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혁명 - 프랑스 혁명 이전의 금서 베스트 셀러 역사도서관 1
로버트 단턴 지음, 주명철 옮김 / 알마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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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해 저자 로버트 단턴은 "그렇다"고 말합니다. 단턴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갑니다. "그렇다면, 어떤 책이 세상을 바꾸는가?" 우리가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꾸란》《성서》《국부론》《자본론》《상식》《종의 기원》등의 책들을 지목할 것입니다. 그러나 단턴은 좀 독특한 책들을 지목합니다. 시민 혁명들 중에서도 가장 의의가 깊은 것으로 꼽히는, 세계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인 프랑스 혁명의 원동력이 된 책들입니다. 프랑스 사람들은 혁명을 일으키기 전에 어떤 책들을 읽어왔고, 책을 통해 어떻게 변하였는가 하는것이 단턴이 주목하고자 하는 부분입니다. 혁명 이전의 베스트셀러들, 그 책들은 반동적이었고, 반신앙적이었고, 음란한 책들이었습니다.

구텐베르크 인쇄술 이후 프랑스에서도 다양한 책들이 발간되었습니다. 하지만 혁명 이전의 프랑스는 앙시앵 레짐, 구체제라 부르는 왕정하의 전제적 지배체제였기 때문에 교회, 국가, 도덕을 거스르는 책들은 금서목록으로 지정되어 판매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미국 금주법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런 사회적 금기야말로 큰 돈이 되기 때문에 출판사들은 금서들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야한 책을 '빨간책'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당시 금서들은 '철학책'이라는 이름 하에 유통되었습니다. 독자들은 '철학책'을 원했고, '철학책'은 최고의 인기를 누렸습니다. 당시 금서 중에서 메르시에의《2440년》, 레날의《철학적 역사》, 볼테르의《백과사전에 관한 질문》같은 상위 베스트셀러는 실제로 앙시앵 레짐 시대 권력을 가진 모든 사람을 거스르는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음탕하고 추한 어조가 사람의 심령을 허무 방탕하게 하고, 사특하고 요사스러운 내용이 사람의 지혜를 미혹에 빠뜨리며, 황당하고 괴이한 이야기가 사람의 교만한 기질을 고취시키고, 시들고 느른하며 조각조각 부스러지듯 조잡한 문장이 사람의 씩씩한 기운을 녹여내는 저급한 책들은 근본적으로 인간의 말초적 본능을 자극하는 책이면서도 그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성욕을 자극하는 문학은 자유로운 사고와 자유로운 삶을 결합한 자유사상을 고취시켰습니다. 이 사상은 성적 규범만이 아니라 종교적 교리에도 도전했는데, 성교와 광신, 고해실안에서의 부정행위, 가면을 벗은 기독교의 참모습, 남색을 즐기는 성직자들 등을 묘사했습니다.

책을 읽을 여가가 있고 많은 교양을 쌓은, 사대부가 여성의 취향에도 소설은 입맛에 맞았다. 지루함을 달래고 독서를 통해 지식을 넓히며, 유교사회의 속박에 억눌렸던 심사를 풀어내는 데 소설만큼 효과적인 것이 없었던 것이다. -《조선의 베스트셀러》p.19 

《계몽사상가 테레즈》라는 음란소설은, 남녀관계를 적나라하게 묘사함으로써 인간을 운동 중인 물질로 환원시킵니다. 음란함 속에서 귀족이건 평민이건, 남자건 여자건 모든 몸은 궁극적으로 평등해집니다. 로맨틱한 사랑이란 것은 근엄한 사회에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과거의 여성에게 있어서 임신이란 죽음에 이를 정도로 위험한 일이었기 때문에, 성교를 포기할 만큼 임신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계몽사상가 테레즈》는 임신을 제외한 성교, 즉 질외사정이라는 쾌락을 추구하는 성교를 묘사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여성이 자기 쾌락을 추구하고 자기 몸의 주인이 될 수 있는 권리를 옹호하게 됩니다. 이러한 사상은 훗날 생길 여성인권운동보다도 진일보된 사상이었습니다.

