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의 세상 - 아시아의 미군과 매매춘
산드라 스터드반트.브렌다 스톨츠퍼스 엮고 지음, 신시아 인로.브루스 커밍스 외 해설 / 잉걸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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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일본제국의 전쟁범죄 중 하나였던 위안부 문제에 대해 박근혜정부와 아베정부는 합의를 통해 공식적으로 종결되었다고 선언했습니다. 한일 양국 정부가 발표한 위안부 합의는 많은 논란을 남기고 있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정부, 전쟁, 군인, 남성, 여성, 매춘. 이 다양한 요소가 가져오는 질문들은 한일 위안부 문제 뿐만 아니라 더 넓은 사회문제를 생각하게 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자 산드라 스터드반트와 브렌다 스톨츠퍼스는《그들만의 세상》에서 한국, 오키나와, 필리핀에 있는 미군기지가 만들어낸 기지촌의 문화를 이야기합니다. 인류의 가장 오래된 직업 중 하나가 매춘부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우리 주변엔 언제나 성매매가 있습니다. 육체 거래의 기저에는 군대식 사고 속에 뿌리깊게 자리잡은 남성다움이라는 과장된 개념이 있습니다. 서울대 배은경 교수의 지적처럼, 남성의 성매매는 개인적인 성적 욕구보다 오히려 군대나 회식, 접대로 이어지는 남성 집단의 문화와 더 깊이 연관된 것으로 나타납니다. 남성으로 이루어진 군인들, 군대식 사고를 가진 남성 직장인들은, 그들의 정체성과 조직 유지를 위해 여성을 필요로 합니다.

이것은 전체 한-미 관계를 위해서나, 한국에서 복무하는 젊은 미국인 남성세대가 한국에 대해 갖게 되는 최초의 기억을 위해서도 가장 중요한 측면이다. 남성 입성식은 곧바로 시작된다. 한 나이든 '한국 전문가'에게 아내와 함께 서울에 갈 예정이라고 말한 일이 있었다. 그는 "잔치에 왜 샌드위치를 가져가죠?"라고 했다. - p.207


이런 남성들이 필요로 하는 여성은, 정상적인 여성이 아닙니다. 가부장적 가치에 복종하는 여성, 단순히 성욕 배출구로서만 존재하는 인간 이하의 가치를 지닌 동물로서의 여성을 원합니다. 특히 이런 경향은 기지촌 매매춘에서 극단적으로 표출됩니다. 미군이 성매매 여성을 폄하하며 부르는 말, '쌀로 힘을 내는 갈색 기계'는 그런 남성들의 사상을 여과없이 보여줍니다. 군대가 가져다주는 죽음의 공포, 괴롭고 지루한 훈련들, 그러면서도 지켜내야 하는 남자다움이라는 가치는, 미군의, 더 나아가 군인의 정신을 파괴하며, 파괴된 남성은 살아남기 위해 또 다른 희생자, 성매매 여성을 파괴합니다. 기지촌 성매매 문화는 인종주의, 계급차별주의, 가부장제, 성차별주의, 제국주의가 뒤엉킨 용광로와 같습니다.

한국, 필리핀, 오키나와에 있는 미군기지는, 외국에서 온 돈 많고 혈기왕성한 남성으로 구성된 주둔군과 상대적으로 빈곤한 나라의 여성이라는 선명한 구분 덕분에, 군국주의와 신식민지적 질서가 성매매를 통해 드러납니다. 미군기지와 세 지역은, 국가 주도의 정책 덕분에 큰 경제구역과 문화를 만들어내 이런 양상을 굳건히 합니다. 기지 주변에선 밀수, 마약, 매춘 등으로 이루어진 경제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군대가 철저한 합리성을 바탕으로 제도화된 만큼, 군인의 성적 휴식을 제공하는 매매춘의 문화 역시 제도화되어있습니다. 한국, 오키나와, 필리핀 정부는 미군을 위해 깨끗한 성노예를 제도적으로 제공합니다. 미군을 상대하는 여성들은 정부가 지정한 위생검사를 받고, 정해진 장소에서 미군을 상대합니다. 여성을 군인의 성적 욕구를 배출하기 위해 제공되는 물건으로 취급하는 것이 범죄이고 위안부라면, 한국, 오키나와, 필리핀은 국가가 위안부를 만들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성매매 산업이 뿌리깊게 정착할 수 있었던 원인 중 하나는 정부의 적극적인 성매매 지원에 있었다. 정부는 공식적으로 위안부를 고용해 위안소를 운영했으며, 그 대상은 국군과 미군, 유엔군이었다. 박정희 정권은 외국인 상대 접대부를 대상으로 교양 강습을 추진했다. 당시 국가의 선결 과제는 벌거벗은 아가씨를 국산으로 대체하는 것이었다. 1970년에 주한 미군이 1만 8천 명 감축되었는데, 이 때문에 정부는 비상이 걸렸다. 경제기획원 장관이였던 김학렬은 미군이 줄어들면 외환 수입이 약 8천만 달러가 줄어들 것이라고 증언했고, 정부는 보건 당국과 경찰이 협조해 위안부의 교양을 강화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은밀한 호황》


미군기지가 제공하는 경제효과는, 지역의 건강한 경제를 구축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미군기지에 의존한 산업은 미군에게 종속될 수밖에 없으며, 전체 경제체계에서 여성의 성노동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함에도 불구하고 여성 자신에게는 거의 보탬이 되지 않습니다. 지역사회와 여성은 경제체제에서 희생되고 착취되는 반면, 한국, 필리핀, 태국의 정부, 상류인사, 사업가들에게 성매매는 큰 사업이자 짭짤한 돈벌이가 됩니다. 미군 기지촌의 휴식과 오락 모델은, 오늘날 아시아 관광산업의 개발모델이 되기도 했습니다. 마닐라, 제주도, 방콕 등 유명한 관광유흥지는 미군기지에서 이어지는 선진국과 제3세계 사이의 역학관계를 보여주는 곳입니다.

위안부 문제가 종결됬느냐고 묻는다면, 그 답변은 회의적입니다. 이것은 단지 제국주의 일본이 만든 한일 위안부, 그리고 위안부 소녀상을 둘러싼 갈등에 그치지 않습니다. 오늘날 많은 남성들이 군대에서, 그리고 직장에서 성을 파는 여성을 안으며, 위안을 찾습니다. 오늘도 수많은 유흥업소들이 불을 밝힙니다. 미군들이 여성을 '쌀로 힘을 내는 작은 갈색 섹스기계'라고 비하하는 것처럼, 우리도 여성을 다른 말로 비하합니다. 위안부들을 위한 투쟁은, 단순히 일본 정부를 비판하기 위해, 일본 정부에 의해 고통받은 할머니들을 위한 투쟁에서 그치는 것은 너무나 아쉽습니다. 그 투쟁은 한국 정부가 만들어낸 위안부, 가부장적이고 남성 위주의 한국 사회가 만들어낸 피해자들을 위한 투쟁으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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