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혁명 - 프랑스 혁명 이전의 금서 베스트 셀러 역사도서관 1
로버트 단턴 지음, 주명철 옮김 / 알마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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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해 저자 로버트 단턴은 "그렇다"고 말합니다. 단턴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갑니다. "그렇다면, 어떤 책이 세상을 바꾸는가?" 우리가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꾸란》《성서》《국부론》《자본론》《상식》《종의 기원》등의 책들을 지목할 것입니다. 그러나 단턴은 좀 독특한 책들을 지목합니다. 시민 혁명들 중에서도 가장 의의가 깊은 것으로 꼽히는, 세계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인 프랑스 혁명의 원동력이 된 책들입니다. 프랑스 사람들은 혁명을 일으키기 전에 어떤 책들을 읽어왔고, 책을 통해 어떻게 변하였는가 하는것이 단턴이 주목하고자 하는 부분입니다. 혁명 이전의 베스트셀러들, 그 책들은 반동적이었고, 반신앙적이었고, 음란한 책들이었습니다.

구텐베르크 인쇄술 이후 프랑스에서도 다양한 책들이 발간되었습니다. 하지만 혁명 이전의 프랑스는 앙시앵 레짐, 구체제라 부르는 왕정하의 전제적 지배체제였기 때문에 교회, 국가, 도덕을 거스르는 책들은 금서목록으로 지정되어 판매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미국 금주법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런 사회적 금기야말로 큰 돈이 되기 때문에 출판사들은 금서들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야한 책을 '빨간책'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당시 금서들은 '철학책'이라는 이름 하에 유통되었습니다. 독자들은 '철학책'을 원했고, '철학책'은 최고의 인기를 누렸습니다. 당시 금서 중에서 메르시에의《2440년》, 레날의《철학적 역사》, 볼테르의《백과사전에 관한 질문》같은 상위 베스트셀러는 실제로 앙시앵 레짐 시대 권력을 가진 모든 사람을 거스르는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음탕하고 추한 어조가 사람의 심령을 허무 방탕하게 하고, 사특하고 요사스러운 내용이 사람의 지혜를 미혹에 빠뜨리며, 황당하고 괴이한 이야기가 사람의 교만한 기질을 고취시키고, 시들고 느른하며 조각조각 부스러지듯 조잡한 문장이 사람의 씩씩한 기운을 녹여내는 저급한 책들은 근본적으로 인간의 말초적 본능을 자극하는 책이면서도 그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성욕을 자극하는 문학은 자유로운 사고와 자유로운 삶을 결합한 자유사상을 고취시켰습니다. 이 사상은 성적 규범만이 아니라 종교적 교리에도 도전했는데, 성교와 광신, 고해실안에서의 부정행위, 가면을 벗은 기독교의 참모습, 남색을 즐기는 성직자들 등을 묘사했습니다.

책을 읽을 여가가 있고 많은 교양을 쌓은, 사대부가 여성의 취향에도 소설은 입맛에 맞았다. 지루함을 달래고 독서를 통해 지식을 넓히며, 유교사회의 속박에 억눌렸던 심사를 풀어내는 데 소설만큼 효과적인 것이 없었던 것이다. -《조선의 베스트셀러》p.19 

《계몽사상가 테레즈》라는 음란소설은, 남녀관계를 적나라하게 묘사함으로써 인간을 운동 중인 물질로 환원시킵니다. 음란함 속에서 귀족이건 평민이건, 남자건 여자건 모든 몸은 궁극적으로 평등해집니다. 로맨틱한 사랑이란 것은 근엄한 사회에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과거의 여성에게 있어서 임신이란 죽음에 이를 정도로 위험한 일이었기 때문에, 성교를 포기할 만큼 임신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계몽사상가 테레즈》는 임신을 제외한 성교, 즉 질외사정이라는 쾌락을 추구하는 성교를 묘사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여성이 자기 쾌락을 추구하고 자기 몸의 주인이 될 수 있는 권리를 옹호하게 됩니다. 이러한 사상은 훗날 생길 여성인권운동보다도 진일보된 사상이었습니다.

25판이나 발간된 최고의 베스트셀러 중 하나였던《2440년》은 2440년의 파리를 배경으로 먼 미래에 이뤄질 이상향을 공상함으로써 현실의 부조리를 비판했습니다. 상상은 현실을 비판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 중에 하나입니다. 메르시에는 주로 종교와 정부를 비판했습니다. 기독교의 주요 제도들인 십일조나 왕정제 등을 먼 미래의 사람들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촌스럽고 비합리적인 제도로 묘사함으로써 당시 앙시앵 레짐이 가지고 있었던 불합리성을 통렬하게 비판합니다.《뒤바리 백작부인에 관한 일화》는《2440년》보다 더 직설적으로 나아갑니다. 창녀인 뒤바리를 통해 권력자들의 행동을 폭로하는 중상비방문인 이 책은 기득권 체제의 상징적인 장치에 들어있는 권력을 공격합니다. 보통사람들은 거물급 인사들이 자신들만의 세상에서 생활하는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상상하기 어렵지만, 뒤바리의 이야기를 통해 왕은 보통사람들이나 다를 바 없는 신세로 전락합니다. 권력자가 여자들을 끼고 놀았다던지 하는 이야기를 통해 권력자의 정통성과 신성성은 해체됩니다. 사람들은 권력자를 더이상 신이나 아버지로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프랑스혁명 이전에 등장한 베스트셀러 금서들의 특징은 우리나라의 책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조선 최초의 금서이자 현재까지 발견된 최초의 한글소설인《설공찬전》은 왕권모독죄와 풍기문란죄에 해당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정치적인 메시지, 유교에 대항하는 불교적 메시지, 여성차별을 비판하는 사회적 메시지, 중국과 천자 중심의 세계관을 비판하는 메시지를 담고있는 이 금서는 프랑스의 금서들과도 차이가 없습니다.《설공찬전》의 인기가 어찌나 높았던지,《조선왕조실록》에서 우려할 정도였습니다. 대중들에게 있어서 금서가 가지는 매력은 상상 이상입니다. 이러한 특징으로 인해 금서는 사회적 여론을 형성하며, 궁극적으로 프랑스 혁명의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프랑스 혁명은 혁명이 일어나기 전에 이미 시작되었고 완성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저급한 책들, 음란하고 비사회적이고 권력자들을 중상비방하는 책들을 통해 이미 체제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린 상태였습니다. 단턴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았던 금서의 역사를 보여주며 독자들에게 새로운 교훈을 선사합니다. 우리사회를 변화시킬 책은, 어쩌면 학자들의 딱딱한 책이 아니라, 새롭고 신선한 에로소설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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