25판이나 발간된 최고의 베스트셀러 중 하나였던《2440년》은 2440년의 파리를 배경으로 먼 미래에 이뤄질 이상향을 공상함으로써 현실의 부조리를 비판했습니다. 상상은 현실을 비판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 중에 하나입니다. 메르시에는 주로 종교와 정부를 비판했습니다. 기독교의 주요 제도들인 십일조나 왕정제 등을 먼 미래의 사람들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촌스럽고 비합리적인 제도로 묘사함으로써 당시 앙시앵 레짐이 가지고 있었던 불합리성을 통렬하게 비판합니다.《뒤바리 백작부인에 관한 일화》는《2440년》보다 더 직설적으로 나아갑니다. 창녀인 뒤바리를 통해 권력자들의 행동을 폭로하는 중상비방문인 이 책은 기득권 체제의 상징적인 장치에 들어있는 권력을 공격합니다. 보통사람들은 거물급 인사들이 자신들만의 세상에서 생활하는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상상하기 어렵지만, 뒤바리의 이야기를 통해 왕은 보통사람들이나 다를 바 없는 신세로 전락합니다. 권력자가 여자들을 끼고 놀았다던지 하는 이야기를 통해 권력자의 정통성과 신성성은 해체됩니다. 사람들은 권력자를 더이상 신이나 아버지로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프랑스혁명 이전에 등장한 베스트셀러 금서들의 특징은 우리나라의 책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조선 최초의 금서이자 현재까지 발견된 최초의 한글소설인《설공찬전》은 왕권모독죄와 풍기문란죄에 해당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정치적인 메시지, 유교에 대항하는 불교적 메시지, 여성차별을 비판하는 사회적 메시지, 중국과 천자 중심의 세계관을 비판하는 메시지를 담고있는 이 금서는 프랑스의 금서들과도 차이가 없습니다.《설공찬전》의 인기가 어찌나 높았던지,《조선왕조실록》에서 우려할 정도였습니다. 대중들에게 있어서 금서가 가지는 매력은 상상 이상입니다. 이러한 특징으로 인해 금서는 사회적 여론을 형성하며, 궁극적으로 프랑스 혁명의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프랑스 혁명은 혁명이 일어나기 전에 이미 시작되었고 완성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저급한 책들, 음란하고 비사회적이고 권력자들을 중상비방하는 책들을 통해 이미 체제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린 상태였습니다. 단턴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았던 금서의 역사를 보여주며 독자들에게 새로운 교훈을 선사합니다. 우리사회를 변화시킬 책은, 어쩌면 학자들의 딱딱한 책이 아니라, 새롭고 신선한 에로소설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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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인간은 왜 나쁜 사회를 만드는가 - 철학이 묻고 심리학이 답하는 인간 본성에 대한 진실
로랑 베그 지음, 이세진 옮김 / 부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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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친상간은 악한 행동인가? 아픈 아내를 위해 약을 도둑질한 남편의 행동은 선한가? 이런 질문에 대해 사람들은 선한 행동이다, 혹은 악한 행동이라고 평가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자는 인간의 선의 혹은 악의 그 자체에 대한 의견을 주장하기보다는 선악에 대한 표상과 연관된 우리의 판단이 행동방식에 미치는 사회심리적 영향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어떠한 상황이 사람을 선하다고 평가되는 행동을 하는지, 혹은 악하다고 평가되는 행동을 하는지를 지켜봄으로써, 우리가 원하는 행동을 하도록 도와주는 환경을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사회적 인간이고, 도덕적 인간입니다. 우리는 사회적 인간이기 때문에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 사회에 잘 편입되고 싶은 바람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생각이 도덕적 열망을 불러일으킵니다. 우리는 도덕적 열망을 해소하기 위해 무의식적인 모방 혹은 노력과 희생을 계속합니다. 도덕은 자연적인 문제나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입니다. 사회적인 요소인 규범과 가치의 충돌은 도덕의 문제를 직시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도덕적 행동을 평가할 때 사회적 기대에 얼마나 잘 부응하는지만 볼 때가 많으며 무의식적으로 선과 악을 좋고 나쁨과 동일시하기도 합니다. 저자는 독자로 하여금 깊이 생각해 볼 만한 다양하고 흥미로운 실험과 사례를 보여줍니다. 수많은 심리학, 사회학 실험은 우리에게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던 사실들을 재확인하기도 하며, 평소 지녀온 믿음과 어긋나는 사례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우리는 가면을 쓰는 등의 가벼운 익명성에도 불구하고 폭력성이 증가합니다. 시험을 볼 때 문제를 푸는 방의 조명이 조금만 어두워져도 부정행위가 증가합니다. 자신이 도덕적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탐욕스러운 태도를 보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자신에게 관대한 태도를 보이지만, 권력을 차지한 사람들은 그러한 위선적 태도가 훨씬 두드러집니다. 세상이 남에게 공정하다고 믿는 사람일수록 강간피해자, 아동폭력 피해자, 사기당한 사람 등의 사회적 피해자를 업신여깁니다. 도덕적인 행동을 이끌어내는데 종교 또한 별 효과가 없었는데, 독실한 종교인들은 서면상의 조사에서는 자기가 남들보다 선하다는 것을 드러냈지만 그것을 행동으로 보여주지는 못했습니다.

