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베스트셀러 - 조선 후기 세책업의 발달과 소설의 유행,문학 이야기 지식전람회 26
이민희 지음 / 프로네시스(웅진)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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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음탕하고 추한 어조가 사람의 심령을 허무 방탕하게 하고, 사특하고 요사스러운 내용이 사람의 지혜를 미혹에 빠뜨리며, 황당하고 괴이한 이야기가 사람의 교만한 기질을 고취시키고, 시들고 느른하며 조각조각 부스러지듯 조잡한 문장이 사람의 씩씩한 기운을 녹여냅니다."

조선 후기 최고의 유학자 중 한 명이었던 정약용이 묘사한 이것은 바로 패관잡서, 요즘말로 하면 소설책이었습니다. 정약용은 사람이 만들어낸 재앙으로 소설책을 으뜸으로 지목하는데, 한번 소설책을 들면 공부하는 학생이나 종묘사직을 책임져야 하는 고위 관료, 집안 살림을 맡은 부녀자들 모두 책읽기를 마칠 때까지 다른 일을 소홀히 하여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소설에 빠져 든 이들은 모두 패가망신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소설책을 모두 모아 불태우고 중국으로부터의 소설 수입을 금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제안은 마치 과거 우리나라에서 만화책을 모아 불태운 일이나 현재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를 외치며 게임, 만화 등의 문화를 탄압하는 것을 보는 것 같습니다.

근세에 안방의 부녀자들이 경쟁하는 것 중에 능히 기록할 만한 것으로 오직 패설이 있는데, 이를 좋아함이 나날이 늘고 달마다 증가하여 그 수가 천백 종에 이르렀다. - p.22 

조선의 유명한 학자 중 한명이었던 정약용이 심각한 어조로 언급할 정도로 조선시대에 소설책은 막강한 파급력을 가져왔습니다. 임진왜란 이후 중국 통속소설이 대량 유입되면서 사람들은 소설의 맛을 알아버렸고, 중국의 소설을 번역한 국문소설, 국문창작소설이 등장하면서 소설의 대중화를 이끌었습니다. 이 책《조선의 베스트셀러》는 이러한 조선의 시대상, 조선시대에 성행했던 출판문화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조선의 출판문화를 이끈 것은 기득권층이 장악하던 점잖고 품격있는 것들이 아니라, 정약용의 표현대로 음탕하고 사특하고 황당하고 괴이한, 상류사회가 멸시하던 천한 문화였습니다. 요즘 말로 표현하면 아마 이런 것이었을 것입니다.

(C01) [笑笑生] 금병매(金甁梅) (번역).zip

조선시대에 소설책이 각광받기 시작한 것은 한문소설이 아닌, 국문소설이 등장하면서부터였습니다. 소설책이 높은 인기를 얻게 되자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게 되었고, 17세기 후반부터 시장경제가 발달하면서 소설을 필사해 대여하는 세책업이 성행했습니다. 세책점에서 사용하는 세책본 고소설은 요즘말로 하면 대여점용 소설 혹은 만화책인데, 이 대여점용 책과 대여점이 조선중기부터 조선말기까지 출판문화의 핵심에 서게 됩니다. 세책본에 대한 고위관료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세책점은 판서, 참판 등 고위층 인사부터 진사, 생원 등 일반인은 물론이고 노비들마저도 애용했습니다.

조선에서 상업적인 목적으로 유통되던 책들은 대여용인 세책본과 개인용인 방각본이 있었습니다. 현재의 대여점과 비교했을때 독특한 점은 현재는 똑같은 책을 대여용으로도 사용하고 개인판매용으로도 사용하는 반면, 조선시대에는 세책본과 방각본의 생김새가 달랐다는 것입니다. 세책본과 방각본의 차이라면, 현대의 책으로 비유하면 세책본은 양장본이고, 방각본은 페이퍼백이었습니다. 대여점 책인 세책본이 더 고급 책이었던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써야 하기 때문에 튼튼해야 했고, 현재의 대여점용 책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빌려간 사람이 낙서하기 등의 행태가 조선시대에도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세책본《금령전》에서는 책에 낙서가 많으니 다시 보수하지 않으면 세책점 주인의 어머니를 어떻게 하겠다는 패드립을 낙서해놓는가 하면, 세책본《김홍전》에서는 단권인 책을 네 권으로 만들어 대여했다며 세책점 주인을 잡놈이라 부르는 낙서도 있었습니다.

세책의 특성상 필사해 만든 책을 많은 사람들이 돌려가며 보아야 했기 때문에 무척 견고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표지를 삼베 같은 것으로 싸서 일반 책에 비해 훨씬 두껍게 만들고, 손이 자주 가는 본문의 경우 찢어지기 쉽기 때문에 배접을 하거나 두꺼운 종이를 사용했다. 또한 책장마다 들기름을 칠해 책장이 해지는 것을 방지하기도 했다. 이렇게 여러 조건을 갖추다보면 다른 것보다 세책본의 단가가 더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세책본은 사대부가 여성을 비롯한 중산 계층 사람들이 즐겨 찾았고, 하층민들은 세책본보다 비교적 값이 저렴한 방각본을 즐겨 찾았다. - p.61 

문화의 발달, 전파과정에서 대여점 문화, 세책업의 등장은 전세계적인 현상이었습니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 등에서도 비슷한 시기에 세책업이 등장했고, 중국의 경우는 한 세기 뒤에 세책업이 융성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직지심체요절이 세계 최초 금속활자본으로 인정받는 등 인쇄술 자체는 뛰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세계적으로 본격적인 인쇄술로 인정받는 것은 그 기술이 어떻게 활용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기술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습니다. 이는 기득권층이 소설과 같은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서브컬처를 무시하고 배척한데 그 원인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소설책을 보고자 하는 열정, 열의는 그런 장애물들을 극복하고 다른나라 부럽지 않는 소설강국을 만들어 냈습니다. 남성 사대부 주도의 유교사회에서 기득권을 가진 자들이 멸시하거나 배척하던 국문소설과 세책 문화는 규방의 여성 독자를 중심으로 문학 창작 및 독서 문화의 고양을 이끌어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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