하기도 했지만, 내가 사회를, 특히 국사를 제일 싫어한 이유는 와닿지 않기 때문이었다. 수학은 제법 실용적인 일을 예제로 쓰고 있었고, 과학은 뭐 찾아볼 것 없이 실용적이었다. 국어는 워낙 책을 좋아했으니 당연히 좋아했었고. 그 가운데 사회는 내 생활과는 아예 동떨어진 것처럼 보였다.

 

사람들은 과거를 알아야 미래가 보인다, 고 하지만 저렇게 지리멸렬한 과거라면 보기 싫다고 철없게 생각했었던 같다. 하지만 막상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아무도 내게 역사 배울 것을 요구하지 않자 무슨 청개구리 심보인지 역사가 궁금해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역사 뒤의 이야기가. 이 책은 여기저기 기웃거리던 중 발견한, 재밌는 역사책이라고 볼수 있다.

 

이 책의 주인공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도세자다. 나를 기준으로 남들을 평가하는 취미는 없기에 남들이 사도세자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는 몰라도 얄팍한 내 지식보다는 나을거라 생각한다.

 

내가 어렸을 적에 여러가지 고서들이 만화책으로 나온적이 있었다. 나는 그걸로 금오신화니 구운몽, 심지어 한중록까지 읽곤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한중록은 만화조차 재미없었다. 한중록의 화자인 혜경궁 홍씨는 늘상 자신의 지아비가 제정신이 아니라며 한탄만 해댔고 '지아비'인 세자, 즉 사도세자는 정말 꼴사나운 짓만 하고 다녔었다. 영조가 아들을 그렇게 죽인걸 정당화 시킬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 이해는 갔다.

 

그런데, 콰광. 그 한중록이 거짓이라고 한다.

역사는 살아남은 자의 기록이라던 사람들의 말이 맞았다.

지아비가 죽어도 살아남은 혜경궁 홍씨가 작성한 한중록 역시 그 왜곡된 역사서 중 하나였던 것이다.

 

현재 방영되고 있는 (혹은 끝난? 우리 나라 드라마는 잘 안 봐서;) 이산 덕분에 사도세자의 진실이 밝혀지려고 하는 모양이다. 애매한 말을 사용하는 이유는 모든 사람이 이 바뀐 정보를 받아 들였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니 양해를.

 

저자 이덕일 씨에 의하면 '피눈물의 기록', 읍혈록이라고도 불리는 한중록의 원제는 '한가한 날의 기록'이란 뜻의 한중록(한자가 다름) 이었다고 한다.

거기다 혜경궁 홍씨가 한중록을 작성한 것은 사도세자의 억울한 죽음 즉시가 아니라 한참이 지난 후, 자신의 집안을 포장하기 위해서였다. 혜경궁 홍씨는 홍씨 집안이 사도세자를 궁지를 몰아넣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고,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가 그걸 이유로 홍씨 집안을 처단한 뒤 그걸 숨기기 위해, 거짓 역사서를 제작한 것이다. 지아비를 배신하고도 가족을 위해서.

 

영조가 탕평책을 시도하긴 했지만 권력적 유착에 의해 영조는 노론의 임금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왕이 될 수 없었던 영조가 왕이 된 뒷 배경에 노론이 버티고 서 있었으니까. 그래서 노론은 영조의 약점이었다. 거기에 경종의 독살설까지. 그런 영조를 통해 조정을 휘둘러온 노론은 세자가 소론의 편이라는 걸 알고 초조해졌다. 앞 날을 위해 제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도세자의 가장 큰 불행은 주위의 모든 사람이 노론이었다는 것이다. 아버지부터 할머니, 심지어는 아내까지. 아버지로부터도 목숨의 위협을 느낀 사도세자는 살기위한, 소위 역모를 꾸미지만 그게 덜미가 되어 자신의 목을 졸랐다.

이 책은 영조실록과 다른 고서들을 비교해가며 그 당시의 상황을 최대한 가깝게 재연했다. 특히 한중록의 왜곡된 구절을 하나하나 집어가며 반박한 게 인상깊다.

 

나는 딱히 여기서 복잡한 역사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왜냐하면 나도 아직 잘 모르니까.

내가 이 책을 본 이유는 단지 어릴 적부터 사도세자가 참 불쌍했기 때문이었다. 왕이 될 수도 있었던 사람이 뒤주 속에서 처참하게 죽다니. 아들이 울부짖는데도 위로 해 줄 수 없다니. 어찌 불쌍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래서 읽는 동안 더 화가 치밀었다. 노론이니 소론이니 당을 나눠서 자기네들 권력 따먹기에 여념이 없는 바보같은 정신머리에 너무너무 화가 났다. 그리고 권력이란 게 참 무서웠다. 아들도 죽이고 다른 이들도 죽이고. 그 시절, 아니 어쩌면 지금도, 권력 앞에선 남의 목숨은 하찮은 것이었다.

그래서 이해해 버렸다. 과거를 알아야 미래가 보이는 거라고. 다시는 저렇게 권력 앞에서 억울하게 당하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되는 거라고.

 

+사도세자와 정조에 관심이 있으신 분

+이산을 보고 사도세자가 궁금해 지신 분

+한중록의 진실을 알고 싶으신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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