친절하고 순리대로 움직일 줄 아는 사람들, 사회에 나무랄 데 없이 편입되어 있는 사람일수록 밀그램 모형과 가까운 상황 안에서 불복종을 꺼려했다. 좋은 가장의 자질, 수혈이나 봉사에 적극적인 태도, 높은 학업수준을 지닌 양심적인 사람들이 전기충격을 더 강하게 가한 것이다. - p.261 

그러나 반대로 말하면 우리는 놀라울정도로 작은 변화를 통해서도 도덕적인 행위를 할 수 있습니다. 사람 눈이 그려진 포스터만 붙여놔도 절도행위가 크게 줄어들며, 주변의 거리가 깨끗하면 쓰레기를 잘 버리지 않습니다. 태풍의 이름이 자기 이름과 비슷하기만 해도 태풍 피해자를 돕는 성금을 더 많이 내기도 합니다. 결혼을 하면 범죄위험도가 낮아지고, 다른 사람이 이타적인 행동을 하는것을 보면 자기 자신도 이타적인 행동을 할 확률이 증가합니다. 심지어는 손을 씻은 상태와 씻지 않은 상태의 도덕적 판단이 다르기도 합니다. 손을 씻은 상태에서는 더 도덕적인 판단을 내립니다.

다르다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이 다름에 대한 다수 집단의 반응이죠. -《푸른 눈 갈색 눈》p.211 

저자는 다양한 연구를 바탕으로 인간의 선행과 악행의 동기를 인간의 사회성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어떤 행동이 도덕적으로 악하다고 한다면, 그것은 그 행동 자체가 악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행동이 우리의 사회적 관계에 악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부화뇌동하는 모방기계이며, 다른 사람들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도덕적 인간의 진정한 동기입니다. 이타적 행동이 인간에게 심리적 충족감을 준다는 점에서 도덕의식은 인간 진화의 산물이지만, 그런 도덕의식 때문에 우리는 무고한 피해자를 회피하는 경향이 나타나는가 하면, 집단에 대한 애착 때문에 타 집단에 대한 공격성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도덕은 선과 악의 어머니인 것입니다. 저자는 선과 악이 관점의 차이에서 나온 부실한 근거의 선포에 지나지 않으며 이기적인 의도로 악용될 수 있음을 말합니다. 때문에 우리의 도덕심에 만족하고 자부심을 품기보다는 회의적이고 명철하고 객관적인 자세로 도덕심을 바라볼 때 우리는 더욱 완전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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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베스트셀러 - 조선 후기 세책업의 발달과 소설의 유행,문학 이야기 지식전람회 26
이민희 지음 / 프로네시스(웅진)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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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탕하고 추한 어조가 사람의 심령을 허무 방탕하게 하고, 사특하고 요사스러운 내용이 사람의 지혜를 미혹에 빠뜨리며, 황당하고 괴이한 이야기가 사람의 교만한 기질을 고취시키고, 시들고 느른하며 조각조각 부스러지듯 조잡한 문장이 사람의 씩씩한 기운을 녹여냅니다."

조선 후기 최고의 유학자 중 한 명이었던 정약용이 묘사한 이것은 바로 패관잡서, 요즘말로 하면 소설책이었습니다. 정약용은 사람이 만들어낸 재앙으로 소설책을 으뜸으로 지목하는데, 한번 소설책을 들면 공부하는 학생이나 종묘사직을 책임져야 하는 고위 관료, 집안 살림을 맡은 부녀자들 모두 책읽기를 마칠 때까지 다른 일을 소홀히 하여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소설에 빠져 든 이들은 모두 패가망신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소설책을 모두 모아 불태우고 중국으로부터의 소설 수입을 금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제안은 마치 과거 우리나라에서 만화책을 모아 불태운 일이나 현재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를 외치며 게임, 만화 등의 문화를 탄압하는 것을 보는 것 같습니다.

근세에 안방의 부녀자들이 경쟁하는 것 중에 능히 기록할 만한 것으로 오직 패설이 있는데, 이를 좋아함이 나날이 늘고 달마다 증가하여 그 수가 천백 종에 이르렀다. - p.22 

조선의 유명한 학자 중 한명이었던 정약용이 심각한 어조로 언급할 정도로 조선시대에 소설책은 막강한 파급력을 가져왔습니다. 임진왜란 이후 중국 통속소설이 대량 유입되면서 사람들은 소설의 맛을 알아버렸고, 중국의 소설을 번역한 국문소설, 국문창작소설이 등장하면서 소설의 대중화를 이끌었습니다. 이 책《조선의 베스트셀러》는 이러한 조선의 시대상, 조선시대에 성행했던 출판문화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조선의 출판문화를 이끈 것은 기득권층이 장악하던 점잖고 품격있는 것들이 아니라, 정약용의 표현대로 음탕하고 사특하고 황당하고 괴이한, 상류사회가 멸시하던 천한 문화였습니다. 요즘 말로 표현하면 아마 이런 것이었을 것입니다.

(C01) [笑笑生] 금병매(金甁梅) (번역).zip

조선시대에 소설책이 각광받기 시작한 것은 한문소설이 아닌, 국문소설이 등장하면서부터였습니다. 소설책이 높은 인기를 얻게 되자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게 되었고, 17세기 후반부터 시장경제가 발달하면서 소설을 필사해 대여하는 세책업이 성행했습니다. 세책점에서 사용하는 세책본 고소설은 요즘말로 하면 대여점용 소설 혹은 만화책인데, 이 대여점용 책과 대여점이 조선중기부터 조선말기까지 출판문화의 핵심에 서게 됩니다. 세책본에 대한 고위관료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세책점은 판서, 참판 등 고위층 인사부터 진사, 생원 등 일반인은 물론이고 노비들마저도 애용했습니다.

조선에서 상업적인 목적으로 유통되던 책들은 대여용인 세책본과 개인용인 방각본이 있었습니다. 현재의 대여점과 비교했을때 독특한 점은 현재는 똑같은 책을 대여용으로도 사용하고 개인판매용으로도 사용하는 반면, 조선시대에는 세책본과 방각본의 생김새가 달랐다는 것입니다. 세책본과 방각본의 차이라면, 현대의 책으로 비유하면 세책본은 양장본이고, 방각본은 페이퍼백이었습니다. 대여점 책인 세책본이 더 고급 책이었던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써야 하기 때문에 튼튼해야 했고, 현재의 대여점용 책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빌려간 사람이 낙서하기 등의 행태가 조선시대에도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세책본《금령전》에서는 책에 낙서가 많으니 다시 보수하지 않으면 세책점 주인의 어머니를 어떻게 하겠다는 패드립을 낙서해놓는가 하면, 세책본《김홍전》에서는 단권인 책을 네 권으로 만들어 대여했다며 세책점 주인을 잡놈이라 부르는 낙서도 있었습니다.

세책의 특성상 필사해 만든 책을 많은 사람들이 돌려가며 보아야 했기 때문에 무척 견고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표지를 삼베 같은 것으로 싸서 일반 책에 비해 훨씬 두껍게 만들고, 손이 자주 가는 본문의 경우 찢어지기 쉽기 때문에 배접을 하거나 두꺼운 종이를 사용했다. 또한 책장마다 들기름을 칠해 책장이 해지는 것을 방지하기도 했다. 이렇게 여러 조건을 갖추다보면 다른 것보다 세책본의 단가가 더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세책본은 사대부가 여성을 비롯한 중산 계층 사람들이 즐겨 찾았고, 하층민들은 세책본보다 비교적 값이 저렴한 방각본을 즐겨 찾았다. - p.61 

문화의 발달, 전파과정에서 대여점 문화, 세책업의 등장은 전세계적인 현상이었습니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 등에서도 비슷한 시기에 세책업이 등장했고, 중국의 경우는 한 세기 뒤에 세책업이 융성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직지심체요절이 세계 최초 금속활자본으로 인정받는 등 인쇄술 자체는 뛰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세계적으로 본격적인 인쇄술로 인정받는 것은 그 기술이 어떻게 활용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기술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습니다. 이는 기득권층이 소설과 같은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서브컬처를 무시하고 배척한데 그 원인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소설책을 보고자 하는 열정, 열의는 그런 장애물들을 극복하고 다른나라 부럽지 않는 소설강국을 만들어 냈습니다. 남성 사대부 주도의 유교사회에서 기득권을 가진 자들이 멸시하거나 배척하던 국문소설과 세책 문화는 규방의 여성 독자를 중심으로 문학 창작 및 독서 문화의 고양을 이끌어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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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마르크스 - 그의 생애와 시대
이사야 벌린 지음, 안규남 옮김 / 미다스북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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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를 통틀어 카를 마르크스만큼 강력한 영향을 행사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마르크스의 지적, 도덕적 영향력은 지구 어느곳에나 존재했고, 존재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독재정권 당시 마르크스의 책을 가지고만 있어도 잡아가던 시절이 있었고, 이름이 비슷했단 이유로 막스 베버의 책을 가진 학생들이 잡혀가던 웃지못할 일들도 있었습니다. 마르크스의 이름은 누구나 들어봤을 정도로 유명하지만, 정작 마르크스가 어떤 인물인지를 아는 사람은 유명도에 비하면 많지 않습니다. 세기를 대표하는 자유주의 사상가 이사야 벌린은 이 평전을 통해 마르크스의 생애와 시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르크스가 성장하던 시기는 사회 표면아래 잠복해 있던 경제적, 정치적 문제들이 세계를 짓누르는 상황이었습니다. 프랑스 혁명으로 대표되는 자유, 평등, 박애 사상은 마르크스가 살던 독일에도 강력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마르크스의 청소년기는 프랑스에서 전파된 불온 사상에 대해 기존 체제가 강력하게 탄압하며 억제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마르크스의 아버지는 반유대법 때문에 현 체제의 순응하는 모습을 강하게 보였고, 이런 굴종적인 태도는 소년 마르크스에게 분노의 감정을 가져왔습니다. 마르크스의 아버지는 가톨릭교회와 봉건귀족이라는 구체제가 자연스럽게 무너질 것이며, 모든 인간이 정치적, 법적으로 평등한 사회가 올 것이라고 믿었는데, 이는 프랑스 계몽주의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프랑스 계몽주의 사상가들과 달리 인간의 생활조건이 더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기존 제도들에 의해 수호되던 체제를 타파하는 변혁의 시기에 지적인 성장을 이룬 마르크스는,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학문을 섭렵하며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그는 철저한 이성주의자이자 합리주의자였고 민족주의나 종교적, 인종적 공동체 같은 사회 세력들의 영향력을 싫어했습니다. 마르크스는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해선 현실의 실체를 정확히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는데, 이러한 마르크스 이론의 특징은 대중들이 단순한 감정적 고양 이상의 작업을 가능케 했습니다. 마르크스 이론은 학문으로서의 학설이 아니라 실천과 다를 바 없는 학설이였기 때문에, 그의 주장은 직접적이고 실현 가능한 목표들을 향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이론은 대표적으로 영국 노동자들의 선거권 획득 운동 같은 변화를 이끌어냈습니다.

마르크스의 진정한 가치는 단순한 기본 원리들을 포괄적이면서도 상세하고 현실성 있게 결합한 비범함에 있었습니다. 가장 예쁜 눈, 귀, 코, 입을 각각 모아서 합치면 가장 예쁜 얼굴이 탄생하지는 않는다고 하지만, 마르크스는 가장 예쁜 얼굴을 만들어냈습니다. 당시 이성과 교육의 힘을 강조한 볼테르로 대표되는 계몽주의와 프랑스와 영국의 과학적 경험주의, 과학적 경험주의에 반발해 등장한 독일의 형이상학적 역사주의를 마르크스는 모두 받아들였습니다. 마르크스의 가설들은 독일 관념론과 프랑스 합리주의 및 영국 정치경제학의 독특한 종합을 보여주었는데, 마르크스가 새로운 학설을 확립함으로써 서로 별개의 것으로 여겨졌던 많은 사회현상들을 제대로 통합해서 설명하는 것이 비로소 가능해진 것입니다.

마르크스 이론의 부분적인 내용은 기존의 사상가들이 이미 제창한 것들이었습니다. 생시몽은 경제적 관계의 발전이 역사를 규정하는 결정적인 요소라고 주장했고, 푸리에는 고삐 풀린 자유방임주의 자본주의가 위험하다는 것을 경고했으며, 시스몽디는 자본주의에 국가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마르크스의 역사와 사회에 관한 역사적 유물론 역시 구조의 기본 개념은 헤겔에게서, 동적 원리들은 생시몽에게서, 물질의 우위에 대한 믿음은 포이어바흐에게서, 프롤레타리아에 관한 견해는 프랑스의 공산주의 전통에서 유래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마르크스의 이론은 완전히 독창적이었고, 여러 요소들이 결합되어 있으면서도 절충주의로 흐르지 않고, 대담하면서도 정합적이고 광범위한 영역을 포괄하고 있었습니다.

마르크스는 인간사유의 역사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마르크스는 경제학, 사회과학, 역사학, 정치학, 철학, 심리학 등의 광범위한 학문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오늘날 미시경제학, 거시경제학, 계량경제학, 행동경제학, 진화심리학, 인지심리학 등을 모두 합친 이론이 등장했다고 상상해보면 그 파괴력을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르크스는 당시 지배 세력이었던 왕정제, 귀족제에 대한 인간이 지닌 가장 강력한 무기였습니다. 그의 대표작《자본론》은 전체 사회질서와 그 지배자들 및 지지자들 그리고 이데올로그와 자발적, 비자발적인 앞잡이들, 다시 말해 그 사회질서와 공동운명체인 모든 자들에 대해 그때까지 행해진 고발 가운데 가장 가공할 만하면서 가장 근거 있고 주도면밀한 것이었습니다.

《자본론》은 신념의 시대가 시작된 이후에 쓰여진 그 어떤 저술도 따라잡지 못할 만큼 상징적인 의미를 갖게 되었다. 지금까지《자본론》은 이 책을 한 줄도 읽지 않았거나 혹은 때때로 등장하는 모호하고 애매한 문장들을 이해하지 못한 채 읽은 수백 만의 사람들에 의해 맹목적 숭배, 또는 그 반대로 맹목적 증오의 대상이 되어왔다. 《자본론》의 이름으로 혁명이 일어났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반혁명 세력은 적의 무기들 가운데서 가장 강력하면서 은밀하게 영향력을 발휘하는 이 무기를 집중적으로 탄압했으며 지금도 탄압하고 있다. - p.357 

마르크스의 지적 유산은 너무나 엄청나서, 결과적으로 웃지 못할 상황을 많이 만들고 말았습니다. '역사 과정을 규정하는 결정적인 요소는 관념이다'라는 명제를 반박하기 위해 출발한 마르크스의 사상은 아이러니하게도 마르크스의 관념이 역사에 엄청난 영향을 미침으로써 스스로의 테제의 힘을 약화시켰습니다. 또한 마르크스는 개인이 거대한 사회 세력들의 꼭두각시라고 말했지만, 마르크스라는 개인은 거대한 사회 세력의 창시자가 되었고, 마르크스는 사상은 위장하고 합리화하는 사회적 이익의 반영에 불과한 부수적 현상이라고 주장했지만, 마르크스의 사상이야말로 세계를 변화시켰습니다. 마르크스는 신념의 의의와 진실성 여부는 신념 자체가 아니라 그 표현인 실천에 달려 있다고 말할 만큼 혁명적 실천과 다를 바 없는 학설이었기 때문에 다양한 해석과 전략을 가져왔고, 이러한 특징 때문에 결국 마르크스 스스로 자신은 결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라고 하는 유명한 말을 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마르크스의 지적 유산은 우리 세대의 사회, 과학의 본질과 방향을 바꿨습니다. 이런 위대한 학자로서의 마르크스를 이사야 벌린은 간결하면서도 매력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지적을 이 책에 응용해 보면, 이사야 벌린의 마르크스 평전은 독자들이 마르크스와 아는 사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고, 책을 통해 그를 알게 되는 것보다 더 가까운 사이가 되고 싶다는 욕망을 불러일으킵니다. 벌린은 마르크스라는 위인의 사적인 모습과 특이한 버릇까지도 전부 밝혀주고 있으며, 마르크스의 찬란하고 영광스러운 순간들을 번쩍번쩍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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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사회와 그 적들 2 - 이데아총서 14
칼 R.포퍼 지음 / 민음사 / 198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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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칼 포퍼는 2차세계대전을 바라보며 전쟁이 발발한 사상적 토대로 플라톤, 헤겔, 마르크스의 세 철학자를 꼽습니다. 1권에서는 플라톤에 대해 기술했고 2권에서는 헤겔과 마르크스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헤겔철학의 근간은 플라톤의 제자였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노예본성론을 강화하여 받아들였으며 그의 최상국가론 - 귀족정치, 봉건제도, 민주주의(통치자만의) - 과 플라톤이 생각했던 파멸의 이데아와는 반대인 진화의 이데아 사상을 헤겔은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헤겔의 사상은 당시 독일을 통일한 프러시아와 프러시아의 전체주의를 옹호하는 어용철학으로 플라톤에서 시작된 전체주의 사상을 현대의 전체주의로 확립시키는데 교두보 역할을 합니다. 그의 사상은 그의 변증법과 동일철학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3단계의 변증법은 프랑스혁명으로 시작된 자유와 평등의 이념에 대항하기 위해 사용되었으며 동일철학은 프러시아의 기존 체제와 질서를 옹호하는 윤리적이고 법적인 실증주의입니다. 헤겔은 당시 독일을 지배했던 프러시아의 프레데릭 윌리엄 3세의 '모든 학문은 국가이익에 완전히 종속되어야 한다' 는 요구를 만족시킵니다. 그와 더불어 피히테로 시작된 독일 민족주의 이론을 받아들여 프러시아 제국의 국가주의적 민족주의의 사상적 기반이 되었으며 프러시아와 더 나아가 나치독일에 이르기까지의 사상적 기반을 제공합니다.

헤겔의 3단계 변증법은 흔히 알려져 있는 정론-반박-종합 이라는 보편적인 과학적 사고진행방식입니다. 다만 독특한 점은 그가 반박 단계에서 제시되는 모순을 긍정한다는 점입니다. 그 이유로 과학적 모순은 결국 과학적 발전을 일으킬 수 있는 수단이므로 환영해야 한다. 모순을 환영해야 한다면, 모순을 제거할 필요는 없으므로 지적 진보를 이룰 필요는 없다고 말합니다. 헤겔의 동일철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진화의 이데아 - 모든 사물은 갈수록 진보,진화하기 때문에 마지막에 가서는 그 사물의 궁극의 형태에 도달하게 된다 - 와 유사합니다. 결국 남아있는것, 살아있는것, 현재 존재하는 가치관과 제도 이외에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에 그것은 지금까지의 형태보다 궁극의 형태에 가까운 발전의 정점이며 선[善]이다는 철학입니다. 쉽게 말해서 힘이 옳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곧 헤겔의 시절로 말하자면 프러시아 제국입니다.

헤겔의 영향은 마르크스의 극좌파, 보수주의 중도파, 파시스트의 극우파 모두에 끼치고 있으며 극좌파는 계급간의 투쟁, 극우파는 인종의 투쟁으로 받아들입니다. 헤겔의 역사주의는 현대 전체주의와 동일하며 그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국가는 하나의 민족으로 이루어져 있는 민족의 화신이며 그 선택된 민족들의 운명은 세계지배를 위해 결정되어져 있기 때문에 다른 국가와의 전쟁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주장하여야 한다. 국가는 역사적 성공만이 심판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종류의 도덕적 의무로부터 면제되며 개인을 버리고 집단적 유용성만을 받아들여야 한다. 오래된 국가는 새로운 국가보다 역사적으로 발전의 형태에서 뒤떨어져 있으므로 오래된 국가에 대한 전쟁은 필연적이며 그런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위대한 인간, 세계역사적 인물을 찬양하고 일반 시민들은 영웅적 삶을 이상으로 삼고 동경하며 따라가야 한다.' 이러한 헤겔의 철학은 독일 지식인층에서 널리 받아들여졌고 결국 1,2차 세계대전이라는 형태로 나타났습니다. 칼 포퍼의 헤겔에 대한 평가는 쇼펜하우어의 묘사를 자주 인용하고 있는데, 칼 포퍼는 그 묘사를 대단히 마음에 들어했습니다.

증명된 위대한 철학자로서 위로부터 권력에 의해 임명된 헤겔은 대머리에 무미건조한, 구역질나는, 무식한 허풍장이였다. 그는 지랄 같은 얼빼는 넌센스를 갈겨 놓고 그것을 이리저리 퍼뜨리는 데 용맹스럽기가 이를 데 없는 사람이다. 이 넌센스는 금전적 이익을 탐하는 추종자들에 의해 불멸의 지혜로 떠들썩하게 처받을어졌으며 모든 어리석은 자들에 의해 얼른 받아들여졌다. 그 어리석은 자들은 이미 세상에서 들을 수 있는 가장 완벽한 경탄의 합창을 불러댔다. 권력을 쥔 사람들이 헤겔에 마련해주었던 폭넓은 정신적 영향력은 한 세대 전체를 지적 부패에 빠뜨리게 하였을 뿐이다. - 쇼펜하우어 

칼 포퍼는 전체적으로 이전의 플라톤과 헤겔에 비해서 마르크스의 업적중 일부분에 대해선 꽤나 후한 평가를 합니다. 마르크스주의는 순수한 역사이론으로 경제와 정치의 발전, 역사의 미래 진행을 예측하는 학문입니다. 그는 프랑스 유물론의 영향을 받아 사회공학을 유토피아적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존 스튜어트 밀은 역사발전의 법칙은 수많은 사람들의 인간성과 마음의 법칙들에 의해 진보한다는 방법론적 심리주의를 주장하는데, 사회학은 심리학에 환원될수 있다는 심리주의 이론에 대해 마르크스는 반심리주의를 주장합니다.

심리주의는 사회의 모든 현상은 개별적 인간성의 법칙이라는 방법론적 개체주의를 주장한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사람의 보편적 행위가 본능이나 인간성에 뿌리를 두었다는 결정적 증거가 되지 못한다는 점이나 인간의 전통의 기원을 심리학적으로 추측해야 한다는 점에서 역사주의의 방향(사회과학은 사회현상에 관해 거시적인 역사법칙에 따라 역사적 예언을 할 수 있다는 주장)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한계성을 드러냅니다. 마르크스의 역사적 유물론은 사회의 경제조직인 물물교환이 모든 사회제도와 역사적 발전의 근본임을 주장합니다. 인간의 사상은 경제조건 위에 세워진 것이므로 사상과 관념은 그 사람의 삶의 경제적 조건을 고려해야만 과학적으로 연구할수 있다고 말합니다. 흔히 마르크스이론을 계급투쟁이라 이해하는 통속적 마르크스주의자들과는 다르게 마르크스는 자본가조차도 역사에 무력한 존재로 보았습니다.

마르크스는 정신적 자유를 최종적인 삶의 기점이자 역사발전의 최종단계로 삼았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사람은 육체에 얽매여 있으며 신진대사에 필요한 경제적 필수품으로부터 벗어날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으며 살아가면서 할수 있는것은 인간의 품위에 걸맞는 노동조건으로의 개선, 즉 노동복지의 향상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 마르크스의 중심 사상입니다. 마르크스의 계급론은 사회에서 계급투쟁의 역할에 대한 시각을 넓혀 줌으로서 가치있는 제안이였고 그가 살았던 당시의 사회에 한해서의 분석으로는 탁월했지만 동일계급간의 투쟁 - 칼 포퍼는 중세 유럽왕과 교황의 다툼을 예로 듬 - 을 고려하지 않은 지나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였다고 평가합니다. 마르크스는 유물론에서 사상은 경제적 조건위에 드러난 하나의 현상이므로 아무런 영향력을 끼칠 수 없다는 정치무력설을 주장합니다. 이는 당시 영국의 가혹한 상황속에서 나온 것으로 초기 자본주의의 단점을 지적했다는 점에서 값어치가 있습니다.

메리 앤 위클리는 쉬지않고 26,5 시간을 일했다. 케이라는 남자 의사가 뒤늦게 배심원 앞에서 증언하기를 메리 앤 위클리는 장시간 노동하였기에 죽었다고 했다. 배심원은 이 의사를 훈계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판결을 내렸다. 죽은 사람은 졸도로 사망하였다. 그러나 그녀의 죽음이 지나친 노동을 함으로서 가속화되지 않았나 하는 우려를 가질 수는 있다. -《자본론》p.257 

마르크스 자신도 자식들이 죽었을때 관도 사지 못했을 정도로 가난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화입니다. 그러한 현실 속에서 법률체계와 현실의 경제상황의 모순을 바라보며 정치무력설을 주장하였고, 형식적인 자유보단 실질적 자유가 중요하므로 노동일수의 단축이 근본적인 필수 사항이라고 말합니다. 그에 대해 칼 포퍼는 현대에 잘 알려진 수정자본주의, 국가의 계획경제 간섭을 주장합니다. 포퍼는 경제적 힘이 모든 악의 뿌리에 있다는 독단은 없애 버려야 한다고 말하며 오히려 모든 악의 뿌리에 놓여 있는 것은 모든 형태의 통제되지 않은 힘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돈 자체가 특별히 위험한 것이라고는 볼 수는 없지만 그것이 위험스러운 것이 되는 것은 돈이 직접 권력을 살 수 있든가, 살기 위해 자신을 파는 경제적 약자를 노예화함으로써 권력을 간접으로 살 수 있을 때라는 포퍼의 조언은 현대의 우리 사회에도 직접적으로 적용되는 문제의식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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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03 20: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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